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크-24화 (24/55)

Chapter 24. 고대인들의 비밀을 파헤치다!

"이게 뭘까요, 소대장님!"

"나도 모르지, 내가 알면 여기 있겠나? 왕실학술원에 있지."

루크와 선임하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알버트 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렀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소대장님......."

"응. 알버트 무슨 일인데?"

"저기, 아까부터 누가 계속 쳐다보는 것 같은데 그런 느낌 들지 않으세요?"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저것들 때문이겠지."

루크가 햇불을 들어 올리자 석조건물의 실내가 드러났다. 고대인들의 풍습을 담은 벽화들 주위로 책이나 전설에서 듣던 괴물 석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표정과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고 마치 자신들의 안식처를 침범한 것에 대해 화가 나서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나쁘기는 하네, 선임하사 다 둘러 봤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네, 소대장님. 자, 철수!"

루크의 소대가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방을 빠져나가자 텅빈 석실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그때 지붕벽면에 붙어있던 석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터슨 대위와 이지 중대원들이 수색한 블록에서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음 블록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중대장님, 마나통신기가 작동 됩니다."

"그거 반가운 소식이다. 대대본부를 호출해봐! 다른 중대는 뭘 발견했는지 궁금하다."

"넵, 중대장님."

"브라보 식스, 브라보 식스, 여기는 이지......."

무전병의 통신을 지켜보던 피터슨 대위 곁으로 루크 소위가 뛰어왔다.

"중대장님 저희 소대도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역시나 버려진 고대 유적지였어.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중대장님 대대본부가 나왔습니다."

무전병이 수화기를 건네자 피터슨이 서둘러 통신을 개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네. 네. 충성!"

피터슨이 무전을 끊고 중대원들을 소집했다.

"2대대 애들이 뭔가를 발견했나 보다. 대대장님이 모두 그곳으로 모이라고 했으니 전부 신속하게 이동한다. 이상!"

"자, 중대장님 말씀 들었지. 어서 서둘러 이동해!"

"이 게으른 녀석들아 어서 그 냄새는 엉덩이 들고 뛰지 못해!"

각 소대, 중대, 선임하사들의 불호령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옴과 동시에 병사들도 장비를 챙기고 서둘러 움직였다. 다시 도심의 도로를 건너자 무전을 받은 다른 부대들도 같이 합류해서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그 뒤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달려오는 호크 일행도 눈에 들어왔다. 조용히 잠들어 있던 고대의 도시가 군인들의 군화 발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쉿!"

다섯 블록을 지나오자 2대대 병사들이 건물의 지붕이며 길 주위로 넓게 퍼져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중 초입에 서있는던 병사가 선두에서 달려오던 이지중대에게 침묵 신호를 보내자 모두들 달려오던 걸음을 멈추고 발소리를 죽였다.

수신호는 순식간에 뒤로 전달되어 시끄럽게 울리던 발소리들이 점점 수그러들어 고요해 졌다. 호크와 사이클론도 도착하자마자 병사들을 제치고 블록 가운데 오연하게 서있는 피라미드의 안으로 들어섰다. 피라미드 주위로는 철통같은 경계망이 펼쳐져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는 복도마다 병력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무슨 일인지 호크를 보고 거수경례만 할뿐 구호는 외치지 않았다. 에밀 소령에게 침묵하라는 명령을 받은 듯 했다.

"후우~ 이봐 에밀, 뭘 발견 한 거야?"

"쉿! 중령님 저길."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린 에밀이 그들을 이끌고 원형의 통로를 지났다. 푸른빛이 도는 원형의 길을 지나 체스판 같은 바닥이 있는 방을 지나자 백여명의 병사들이 문 하나를 막아서서 지키고 있었다. 에밀과 호크를 보자 모두 거수경례를 올렸다. 에밀이 오른손을 들어 문을 열라고 손짓하자 장교 한명이 문 옆 별모양의 돌판을 누르자 위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에밀이 먼저 들어가라고 손을 내밀자 호크와 사이클론이 먼저 가고 그 뒤를 핸들러와 챠챠 대위 그리고 에밀이 마지막으로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챠챠 대위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쉿! 목소리가 너무 커!"

에밀이 눈을 치켜뜨자 챠챠 대위가 기가 막힌 듯 반문했다.

"왜요, 저게 살아있기라도 한가요?"

구르르륵! 구륵! 구르륵!

"헉! 뭐, 뭐야 움직이잖아!"

깜짝 놀란 챠챠 대위가 본능적으로 비검(飛劍)을 빼들었다. 그러나 호크가 챠챠 대위의 어깨를 잡자 정신이 들었는지 다시 벨트사이에 끼워 넣었다.

"정말이었어. 그 책이 사실이었다니"

"그러게 말이다. 나도 설마, 설마 했는데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을 수가 없구나."

사이클론 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에밀, 누가 발견했지?"

호크가 에밀의 어깨를 잡고 조용하게 물었다.

"써니 중대입니다. 중령님!"

"입단속은 잘 시켰겠지?"

"당연하죠."

에밀의 확답에 마음을 놓은 호크가 다음 명령을 에밀에게 내렸다.

"좋아, 이 일대는 이제부터 제 1 급 출입통제 구역이다. 아무도 허락 없이 들여보내서는 절대 안돼! 그리고 어서 장군님께 보고해야 겠어."

"중령님, 아까부터 통신기가 작동되고 있습니다. 무전을 넣겠습니다."

에밀의 보고에 호크가 다음 명령을 내렸다.

"좋아, 어서 보고해! 나머지 모두 밖으로 나가서 이 일대를 차단하고 임시 본부를 건물 밖에 세운다. 이곳은 나와 사이클론님이 살펴볼 테니까. 어서 서둘러!"

"네, 중령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모두가 밖으로 나가자 호크와 사이클론은 난간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이 들어온 방안은 아주 넓은 원형의 공간이었다. 천장도 둠 형태로 재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투명해서 밖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고 주위로는 난간과 스탠드가 있어서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극장 형태였다.

그리고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이 난간 아래의 공간에 있었는데 커다란 유리통이 수십 개가 벌집형태로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예전에 사이클론이 알버스크 왕국에서 구해온 고대 전쟁의 역사서에 그려져 있던 오징어 형태의 생명체가 들어있었다. 유리통 안에는 액체가 가득차 있고 그 안에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떠있었다. 촉수 같은 발이 가끔씩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듯 했다.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간 호크와 사이클론은 다른 유리통에도 무언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각 유리통 안에는 다른 생명체들이 들어있었고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사이클론은 몇몇을 알아보고 호크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 유리통을 본 두 사람은 그거 헛바람을 집어 삼킬 뿐이었다.

마지막 유리통 안에 들어 있는 생명체는 바로 인간이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뭐죠, 인간인가요?"

"세, 세상에 호모 사이쿠스!"

경악한 사이클론은 호흡마저 불규칙했다.

"이럴수가 전설이나 신화 속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사실이었어. 하하하하하!"

"할아버지! 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호크가 옆에서 붙잡고 몸을 흔들어 대자 고개를 돌린 사이클론이 호크를 끌어안았다.

"으하하하! 호크야 이제야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다. 네 말대로 비밀의 열쇠는 이곳에 있었어. 김 대령이 와서 이걸 봐야 하는데 말이야. 하하하하!"

"참내, 도대체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크를 뒤로 하고 사이클론 자신이 호모 사이쿠스라고 부른 인간형태의 생명체가 담긴 유리통에 손을 대고 환희에 차있었다.

"너무 엄청나서 말이 않나오는군 이거야 원"

싸이클론과 호크가 비밀의 방에 숨겨있는 엄청난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대령님 이쪽입니다."

"이, 이봐 핸들러 좀 천천히 가자고 넘어지겠네, 무슨 일이길래 이 법석을 떠는지 별일 아니면 자네 나한테 기합 받을 줄 알아!"

"기합은 기합이고 지금은 이게 더 급합니다."

김재덕 대령을 끌고 가다시피 도시의 피라미드로 데리고 온 핸들러가 서둘러 문제의 방으로 뛰었다.

"밀지마~ 밀지 말라고~ 이 녀석들이 상관을 짐짝 다루듯이 하다니 전부 영창감이야, 영창!"

문이 열리고 넘어지듯이 방으로 들어선 김재덕 대령이 닫히는 문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오~~ 킴 어서와요. 어서와!"

"응? 아~ 사이클론님 부상 당하셨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지금 장군님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십니다."

"하하, 그래요. 제너럴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기 그지없군요."

"그럼요. 장군님에게 사이클론님은 평생지기 같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가요, 하하하하!"

"저, 저기"

호크가 왠지 소외된 기분이 들어 아는 체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호크는 그곳에 없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뭘 하시는 겁니까? 아니... 이, 이건!"

"그래요, 이게 뭔지 아시겠죠. 킴!"

"알다마다요, 결국 이것이었군요."

"맞아요."

사이클론과 김재덕 대령이 그동안 기간테스(GIGANTES) 연구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수많은 문제들이 이방의 유리관을 보는 순간 답답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연구팀을 불러들여야겠습니다."

"그렇죠. 저도 오랜만에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군요"

두 사람이 유리관을 보며 전의를 불태울 때 그저 두 눈만 멀뚱히 뜨고 어색하게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 호크는 꿀먹은 벙어리가 된 듯 조용히 서있었다.

"어라, 자네 여기서 뭐하고 있나?"

이제야 봤는지 김재덕 대령의 뒷북치는 말에 호크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제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으셨나보네요"

호크가 턱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불만어린 목소리로 대답하자 김재덕 대령은 별문제 아니라는 듯 다시 사이클론과 유리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또다시 무시를 당하자 호크의 분노가 폭발했다.

"정말 너무도 하십니다. 사람을 앞에 두고 바보를 만들어도 유분수지 저도......."

딸칵!

"......??"

기이이잉~

"너 또 뭘 건드린 거냐?"

호크가 투덜거리며 몸을 움직이다 무슨 장치를 건드렸는지 기관장치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이 호크를 노려봤지만 곧 허탈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정작 장치를 건드린 호크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었기 때문 이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멋쩍었는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선 호크는 궁색한 변명을 하기에 바빴다.

"아, 저 뭐 그게 실은 그럴려고 그런 거는 아닌데."

사실 이전의 계단복도에서 쏟아지던 화살 함정이 생각나서 본능적으로 엎드린 것인데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자 얼굴이 홍당무마냥 붉게 변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 벽면이 갈라지며 또 다른 방이 나타나서 두 사람의 관심이 그리로 쏠리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두 사람이 이일을 그저 잊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이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그야 말로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 것이 뻔했기에, 그때를 같이해 입구의 문이 열리며 챠챠 대위가 뛰어 들었다.

"중령님! 비상사태입니다."

"무슨 일이야?"

"밖으로 나와 보십시오.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제길, 하나 해결하면 또 하나가 터지고 잠시 쉴 새가 없네, 두 분은 여기 계세요. 제가 나가 보고 올께요."

호크가 서둘러 밖으로 향했지만 두 사람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빛이 나오는 그 방으로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키던 병사들이 줄어든 걸로 보아 만만치 않은 상대가 쳐들어 온 것이 분명했다. 시체가 부활한 괴물들이라면 은을 입힌 화살과 창으로 해결했을 텐데 대대 병력이 모두 몰려 나갈 정도라면 어떤 놈들일까? 하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게다가 복도를 빠져 나가면서부터 등 뒤의 제로(zero)가 몹시 떨고 있었다. 제로(zero)가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십중팔구 또 고대 신의 유물이 틀림없었다. 복도의 끝이 점점 밝아왔다.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비명소리에 호크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씨팔!"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으아아악!"

"대형을 유지해라! 대형을 유지해!"

"소용없습니다. 화살과 검이 모두 튕겨 나갑니다."

"장창수(長槍誰)는 앞으로! 창으로 밀어버려"

그러나 기대했던 장창들도 모두 맥없이 부러졌다. 시체괴물들을 보며 더 이상 해괴한 일이 뭐 있겠냐고 생각했던 병사들은 살아 움직이는 석상들을 보며 기가 질렸다. 스패로우의 화살도 장창도 심지어 수화탄(手火彈)을 수없이 투척 했지만 유유히 빠져나와 피라미드를 향해 움직였다. 결국 병사들이 검을 들고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석상들이 휘두르는 검은 날카로움이 금속의 검 못지않았다.

벌써 일백명이상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수화탄(手火彈)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연기가 실내에 퍼지자 오히려 시야를 가리게 되어서 외인부대에게 악재로 돌아왔다. 난장판이된 전투를 수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명령을 내리는 핸들러의 목은 이미 쉬어 버린지 오래였다. 검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지휘를 하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에 호크는 고개를 흔들었고 잠시 상황을 살피다 갑자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병사들이 이리저리 엉켜 위험한 곳으로 달려간 뒤 일일이 병사들을 일으켜 세우고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을 지휘했다.

"모두 뒤로 빠져라! 어서! 건물 위로 올라가, 이봐 자네~ 에밀 소령은 어디 있나?"

"모르겠습니다. 중령님!"

소대장 하나를 붙잡고 물었지만 그도 정신이 없는지 횡설수설하자 인상을 쓴 호크가 무전병을 찾았다.

"통신을 듣고 있는 녀석들은 모두 응답해!"

곧이어 호크가 들고 있는 마나통신기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각자 위치 보고해!"

잠시 통신을 통해 상황을 살핀 호크가 차분히 명령을 내렸다.

"잘 들어라, 우선 마법사들은 이 연기부터 없애고 모든 병력은 건물위로 피해 어차피 맞붙어 봐야 소용없으니까. 전부 건물 위나 피라미드로 피해! 에밀 중화기(重火機)는 어떻게 됐나?"

치이익~

"네, 중령님 거의 장착이 끝나갑니다."

"좋아, 내가 명령을 내리면 날려버린다."

통신이 끝나자 건너편 회색건물의 지붕에 있던 써니 중대에서 몇 명의 사람이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갈대숲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던 마법사들이 이번에는 팔을 걷고 나섰다.

어디선가 바람이 일어나더니 장내의 연기를 걷어내자 모두 열여섯 개의 석상들이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피라미드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 주위로 부상당한 병사들이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젠장! 부상병들을 구해라! 어서!"

병력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바로 석상들 앞으로 뛰어 내린 호크가 제로(zero)를 들고 막아섰다.

"어이, 친구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호크의 비아냥 거리는 물음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는 석상들을 보며 예전에 드래곤 산속에서 보았던 석상들이 생각나자 호크는 이 석상들도 머리에 인장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졌다.

타앗!

경쾌한 기합소리와 함께 호크의 몸이 날아올랐다. 얼굴은 산양의 얼굴이고 몸은 인간, 하체는 뱀의 몸을 가진 석상에게 다가가 석상이 꼬리로 쳐올리는 공격을 피해내고 곧바로 뛰어 올라 머리를 확인 했지만 이번 석상은 지난번 석상과는 달랐다. 혹시나 하며 운을 기대했던 호크는 석상의 머리에 아무런 표식이 없자 오늘 정말 재수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석상들 사이를 누비면서 시간을 끌던 호크는 다른 중대 병사들이 살금살금 다가와 부상병을 들을 옮기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좋아, 이제 어디 한번 붙어 볼까."

주위에 누워있던 병사들이 치워지자 제로에게 단전의 기운을 흘려 넣었다. 아까부터 계속 웅웅~ 거리며 석상들에게 반응하던 제로(zero)가 호크에게 힘을 받자 조용해졌다. 그러나 검신에 새겨진 그림들이 드러나며 푸른빛을 내뿜었다. 그 광경을 보는 병사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석상들도 호크의 기운을 느낀 건지 아니면 제로(zero)의 힘에 반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제히 호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래, 이것들아~ 네놈들도 이걸 알아본다는 말이겠다."

제로(zero)의 손잡이에서 영혼의 사슬을 늘어뜨리자 호크의 손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두 개의 제로를 빙글 빙글 돌렸다. 점점 속도를 높이자 붕붕~ 거리는 소리가 커져 갔다. 줄의 길이를 늘이자 속도가 더욱 빨라지며 무서운 기세를 내뿜었다.

벌써부터 돌바닥에 깊은 흠 짓을 남기고 있었다. 봉인이 풀린 후 저도 모르게 알게 된 기술들을 처음 펼쳐보는 호크는 기운이 들끓는 것을 천천히 내려 누르며 호흡을 조절했다. 석상들이 고막을 찢는 괴성을 지르며 호크가까이 다가왔을 때 맹렬히 회전하던 두 개의 검 제로가 영혼의 사슬을 길게 늘이며 석상들 사이로 부메랑처럼 날아갔다. 호크는 영혼의 사슬을 잡아당기며 석상들 주위로 원을 그리며 돌았고 황금빛 영혼의 사슬이 석상들을 얼기설기 옭아맸다. 혼돈의 검 제로도 마지막 석상들을 휘어 감으며 도는 것을 멈췄다.

호크는 영혼의 사슬이 팽팽히 당겨지며 손목에 묵직함이 느껴지자 돌던 것을 멈추고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린 기운을 손에서 폭발시켰다.

"으아아압!"

우렁한 기합성과 더불어 호크의 손목에서 팔찌모양으로 황금색 기운이 만들어 지더니 영혼의 사슬을 타고 빠르게 석상들 사이로 날아들었다. 그 다음 부터는 폭죽 놀이였다. 사방으로 돌조각들이 날았고, 절대로 멈출 것 같지 않았던 석상들이 영혼의 사슬을 타고 흐르는 황금빛 팔찌에 닿을 때 마다 허무하게 부서졌다. 영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쳤지만 영혼의 사슬에서 나오는 힘 때문에 꼼짝 못하고 결국은 모두 파괴되었다.

"와아!"

구경하던 병사들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중령님 만세!"

"중령님 최고입니다!"

태극심법(太極心法)으로 몸을 추스린 호크가 스파이더맨처럼 앞으로 손을 내밀어 손목을 꺽자 영혼의 사슬이 줄어들며 손목 속으로 사라졌고 끝에 매달린 혼돈의 검 제로(zero)도 딸려 왔다.

제로(zero)를 검집에 넣고 파괴된 석상들에게 다가간 호크는 조각들 살펴봤지만 여느 보통 돌과 다른 것이 없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걸 마법인가? 들은 풍월로는 골렘이란 것도 마나석인가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기간테스도 몸 안에 거대한 마나석이 있어서 그것이 동력 역할을 한다고 대령님이 말씀 하셨는데 이 녀석들은 무엇으로 움직인 걸까?'

"중령님, 앞을 보십시오!"

생각에 잠긴 호크를 챠챠 대위의 고함소리가 불러냈다.

"응, 뭐야 또 저건?"

도로를 새카맣게 매우며 몰려오는 것들을 바라보며 호크는 기가막혔다.

"허! 이제는 별게 다 덤비네. 빌어먹을!"

"쥐떼입니다. 쥐떼가 몰려옵니다. 어서 피하세요!"

병사들의 외침에 호크는 코웃음을 쳤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보이는 쥐들은 보통 쥐들이 아니었다. 뭐든지 먹어치우며 달려드는 모습을 호크가 봤다면 그렇게 여유를 부리지 않았을 거다."어, 어 뭐야?"

호크도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미 건물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있던 병사들이 스패로우를 발사 했지만 너무나 많은 쥐떼에 오히려 묻혀버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수화탄(手火彈)들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불꽃들이 피어올랐다. 매케한 연기가 가득 차며 고기타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콜록! 콜록! 젠장 마법사들은 뭐하는 거야, 어서 연기를 없애라고 해!"

피라미드 중간에 있는 입구로 올라온 호크가 대기하고 있던 통신병의 마나통신기를 빼앗아 소리쳤다. 그러나 호크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마법사들이 알아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다시 연기가 빠지자 이번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수화탄(手火彈)의 문제점들을 개선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두들 가지고 있던 수화탄(手火彈)을 모두 사용했기에 내심 쥐떼들이 모두 처치했을 거라 기대했지만 연기가 채 걷히기도 전에 찍찍! 거리는 쥐들의 울음소리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연기가 걷히자 불에 탄 자신들의 동료들을 먹어치우는 쥐떼들의 공포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병사들은 할 말을 잃어버린 듯 모두 입을 다물었다.

불을 본 쥐들은 더욱 광폭하게 미쳐버린 듯 광란했다. 이번에는 마법사들이 나섰다. 바람을 일으킨 마법사들 말고도 뒤에서 대여섯 명이 더 일어서서 합류했다. 호크도 오른쪽 위에서 마나가 일렁이는 것을 느끼고 쳐다봤다.

"그래, 마법으로 다 날려버려!"

호크가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섰다. 마나가 요동치며 밀려들더니 폭발했다. 마법사들의 머리위에 수십 개의 화염구(火焰毬)가 생성됬고 더 이상 마나의 증폭이 멈추자 화염구(火焰毬)가 쥐떼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콰쾅!

"그렇지! 그래!"

마법사들의 공격에 고무된 호크와 병사들이 쾌재를 불렀고 모두가 손에든 무기를 높이 쳐들고 환호했다. 그러나 불길이 가라앉자 여전히 찍찍! 거리는 듣기에도 끔직스런 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독한 새끼들! 저거 괴물들보다 더 한 놈들이네."

엄청난 수의 쥐들이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오히려 불을 끄고 있었다. 이제 장내는 쥐들이 불에 타는 냄새와 연기로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눈에 보이는 도로가 전부 검은색으로 변했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수의 쥐들이 숨어있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마법사들도 어이가 없는지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거세게 일던 불길도 쥐들의 육탄공세에 점점 불꽃이 수그러들었다. 인간 대 쥐의 기상천외한 세기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에서 호크는 왜 하필이면을 연발했지만 결국 눈앞의 현실에서 도망갈 수는 없었다. 지붕을 타고 넘어온 챠챠 대위가 호크에게 보고했다.

"중령님, 중화기(重火機) 준비가 끝났습니다."

"좋아, 사정없이 갈려 버려!"

건물 지붕과 피라미드 계단에 설치된 중화기(重火機) 캐논포들이 굉음을 내면서 석상들 향해 불을 뿜었다. 마법사들도 기운을 차리고 남은 마력을 짜내어 다시 한 번 화염구(火焰毬)를 날려 보냈다. 강력한 화염 마법구를 끝에 단 강전들이 쉴새없이 하늘을 날았고 그 위로 마법사들의 화염구(火焰毬)들이 더해졌다. 얼마나 화력(火力)이 강했는지 지붕에 있던 병사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피해야만 했다. 호크도 주변의 모든 것을 녹여 버리고도 남을 열기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열기에 호흡이 곤란해졌다.

피라미드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피라미드로 대피했고 호크가 입구에 서서 태극심법을 운기하며 열기를 막아냈다. 열기가 호크의 기운과 부딪히며 수증기막을 만들었다.

불꽃이 지옥의 야차가 내미는 혀처럼 날름거렸고 그 뜨거움은 세상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도 남았다. 병사들은 이미 건물 뒤로 대피한지 오래였다. 대로변에 인접한 건물들은 강한 화기(火氣)에 대리석들이 뜨겁게 달궈졌다.

콰과광!

한층 업그레이드된 캐논포의 화탄(火彈)들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며 계속해서 퍼부어졌다. 잠시 후 캐논포의 빈 필터가 공회전하는 소리만 장내에 울렸다.

탁 타 다닥!

쥐들이 불에 타는 소리만 들릴 뿐 징그럽던 쥐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자 겨우 안도한 호크가 뒤를 돌아보았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는 부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크가 뒤로 돌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모두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벌써 몇 번의 사선을 넘어온 전우들이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등을 맡길 수 있는 형제였다. 불길이 점차 약해지자 호크를 비롯해서 병사들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손수건이며 천등을 찢어 물에 적신 다음 코와 입을 막고 장내를 수습하기 위해 움직이는 병사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끝까지 불길 속에 뛰어든 쥐떼를 생각하자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남아있는 대로변에 서있는데도 오한이 밀려왔다.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어쨌거나 인간과 쥐들의 전쟁은 일단 인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마력을 소진한 마법사들이 위생병 스톤에게서 신성력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있었다. 어린 애송이라는 편견은 이제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 호크는 다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에밀과 핸들러, 챠챠 대위를 불러 피해 상황과 주변 수색을 시작했다. 자꾸만 튀어나오는 이상한 존재들 때문에 모두들 두 번째 수색은 정말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통신을 통해 이 안의 상황을 보고 받은 나 장군이 추가 파견한 후속 부대가 계속해서 도시 안으로 들어오자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인원이 충분하게 보충되니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도시의 거점을 확보했을 무렵 머스탱 공작과 베르트니 성기사단장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하하하! 땀 꽤나 흘린 모양일 세 호크경!"

여전히 백작의 호칭으로 부르기 좋아하는 머스탱 공작이 난장판이 된 장내를 보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대꾸할 기운도 없는 호크는 그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일국의 공작이며 자신의 윗사람이기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붙잡고 일어섰다.

"어서오세요. 갈대숲에서 한바탕 격전이 있었다면서요."

호크의 말에 머스탱 공작이 손짓발짓 해가며 부산을 떨었지만 호크는 그럴 기운이 없었다. 겨우 베르트니를 바라보고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덕분에 이지 중대가 위험에서 살아났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닐세, 악마의 무리들을 처단하는 것이 바로 우리 성기사들의 임무 아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네."

여전히 고지식한 베르트니를 보면서 호크는 이 사람이야 말로 전형적인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군에 들어왔다면 정말 체질이었을 거라고 혼자 웃어보았다. 호크가 자신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자 베르트니도 마주 웃어줬다.

베르트니야 대충 눈치를 채고 맞장구를 쳐준 거지만 머스탱 공작은 영문도 모르면서 따라 웃었다.

"참내, 아무튼 못 말린다니까."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선 호크가 앞장을 서자 머스탱 공작과 베르트니 단장이 뒤를 따라갔다.

아직도 불에 탄 냄새가 코를 자극 하는 광장으로 내려서자 은빛 갑옷을 빛내며 서있는 성기사단이 가슴에 손을 얹고 경의를 표했다. 처음과 다르게 호크에게 최대의 예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베르트니도 어깨를 들어 보일뿐이었다. 강제로 시킨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세 사람이 걸어 나가자 성기사들이 뒤를 따라왔다. 이제는 도시를 완전히 장악한 외인부대원들이 장비를 들여와 곳곳에 설치를 하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전쟁이 끝나가는 것을 느낀 호크는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난 일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길이었다. 문득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옳은 것인지 의심이 밀려 왔지만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오직 이 전쟁을 무사히 마무리 하는 것 이 하나만을 생각하리고 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 졌다. 베르트니는 고대 도시를 탐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호크는 아직은 위험요소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물론 그들이 이번 전쟁을 돕기는 했지만 영원한 친구는 아니었다. 게다가 베르트니는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운명의 시계와 신들의 비밀에 대해서 더 이상 이쪽의 카드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영원한 우방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크는 권혁 시절인 한국에 있을 때도 종교에 미친 사람하고는 상종하지 않았다. 그 만큼 종교가 극단을 걷게 될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뒤에 따라 붙은 에밀에게 이곳의 보안에 대해 최우선으로 하라고 일렀다. 특히나 김재덕 대령과 사이클론이 들어간 방은 제일급 기밀로 붙이고 최상의 보안을 명했다.

바삐 사라지는 에밀을 돌아본 호크는 고대 도시의 입구 앞에 견고한 초소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웠다. 베르트니는 계속해서 고대도시의 유물에 대해 샹그릴라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을 했고 호크는 그저 귓구멍을 손가락을 파는 시늉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머스탱 공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봤다. 냉담한 호크의 반응에 나 장군에게 따지겠다고 화를 내고 머스탱 공작을 앞세워서 사라졌다. 호크는 그저 피식 웃은뒤 천천히 걸었다.

피라미드 밖으로 나오니 한 때 세린디아의 찬란한 수도였던 베를로니아가 검은 연기로 뒤덮여 파괴 되어있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 쌓아올린 곳이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길로 만들어 진 곳 이었을까. 아마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쌓아올린 삶의 터전이었지만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만든 것도 인간이지만 파괴 한 것도 인간이었다.

공평하다고 해야 하나, 이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웃음밖에 안 나오는 현실이 슬프기만 했다. 피라미드의 계단에 앉아 깊이 숨을 들여 마시니 매케한 연기가 폐부를 찔렀고 기침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기침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표시였으니까, 등 뒤에서 누군가 수통을 건넸다. 수통마개를 따고 한 모금 들이키니 짜르르~ 하는 강렬한 느낌이 목 줄기를 타고 흘렀다.

쿨럭!

"후아~ 이거 정말 독 하군, 수통에 술을 넣어두다니 영창감이야 핸들러."

느낌으로 알았는지 보지도 않고 수통 주인을 알아낸 호크가 수통 마개를 덮어 주인에게 돌려주고 입가를 닦아냈다.

"제길, 차라리 영창 보내라고 하십시오. 이 미친 전쟁터에 있는 거 보다 그게 났겠습니다."

"큭큭, 자네도 변했어. 범생이가 그런 말도 다하고 말이야."

"중령님, 말씀대로 저도 놀만큼 놀아서 그런가 보죠."

(@"하하하하!."

핸들러의 엉뚱한 대답에 웃음을 터뜨리던 호크가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전투가 끝나고 찾아오는 적막감이 온몸을 칼로 후벼파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랬다. 싸움이 끝나고 나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살을 도려내는 통증으로 괴로웠다. 죽어간 전우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하자 호크의 어깨가 심하게 떨렸다. 억지로 참았지만 악다문 입사이로 슬픔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email protected]이 부분이 너무 갑작스럽게 나온 듯 합니다. 조금 더 뭔가 앞에 설명이 있어야할 듯 한데[email protected])

"흑, 흑 끅, 끅."

몸을 떨며 울음을 삼키는 호크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핸들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서히 몸의 떨림이 멈추고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고개를 든 호크의 두 눈을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심하게 쉬어버린 목소리로 핸들러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있잖아, 핸들러. 나는 절대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 할 거야."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전우(戰友)들은 죽고 나는 살아남은걸 용서할 수가 없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고 벌떡 일어선 호크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핸들러에게 말했다.

"지금 있었던 일 발설하면 죽을 줄 알어!"

터벅터벅 사라지는 호크의 뒷모습을 보며 핸들러가 작게 속삭였다.

"강한 척 해도 마음은 한없이 여린 당신이 저는 좋습니다. 그게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유거든요. 그렇게 아파하지 마세요. 먼저 간 녀석들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붉게 타는 저녁놀이 베를로니아와 잘 어울린다고 핸들러는 생각했다. 무모했던 이 전쟁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던 이 전쟁을 끝낸 이들은 모두가 영웅이었다.

적어도 케린버그 국민들에게 가엾은 세린디아는 이제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멸망한 나라로 기억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도 서서히 추억 속에 남아 흐려지겠지만 이 전쟁을 겪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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