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 제국의 역습!
"놀라운 일입니다. 이건 가히 혁명에 가까운 발견입니다. 이런 장치가 있었다니. 역시 크리시앙 대공의 지혜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세린디아의 지하도시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공간 이동게이트를 찾아낸 크리시앙을 보고 발렝 황제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철부지 황제의 호들갑을 보고 크리시앙은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의 생각일 뿐,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부드러웠다.
"영명하신 황제 폐하께 비할 바가 있겠습니다. 다만 소신이 좀 더 세상을 많이 둘러봐서 경험이 많을 뿐입니다. 견식이 조금 넓다고 해서 위대한 로베니아 제국의 황제를 능멸할 수는 없습니다, 폐하!"
발렝 황제는 위대한 이에게 칭찬을 받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기분이 상승된 황제는 크리시앙 대공의 표정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더라면 앞으로 다가올 파국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그렇듯 냉정하게 흘러갔다.
"황제 폐하! 크리시앙 대공이 알려주신 게이트가 통하는 곳은 리하나 강입니다. 무려 보름의 시간을 절약하는 것입니다."
완전무장한 장수 하나가 급히 달려와 보고하자 발렝 황제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대공,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은 고대인들의 유물을 후손들에게 전해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황제의 눈을 보며 대공은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추악한지 피부로 느꼈다.
인간의 욕심이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말을 오랜 세월 동안 보아왔고, 그 말이 진리임을 이미 진즉에 알고 있던 크리시앙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겨우 참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제 폐하, 로베니아의 문명이 고대인의 유물 그 자체입니다. 모르시겠습니까? 이것은 그저 어쩌다 남아 있는 마법이동문일 뿐입니다."
크리시앙의 설명에 황제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원정길을 앞당긴 것만 해도 큰 성과였다.
로베니아의 대군이 게이트로 질서정연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발렝 황제가 나타나자 장수들이 모두 예의를 취했다.
"이보게 트리쉬엥 군단장!"
"예, 황제 폐하! 하명하시옵소서."
황제의 부름에 원정군의 제2군단장을 맞고 있는 트리쉬엥 군단장이 황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이 게이트가 로베니아에서 대륙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 맞지?"
"네, 그러하옵니다. 저희 로베니아의 국경과 대륙의 중심인 샹그릴라 북쪽의 리하나 유역이 일직선으로 연결된 통로라고 생각하시면 되옵니다."
"그래, 그것도 일순간에 이동할 수 있는 통로라는 말이지?"
"네, 그러하옵니다."
트리쉬엥 군단장에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확인한 발렝 황제가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이것은 우리 로베니아가 대륙을 쟁패(爭覇)하라는 선조들의 계시야! 장수들은 들어라!"
"하명하십시오! 폐하!"
장수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자 발렝 황제는 자신의 검을 꺼내들고 광오하게 외쳤다.
"이번 우리 원정군의 목표를 바꾸겠노라! 케린버그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폴렌시아 전체를 정복한다!"
발렝 황제의 명령에 장수들은 크게 당황했다.
"하, 하오나 폐하! 대륙 전체로 로베니아의 세를 늘리는 것은 선조들께서 금하고 있지 않습니까. 징벌은 하나, 정복하지 않는 것이 저희 율법입니다. 폐하! 제발 유념하여 주시옵소서!"
발렝 황제의 폭주에 놀란 장수들이 간청했지만, 이미 선을 넘어버린 발렝 황제에게 선조들의 유지(有志) 따위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장수들의 반대가 거세게 일어나자 발렝 황제의 검이 장수들을 향했다.
"너희들은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어찌 감히 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냐?"
"폐하! 율법에 따르면 로베니아가 대륙을 정복하려 한다면 신들의 노여움을 받을 거라 했습니다. 문헌(文獻)에 보면 칠일 낮과 밤 동안 하늘에서 천둥 번개와 비가 내렸고 세상의 모든 생명이 멸종할 뻔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발 말씀을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장수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제3군단장인 쟝 미셀이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황제에게 애걸했지만, 황제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크흑! 화... 황제 폐하...제발... 제국을... 생각......."
쟝 미셀의 심장을 찔렀던 황제의 검이 빠져나오자 그는 눈에 초점을 잃고 쓰러졌다.
"에밀리앙!"
"명령하십시오. 황제 폐하!"
30대 초반의 건장한 장수는 오로지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이제부터 그대가 제3군단장이다."
"감사합니다. 폐하! 충성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손수건을 꺼내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낸 발렝 황제가 손수건을 바닥에 내던졌다.
"짐의 말에 거역할 자는 다시 나서라! 어서!"
발렝 황제의 추상같은 명령에 장수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나마 중도세력이었던 쟝 미셀 군단장이 죽자 이제 황제에게 제대로 된 충언을 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뒤돌아보지 않는 폭주마(暴走馬)처럼 로베니아의 원정군은 정복군으로 변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앞에 무엇이 있는 줄도 모르고 위험한 질주를 시작한 것이었다.
"전군에 비상 걸어! 어서!"
"어떻게 된 일입니까?"
"로베니아가 갑자기 리하나 강을 건너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군복을 제대로 입지도 못한 채 상황실로 뛰어든 호크의 궁금증을 나형석 장군이 설명해 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어떻게 벌써 리하나 강을 건넌다는 말입니까?"
호크가 깜짝 놀라서 소리치자 냉랭한 표정의 나형석 장군이 손을 들어 상황판을 가리켰다.
빨간 점들이 케린버그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길! 아직 준비가 부족한데!"
호크가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지만 정작 나형석 장군은 무덤덤했다.
"훗! 우리가 언제 제대로 준비하고 싸운 적 있나."
나형석 장군의 느긋함에 호크는 짜증이 났다.
"그거야 그렇지만, 리하나 강을 건넜다면 바로 코앞 아닙니까. 장군님께서 너무 여유 부리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호크의 볼멘소리에 나형석 장군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보게, 세상 어느 지휘관이 전투를 앞두고 여유를 부리겠는가. 내 손에 수십만의 목숨이 달렸는데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나는 그저 당황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일세."
파이프 담배에 불을 당긴 나형석 장군이 의자에 몸을 맡겼다.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낸 장군이 파이프 담배로 상황판을 가리켰다.
"문제는 말이야, 저놈들이 어떻게 빨리 이동했냐가 아니라 부대 편성은 어떤지 규모와 부대 구성 그리고 보급부대의 규모를 알아내는 거야. 후~"
담배 연기로 구름을 만들어낸 나형석 장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가 직접 대원들을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장군님!"
호크가 가슴을 치며 호언하자 나형석 장군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자네 지금 제 정신인가? 자네는 지금 장군이야. 지휘관이 지금 뭘 어떻게 한다고? 제발 정신 차리게, 제너럴 호크!"
나형석 장군의 질책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호크의 얼굴이 벌게졌다.
사실 호크는 지금도 자신이 장군이라는 신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교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의 말처럼 원래 생겨먹은 것이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전히 사병처럼 현장 체질이라고 생각하고 다니는 통에 나형석 장군의 주름살이 늘고 있었다.
"사령관으로서 위엄과 체통을 지키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란 말일세. 알겠나?"
아버지처럼 훈계하는 나형석 장군에게 오랜시간 잔소리를 들은 호크가 겨우 상황실을 벗어나서 이동 게이트(gate)로 향했다.
'젠장! 웬 노인네가 말이 그렇게 많은지, 몇 분만 더 들었으면 내가 미칠 뻔했어.'
"장군님, 어디로 가십니까?"
수송부의 장교가 목적지를 묻는 바람에 호크의 잡념도 끝이 났다.
"디안 요새로 간다!"
굳은 표정의 호크가 게이트를 통과할 무렵 케린버그 전역에 동원령이 떨어졌다.
휴가와 외박 외출을 나갔던 모든 병사들에게 복귀 명령이 하달되었고 전군 전시체제로 돌입했다.
새로이 편입된 패망한 세린디아의 이전 수도 베를로니아 지하도시에서 만들어진 과학부의 전략무기 연구소에서 개발된 무기들이 케린버그의 전선으로 옮겨졌다.
게이트를 통해서 케린버그 각지에서 훈련 중이던 병력들이 로베니아와의 전투가 예상되는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국민들도 국가에서 발표한 포고문을 듣고 전시체제를 따르기 시작했다.
지난번과 달리 피난을 가기 위해 보따리를 싸거나 도망치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예전과 달리 케린버그는 희망이 없는 나라가 아니었다.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곳이었고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쟁을 준비했다.
어느 누구도 로베니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이는 역사가 바뀌고 있다는 조짐이었다.
게이트를 통과한 호크가 기다리고 있던 부관을 대동하고 급히 요새로 향했다.
디안 요새도 이미 전쟁준비로 부산했다.
요새를 가로 질러 요새 밖의 전진 기지로 향했다.
원래는 레센을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기지인데, 우습게도 이제는 훈련장으로 바뀌었다.
레센과의 동맹 때문이었다.
전진 기지에 도착하니 이곳은 더욱 혼잡했다.
케린버그의 병력과 레센의 병력들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웠다.
"젠장, 개판이잖아! 부관,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나형석 장군의 잔소리도 들었는지라 욱하는 마음을 참고 부관을 대신 보냈지만, 부관이 허겁지겁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호크는 인상을 쓰다가 결국 소매를 걷어 붙이고 아수라장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런 멍청한 자식들, 이쪽으로 오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우리한테 어쩌란 말이야, 우리가 나가지 않으면 뒤쪽이 난리라고!"
케린버그의 왕립군과 레센 제국의 장교들이 난장판 속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사이로 호크가 뛰어들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장교라는 녀석들이 당장 그만두지 못해!"
호크의 견장에 뻔쩍이는 별을 보고 얼어붙은 케린버그의 장교가 주변이 떠나가라 구령을 붙였다.
"충성!"
"시끄러! 당장 무슨 일인지 말해봐!"
"저... 그게 실은 말입니다."
레센에서 오는 지원 병력들이 게이트를 통과하는 시간이 하필이면 기동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케린버그 왕립군의 귀대 시간과 맞물려 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마침 게이트 앞을 통과하던 기동부대와 레센의 병력이 한데 뒤엉켜 버리자 병력은 병력대로 장비는 장비대로 뒤섞여 버렸고 게이트에서는 계속해서 레센의 병력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으니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젠장! 이봐, 자네!"
호크에게 지명 당한 레센의 장교가 급히 군례를 올렸다.
그도 호크가 상당히 높은 장교라는 것을 눈치 챘는지 예의에 어긋남이 없이 행동했다.
"네, 말씀하십시오!"
호크의 지시를 받은 각국의 장교들이 돌아가자 호크는 지금 막 들어온 기동 전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높은 곳으로 올라오니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호주머니에서 호각을 꺼내들은 호크가 입에 물고 있는 힘껏 불었다.
귀청을 자극하는 호각소리에 난장판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의 시선이 호크에게 쏠렸다.
병사들의 소란이 잦아드니 주변도 조용해졌다.
부관이 건넨 나무로 만든 메가폰을 들고 배에 힘을 주었다.
"나, 알렉스 호크 장군이다! 지금부터 내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여라! 이것은 레센 제국의 병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반 봄멜 공작님에게 전해 들었으리라 믿는다. 지금은 내가 현장의 지휘관이니 내 명령대로 움직이길 부탁한다. 어서 이 소란을 끝내고 저녁을 먹어야 하지 않겠나?"
레센 제국의 병사들도 별 반발이 없었다.
연합군을 창설하면서 지휘계통의 혼선을 막기 위해서 자국의 지휘관 부재 시 양국 병력 중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자의 지휘를 받는 다는 규정을 레센의 장교들이 잘 숙지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때부터 호크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마치 교통정리를 하듯 호각을 불고 깃발을 휘두르며 얽히고 얽힌 병사들을 정리해 나갔다.
"거기, 마차행렬 정지! 좋아, 대위 중대를 이끌고 빨리 빠져나가! 어서!"
전혀 수습이 될 것 같지 않았던 혼잡한 상황이 서서히 정리되어 나갔다.
처음 케린버그에 도착한 레센의 병사들도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허허허, 저 친구 저런 재주도 있었나?"
"누구입니까?"
베른하트 기사단장이 봄멜 공작에게 호크의 정체를 묻자 껄껄거리던 웃음을 멈추고 봄멜 공작이 베른하트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따라오게, 소개해주지!"
봄멜 공작의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자 베른하트 공작이 궁금증을 참고 뒤를 따랐다.
"거기 말 타고 오는... 어라? 공작님이세요?"
한창 교통정리를 하던 호크는 난데없이 군마들이 난입하자 욕설을 하려다 도로 삼켰다.
"하하하! 그래 날세,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
"뭐하기는요? 보시면 모르십니까? 시간을 맞추셔야죠. 도대체 어느 쪽이 잘못한 건지, 이봐, 거기 마차들 빨리 빠져나가! 어서!"
정신없이 바쁜 호크를 보며 봄멜 공작이 참지 못하고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저 친구가 바로 알렉스 호크 경이지, 케린버그의 두 번째 소드 마스터이자 케린버그 왕립군의 지휘관이기도 하지."
"네?"
깜짝 놀란 베른하트는 정보원들에게서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젊은 사람인 줄은 몰랐다.
아무리 봐도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의 남자였다.
로베니아를 빼놓고 대륙에 이렇게 젊은 소드 마스터는 없을 거라고 베른하트는 확신했다.
"이보게, 호크, 우리 레센의 유명한 그림자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베른하트 남작이네. 인사하지!"
부관에게 메가폰을 넘긴 호크가 기동 전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후우~ 잉글햄를 한바탕 들쑤셔 놓은 주인공이시네."
이마에 땀을 훔치며 아는 체하는 호크에게 베른하트는 공손하게 군례를 올렸다.
"베른하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손을 한번 들어 올린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호크가 말에서 내린 봄멜 공작에게 다가갔다.
"얘기 들으셨습니까?"
"그래, 오기 전에 들었네. 머스탱 공작이 소식을 보냈더군. 어떻게 리하나 강을 그 짧은 시간에 넘은 거지?"
봄멜 공작도 소식을 들었기에 서둘러서 병력을 이끌고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제 생각인데 아마 그들도 게이트(gate)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이트(gate)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돼요. 그 많은 병력을 순식간에 옮길 수 있는 것은 고대인들의 게이트 이외에는 없거든요."
봄멜 공작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규모는 어떤가?"
"정찰대가 곧 소식을 보내올 것입니다. 저와 함께 작전사령실로 가셔야 합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크가 서두르자 봄멜 공작이 호크의 어깨를 잡았다.
"왜요? 지금 한시가 급하다니까요"
그러나 봄멜 공작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호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봄멜 공작에게 한소리 하려던 호크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갑자기 수십 대의 마차 행렬이 게이트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차는 군용 마차가 아니었다.
하나 같이 화려한 장식을 한 고급스런 마차였다.
게다가 봄멜 공작마저 마차를 보고 허리를 숙였기 때문이었다.
마차들이 멈추자 근위기사들로 보이는 기사들이 중앙의 가장 화려한 마차 주위로 몰려들어 경계를 했다.
"아니, 도대체 지금......"
호크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마차에서 걸어 나오는 인물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발의 노회한 노인이었지만, 범상치 않은 기도는 호크에게도 감히 어쩌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노인의 머리에는 휘황찬란한 왕관이 있었다.
노인이 내려오자 레센 제국의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렸다.
봄멜 공작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케린버그 사람들만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봄멜 공작이 호크에게 노인의 정체를 밝혀 주었다.
"인사드리게. 레센 제국의 위대한 태양이신 요한 황제이시네!"
"화, 황제!"
어찌나 목소리가 컸던지 자신의 목소리에 자기가 놀라는 추태를 부렸다.
그러나 곧 정신을 수습하고 케린버그 식으로 황제에게 예의를 올렸다.
호크가 몸을 돌려 케린버그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부~대 차렷! 레센 제국의 황제 폐하께 경례!"
"충성!"
하늘이 떠나가도록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수만은 병사들의 절도 있는 군례에 요한 황제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난생 처음 보는 인사법도 인사법이지만, 케린버그 군인들이 하고 있는 복장에서부터 무기까지 모든 것들이 지난 일년전쟁 때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낯선 인사법이 싫지는 않았다.
제국의 인사법과는 달리 뭐랄까, 남자의 가슴을 진탕시키는 기백과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황제에게 뒤돌아선 호크가 마무리를 했다.
"충성! 케린버그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느릿하게 호크에게 걸어온 요한 황제가 동물원 구경하듯이 호크 주위를 돌며 이리저리 살폈다.
황제가 아무 말이 없기에 호크는 경례자세를 풀지 못하고 황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자네가 바로 그 유명한 호크 경이로군. 흐음~ 도대체 체격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소문과 너무 다르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정도면 굉장한 악담이다.
난처한 봄멜 공작과 달리 호크는 별로 표정이 변하지도 않았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늘 똑같아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호크가 씩씩한 목소리가 분위기를 변화시켰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응? 크하하하하하!"
느닷없이 호크의 대답에 요한 황제가 허리를 꺾으며 크게 웃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한참을 웃은 황제가 호크의 어깨를 두드렸다.
처음과 달리 많이 부드러워진 요한 황제의 눈이 호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보게, 잘 부탁하네!"
"네? 네! 아, 알겠습니다."
무얼 부탁한다는 말인지 호크는 언뜻 이해하지 못했지만, 뒤돌아가는 늙은 황제의 등을 보며 짧은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아주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제의 마차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호크는 자세를 풀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존경심이 생기는 그런 인물이었다.
겨우 자세를 풀고 장내도 다시 부산해지자 봄멜 공작이 호크의 등을 세게 쳤다.
"윽! 아프잖아요!"
"하하하하! 자네는 정말 별종이야. 하지만 대단하기도 하지. 까다로운신 우리 요한 황제님의 마음에 들다니. 축하하네!"
봄멜 공작의 손이 꽤 매운지 등을 움찔거리던 호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축하하기는 뭘 축하해요! 젠장, 그나저나 황제가 오는데 미리 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입장도 있지, 손님이 오는데 썰렁하게 이게 뭡니까?"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머스탱 공작이 나오기로 했으니 걱정 말게. 아마 디안 요새에 벌써 환영파티라도 열리고 있을지 아나?"
"젠장, 요즘 들어 나만 모르는 일이 너무 많은 거 같은데?"
툴툴거리며 불만을 토하는 호크를 보고 봄멜 공작이 짓궂게 어깨를 툭툭 쳤다.
"아! 진짜 나이든 양반이 주책없이 자꾸 왜이래요?"
"하하, 자네를 놀리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걸 어쩌나. 하하하! 농담일세, 농담!"
하지만 허리를 잡고 웃어대는 모양이 결코 농담 같아 보이지 않았다.
겨우 웃음을 추스른 봄멜 공작이 게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대규모 병력을 보며 손을 들어 가리켰다.
"우리는 이 많은 병력을 운용해서 전투를 치러야 해. 외교적인 문제는 외교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전투에 전념해야 해. 그것이 지도부의 뜻이기도 하고."
봄멜 공작을 말에서 정말 전투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낀 호크는 이번 전쟁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 서두르지, 우리야 그런 환영파티와는 거리가 먼 군인들 아닌가? 제국의 역습을 막으러 가야지!"
망토를 휘날리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봄멜 공작을 보고 호크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하시는군!'
서둘러 봄멜 공작과 어깨를 나란히 한 호크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투를 앞에 둔 병사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어느새 저녁놀이 디안 요새의 전진기지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이제 수일 안에 로베니아의 원정군이 창검을 들이댈 것이다.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제국의 역습에 케린버그와 레센의 연합군이 최후의 전쟁을 위해서 검을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