소설리스트

호크-45화 (45/55)

Chapter 45.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작은 소리에도 이지 중대원들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리하나 요새를 나온 뒤로 계속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리하 강 요새 이남부터 로베니아 제국의 국경 사이에 생긴 완충지역을 통과하고 있어서였다.

이곳은 무법지대와 같이 통제가 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곳곳에 탈영병과 도적무리들이 들끓고 있어서 일반사람들은 전혀 오지 않는 곳이었다.

아니, 올 수도 없는 곳이었다.

양측의 국경 경계가 워낙에 삼엄해서 허가 받지 않은 이들이 국경을 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이지 중대는 작은 소리나 현상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확인해야 했다.

그들의 목적지까지 무사하게 가려면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야 했고 루크 소령은 그런 일에 철저했다.

"역시나 이지 중대야, 왕립군 중에서 이지 중대만큼 실전 경험이 많은 중대는 없을 거야?"

"당연한 말씀입니다. 이지 중대는 늘 선봉부대였고 항상 적진 깊숙이 들어가 작전을 수행했으니까요. 게다가 좀비들하고도 싸워서 이긴 놈들입니다. 두말 할 필요도 없죠."

루크의 말에 호크도 같은 생각인지 흡족한 얼굴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마도 뒤를 따르는 정체불명의 존재들도 이지 중대의 철저함에 버거워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즈 산입니다. 스베인 왕국으로는 넘어갈 수 없으니 산을 넘는 것이 최선입니다."

루크 소령의 설명에 호크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인상을 썼다.

"젠장 맞을 놈들!"

"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자네에게 한 말이 아니야! 빌어먹을 샹그릴라 놈들에게 한 소리야."

"장군님! 신관들을 욕하시면 천벌을 받습니다."

루크는 마치 누가 듣기라도 했을까 봐 겁이 나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움직였다.

"그렇게 돈을 많이 쳐 받았으면 마법진이나 좀 만들어두지, 그랬으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거 아냐?"

"자, 장군님! 제발 목소리 좀 낮추십시오!"

"이 자식은 뭐가 그렇게 겁이 나서 에휴!"

평소라면 스베인 왕국을 통해서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알버스크 왕국과 스베인 왕국이 동맹을 맺은 뒤부터 양국가 간의 관계가 아주 껄끄러워져서 곤란했다.

더구나 호크 정도되는 중요인물이 스베인 왕국을 통과하겠다고 하면 저들 연합세력이 아마도 스베인 왕국 내에서 호크를 난도질 하고도 남을 일이었기에, 이 완충지대를 넘어 산을 타고 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국경 사이를 뚫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이번 작전의 요지였다.

호크가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며 스베인 왕국을 가로지르는 아이즈 산을 바라보았다.

"더럽게 높구나! 젠장 맞을 산 같으리라고!"

호크의 투정처럼 아이즈 산은 꽤나 험난해 보이는 산세를 자랑하며 호크와 이지 중대를 막아섰다.

말을 버리고 산을 타는 중대원들을 보던 호크가 몸을 좌우로 틀며 뭉친 근육들을 풀었다.

"이봐, 소령!"

"넷! 장군님!"

"자네는 중대를 이끌고 저기 보이는 산등성이에서 대기하게. 잠시 후에 보도록 하지."

이상한 동작으로 몸을 푸는 호크를 보던 루크는 불안한 얼굴로 호크를 쳐다보았다.

"뭘 하시려고요?"

"그냥, 청소나 좀 하고 가려고.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중대원들이나 잘 챙겨서 데리고 올라가 바로 쫓아가지!"

손을 내저으며 루크를 떠밀자 하는 수 없이 중대를 이끌고 산을 올라야만 했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루크에게 호크는 수차례 손을 흔들어주어야 했다.

"아이구, 시어머니가 따로 없군. 머스탱 공작이 왜 저 녀석을 붙여 줬는지 이제야 알겠어."

겉모습만 젊지 완전히 노인네처럼 구는 루크 덕에 호크는 얼굴에 자주 구김이 갔다.

'이것은 이래서 위험하다,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는 통에 몰래 녀석들을 따돌리고 혼자 가보려고도 생각했지만, 나중에 사이클론과 머스탱 공작의 잔소리에서 살아남으려면 일정대로 따라야만 했다.

루크와 중대원들을 위로 올려 보내고 나니 호크는 겨우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팔굽혀 펴기를 마지막으로 몸을 모두 푼 호크가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권투 선수들이 하는 스텝을 밟았다.

쉭! 쉭! 쉭!

입에서 제법 그럴싸한 소리를 내며 주먹을 휘두르던 호크가 땀이 조금 흐르기 시작하자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발밑에 있는 돌조각 하나를 힘껏 걷어차자 숲속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힘차게 날아갔다.

가죽 푸대에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자, 다들 나오시지! 그동안 몰래 쫓아다니느라 수고가 많았어! 이제 인사나 나누자고, 어서!"

호크가 숲속을 향해 소리치자 인적이 없던 숲속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꽤나 많은 인기척을 내며 고요하던 숲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어차피 서로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던 터였다.

단지 이지 중대 때문에 머뭇거렸던 것이다.

호크가 홀로 남자 추격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많은 인원도 인원이었지만, 그 질이 아주 높았다.

숨소리들이 모두 일정했다.

특별히 흥분하거나 떨고 있는 자들이 전혀 없었다.

호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저렇게 나온다는 것은 상당한 자신감이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렇다면 놈들은 호크를 상대하기 위해 꽤 많은 준비를 해왔다는 뜻이었다.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거란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거구의 남자가 중앙으로 나섰다.

"당신이 알렉스 호크 경이오?"

"몰라!"

"당신이 맞군!"

"아니, 아니라면 어쩔 건데?"

깐죽대는 호크의 말장난에도 놈들은 전혀 도발하지 않았다.

많은 훈련을 받은 무리들이라는 소리였다.

제아무리 호크가 뛰어나다 해도 상대는 그 수가 많았고, 또 소드 마스터라고 해서 무적의 불사신이 아니었다.

그도 검을 맞으면 상처입고 피가 흐르는 인간일 뿐이며 단지 그 가진 바 능력이 조금 남다를 뿐이었다.

보통의 기사나 병사들이라면 호크도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보통내기들이 아니었다.

여러 부류가 뒤섞인 특별한 목적을 위해 조련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 특별한 목적이란 바로 호크 자신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혼자 남겠다고 큰소리 친 것이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일 줄은 호크도 몰랐다.

전신의 피부가 놈들이 뿜어내는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따끔거렸다.

천천히 주변의 사각을 점거하면서 방위를 막아오는 놈들에게 우물쭈물하다가 좋은 위치를 다 내주고 말았다.

천천히 목을 돌려본 호크는 등에서 혼돈의 검 제로를 꺼내들었다.

웬일인지 제로의 검신이 약하게 떨리며 울기 시작했다.

제로의 반응에 호크의 눈이 커졌다.

제로는 고대의 유물이나 신들의 흔적에만 반응했다.

그렇다면 이 중에 그와 관련된 것이 있다는 뜻이었고, 더욱더 조심해야만 한다는 경고였기에 호크의 몸이 좀 더 숙여졌다.

검 끝은 가장 큰 키에 로브를 입은 자를 향했다.

아무래도 녀석이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누가 보냈는지 물어도 물론 말해주지 않을 테지?"

"......."

"뭐, 나도 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예상대로 대답이 없는 암살자들을 보며 호크는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물론 차디찬 침묵으로 돌아왔지만, 호크의 미소가 끝나는 순간 호크가 서 있던 자리는 텅 비게 되었다.

캉!

"웃차!"

호크가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아주 좋은 기습이었지만, 놈들은 대비하고 있었는지 세 사람이 힘을 합쳐 호크의 검을 막아내었다.

비록 힘을 다하지 않았다지만, 소드마스터의 검을 막아내었다.

오늘 하루가 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호크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눈앞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입 바람으로 불어 넘긴 호크의 시야에 놈들의 전체적인 모습이 들어왔다.

한 번의 충돌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 바람에 호크가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아서 시야를 확보했다.

가운데 키가 큰 로브 사내를 중심으로 검을 쓰는 검사가 여덟에 로브를 입어 마법사로 보이는 자들이 셋 그리고 궁수로 보이는 자들이 둘이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눈에 거슬리며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은 키 큰 로브 사내였다.

호크는 태극심법(太極心法)을 전신에 돌리며 서서히 힘을 끌어냈다.

이곳의 기사들과 달리 안으로 힘을 갈무리 하며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심법은 적들에게 호크가 힘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했다.

이곳의 기사들처럼 검신에 오러를 씌운다든가 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스승인 권상사의 말처럼 싸움은 기세요, 한번 타면 절대로 내려오지 말아야 할 바람이었다.

호크의 몸 주위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휙!

"막아라! 놈을 발을 묶어야 해!"

"궁수! 활을 쏴라!"

호크의 몸이 공중으로 튀어 오르자 숲속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여기저기서 외치는 급박한 목소리를 시작으로 피가 튀기 시작했다.

호크의 이도류(二刀類)가 피를 원하는지 계속해서 울었다.

호크는 제일 먼저 궁수들을 노렸다.

암살자들도 그것을 예측했는지 검수들이 궁수들을 보호했다.

날아오는 화살은 별것 아니었지만, 화살촉이 검은 걸로 보아 독이 묻어 있는 것 같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아채어 가슴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수의 허벅지를 찌르자 부르르 몸을 떨며 이내 숨이 끊겼다.

온몸이 검게 물들었다가 눈 녹듯이 몸이 녹아 내렸다.

그냥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숨쉬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냄새를 숲속에 뼈까지 녹아 사라졌다.

"윽! 이 비겁한 새끼들! 치사하게 독이나 쓰다니! 니들 오늘 다 죽었어!"

눈빛이 독하게 변한 호크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면서 싸움은 더욱 피를 튀며 잔인하게 변했다.

호크의 분노가 손에 든 검으로 전해져 검에 사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암살자들은 차례로 바닥에 쓰러져 갔다.

듣기 거북한 숨소리를 끝으로 마지막 검수가 검을 떨어뜨리고 쓰러졌다.

그러나 승리를 기뻐할 새도 없이 호크는 바닥에 몸을 굴려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퍼퍼벙!

호크가 서 있던 자리에 화산 폭발이라도 했는지 불길이 치솟았다.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낼 사이도 없이 호크는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저승사자의 목소리같이 들렸다.

마법사들의 머리 위로 마나가 모이는 것이 느껴지자 호크는 마법을 방해하기 위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암살자의 검을 들어 마나가 배열되는 곳으로 검을 날리려 했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또 다시 몸을 피해야만 했다.

쿠아악!

돌덩어리로 만들어진 사람 형태의 석상이 갑자기 나타나 그 단단한 팔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땅에 바위가 떨어진 듯이 엄청난 진동이 있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이번에는 아이스 애로우가 호크를 고슴도치새끼라도 만들려는지 햇빛을 받아 더 섬뜩하게 빛을 내며 쏟아졌다.

곰이 재주 부리듯 허겁지겁 덤블링으로 몸을 피한 호크의 입에서 가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들이닥친 공격이었다.

호크의 예상대로 키 큰 남자가 문제였다.

호크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정령사였다.

돌로 만들어진 괴물도 부족해서 불꽃을 날름거리는 불의 정령까지 불러내서 호크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 뒤로 마법사들이 두 팔을 벌리고 또 다른 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후우~ 이거 전투가 끝나고 내가 너무 쉬었나 보네. 몸이 저기 괴물보다 더 뻣뻣하잖아."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아직 여유가 있는 듯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호크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 나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너희들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테니 이제 슬슬 끝내자고."

호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자 키 큰 사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조심해라!"

그러나 그보다 호크의 동작이 더 빨랐다.

언제 주웠는지 호크의 손에 죽은 궁수의 화살통이 들려 있었다.

손에 기(氣)를 모았다가 흩어 뿌리자 호크의 기가 실린 화살들이 빛의 화살처럼 날아갔다.

"피해라!"

경고라는 것은 사전에 실행되어야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오히려 원망만 듣게 될 뿐이다.

지금처럼, 주문을 외우던 마법사들의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나며 악취를 뿜는 연기와 함께 녹아내렸다.

정말 다시 봐도 지독한 독이었다.

불의 정령 살라맨더가 키 큰 사내 주변을 돌며 연기를 태워버렸다.

그만큼 독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마법사들을 해치우고 여유를 가졌던 호크의 얼굴이 금세 딱딱해 졌다.

키 큰 사내가 물의 정령을 또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사이클론의 말대로라면 대륙에 저 정도 정령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에 저 정도 정령사가 존재했다면 이번 전쟁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을 텐데 겨우 암살 따위나 하고 있다니, 뭔가 석연치 않았다.

저 정도 능력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든지 호위호식을 하며 귀족 대접을 받을 텐데 겨우 암살자 무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누구냐, 넌?"

이제까지와는 달리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호크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키 큰 사내의 어깨가 들썩였다.

"크크크크! 역시나 디안 요새의 영웅 호크 나리께서는 다른 녀석들과 다르군. 보통이 아니야. 오랜만에 내 즐거움을 충족시켜줄 좋은 상대야."

사내가 손을 가볍게 흔들자 이번에는 반투명한 여인의 모습을 한 이가 공중에 나타났다.

"바람의 정령 실프까지!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야? 이렇게 많은 정령을 불러내고 멀쩡하다니 도대체 말이 되지 않잖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물 마시는 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눈앞의 인물에 대한 궁금증에 호크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쩌면 사이클론보다 더 강한 자일지도 몰랐다.

입술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끼자 침을 묻힌 혀로 입술을 핥았다.

어쩌면 너무 큰 도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런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니 너무 서운한걸! 나는 자네를 쭉 지켜보고 있었다고 최소한 성의는 보여야지 안 그래?"

사내의 말에 호크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가끔씩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곤 했다.

기감을 넓혀서 감지해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서 착각이려니 했지만, 호크를 보며 즐거워하는 사내를 보자 그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찜찜하던 기분은 착각이 아니었다.

뒷짐을 지고 오락가락하던 사내는 여전히 호크가 자신을 기억해 내지 못하자 서운한 듯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내가 도와주지, 드래곤 산맥에서 만난 세린디아의 기사들 그리고 마법사가 하나 있었는데......."

호크의 눈이 번뜩였다.

머릿속을 관통하는 하나의 영상이 호크의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악마의 마법사 프랑시!"

비명을 지르듯 호크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름을 듣고 사내는 손뼉을 쳐 보였다.

"하하하하! 역시나 기억해주는군. 혹시라도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야!"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내가 후드를 벗자 드래곤 산속에서 혈투를 벌였던 그 얼굴이 나타났다.

"너는 사이클론님에게 소멸되었을 텐데 어떻게 살아있지?"

호크의 입에서 사이클론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프랑시의 얼굴이 뒤틀렸다.

마치 얼굴 속에 쥐라도 있는지 얼굴 표면이 마구 움직였다.

"뭐, 뭐야?"

깜짝 놀란 호크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갑자기 프랑시의 몸에서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음습하고 사악한 힘이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호크의 몸이 그와 거리를 벌린 것이다.

"너, 넌 프랑시가 아니야. 네놈의 정체는 뭐냐!"

상대의 이상한 기운을 느낀 것은 호크 혼자가 아니었다.

손에 든 혼돈의 검 제로가 또 다시 검명(劍鳴)을 토해냈다.

웅! 웅!

저들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제로가 울었던 이유는 바로 프랑시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 때문이란 것을 호크도 이제 알았다.

제로의 검신이 더욱 크게 울었다.

"젠장! 아무리 변장이 서툴렀다지만, 그렇게 빨리 알아차리다니 이거 원 민망해지는군."

얼굴의 움직임이 더욱 심해지더니 서서히 모습이 변해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존재가 서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정체불명의 존재가 검은 기운을 드러내며 호크를 압박했다.

작은 유리병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던졌다 내려놓았다 반복하더니 다른 한 손에서도 똑같은 유리병을 꺼내어 어릿광대가 공놀이를 하듯 머리위로 던져 올렸다.

무엇이 들었는지 몰라도 뭔가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들어 있는 듯 했다.

"후후후후! 이게 과연 뭘까?"

호크를 괴롭히는 것이 재미있는지 상대는 궁금증만 유발시키며 더 이상 호크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정령들이 호크를 에워싸고 소환자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쪽에서는 뜨거운 기운이 얼굴을 뜨겁게 만들고 반대편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간질였다.

하지만 호크의 눈은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인 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호크가 집중하자 호크의 기운이 제로를 달래기 시작했고 서서히 검명도 잦아들며 조용해졌다.

"이야, 대단한 걸! 그 녀석을 그렇게 쉽게 진정시키다니. 역시나 그의 자식은 다르다는 건가?"

제로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무척이나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크는 그의 놀라움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지난번 세린디아의 베를로리아 지하 도시에서 만난 신의 문지기 야누아리우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한 존재를 만났다는 사실에 긴장했다.

말하는 모양새를 보아 눈앞의 존재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정령들을 장난감 다루듯이 하는 저 존재의 능력도 이해가 갔다.

"나만 모르고 모두가 내 아버지를 아는가 본데, 정말 기분 나빠지네, 이봐, 내가 알기로 우리 아버지는 예전에 죽었거든.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 아버지가 확실하다고,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내가 뭐 주워온 애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후후후,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지나친 감정의 변화는 말이야 몸에 좋지 않다는 말 들어보지 못했나?"

"닥쳐!"

더 이상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호크의 몸이 땅 위를 날았다.

기습을 노렸지만, 정령들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화염의 정령 살라맨더가 불길을 내 뿜으며 호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바람의 정령 실프가 바람의 창을 날려 보냈고, 돌의 정령 스톤워크가 호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호크는 끌어 올린 기운을 제로에게 보내주었다.

호크의 힘을 받은 제로는 푸른빛을 내며 살라맨더에게 충격을 주었다.

귀청을 찢는 비명소리를 내며 살라맨더가 소멸했다.

등 뒤를 노리고 날아오는 실프의 창을 다른 손에 든 검으로 쳐내고 그를 베려 했지만, 엄청난 기세로 돌진해오는 스톤워크 때문에 몸을 틀어야만 했다.

카카캉!

검신에서 불꽃이 튀며 호크의 몸이 주르륵 밀렸다.

하지만 스톤워크도 무사하지 못했다.

두 팔이 잘려 나갔다.

원래대로라면 떨어져 나간 스톤 워크의 팔은 재생되어야 정상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혼돈의 블레이드 제로에게 당한 자리는 푸른빛을 내며 타들어갔다.

스톤워크도 괴로운 듯 괴성을 지르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호크는 쉬지 않고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스톤워크를 뛰어 넘어 검을 크게 휘둘렀다.

거의 베었다고 생각했지만, 헛되이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는 것을 느낀 호크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이런 이 정도였다니. 혹시나 해서 대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크게 망신당할 뻔했어!"

검에 잘린 로브 자락을 흔들어 보이는 모습에서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호크는 이내 그가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입술을 깨문 입에 힘이 들어갔다.

계속해서 신적인 존재들이 끼어들 때마다 호크는 화가 났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호크의 생각이었고, 그러다보니 저런 초인적인 존재들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망신 좋아하네!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줄 테니 조금만 참아!"

호크의 눈썹이 역 팔자를 그리며 찡그러져지자 무서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 힘이 주변을 압박하며 공간을 점유하자 일종의 힘의 마당에 일대를 장악했다.

공기가 급변하자 여유를 부리며 유리병을 가지고 장난하던 그의 표정도 굳어졌다.

"이 정도였어? 어떻게 이 정도의 힘을 미르네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아!"

불신이 가득한 음성은 직접 확인을 해보겠다는 뜻으로 비춰졌다.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을 호크에게 던졌다.

엉겁결에 유리병을 받아든 호크는 유리병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헉! 이, 이건!"

바닥에 떨어진 유리병 안에는 그도 잘 아는 사람이 갇혀 있었다.

좁은 공간이 답답한 지 꺼내달라며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바로 사이크론에게 소멸당한 프랑시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리병에는 호크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이사벨라!

바로 그녀였다.

"뭐하는 장난이냐?"

더 이상의 호크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살기는 끔찍할 정도로 오싹하게 만들었다.

"네가 낙인을 모으는 동안 나는 그렇게 영혼을 수집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저 욕심 많은 마법사에게 속아 엉뚱한 계약을 맺고 말았거든. 하지만 너희들이 드래곤 산에서 녀석을 소멸시켜준 덕에 난 자유롭게 되었어.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지 세상이 많이 변해 있더구나, 그 냄새나는 위선 덩어리 쥬(ju)가 만들어 놓은 세상이 그 믿음을 잃고 방황하고 있더란 말이지.

하하하하! 설마 했는데 그 미르네보가 성질이 지독하기는 여전했는지 그 짓을 정말로 벌였을지 몰랐다고 그년이 인간들이 싫기는 정말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야. 다행이도 네놈을 만나서 난 오랜만에 즐거운 일을 생각해냈어."

호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운지 좀 과장스런 손짓까지 해가며 이야기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어차피 주인이 버린 세계니 줍는 자가 임자 아닌가? 미르네보야 인간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내가 접수해서 싹쓸이 해주면 뭐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 않은가? 어때 내 생각이?"

마치 세상의 주인이라도 된 양 인류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호크는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이야기를 좀 더 들어야 해야 했기에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런 너는 그럴만한 존재라도 된다는 말이야?"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두 팔을 크게 벌리고 광소(狂笑)하더니 웃음을 멈추고 벌렸던 팔을 허리춤에 올려놓고 도도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이 몸이 바로 악마 중 악마 샤이탄(shaitan)이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래서라니? 위대한 나의 이름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이냐?"

샤이탄이라고 소개한 악마는 호크의 뜨뜻미지근한 태도에 화가 났는지 꽤 무서운 얼굴을 해보였다.

얼굴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양쪽 머리에서 커다란 뿔이 솟아나왔다.

로브가 풍선마냥 부풀더니 펑! 소리와 함께 불타버렸다.

로브가 사라지자 근육질의 몸매에 화살촉 같은 꼬리가 달린 괴물의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제 어떠냐?"

"이런 미친놈을 봤나? 악마라는 놈이 이게 무슨 어린애 같은 짓이야?"

샤이탄이 언제 인간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 봤겠는가?

샤이탄도 미르네본 만큼 인간이 내뿜는 그 냄새조차 싫어할 정도로 인간을 혐오하는 존재였다.

미르네보와 비교해서 그 점에 있어서는 전혀 뒤지지 않는 샤이탄이었다.

그래도 그의 아들이기에 조금 대우를 해주었더니 감히 기어오른다 싶자, 흥미를 잃게 되었다.

"내가 너무 인간 세상에 오래 있었나 보군, 어이없는 실수를 다하고 하찮은 인간에게 무시까지 당하다니, 좋다 이제 장난은 그만두지. 나 샤이탄의 의지로 미르네보의 계획을 내가 접수하겠다. 너를 제거하고 쥬(ju)의 낙인을 내가 회수하면 미르네보의 예언은 깨지겠지만, 인간세상의 혼란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만의 지옥을 만들어 갈수 있지. 이 폴렌시아야말로 내게 남겨진 최후의 선물 같은 것이다! 크 하하하하하!"

샤이탄은 진정 즐거운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샤이탄이야 자신의 분홍빛 미래를 생각하니 그 기쁨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겠지만 그의 계획을 들은 호크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떻게 된 것이 하나같이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인간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 정말이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혼돈의 블레이드 제로의 손잡이를 잡은 호크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안 되는 일이라고 하면 더 덤비는 호크의 성질이 다시 폭발했다.

"야이, 미친 새끼야! 헛소리 그만해!"

혼돈의 블레이드 제로가 공간을 가르며 빠르게 호선을 그렸다.

이도류(二刀類)의 극치를 보여주며 쌍검이 교차를 거듭했다.

아무리 악마라고 해도 혼돈의 블레이드 제로에 맞아서 좋을 것은 없었다.

게다가 너무 방심한 탓인지 제로의 검신에 나타난 문양을 눈치 채지 못해서 샤이탄은 크게 낭패를 보아야만 했다.

"크으윽! 봉, 봉인이 풀려 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제로의 검날이 샤이탄을 베었는지 검은색 체액이 묻어 있었다.

체액은 흘러내리지 않고 제로의 검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상한 현상에도 전혀 놀라지 않은 호크는 손에 들고 있는 혼돈의 블레이드 제로가 든든한 힘이 되었다.

악마를 벨 수 있는 검을 손에 들고 있으니 두렵던 마음도 차츰 줄어들었다.

"악마든 여신이든 이 땅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생명들끼리 아옹다옹 하며 지낼 테니 이제 그만 네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라!"

옆구리 베인 틈으로 검은색 기운이 흘러 나가고 있는 샤이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 말도 안 돼! 누구냐? 누가 그 검의 봉인을 푸는 미친 짓을 한 거냐?"

"내가 그랬네, 오랜 만이야, 샤이탄!"

"헉! 누... 누구!"

느닷없이 들려온 걸쭉한 목소리에 샤이탄은 겁에 질린채 몸을 덜덜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는 샤이탄이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가 서 있었다.

"야리아리우스(Januarius-로마 신화 속에 나오는 모든 문을 지키는 신으로 묘사되는 존재 흔히 야누스라고도 한다)! 어둠과 빛의 문지기가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샤이탄이 다친 옆구리를 움켜쥐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얼굴을 가득 덮는 수염 사이로 번뜩이는 눈빛을 받자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얀 천을 허리에 두른 로인 클로스를 입은 거인은 껄껄껄 웃으며 호크에게 다가왔다.

"오랜 만이구나 애송이 인간아!"

베를로니아의 지하도시에서 이사벨라가 소환했을 때 호크의 검에 봉인을 풀어준 이후로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말도 안 되게 강한 존재를 마주하는 것은 호크에게 고역이었다.

지금도 호크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로도 주름져 있었다.

"당신을 부르기 위해 의식을 치르지도 않고 제물을 바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거죠?"

무척이나 힘들게 입을 연 호크를 보고 야리아리우스는 반가워했지만, 호크는 결코 반가워할 입장이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숨을 쉬지 못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야리아리우스의 머리가 돌아가자 반대편의 얼굴이 성질을 부렸다.

"그만 장난하고 어서 빨리 돌아가자! 난 이놈의 세상에만 나오면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

할 말을 다했는지 머리가 돌아가자 처음의 얼굴이 못마땅한 얼굴로 나타났다.

"하여간 이 녀석은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서 내가 피곤하다니까, 이런 녀석하고 한 몸으로 수십 만 년을 지내려니 나도 힘들다고 네가 이해해라!"

슬금슬금 도망치려던 샤이탄은 야리아리우스의 얼굴이 두 개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대가로 야리아리우스의 채찍에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샤이탄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숲속에 울리자 동물들이 깜짝 놀라서 난동을 부렸다.

"하여간 이 녀석들은 틈만 보이면 잔꾀를 부린다니까?"

입에 게거품을 물고 부들부들 몸을 떠는 샤이탄을 발로 지그시 밟던 야리아리우스가 호크를 돌아보고 싱긋 웃었다.

호크로서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호크도 억지로 미소를 보여주었다.

약한 놈이 강한 놈에게 어떻게 하겠는가?

서 있기도 힘든 호크는 어서 빨리 놈이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혼돈의 검 제로에 새겨진 봉인을 풀면서 검에 문의 열쇠를 새겨 넣었다. 오늘처럼 제로가 울게 되면 내가 다시 나타 날 거다. 미르네보의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거든. 지금까지는 네 녀석이 꽤나 분전하고 있어서 우리 쪽에서도 아주 흥미진진해 하고 있다, 이 말씀이야. 어쨌든 샤이탄 이런 녀석은 방해만 될 테니 내가 데리고 가마. 계속 잘 싸우기 바란다. 그럼 이만!"

말을 끝낸 야리아리우스가 손을 들자 공간이 갈라지며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무저의 공간이 나타났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샤이탄을 잡아끌고 야리아리우스가 그 틈으로 사라져갔다.

"이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마지막 낙인을 찾아내고 자네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두가 의견이 분분하다고! 나도 큰 걸 걸었으니 실망시키지 마!"

쇄애애액!

바람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샤이탄도 야리아리우스도 사라졌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시체가 아니었다면 호크는 꿈을 꾸었다고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스르륵 무너진 몸을 그대로 바닥에 뉘인 호크의 배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후우~ 후우~ 이러다가 정말 제명에 못살겠다. 이제는 악마까지 나타나서 괴롭히니 미치겠군. 도대체 이 땅을 노리는 놈들이 얼마나 되는 거야? 내 팔자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 하여간 이놈의 인생은 어떻게 된 게 뭘 해도 이렇게 꼬이냐고 정말!"

처량하게 신세한탄을 하던 호크의 주절거림이 점점 잦아들었다.

잉글햄에서 힘들게 아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캐더린의 모습이 푸른 하늘의 구름 속에 나타났다.

너무 약해져서 안으며 사라질까 봐 안아보지도 못한 아기였다.

호크의 눈동자가 흐릿해지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그냥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킨 호크는 얼굴을 몇 차례 사정없이 세게 쳤다.

"가자! 애하고 엄마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데 아빠라는 작자가 눈물이나 짜고 있으면 안 되지!"

힘을 내서 몸을 일으킨 호크의 눈에 반짝이는 뭔가가 들어왔다.

샤이탄 놓고 간 유리병이었다.

그 속에 프랑시와 이사벨라의 영혼이 갇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호크의 발이 높이 들렸다 내려왔다.

콰직!

유리병이 깨지며 프랑시와 이사벨라의 영혼이 풀려났다.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하는지 한동안 호크의 몸 주위를 돌더니 사라졌다.

"다음에는 착하게 살아!"

바닥에 침을 한번 내뱉는 것으로 은원을 잊어버린 호크는 이지 중대원들이 기다리는 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사벨라의 영혼이 한동안 그런 호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사라졌다.

지치고 쓰러져도 호크는 주저앉아서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앞을 막는 것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는 넘어져도 일어나고 쓰러져도 또 일어나서 가야만 했다.

그것이 가혹한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호크는 맞서 싸워야 했다.

그것이 그가 모든 것을 주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와이즈 산을 오르는 호크의 뒷모습이 유난히 슬퍼보였다.

< 작가의 말 >

샤이탄(shaitan)은 악마를 가리키는 아라비어 말입니다. 세상에는 고대로부터 많은 종교들이 전해지고 있고 그들의 교리는 모두 다르지만 우연하게도 모두들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책에 악마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슬람교나 유대교나 마찬 가지 이며 이를 매우 중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샤이탄의 정의를 이교도가 신에게 등을 돌린 후 믿게 된 존재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또한 샤이탄은 그림자와 해의 경계, 밤과 낮의 경계에 살면서 세상에서 나오는 온갖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존재이며 그 추악함으로 인간의 영혼을 더럽히는 존재라고 전해입니다. 이는 인간의 영혼을 악으로 물들인다고 생각했던 기독교와 매우 흡사해서 종교가 다르더라도 악마에 대한 생각은 같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소설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의 틈에서 그것을 이용해서 인간들의 영혼을 마음대로 하려는 사악한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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