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크-44화 (44/55)

Chapter 44. 운명을 헤쳐 나가라!

흔히들 강산은 변하지 않고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지만 때때로 사람은 변하지 않고 강산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

"뭐야? 겨우 몇 년 떠나 있었다고 이렇게 변하나?"

너무나 많이 변한 잉글햄의 모습이 적응 되지 않는지 호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웃거리기 바빴다.

호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잉글햄의 모습은 잿빛의 우중충한 건물과 씩씩한 사람들의 모습이 다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돌아온 잉글햄의 모습은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거대도시가 따로 없었다.

일단 잉글햄으로 들어서는 관도부터 달라져 있었다.

겨우 마차 하나 지나갈 정도였던 관도가 10배가 넘게 넓어져 있었고 바닥에 돌을 깐 진정한 도로로 정비되어 수많은 인파와 마차들이 오고가며 잉글햄을 활력에 불어넣었다.

예전에는 없던 커다란 성문을 통과하자 보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정지! 어디서 오신 분들... 헉! 추... 충성!"

잉글햄의 성문 경비를 맡고 있는 병사들이 호크를 잡아 세우려다 호크의 계급장을 보고 질겁했다.

얼마나 경례구호 소리가 컸던지 지나가던 행인들도 고개를 돌렸다.

"모,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됐어, 괜히 소란 떨 거 없다. 평상시처럼 근무하도록 해!"

성문 경비대의 뜨거운(?)환송을 받으며 잉글햄에 입성한 호크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부담스러운 걸음을 옮겨야 했다.

호크가 군복 대신 예복(禮服)을 입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왕립군의 예복을 일반 시민들은 처음 본 사람들이 아주 많았으므로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했다.

호크는 오랜 만에 찾는 집에 오면서 군복보다는 예복을 입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나름대로 입은 것인데 하얀 제복이 사람들의 시선을 이렇게 많이 끌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말 고삐에 힘을 주어 속도를 내자 금세 그토록 보고 싶었던 호무관 앞에 도착했다.

눈에 익은 소중한 곳 호무관!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참지 못하고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 올라왔지만, 뒤에 서 있는 부하들 때문에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케린버그 왕립군의 장군이 집에 와서 눈물이나 흘렸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마침 호무관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하얀 도복을 입고 재잘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자, 자! 모두들 내일 심사가 있으니 밖에서 놀다가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가는 거야. 알았지?"

금발의 남자가 아이들에게 내일의 일을 당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모두들 떠드는 것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아니, 이 녀석들이 도대체 뭐에 정신을 팔려서 이... 관, 관장님!"

"오랜만이야, 해리슨 사범!"

씨익!

호크의 환한 미소를 보며 해리슨 사범의 눈이 눈물로 글썽거렸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은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나 사랑하는 그녀를 보고 싶어 견디기 힘들었다.

말에서 내린 호크가 천천히 다가오자 해리슨 사범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충성! 귀향을 환영합니다."

호크는 말없이 해리슨 사범의 어깨를 두드렸다.

천천히 뒷짐을 지고 호무관 안으로 들어가자 해리슨 사범도 아이들을 보내고 얼른 뒤를 따라서 뛰어갔다.

그 뒤로 호크의 수행원들이 들어갔다.

만 3년 만의 귀향이었다.

처음에 호무관을 떠나던 날,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게 될 줄 그때는 몰랐었고, 호크의 생각보다 너무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렇게 호크는 집으로 돌아왔다.

희망과 사랑을 찾아서.......

* * *

"어떻게 된 거죠?"

호크의 목소리가 무척 떨리고 있었다.

기쁨에 의한 떨림이 아니었다.

슬프고 분노하고 있는 그런 무서운 떨림이었다.

방 안의 공기는 숨을 쉬지 못해 질식할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도 잘 모르겠네. 이름 있는 신관들도 마법사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을 뿐 속 시원하게 말을 해주는 이가 없어서 우리도 막막할 뿐이야."

캐더린의 아버지 하워드 백작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방 안은 온통 절망과 고통이 느껴지는 한숨소리만 가득했고 중년 여인의 구슬픈 흐느낌이 간간히 흘러 나왔다.

'내게 이럴 수는 없어! 세상이 내게 이래서는 안 돼!'

호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대체 무엇이 호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호크의 눈이 고정된 곳은 커다란 침대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그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이가 누워 있었다.

"캐더린! 제발 눈 좀 떠봐. 내가 왔어 내가 왔다고!"

울음이 섞인 절규가 방 안에 있는 모두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

아름다운 금발에 귀품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던 캐더린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캐더린은 몹시도 고통스러운지 가끔씩 심하게 몸을 떨었다. 그 때 마다 호크의 몸도 벌벌 떨었다. 더군다나 그녀 곁에 잠들어 있는 또 하나, 바로 호크의 분신인 그의 2세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행복한 미소로 아버지를 반겨야 할 아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기는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기 손을 꼭 잡고 체온을 느껴보려고 했지만, 아기의 몸은 차가웠다.

호크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아기의 맥박이 뛰는지도 모를 정도로 미약했다.

너무 미약해서 금방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느껴졌다.

그걸 보는 호크의 심장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자신이 아픈 것이 나았다.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일 뿐 아니라 지독한 고문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기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호크의 모습은 애처로웠다.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이런 모습이나 보자고 내가 목숨 걸고 싸운 게 아니야!"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호크의 울부짖음에 방 안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때 방문이 활짝 열리며 사이클론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오~ 어서오십시오! 사이클론님!"

"하워드 백작님!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다는 말입니까?"

아주 급하게 달려온 듯 사이클론의 옷매무새가 엉망이었다.

"저희도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하워드 백작이 고개를 떨구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하워드 백작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사이클론이 호크가 무릎을 꿇고 있는 침대에 가까이 다가갔다.

"헉! 이, 이건?"

침대 위의 광경을 본 사이클론의 두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사람처럼 사이클론의 몸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죽음의 저주! 누가 이런 잔인한 짓을!"

"할아버지! 저주라니요. 캐더린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아세요?"

사이클론의 말에 호크가 벌떡 일어나 사이클론에게 매달렸다.

사이클론은 흥분한 호크를 진정시키고 천천히 캐더린과 아기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로브의 소매 속에서 붉은색 보석을 꺼내 들었다.

핏빛 처럼 붉은 보석을 두 손으로 마주 잡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인간세상의 언어가 아닌 듯 신비스럽고 괴기스러운 음성이 한동안 방 안을 울리다 점점 약해졌다.

주문이 잦아들수록 반대로 보석의 빛은 점점 더 밝아졌다.

빛은 불꽃이 터지듯이 흩어지며 캐더린과 아기에게 쏟아졌다.

빛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캐더린과 아기의 몸으로 들어갔다.

빛이 두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칠흑처럼 검은 기운이 나타나 붉은빛과 싸우기 시작했다.

두 기운이 싸움을 시작하자 아기와 캐더린은 괴로운 듯 신음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던 호크는 너무 괴로워서 도저히 지켜볼 수 없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캐더린과 아기의 신음 소리가 커지자 무릎을 꿇고 캐더린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가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다.

"으... 으... 으... 으......."

캐더린의 몸은 검은색과 붉은색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백발의 노파가 되어버린 캐더린이 그것을 감당하기는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호크는 그저 눈물을 흘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싸움이 절정을 이루며 붉은빛이 검은 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하자 사이클론의 얼굴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아기가 심하게 기침을 하며 몸을 뒤틀자 캐더린의 몸이 크게 떨면서 붉은빛이 이내 힘을 잃고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기의 몸속에 들어갔던 붉은빛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나!"

사이클론은 낙담한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붉은 보석은 마나석 100개의 값어치가 있는 영혼의 돌이었다.

캐더린의 증상을 듣고 어렵사리 구해온 최고의 마법도구였다.

그러나 저주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요? 뭐가 어떻게 된 건데요? 네?"

눈물범벅이 된 호크가 사이클론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하자 사이클론은 차마 호크의 두 눈을 마주 대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할지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호크를 보고 결국 사이클론은 한숨을 쉬었다.

"이건 저주다! 그것도 끔찍하고 아주 잔인한 저주다!"

"저주라니요? 누가? 왜? 캐더린에게 저주를 내린 거예요?"

이해할 수 없는지 호크는 이제 마구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착하고 가녀린 여인에게 누가 무슨 이유로 저주를 내렸단 말인가?

게다가 이제 겨우 태어난 어린 생명은 무슨 벌 받을 짓을 했다고 이런 가혹한 고통을 준다는 것인지 호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망자(亡者)의 저주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무녀의 원혼이 남긴 극악한 저주야. 원래는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었는데 캐더린이 자신의 생명을 아기에게 보내고 있어 그래서 저렇게 쇠약해진 거다. 캐더린이 생명을 보내주지 않으면 아기의 심장은 뛰지 못할 거다."

모성애가 얼마나 위대한 감정인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캐더린은 자신의 생명을 태워서 아기를 살리고 있는 중이었다.

호크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저주를 건 상대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누구예요? 어떤 미친놈이 그녀에게 저주를 건 거죠?"

"후~ 여기오기 전까지 설마 설마 했지만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으니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너도 잘 아는 사람이다."

자신도 잘 아는 사람이란 소리에 호크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를 만한 이들은 누구도 없었다.

당연히 호크는 고개를 저으며 사이클론의 말을 부정했다.

"잘 생각해봐라! 죽는 순간에 너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여자를!"

"서, 설마! 이사벨라 여왕?"

사이클론의 얼굴을 보며 호크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만히 기억 속을 뒤지던 호크는 베를로니아의 지하도시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이사벨라 여왕이 자신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주가 내려지리라!-

표독스런 얼굴로 한 맺힌 소리를 내뱉던 이사벨라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눈은 죽어가면서도 호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헉! 하아~ 하아!"

그때 못 느꼈던 섬뜩함이 갑자기 호크의 목을 졸라왔다.

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하던 호크는 사이크론의 도움으로 환각에서 빠져 나왔다.

그만큼 이사벨라의 저주 마법은 그 힘이 엄청났다.

단지 그녀를 기억해내는 것만으로도 호크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그녀의 저주는 무서웠던 것이다.

"커~억! 콜록 콜록! 이, 이제 어떻게 하죠?"

호크의 목에는 손자국이 나 있었다.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진짜 같았다. 죽은 사람의 사념속에 남아 있는 저주의 힘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말 목 졸린 사람의 얼굴을 한 호크는 사이클론에게 대답을 구했다.

그러나 사이클론 기운을 다한 붉은 보석을 보며 한숨만 쉬었다.

자신의 눈으로 저주의 힘이 얼마나 센 지 피부로 느꼈고 마법으로는 망자의 저주를 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더 슬펐다.

지금 두 사람의 영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생명선이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있었고 그 생명선을 통해서 캐더린이 아기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한쪽이 죽으면 다른 한쪽도 죽게 된다.

신이 아닌 이상 너무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힘든 점은 저주를 건 시전자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이 또한 이 저주를 푸는 데 걸림돌이었다. 이사벨라 여왕이 살아 있었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시도해 보련만 그것마저 요원한 일이었다.

아무리 사이클론이 대마법사라고 하지만, 저주를 푸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힘없이 고개를 흔드는 사이클론을 보며 호크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흐느끼는 호크의 머리를 쓰다듬던 사이클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이클론도 호무관 앞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두 사람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이런 저주 하나 풀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대마법사라고 할 수 있나? 이럴 때는 정말 신이 원망스럽구나."

한탄하듯 원망스런 말을 토해낸 사이클론이 지친 몸을 일으켜서 땀에 젖은 캐더린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끊어질듯 말듯 이어지고 있는 숨소리를 들으며 사이클론의 손길이 미미하게 떨렸다.

이사벨라의 저주가 두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캐더린은 아기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그녀의 생명이 거의 다 빠져나가 얼마나 더 버틸지 몰랐다.

아기가 죽으면 그녀도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릴 것이다.

'쥬(ju)여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호크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련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이클론의 마음이 쥬에게 하는 말을 들었는지 머리맡에 있던 조그만 조각상이 떨어졌다.

조각상을 들어 올리던 사이클론의 손이 격하게 떨렸다.

사이클론의 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호크가 그의 몸을 잡아 흔들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방법이... 방법이 있다. 캐더린과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어!"

무엇을 알아냈는지 사이클론은 크게 기뻐했고 영문도 모르는 호크마저 그저 방법이 있다는 말에 같이 기뻐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사이클론 옆으로 모여 들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심정은 모두가 똑같았다.

* * *

"테렌스 공작님! 케린버그의 알렉스 호크 백작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로크 남작,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케린버그에 잠입해 있는 트웨인 백작님이 보내온 정보입니다."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또한 그 목적은 무엇이라고 하던가?"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소수의 인원만 대동하고 리하나 강 이남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합니다."

로크 남작의 보고에 테렌스 공작의 이마에 주름살이 가득해졌다.

이제 대륙은 2강의 연합세력과 로베니아 제국, 이렇게 세 개의 세력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케린버그의 핵심인물인 호크백작이 비밀리에 움직인다는 것은 상대국으로서는 긴장할 일이었다.

게다가 그 방향이 남쪽이라면 로베니아 제국일 가능성이 컸다.

테렌스 공작의 두뇌가 급속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심각하게 고민할 때의 버릇인 턱밑 쓰다듬기를 수차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킨 테렌스 공작이 손뼉을 쳤다.

"빌어먹을! 좋아, 이렇게 가정해보자! 만에 하나 케린버그와 레센의 연합국이 로베니아와 손을 잡는 다고 가정하자! 어떻게 되겠나?"

뜻밖의 질문을 받은 로크 남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런 말도 안 돼는 일을, 공작님 그들은 원수지간입니다. 어떻게 서로 손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강하게 부정하는 로크 남작을 보며 테렌스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야. 만에 하나 그들이 협정을 맺어 대륙을 양분하려 한다면 우리나 군소 왕국들은 끝장이야!"

대륙을 양분한다.

거대한 세력들이 손을 잡고 북부와 남부로 대륙을 나누어 통치한다면 그것은 정말 끔찍한 미래였다.

저도 모르게 로크 남작의 몸이 떨렸다.

알버스크 왕국이 폐허로 변해버린 모습이 눈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연합국 회의를 소집해라! 어쩌면 우리에게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알렉스 호크를 제거 한다면 케린버그에게 심각한 치명타를 줄 수도 있지. 지난 번 케린버그에서 본 그의 존재는 찰스 국왕 못지않았어. 군의 핵심인 그가 죽는다면 당분간 케린버그와 레센의 연합세력을 견제할 수 있단 얘기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테렌스 공작을 보며 로크 남작은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하, 하지만 그는 소드 마스터입니다. 공작님!"

"그러니까 연합국에 연락하라는 말이야. 스베인 왕국부터 해서 우리의 모든 연합국에 연락해! 이번 일은 우리 연합세력의 사활이 걸린 일이야. 모든 힘을 동원해서 그를 제거한다!"

공작의 번뜩이는 눈빛을 받은 로크 남작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무시무시한 눈빛이었다.

테렌스 공작이 얼마나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느낀 로이드 남작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신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일지도 모르지!"

벽난로에 나무를 던져 넣는 테렌스 공작의 얼굴이 흔들리는 불길을 따라서 기괴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 * *

"앙뜨네트 폐하! 모든 기사들의 충성 서약을 받으셨으니 이제 명실 공히 제국의 주인이십니다."

자신의 숙부인 몽셀 공작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은 앙뜨네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제국의 시민들은 새로운 여제에게 환호했지만, 그녀는 시간의 틈 속에 다녀온 이후로 우울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앙뜨네트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몽셀 공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무슨 근심 있는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 아니에요. 그보다 무슨 일로 이렇게 회의를 소집하신 겁니까?"

어두운 표정을 떨쳐버린 앙뜨네트가 몽셀 공작이 갑자기 소집한 회의의 목적을 묻자 시종 하나가 조심스럽게 쟁반 위에 두루마기를 황제에게 건넸다.

그녀가 두루마기를 풀어 내리자 글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또 전쟁인가요?"

"저희도 그 목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워낙에 두려운 존재가 움직이다 보니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 자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황제의 물음에 제라드 백작이 나섰다.

"그자의 손에 저희 기사 150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그의 기간테스는 저희 로베니아 제국의 신화 속에 남아 있는 아크나무아의 전사, 엥귀오스일지도 모른다는 보고입니다. 그는 저희 로베니아와는 양립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녀가 아는 제라드 백작은 전쟁영웅이었다.

어릴 때 그의 무용담을 옛날이야기처럼 많이 들었다.

그런 전쟁 영웅조차 두려워하는 존재라니 그녀도 놀랄 도리밖에 없었다.

게다가 회의실에 모인 모두의 표정이 어두운 걸로 보아 그것이 단지 제라드 백작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공작님의 의견은 뭐죠?"

"폐하! 그는 케린버그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나라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저희 로베니아에게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그를 죽이자는 말인가요?"

앙뜨네트의 목소리에서 꺼려하는 마음을 읽은 몽셀 공작이 매우 진중한 목소리로 앙뜨네트를 다독였다.

"폐하! 그는 제국의 숙적이며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입니다. 이는 애석하게 죽어간 제국 병사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앙뜨네트는 갑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이미 이일에 대해서 결정해 놓고 자신에게 통보만 한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방 안의 분위기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옥좌의 손잡이를 강하게 부여잡았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발렝 황제가 죽기 전에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너도 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네 숙부를 조심해!]

그녀는 귀청을 울리는 그 말을 떨쳐내려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다짐 받듯이 또박또박 말을 꺼냈다.

"잘 들으세요! 저는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아요.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세요. 단 그의 행동은 면밀하게 주시하시고요. 아셨죠! 그 외 다른 극단적인 행동은 금합니다. 제국은 그동안 너무 많은 피를 봤어요. 이제 그 피를 씻어내야 할 때입니다."

앙뜨네트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자 회의실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후~ 우려하던 일이 결국 벌어졌습니다."

"제라드 백작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이 정도 일은 예상하고 있던 일이 아니오."

몽셀 공작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하자 다른 중신들이 몽셀 공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차피 황제는 상징적인 존재일 뿐 우리는 우리의 일만 해나가면 되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몽셀 공작이 중신들을 향해 다짐하듯이 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오, 제국의 비밀이 담긴 '시간의 틈'을 우리가 확보하지 못한 이상, 그녀는 아직 황제의 자리에 있어야 하오. 그렇게 알고 기다려 주길 바라는 바이오. 또한 이 일은 모두의 힘을 모아 처리해 주시오!"

몽셀 공작이 두루마기를 지팡이로 찍으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노인의 기세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난 그의 목을 원하오!"

돌아서서 나가는 몽셀 공작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라드 백작이 공작의 지팡이 자국이 난 두루마기를 집어들었다.

"소드 마스터라 모처럼 피가 끓어오르는군!"

호크의 신상 내역이 적힌 두루마기가 제라드 백작의 손아귀에서 무참히 구겨졌다.

* * *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녘으로 십여 마리의 말들이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허리를 펴고 여행자들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곳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전쟁이 벌어졌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왜 그러십니까? 장군님!"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루크 소령이 호크의 안색을 살피자 호크는 별일 아니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밀밭에서 손을 흔드는 농부들이 호크의 눈에는 죽은 전우들이 이제 왔냐며 반기는 것처럼 보여서 눈시울이 뜨거워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길에는 핸들러나 챠챠 대위가 따라나서지 못했다.

이제 그들 모두 직책과 직위가 높아짐에 따라서 함부로 몸을 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서로 같이 가겠다며 난리 법석을 피웠지만, 호크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혼자 가겠다고 한 것을 머스탱 공작과 나형석 장군의 명령에 의해서 이지 중대원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친구 같은 그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반 병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언덕을 넘어서자 하얀 십자가가 하나와 쥬(ju)의 신상이 커다란 아름드리 고목나무 밑에 작은 제단과 함께 놓여 있었다.

제단 밑에는 누군가 새겨 넣었는지 한 줄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를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한 이름 없는 영웅들을 기리며.......

"영웅들이라......."

말에서 내린 호크가 제단 앞에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보는 이들이 숙연해보일 정도로 경건한 모습이었다.

몸을 일으킨 호크가 돌아서서 말을 향해 가다가 몸을 돌렸다.

"부대~ 차렷! 영웅들에게 경례!"

느닷없는 호크의 행동에 이지 중대원들도 부랴부랴 말에서 내려 경례를 붙였다.

"모두 잊지 말도록! 우리에게 남겨진 삶은 먼저 간 전우들이 남겨준 선물이라는 것을, 죽는 순간까지도 전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해라!"

호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의 가슴에 각인되었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전우들의 얼굴이 각자의 추억 속에서 되살아나 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말들이 하나 둘 언덕을 넘을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는 전우들이 밀밭에서 웃고 있었다.

주어진 삶의 무게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 중대원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이제 곧 리하나 요새입니다. 장군님! 저희는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루크 소령이 작은 소리로 물어보자 입술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 모습을 본 루크는 깜짝 놀라서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티 나게 두리번거리면 퍽이나 놈들이 보이겠다."

"하, 하지만 장군님!"

"로이든에서 떠날 때부터 따라 붙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국경을 넘어서면 더 많아질 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지. 이건 여행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너희들은 요새에 머물러 있어! 이 일은 내 개인의 일이니까 불필요한 희생은 원하지 않는다."

딱 잘라서 말하는 호크를 보며 루크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장군님의 오만이십니다."

"뭣?"

루크의 높아진 목청에 깜짝 놀란 호크가 눈을 크게 뜨자 루크는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네, 무책임한 행동이십니다. 장군님은 케린버그 왕립군의 장군이시며 백작이십니다. 그 말은 장군님이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며 장군님은 이제 혼자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다니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왕국 전체가 장군님을, 백작님에게 기대고 있단 말입니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충격을 받은 호크는 캐더린의 일로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부하들에게 삶의 무게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 창피했다.

자신의 삶의 무게가 무거우면 더 무거웠지 저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군 호크는 소리 내어 웃으며 루크의 등을 세게 쳤다.

"하하하! 맞아, 내가 잠시 깜박 했어. 자네에게 한방 먹었어!"

말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이지 중대원들이 말을 멈추었다.

"가면 죽는다. 그래도 가겠는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요새에 들러서 하루를 쉬고 떠난다. 내키지 않는 자들은 다음날 본대로 귀대해라. 이상!"

말머리를 돌려서 앞으로 힘차게 나가는 호크를 바라보며 루크는 고개를 흔들었다.

'돌아가는 병사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직도 자신의 부하들을 그렇게 모르십니까? 그렇게 훈련시켜 놓으시고도 말입니다.'

'아니, 모르지 않아. 다만 미안해서 그럴 뿐이야. 이런 말조차 하지 않는다면 너무 미안해서 내가 힘들어서 그래.'

루크와 호크가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그들의 눈앞에 리하나 요새가 들어왔다.

로베니아의 전진기지였던 것을 케린버그가 점령하고 새롭게 건축하여 최남단 방어요새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 규모가 보통 성의 대 여섯 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요새였다. 주적인 로베니아와의 국경이었기에, 그 시설과 인력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이었다.

케린버그 전력의 5할 이상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디안 요새의 병력들도 거의 대부분 이곳으로 옮겨져서 지금은 케린버그 군대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었다.

호크의 방문으로 요새가 부산스러워졌다.

멀리 요새의 망루위에서 나형석 장군이 망원경으로 호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리하나 요새의 문이 열리자 호크와 이지중대가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요새의 문이 닫히자 숲속의 인기척도 조용해졌다.

"어서 오게, 장군!"

"나 참, 둘만 있을 때라도 그 장군이라는 소리 좀 빼시라니까요. 쑥쓰러워서 죽겠습니다."

호크의 엄살에 나형석 장군이 크게 웃었다.

"군대는 계급이 전부야. 그런데 계급을 빼라니 나하고 맞먹겠다는 건가?"

장군의 넉살에 호크는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최전방만 고집하시는 건 여전하네요."

일부러 리하나 요새에서 근무하는 나형석 장군에게 그만 쉬라는 뜻을 비추었지만 그의 고집을 꺽을 수는 없었다.

"군인 있을 곳은 전선이야. 내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은 퇴역 했을 때만이야."

"예, 예, 어련 하시겠습니까."

"그나저나 얘기는 들었네. 상심이 크지? 내가 도와줄 일이 없으니 답답해!"

사이클론에 전해 들었는지 캐더린의 일을 꺼내는 나형석 장군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제가 못나서 그런 거 같아 속상해요."

"예끼, 그런 소리 말게. 아파 누워있는 사람이 들으면 화낼 소리야. 그나저나 사이클론님이 늦으시는데, 기다릴 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며 호크에게 좀 더 기다리라고 했던 사이클론이 약속보다 늦어지자 나 장군은 호크에게 좀 더 기다릴 것을 말했지만, 한가하게 기다리기에는 호크의 마음속에 여유가 없었고 한시가 급했다.

그런 호크의 마음을 알아차린 나형석 장군은 뛰어난 마법사가 동행하는 것이 더 안심이었지만, 호크를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그 입장이어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겠네, 내 다른 것은 도울 것이 없으니 물자나 충분히 챙겨두었네 여행길이 보탬이 되면 좋겠군."

"네, 감사합니다. 장군님!"

"아닐세. 사이클론님이 도착하시면 화를 내시겠지만, 그분의 능력이시라면 곧 자네를 찾아내시겠지. 그럼 이만 작별인가?"

두 손을 굳게 마주잡은 호크와 나형석 장군이 눈빛을 교환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루크의 예상대로 이지 중대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멍청한 놈들뿐이야."

"장군님이 가르친 애들입니다. 누구를 탓하실 입장이 아니신데요."

"하~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호크의 황당한 얼굴을 보고 키득거리던 중대원들이 나형석 장군이 모습을 드러내자 힘찬 구령과 함께 경례를 했다.

"쉬어! 모두들 힘든 작전이 될 거다. 항상 서로의 등 뒤를 지켜주는 전우를 믿고 작전에 임하도록! 그럼 무운을 빈다."

최고 사령관의 환송을 받으며 호크 일행은 천천히 리하나 요새를 떠났다.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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