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크-27화 (27/55)

Chapter 27. 크래쉬(crash)!

"첩자들로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케론스 공작님!"

"그런가, 이제야 겨우 정신들을 차린 모양이군 그래, 찰스가 겁에 질려 덜덜 떨고만 있지는 않은가 보지?"

"하하하하!"

맨체트의 혁명군 임시 사령부 회의실에서 로베르트의 보고를 받은 케론스 공작의 농담에 자리에 함께한 반 국왕파 귀족들이 같이 웃어댔다. 케론스 공작이 손을 들어 올리자 다시 조용해 졌다.

"자, 이제 찰스도 겁에 질려 우는 것을 멈추고 우리와 한바탕 놀아볼 마음을 먹은 모양이니 그에 마땅한 대접을 해줘야 겠지. 웨일즈 백작! 지금 우리 군세(軍勢)는 어떻게 되지?"

웨일즈 백작이 가볍게 묵례를 하고 둘둘 말린 문서를 펴고 읽어 내려갔다.

"어제 아스놀란 영지에서 후버 남작이 2만의 군사를 보내와서 저희가 보유한 총 병력은 64만 명입니다. 거기에 각 영주들께서 보내준 기사들이 모두 4천에 달합니다. 이들은 10개의 기사단으로 나누어서 편제를 마친 상태입니다. 그리고 각종 공성무기도 점검을 끝낸 상태입니다."

웨일즈 백작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얼굴에 흡족한 표정이 나타났다.

"적의 병력은 어찌되나?"

짐짓 여유가 넘치는 케론스 공작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질문을 했다.

"어제 까지 집계한 결과 50만에서 조금 빠지는 걸로 파악되었습니다. 기사단이라고 해봐야 머스탱 공작의 불의 사자단과 국왕의 친위대 정도 인데 그래봐야 1천을 넘기지 못하고 마법사라고 해봐야 4서클 정도 마법사 8명이 전부로 알고 있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손뼉을 치며 케론스 공작이 일어서자 회의에 참석한 귀족들도 모두 일어났다.

"비록 저들에게 소드 마스터가 2명이나 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위대한 제국 로베니아의 정병 15만이 있다. 아마도 우리는 검 한번 꺼내볼 기회도 없을지 모른다. 이미 승리는 우리의 것 모두가 그때까지 흔들림 없이 나를 따르도록 해라!"

"케론스 국왕전하 만세!"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케론스 공작도 싫지는 않은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고무된 귀족들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케론스 국왕전화 만세를 외쳤다.

"새로운 국왕 전하를 위하여!"

회의실 안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로 사로 잡혔다. 주석으로 만들어진 술잔들이 높이 올라갔다. 핏빛의 붉은 와인이 넘치면서 벌써부터 승리의 자축을 벌이는 케론스 공작은 두 눈에는 욕망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무엇이 얼만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떨던 케론스 공작을 이렇게 자신감을 넘치게 만들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맨체트 성안을 시끄럽게 울리는 나팔소리가 대신했다.

"공작 전하! 로베니아에서 원정군이 도착했습니다."

"오~ 그래! 어서 나가보자."

전령의 보고에 반색한 케론스가 술잔을 집어 던지고 성벽의 마루에 올랐다. 거대 제국 로베니아 군대를 보기위해 많은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뿌우~ 뿌우~

나팔소리가 어지러이 울려 퍼지고 성문이 활짝 열렸다. 케론스 공작이 직접 군대를 맞이하기 위해 나갔다.

쿵쿵!

궁극의 강대국 이며 폴렌시아 대륙의 절대자 로베니아 군대의 행진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이야기로 만 듣던 로베니아의 군대를 처음 보는 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좋은 자리 잡기에 혈안이 되었다. 나팔 소리가 급격하게 울리자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울리기 시작했다.

구경을 하는 맨체트성의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자신들도 군인이고 몇 차례 전쟁이 참전해 봤지만 이런 군대는 처음이었다. 일년 전쟁 때 로베니아와 함께 전투에 참가 했던 경험이 있는 병사들만 그들의 강한 힘을 떠올리며 신음을 흘렸다.

점점으로 보이던 것이 점차로 형태를 갖추더니 말을 타고 전진하는 로베니아의 위풍당당(威風堂堂)한 대군으로 바뀌어 그 장관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15만이 넘는 군대가 전부 말을 타고 있었다. 얼마나 물자 풍족한지 몰라도 보병들도 모두 말을 타고 움직이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선두에는 라멜라 아머(lamellar armor), 메일 아머(mail armor), 스케일 아머(scale armor)를 걸친 기사들이 갑옷을 번뜩이며 기선을 제압했고 그 뒤로 로베니아 군의 자랑거리인 중장갑기병들이 1미터가 넘는 길이를 가진 타원형의 방패나 원형 방패를 말 옆구리에 매달고 길이 2미터가 넘는 창인 콘토를 말굽쇠에 걸고 위용을 뽐냈다.

그 다음으로 궁기병은 주로 몬스터의 뼈로 만들어진 길이 1미터 정도의 합성궁을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뒤를 따랐다. 애초에는 보병과 기병 둘 다 합성궁을 사용했는데 지난 일년 전쟁이후 궁기병은 점차 줄어들고, 중장갑보병이 늘어난 편제가 됐다.

현 황제인 발렝 루이 6세의 군제개혁에 따라 중장갑기병 대 궁기병의 비율이 3:1 로 정해졌기에 조금은 궁기병들이 초라하게 보였다.

더군다나 궁기병 뒤로 땅을 울리며 전진하고 있는 괴물들 때문에 더 눈에 띄지 않았다.

쿵! 쿵!

드드드드~

"저건 또 뭐야, 핸들러?"

맨체트 성 외곽의 산속의 풀 섶에서 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망원경들이 빼꼼히 빠져 나와 있었다.

"비마나라고 불리는 괴물입니다. 기간테스처럼 고대의 유물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하늘을 나는 전차]라고 하면 맞을 겁니다. 중령님."

"그래? 우리가 발견한 것과 같은 건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연구팀에서 아직 어떻다는 보고가 없었으니까요. 대령님과 사이클론님께서 밤낮으로 매달리고 계시니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역시나, 로베니아 숨은 힘은 결국 고대인들의 유물이었다는 얘기네, 그렇지?"

"네, 중령님. 저도 예전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봤지만 이제는 그 비밀을 알고 나니 허탈하기까지 합니다."

"그게, 인생이란 거야. 이봐~ 다 찍고 있어?"

호크가 수풀을 살짝 들추고 좀 떨어진 옆 편의 덤불을 보고 말하자 덤불 속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네, 중령님.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마나 영상기에 담고 있습니다."

정찰조원 대답을 듣고 만족한 호크가 다시 망원경을 들어 맨체트 영지로 들어서는 로베니아의 원정군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이들은 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호크와 정찰대는 처음 보는 로베니아 군의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과연 소문대로 였다.

하나 같이 병사들은 잘 훈련받은 듯 했고 장비며 무기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랜 세월 누적되어온 경험과 지식들이 전수된 막강한 전투부대라는 것이 호크의 느낌이었다. 특히나 선두에 있는 몇몇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니었다. 이렇게 빠른 시간에 이정도 군사를 파견했다는 것은 평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호크는 눈을 떼지 않고 면밀히 살피고 또 살폈다.

"좋아, 우리는 철수 한다. 너희들은 다음 교대조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해!"

"알겠습니다, 충성!"

"그래, 고생해라"

호크와 핸들러가 낮은 포복으로 천천히 기어서 언덕을 넘어갔다. 덤불속의 정찰조는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로베니아 군은 맨체트 영지에 들어섰다. 길가에 늘어선 군중 사이로 당당히 행군을 한 후 성 밖의 평원에 진지를 구축했다.

마중 나온 케론스 공작이 말을 몰아 진영으로 다가가자 은빛 갑옷을 입은 금발의 사내 셋이 다가왔다.

"케론스님을 뵈옵니다."

"원로에 노고가 많았네. 미트랑!"

건장한 갑옷의 남자들중에서 중년의 얇은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케론스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이어 나머지 두 사람도 케론스가 내민 손등에 입을 맞추고 무릎을 꿇고 예의를 표했다.

흡족한 표정의 케론스는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세 사람에게 보내며 그들과 성안으로 향했다. 그들이 그렇게 성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평원에는 금세 수천 개의 천막이 뒤덮이며 엄청난 규모의 진영이 만들어졌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돌아가고 밤이 맨체트 성에 찾아왔다. 그러나 깊어가는 밤에도 불구하고 맨체트 성안은 환하게 불을 밝힌 채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마지막으로 찰스 국왕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이를 거부할시 공성무기로 동측과 남측의 성문을 공략하여 빠르게 궁 안으로 진입하여 국왕일가를 생포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작전이라고 판단됩니다."

로베르트의 설명에 케론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아, 항복을 권유하는 것은 나중에라도 국민들에게 좋은 명분이 될 수 있고 동측과 남측의 성문을 공략한다는 것도 가장 수비가 부실한 곳을 친다는 것에 나 또한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 하네"

"감사합니다. 공작전하!"

"그러나, 그러나 말이야."

로베르트의 말에 제동을 건 케론스 공작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을 느끼며 회의실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평소에 피우던 파이프 담배의 재를 손바닥에 털어낸 케론스 공작이 다시 답배 잎을 재우고 불을 당 긴 후 연기를 뿜어냈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하나 놓치고 있네."

"그게 뭡니까, 공작님!"

로베르트가 자신이 생각 못한 것이 있다는 지적에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공작에게 답을 요구했다.

상황판에 걸린 지도 앞에 선 케론스 공작이 작은 검을 들어 지도의 한군데를 찍었다. 케론스 공작이 자리로 돌아가 앉자. 웨일즈 남작이 일어서서 지도를 확인했다.

"이, 잉글햄?"

"뭣, 잉글햄 이라니?"

"잉글햄!"

난데없이 튀어나온 잉글햄 때문에 회의실안의 귀족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케론스 공작을 쳐다봤다. 오로지 로베르트만이 '아뿔싸!'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마를 쳤을 뿐이었다.

"이런, 로베르트 한 사람만 내 뜻을 알아차렸군. 모두들 잘 듣게 수도에 있는 병력들이야 별 문제가 아니네 어차피 급히 모은 병력이라고 해봐야 농군들이 대부분 일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잉글햄의 디안요새에는 무려 150만의 정병이 도사리고 있네. 그것도 일년내내 전술훈련을 받고 있는 정규군이 말이야."

진지한 표정으로 회의실 탁자 앞으로 오가는 케론스 공작의 말에 대부분의 귀족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공작님, 그들은 절대 내전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디안 요새의 병력들은 그곳에서 절대 벗어 날 수 없고, 그 어떤 정치적 행동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는 지업한 국법으로 다스려지는 곳입니다. 국왕파도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몬스터와 레센 제국의 창검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국경의 군대에 손을 대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혁명에 가장 많은 군대를 동원한 아스널 영지의 영주 알버트 남작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케론스 공작은 그런 주장들을 가볍게 묵살했다.

파이프 담배를 끊 케론스 공작이 회의실 테이블을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해 갔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잉글햄의 하워드 백작은 국왕파의 행동대장인 호크 백작의 장인이요, 게다가 그는 지난 디안요새 전투로 인해 요새 병사들에게 신처럼 추앙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지. 또한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 하오. 만에 하나 우리가 수도를 치고 있을 동안에 그들이 북상이라도 하면 우리 모두 어려운 지경에 놓일 수 있단 말이오."

케론스 공작의 설명에 그제 서야 귀족들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들이 새어나왔다. 케론스 공작의 말대로 디안요새의 병사들은 한마디로 독종 중에 독종 들이었다. 워낙에 험한 곳인데다 늘 작은 전투가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라 잉글햄의 병사들은 일반 병사들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영지군의 병사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귀족들은 그제서야 케론스 공작이 말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비수가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지 깨닫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또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등 뒤에 비수를 품을 적을 두고 거사(巨事)를 도모 할 수는 없소 그들이 만에 하나라도 잉글햄에서 농성이라도 한다면 우리는 케린버그 장악에 실패 하거나 성공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게 불을 보든 뻔하오."

고개를 가로 젖던 귀족들의 고개가 이제는 위아래로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모두가 이해한 듯하자 비로써 굳은 표정을 푼 케론스 공작이 손뼉을 치자 기사들이 커다란 두루마기를 들고 들어왔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두루마기를 펼치자 케린버그의 상세한 지형이 표시된 지도가 나타났다.

붉은 점과 파란 점으로 표시된 점들이 화살표로 그려져 있었고 각 지역마다 숫자와 글자들이 어지럽게 적혀있었다.

"자, 내 계획은 이러 하오 우선 수도의 공략은 여기 있는 미트랑이 신속하고 완벽하게 점령을 마칠 것이고,"

케론스 공작의 말에 회의실이 소란스러워 졌다.

"안됩니다. 공작님! 수도는 반드시 저희 손으로 점령을 해야 대의명분이 세워지게 됩니다. 만에 하나 국민들이 로베니아 군대에 의해 수도 짓밟힌 것을 알게 된다면 저희는 명분을 잃고 정통성을 계승 받을 수 없습니다."

젊은 귀족들이 분노하며 성토했고 연륜 있는 귀족들도 불신의 표정으로 케론스 공작을 바라보았다.

"허어~ 답답하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게재가 아니란 것을 왜 모른단 말이오!"

케론스 공작이 불같이 화를 내며 귀족들을 위협했다. 한 시간 여를 협박과 회유를 통해서 결국 수도 로이든의 공략은 로베니아의 원정군이 맡기로 하고 지방영지와 잉글햄을 혁명군이 맡기로 했다.

케론스의 공작의 언변에 귀족들이 당해내지 못해서였다. 지리에 서툰 로베니아 군이 멀리 원정을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다며,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면 혁명군에서 제외 시키겠다는 엄포에 주장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되어가는 혁명을 보면서 처음으로 귀족들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꼈지만 이미 자신들이 올라탄 배는 너무 멀리 나와 있어서 내리기에는 진즉에 늦었다는 것을 알고 후회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면 죽음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실패 하면 다른 죄도 아니고 반역이었다. 가문이 멸문 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끔찍한 형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잠시 떠올린 그들은 두말없이 잉글햄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다음날 아침 혁명군은 가장 노련한 알버트 남작을 지휘관으로 하고 잉글햄으로 떠났다. 잉글햄의 하워드남작과의 친분을 고려한 것이기도 했다.

될 수 있으면 피를 흘리지 않고 무혈입성 하기를 고대한 혁명군 노귀족들의 얕은 잔꾀였다.

혁명군이 떠나는 모습을 성의 망루에서 지켜보던 케론스 공작의 얼굴이 몹시 사나워 보였다.

"공작님, 심기가 불편해 보이십니다."

로베르트가 평소와 다른 케론스 공작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 저 녀석들이 더 바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보다 너무 똑똑한데"

"애초에 쓰고 버리는 카드였습니다. 공작님!"

"그렇지, 그래도 이렇게 일회용이 될 줄은 몰랐단 말이야 그동안 저것들을 포섭하기 위해 공들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속이 다 쓰린 걸."

케론스 공작이 점점 멀어져서 이제는 점으로 변한 혁명군을 보면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로베르트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그랬다면 힘들게 오랜 세월동안 그 지겨운 공작도 필요 없었겠죠. 그러나 신이 공작님을 도와서 이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왔으니 재빠르게 수도를 점령하고 저것들이 잉글햄에서 자기들 끼리 치고 박고 하여 지리멸멸 했을 때 힘들이지 않고 케린버그가 공작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로베르트의 말에 케론스 공작도 얼굴을 펴고 실소를 흘렸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 이말 인가 로베르트?"

"네, 공작님! 추기경님과 쟝님이 꿈꾸시는 원대한 계획의 첫발을 내미시는 겁니다."

로베르트의 마지막말이 케론스 공작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는지 허리가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 케론스 공작이 로베르트를 보며 음산한 눈빛을 보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한 놈도 살려 둬서는 안 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국 케린버그는 지도에서 없어질 운명이니까요"

"하하하하! 그래 그날이 기다려진다. 정말 지겨운 세월이었어!"

망루 위에 두 손을 올리고 몸을 기댄 케론스 공작의 얼굴은 아주 평화로웠다.

"이만 내려가지 로베르트 오랜만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있겠어."

"네, 공작님!"

"참, 머스탱과 호크 그 녀석들의 소재는 파악이 됐나?"

"죄송합니다. 공작님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볼 때 국왕이 분명히 그들을 불러 들였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난 왠지 호크란 녀석이 불길하게 느껴져 로베르트!"

내려가던 계단에서 멈춰서서 근심하는 케론스 공작을 보고 로베르트가 힘주어 말했다.

"공작님 그 녀석의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잘 알지만 지금 이곳에 누가 와있는지 잊으셨습니까?"

"무슨 말인가?"

"제국 로베니아의 전사(戰士) 미트랑이 그의 무적군단과 함께 와 있습니다. 무엇이 두려우신 겁니까? 케린버그의 그 누구도 제국 로베니아의 전사에게는 이길 수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로베르트의 확신에 찬 주장에 케론스 공작도 힘을 얻었다.

"그래, 그렇지 내가 잠시 깜빡 했군 그들을 잊고 있었다니 말이야."

"공작님, 그동안 너무 많이 힘드셨습니다. 오늘은 일찍 쉬도록 하십시오. 이제 곧 로이든에서 편하게 쉬시게 될 것입니다. 자! 어서~"

"후~ 자네 덕을 톡톡히 보는 군, 이 일이 끝나고 나면 큰 포상이 기다리고 있을 걸세."

케론스 공작이 로베르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칭찬을 하자 로베르트가 허리를 깊숙이 숙혔다.

"아닙니다. 공작님. 아나무나크의 자식으로서 할 일을 다 할 뿐입니다."

"하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두 사람이 계단에서 멀어지자 웃음소리도 점점 엷어졌다. 케론스 공작과 로베르트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리에 맨체트의 경비병이 어슬렁거리다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투구를 벗으니 병사라고 하기에는 귀티가 흐르는 얼굴이 드러났다.

"개자식들 너희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어서 헬렌 백작님에게 보고를 해야겠어. 혁명군과 함께 떠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난 듯하니 서둘러 로이든으로 돌아가야겠어. 두고 보자, 반역의 무리들! 이 빚은 반드시 갚아주마!"

그는 예전에 위장 포섭되었던 에일로스 영지의 밀턴 자작이었다. 선대에서부터 내려온 로베니아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이 흘러 넘쳤다. 밀턴 자작은 눈빛을 거두고 몰래 성을 빠져 나왔다. 오늘 안으로 로이든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성 밖의 숲속에 준비해 두었던 준마에 올라 고삐를 당겼다. 귀중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는 밀턴 자작은 별 어려움 없이 산과 강을 넘어 로이든으로 향했다.

"중령님! 결재 부탁드립니다."

"음, 이런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호크의 질책에 보고를 하던 작전처 장교가 난감해 했다.

"네, 대령님께서 아직 테스트가 덜 끝났다고 하시면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나 참, 그 양반은 정말 군인이 아니라 과학자라니까, 군인이 언제 장비 제대로 갖추고 싸우나, 대충 움직이면 되는데, 에휴~"

결재서류에 싸인을 한 호크가 통제실의 무전병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시를 받은 통신병이 책상위에 죽 늘어선 수십 개의 마나통신기를 조작했다.

치이~ 치이~

통신병이 수신 받는 쪽과 암구호를 확인한 뒤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들어왔다.

"충성!"

"어? 왠일인가, 지금 얼마나 바쁜지 알기나 하는 거야."

화면에 비친 김재덕 대령은 군복대신 정비복을 입고 있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마따나 잠은 거의 못 잤는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저도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닙니다. 대령님! 장비를 보내주셔야 싸움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닙니까?"

호크의 불평에 김재덕 대령이 화면을 움직여 작업현장을 보여 주었다. 그야말로 대단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포항이나 울산의 조선소에 견학 갔을 때가 떠올랐다.

"휘~이~ 엄청나네요. 제가 없는 사이에 일을 제대로 벌이셨는데요."

호크가 놀라움을 표시하자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던 김재덕 대령이 힘이 드는지 투덜거렸다.

"말도 마! 이 고대 문명이라는 것이 놀라움의 연속이네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어."

흥분한 김재덕 대령을 보며 한숨을 쉰 호크가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호크의 재촉에 김재덕 대령도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해 했다.

"아니, 지금 애들 다 죽이려고 하시는 겁니까? 로베니아 놈들은 비마나라는 전차까지 가지고 왔단 말입니다. 말이 전차지 탱크라고요, 탱크! 대령님이 서두르지 않으면 저희는 맨손으로 탱크에 돌진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호크의 말을 듣던 김재덕 대령이 영상기를 붙들고 흔들었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나? 비마나라니, 혹시 이것을 말하는 건가?"

아예 통신기를 들고 뛰는지 화면이 마구 흔들리며 어디론가 이동했다. 통신병이 살려달라고 하는 말도 얼핏 들린 것 같았다. 흔들리던 화면이 멈추고 맨체트 영지의 숲속에서 보았던 거대한 비마나가 눈에 들어왔다.

수백 명의 드워프들과 사이클론 그리고 낯익은 두 존재가 비마나에 매달려 있었다.

"혹시 이거하고 똑같은 건가?"

"젠장, 네 맞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빌어먹을 모두 몇 대나 있었지?"

"모두 10대였습니다."

"뭐라고 10대씩이나, 아예 케린버그를 끝장 낼 작정인가 보군"

김재덕 대령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호크의 마음도 답답해 졌다.

"심각합니까, 대령님?"

역시나 기름때 묻은 모습으로 통신기에 얼굴을 내밀은 사이클론이 대신 대답했다.

"레센이 일년 전쟁 때 모스크 산맥에서 무릎을 꿇은 이유가 저 비마나 때문이었어. 정말 무서운 무기야 로베니아가 이것을 10대 동원했다는 것은 필시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네"

"단순히 혁명이 아니라 아예 끝장을 볼 생각인가 본데요. 그런데 저들은 어떻습니까?"

호크의 물음에 사이클론이 뒤를 돌아봤다.

"음, 위대한 분들의 속내를 어찌 알겠느냐, 다만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돕고 계시다."

호크는 화면 속에서 비마나 해체 작업을 돕고 있는 베로니크와 테라토니어스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 녀석이 어디 감히 위대한 분들께 불경스런 언사냐?"

호크의 태도에 깜짝 놀란 사이클론이 행여 그들이 들었을까봐 가슴을 졸이며 꾸중을 했지만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무슨 소리입니까? 위대한 존재라니, 아~ 뭐 훌륭한 지식인이기는 하죠. 저 분들이 고대 문자를 해독해 주어서 아주 진척이 빨라, 이보게 호크 중령 이 고대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이들은 이미 기하학과 물리학에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네, 그리고 놀랍게도 지구의 고대 이집트 문명과 아주 닮아있어, 자네 떠난 이후에도 이곳 지하의 비밀공간에서 엄청난 장비와 무기들을 발견했네. 어떻게 이정도 문명을 이룬 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아, 이런 리온! 그건 그렇게 하면 안돼! 난 이만 실례하겠네, 아무튼 저 쪽에도 비마나가 있다니 서둘러서 장비를 보냈겠네. 조금만 더 참게, 그럼 수고하게!"

드워프들에게 뛰어가는 김재덕 대령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사이클론의 얼굴이 들어왔다.

"왜요, 뭐가 걱정되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후~ 글쎄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아무래도 누군가의 각본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개운치가 않아."

손에서 작업 장갑을 벗고 얼굴에 땀을 닦아내는 것을 보고 호크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어요, 일단의 발등의 불부터 끄고 봐야죠, 우리가 살아남아야 음모든 뭐든 알아볼 여유가 생기죠."

"그래, 네 말이 백번 옳다. 장비는 걱정 마라 두 분의 도움으로 거의 모든 공정이 마무리 단계다. 늦지 않게 준비가 될 거야."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쉬지도 못하고 매번 고생만 시키고 못난 손자 덕분에 말년에 꼬이셨어요."

호크의 따뜻한 말에 사이클론이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었다.

"녀석도 말이나 못하면, 여하간 몸조심해라 여기는 걱정 말고."

"네, 할아버지 수고하세요!"

화면이 꺼지고 통신이 끝나자 호크는 통신하기 전보다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젠장, 6.25 전쟁도 아니고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공산군과 마주한 국군의 심정이 이랬을까? 제때에 장비들이 도착해야 할 텐데, 그나저나 도대체 저것들 속셈은 또 뭐야? 그 오랜 세월 갇혀 지냈으니 가보고 싶은데도 많을 텐데, 왜 거기서 얼쩡거리는 거지?"

갑자기 생각이 베로니크와 테라토니어스에게 머물자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두 손으로 머리를 학대하던 호크에게 정보장교가 급히 뛰어왔다.

"중령님! 헬렌 백작님이 회의실에서 찾으십니다."

"응, 왜?"

"적 진영에 숨어있던 저희 쪽 정보원이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답니다."

"그래, 어서 가보자!"

"네, 중령님!"

불리한 전황에 희소식이 들려오자 한달음에 달려가는 호크는 처음 생각처럼 이번 내전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제가 보고 듣고 수집한 정보는 이게 전부입니다. 말씀드린 데로 혁명군은 이미 잉글햄으로 떠났고 로베니아의 원정군과 케론스 공작이 곧 수도 로이든을 칠 것입니다."

밀턴 자작이 설명을 끝내자 찰스국왕의 표정이 어두워 졌다.

"비마나가 10여 대가 넘는다니. 케린버그를 폐허로 만들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국왕전하, 전쟁입니다. 어느 한쪽이 끝장이 날 때 가지 싸우는 겁니다. 당장에 세린디아를 보십시오. 저희가 승리했으니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세리디아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수도도 폐허가 되어 버렸단 말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로이든도 베를로리아 꼴이 되고 맙니다."

호크의 단호한 말에 찰스국왕도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자꾸 왜 이렇게 약해지는지 모르겠군. 세린디아와의 전쟁 이후로 악몽에 시달려, 우습지. 전쟁터에 서지도 않은 내가 악몽에 시달린다니 말이야."

자조하는 찰스국왕을 데리고 호크가 밖으로 나갔다.

"후우~ 공기가 참 좋죠?"

"그런가?"

찰스국왕도 호크를 따라서 심호흡을 했다.

"흐읍, 매일 마시는 거라 난 특별하다고 생각을 못했는데 네 말을 듣고 숨을 쉬니 뭔가 색다른 걸"

"그렇죠? 저는 이 상쾌한 공기를 앞으로도 국왕님과 함께 오랫동안 마시고 싶어요. 그러니 기운내시면 좋겠어요. 이제 곧 베를로니아에서 병력들이 도착 할 텐데 기운 빠진 국왕을 보면 병사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아직 전투도 시작 않 했는데."

호크의 어깨를 두드린 찰스 국왕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사실 같은 민족끼리 싸운다는 거에 힘들었지만 네 말을 들으니 머리가 환해지는 거 같아. 승리 못한다면 이 공기도 다시는 마실 수 없겠지. 지금은 이기는 데만 집중하자"

씨익~ 미소를 짓는 찰스를 보면 호크도 마음의 준비가 된 찰스국왕을 보고 미소지어줬다. 로베니아의 원정군도 이제 곧 로이든을 향해서 올 테니 서서히 마중할 준비를 해야 했다. 이제 힘과 힘의 충돌을 해야 할 시기였다.

말로 만 듣던 로베니아의 힘을 직접 느껴봐야 할 때였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 호크는 조용히 성 밖을 바라보았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 저 로베니아의 힘이라는 게.'

저 멀리에서 몰려오는 먹구름이 케린버그의 불길한 운명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강을 건너면 헤나스톤입니다. 이대로 하루거리만 가면 로이든 입니다. 수도의 근처 헤나스톤을 지나면 로이든의 방어병력과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첫 교전이 발생할겁니다. 미트랑님께서 수고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로베르트의 설명에 원정군 사령관인 미트랑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수고라고 할 것이 있는가? 어느 정도 상대가 될 때 하는 이야기지, 이런 경우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미트랑이 빰을 긁으며 뭔가를 생각하자 케론스 공작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뭐긴 뭐야? 손안대고 코풀기지, 안 그런가 미트랑?"

"맞습니다. 하하하하하!"

"그렇지. 하하하하!"

케론스 공작과 미트랑이 크게 웃는 가운데 로베니아의 대군이 강을 건너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소식은 케린버그에도 속속히 전해졌고 이미 베를로니아에서 도착한 외인부대들이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장군님! 원로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호크가 막 게이트를 통과한 나 장군을 반갑게 맞이했다.

"고생은 무슨 그 고대도시의 유물이란 것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군. 만약에 세린디아가 이 유물들을 다 개발했다면 자네나 나나 오늘 이렇게 서있지 못했을거네."

나 장군이 거대한 금속 링을 통과하는 병력과 군수장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로니아의 지하도시에서 발견한 이 금속링은 마법진이라는 것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마력도 필요 없었고 인원제한도 없었다. 그저 양쪽의 게이트를 열기만 하면 복도를 통과하듯이 지나가기만 하면 됐다. 처음에 사용할때는 구토 증세에 힘들었지만, 두 드래곤과 김재덕 대령, 사이클론의 연구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어서 지금 케린버그 중요지역에 이 게이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게이트가 설치가 된 이후로 베를로니아와 로이든은 마치 옆 동네를 드나들듯 인원과 장비가 오고가고 있었다. 사이클론이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도 다 이걸 믿고 한 소리였다.

오후부터 전략 사령실이 운용되면서 정보수집과 작전계획이 일원화 되었다. 로이든의 귀족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체계적인 병사들의 움직임에 감탄하고 있었다. 잘 모르지만 그들이 보기에도 매우 현대적인 장비와 병력의 통솔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매우 원시적으로 보였다.

귀족들이 국왕을 따라서 전략 사령실에 들어서니 처음 보는 기계들로 가득한 현대적 군대 사령실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쪽 벽면에는 일루젼 마법같은 지도영상이 크게 펼쳐져 있었고 그 밑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머리에 무언가 쓰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알던 왕궁의 작전회의는 조용하고 침묵적인 분위기였는데 그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너무 낯설어서 그저 멍하니 구경하는 것이 다였다.

헬렌 백작은 이해한다는 듯이 그들을 인도해 회의 테이블로 인도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하자 테이블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테이블위의 마나석에 불이 들어왔다.

"와!"

"세상에 놀랍군!"

테이블 위로 로베니아 군대의 모습이 펼쳐졌다.

너무나 생생해서 심지어 어떤 귀족은 검을 들어 찔러보기까지 했다. 찰스 국왕과 헬렌 백작은 익숙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국왕이 손을 들어 주위를 환기 시키자 나형석 장군이 일어섰다.

"저를 처음 보는 분들도 계실 테고 아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서로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현재의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퍼레이터, 화면을 전체 모드로 전환해!"

나형석 장군의 명령에 오퍼레이터가 기계 조작을 하자 테이블위의 영상이 바뀌었다. 등고선과 점들, 그리고 숫자가 적힌 지도로 바뀌었다.

"푸른색 선들이 현재 저희 영역입니다. 붉은색 점이 로베니아의 원정군이고 검은 점이 저희의 대항군입니다. 현재 호크 중령,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호크 백작이 지휘를 맡고 있습니다. 작전지역 스캔!"

오퍼레이터의 손이 바빠졌다.

"이곳과 이곳, 여기와 저기가 전투 예상지역입니다. 적들은 우리가 밖으로 나와서 싸우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 할 겁니다."

나 장군의 말에 모두가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그들 중 누구도 밖으로 나가 전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니까.

"지도에서 등선과 등선 사이의 거리는 40km 로서, 아니 음... 약 하루정도의 거리입니다."

이미 모든 병사들은 시간과 거리, 무게 단위들을 현대식으로 배워서 상관없었지만 귀족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기는 무리였다.

"앞으로 반나절 후에 로베니아 군과 케린버그군의 역사적인 조우가 있을 겁니다,"

너무도 담담한 나형석 장군의 말에 몇 안 남은 국왕파 귀족들 중 로란의 영주 로스웰 백작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승산은 있는 겁니까?"

노회한 백작의 물음은 무척이나 회의적이었다. 그는 로베니아의 군대를 겪은 노장이었다. 그들의 강함이란 상상을 불허 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낯선 자국의 군대는 유약해 보이기만 했다.

단지 위안이라면 새로운 지휘관이라는 이방인에게서 노련함을 보았다는 것 정도였다.

"우선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번 전투는 승리하기 위한 전투가 아니고 상대방의 전력을 보기위한 일종의 테스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적에게 선제공격을 하여 그들의 전투 능력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나장군의 말에 로스웰 백작이 기겁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 도대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전력을 다해도 승산을 점치기 어려운데 누구를 시험한다고요? 지금 로베니아 제국의 군대를 시험한다고 했소? 내가 지금 미친 거요. 아니면 잘못들 은거요."

흥분한 로스웰 백작을 보고 나형석 장군이 헬렌 백작에게 귓속말을 건네고 난후 입을 열었다.

"원할 한 지휘계통과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자리를 만든 것입니다. 우선 이것은 제가 설명하기에 앞서 헬렌 백작님께서 대신 설명해주시는 것이 좋겠군요. 헬렌 백작님?"

나 장군에게 자리를 물려받은 헬렌 백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친애하는 귀족 여러분들, 그동안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을 속여 것들이 있습니다."

헬렌 백작이 그동안에 모든 일들을 이야기 했다. 보내준 젊은이들이 새로운 문명의 군대 교육을 받았다는 데에서는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 였지만 세린디아를 정복했다는 말에는 모두 벌떡 일어설 정도로 충격이었다.

심지어 젊은 귀족은 어떻게 전쟁을 하면서 알리지 않았느냐고 성토했고 곧바로 찰스 국왕이 사정을 설명했다. 한 시간여 동안 수많은 질문이 오고 갔고 작전회의는 갑자기 국왕이 주재하는 왕실회의로 바뀌었다. 주재자도 헬렌 백작에서 찰스 국왕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해서 지금 현재 세린디아는 머스탱 공작의 지휘아래 점령지로서 우리가 통치하고 전후 처리를 하고 있소, 우리는 그동안 많은 경험과 전투력 향상을 가져왔고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군사력을 확보했다고 믿고 있소.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왕국의 개혁과 이를 지지해줄 여러분의 충성심이요."

길고 긴 이야기가 끝나자 회의실안은 병사들의 무전과 오고가는 말소리만 들릴 뿐 조용했다. 너무나 엄청난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국왕의 왕국 개혁안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그럴까, 한동안 귀족들의 입에서는 한숨 소리만 나왔다.

사실 왕국 개혁안은 호크와 전쟁이 끝나고 난후 발표하려 했지만 찰스국왕은 지금이 오히려 적기라고 생각했다. 왕국이 멸망할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지금이 귀족들의 약속을 무리 없이 받아내기 적당한 시기란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국왕파 귀족들은 머리가 아팠다. 모든 것을 버리고 케론스 공작보다는 의리를 택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요구였지만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동안 호크와 김재덕 대령과 많은 이야기를 해온 찰스 국왕은 그들이 말해준 새로운 국가관과 체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혁을 위해서는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칼을 빼드는 입장에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 믿고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휴~ 국왕전하, 그렇게 되면 자칫 왕권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랜 충신인 브랜트 남작이 노구를 움직여 힘겹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진정 이 나라의 국왕이었습니까? 작위 하나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군대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국왕이 무슨 국왕입니까? 결국은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습니까?"

침통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계속해서 울렸다.

"저는 싫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평민이 났습니다. 모두가 희생을 감내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변해야 나라가 변하고 국민들이 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는 이 폴렌시아 대륙에서 사라지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습니다. 당장에 저 세린디아를 보십시오. 이제 십 수 년만 지나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을 겁니다. 발전하지 못하고 도태 된다면 그때 가서 왕이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귀족으로서 왕으로서가 아닌 케린버그 사람으로서 결정을 내려주기 바랍니다."

경어까지 써가며 자신의 진심을 열변한 찰스 국왕의 연설에 어렵지만 모두 수긍했다. 귀족들의 동의가 끝나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개혁 작업이 전쟁준비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진행 되었다.

우선 전국으로 포고령이 전달되었다. 케린버그 왕국은 이제부터 케린버그 공화국으로 개명하며 국왕과 국가위원회로 구성되는 새로운 정부가 일체의 정국을 주도하며 지방의 귀족들은 영지의 치안유지에 필요한 군대만 육성하고 중앙군은 나형석 장군의 외인부대가 국방의 의무를 맡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중 가장 국민들에게 놀라운 소식은 케린버그가 세린디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세린디아를 복속했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내전도 곧 종식 될 것이며 반란이 일어난 영지도 귀족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고 병사나 영지민에게는 일체의 해도 없을 거란 포고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해당 영지민들은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군대 이야기에 청춘을 꿈꿨다. 새로운 군대는 놀랍게도 급여도 있었다.

그것도 아주 훌륭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무조건 의무적으로 기간을 채웠을 뿐이었다. 포고문이 발표되자 온 나라를 벌집을 쑤셔놓은 듯 했다.

새 세상이 온 것 이었다. 누구나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아무리 귀족이라도 이제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거나 구타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신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케린버그 국민들은 찰스국왕을 응원했다. 이 포고령 덕에 반란이 일어난 영지에서 역 반란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국왕이 모든 것을 백성들에게 돌려준다고 하는데 국왕을 위해 힘쓰지 않을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

물론 그 뒤에는 외인부대의 특임대 특공대원들의 보이지 않는 활약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케린버그가 공화국으로 전 대륙에 선언을 한 다음날 최초의 격돌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령님! 놈들이 강을 건넜습니다."

"좋아, 모두 모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전투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야. 녀석들의 전술과 전투능력을 보자는 거야. 이점 숙지하고 혹여 영웅심으로 나서는 부대원들이 없도록 단속 잘하라고 해!"

호크가 지휘관들을 보며 신신당부했다. 눈빛 속에서 긴장감을 확인한 호크가 작전 개시를 알렸다. 임시 지휘본부에서 각급 부대 지휘관들이 복귀하자 새롭게 정비된 외인부대 1사단이 헤나스톤 돌 숲으로 숨어들었다.

"중령님, 육안으로 확인 됩니다. 3시 방향에 적 출현입니다."

작전장교의 보고에 호크도 엎드린 채 망원경에 눈을 가져갔다.

"그래, 어서 와라. 네 놈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구경하자."

오랜 세월 석회암 퇴적층으로 인해 주변이 온통 회색의 바위들이 산을 이룬 특이한 지형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헤나 스톤이었다. 원래는 울창한 숲속이었는데 숲의 요정 헤나가 사랑했던 인간친구가 죽자 너무 슬피 울어 그녀의 눈물이 바다를 이루어 숲이 잠기게 되었고 수십 일이 지나서 물이 빠지자 울창했던 숲이 이렇게 변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었다. 그래서 인지 바위 겉에는 엷게 소금끼가 맺혀있었다.

"통신기 줘봐!"

호크가 손을 내밀자 통신병이 재빨리 마나통신기를 넘겼다.

치이~익!

"애기새 애기새, 어미새가 알린다. 어미새가 날기 전에 날지 말아라."

호크의 명령이 마나통신기를 통해 잠복해있는 예하 대에 하달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바위가 갑자기 움직였다.

"소대장님, 중대장님 연락입니다. 중령님이 먼저 선공하신답니다."

"선임하사 그렇게 돌아다니면 눈에 띄잖아!"

루크가 선임하사를 보고 질책하자 선임하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거 위장망이 너무 잘 만들어져서 우리끼리도 식별이 잘 안되는데 무슨 걱정이세요."

"참내, 하여간 선임하사는 너무 긴장을 안 해서 탈이야. 신병들은 어때? 그 녀석들 긴장해서 실수 하면 안 되는데 걱정이야. "

루크가 뒤를 돌아보며 소대원들이 숨어있는 곳을 살폈다.

"신병이라고 해도 완전 신병은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이방인들 아니 이제는 이방인들이라고 하면 안 되죠 세린디아 유민들이었던 저들도 이미 베를로니아 전투에서 어느 정도 적응을 했으니까요. 부대 적응도 빠른 편입니다."

선임하사의 말에 걱정을 조금 덜은 루크가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드드드드드드

'온다!'

저 앞에서 대지를 울리며 적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베를로니아에서 새로 편성되어 훈련받은 1사단의 첫 전투가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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