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크-10화 (10/55)

Chapter 10. 귀향(歸鄕)

"으... 음! 헉!"

"안 돼요! 더 누워 계세요."

"캐... 더린? 여기는......?"

"호무관이에요. 벌써 일주일이 지난 거 알아요? 잠꾸러기처럼 잠만 자고."

"아! 그래. 집이구나. 역시 집이 제일 좋은 거 같아. 그것도 사랑하는 그대가 있는 집이라니."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살 때문인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는 캐더린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으... 윽!"

몸을 일으키려던 호크는 가슴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기겁해서 도로 몸을 누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참! 아직은 움직이면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밉지 않게 째려보는 캐더린이 다시 이불을 끌어 올려 호크의 가슴을 덮어주었다. 그 손을 잡은 호크는 말없이 캐더린을 바라보았다. 호크의 뜨거운 눈길을 받은 캐더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더니 잡힌 손을 빼내려 몸을 틀다가, 오히려 호크가 잡아당기자 침대 가에 모로 주저앉았다.

"어머!"

캐더린이 침대로 쓰러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호크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호크님,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이러시면......."

"캐더린,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애써 참고 있던 감정에 불을 지피자 커다란 캐더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미안해, 걱정 끼쳐서.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앞으로도 캐더린을 많이 걱정시킬 것 같아.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거 캐더린도 알 거라고 생각해. 사랑해, 정말 사랑해!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서 나는 싸워야 해!"

캐더린은 자신 때문에 사지로 뛰어들겠다는 연인의 말에 아무런 말도, 어떤 표현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물 흔적을 지워서 호크에게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다였다.

그러나 갈라지고 쉬어버린 목소리가 더 아련하게 호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바, 바보 같은 소리 말고 어서 일어나기나 하세요! 모두들 걱정하고 있단 말이에요!"

"헉! 으윽! 캐더린, 나는 환자라고! 그렇게 가슴을 치면 어떡해. 아이고, 사람 잡네!"

"미, 미안해요! 어디 좀 봐요, 어머! 누가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들어오라지, 뭐! 사랑하는 사람끼리 그런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려고!"

"정말이지 못 말린다니까!"

창밖의 햇살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자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입술을 포개어갔다.

"초! 전! 박! 살!"

"초전박살, 초전박살!"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오나! 악을 써라, 악을!"

"하나! 둘! 셋! 넷! 하나! 두우울... 셋! 넷! 힘차게 군가하자, 군가! 군가는 보람찬~ 차차! 하나! 둘! 셋!"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면~ 고향의 안방! 하나! 둘!"

"응? 뭐야, 이 정겨운 소리는? 웬 짬밥 냄새 가득한 소리지! 어떻게 된 거야!"

힘겹게 목발을 짚고서 일어선 호크는 캐더린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조심해서 방을 빠져나왔다. 연무장 가까이 다가가니 호무관의 관원들이 군인들처럼 오와 열을 맞춰서 한국 군대의 군가를 부르며 지나가고 있었다.

"전방의 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응? 그... 래, 충성이다. 이봐, 해리슨 사범! 이리로 와봐!"

"넵! 관장님!"

"뭐냐, 이게 도대체 무슨 웃기는 시추에이션이냐? 설명 좀 해봐라! 누가 이런 개그를 시켰는지?"

"넵! 그게... 저기......."

눈을 힐끔거리면서 연무장 뒤의 정자를 바라보는 해리슨의 눈길을 따라가던 호크의 두 눈에 낯익은 군복을 입고 뒷짐을 쥔 채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큭큭! 저 아저씨가 범인이었군! 알았어. 가서 마저 하던 일 하라구!"

"넵! 충성!"

목발을 짚고서 힘겹게 정자에 오른 호크가 얼룩무늬 군복의 사내에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충성! 하사 권혁, 복귀를 신고합니다!"

저녁놀을 감상하던 나형석 장군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생각보다 허약하군. 이제야 일어나다니 말이야. 짬밥 기운이 다 빠진 거 아닌가?"

어디다 숨겨뒀었는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는 모습이 예전에 훈시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하하! 벌써 이곳에 온 지 이 년이 넘었습니다. 제대하고 민간인이 됐어도 벌써 됐을 시간이죠!"

"후후! 민간인이라... 자네도 제대 말년에 어지간히 꼬였구먼."

나란히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래,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처음에 이곳에 떨어졌을 때, 이것도 다 제 운명이니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도장이나 차리고 살아가려고 했는데 세상일이란 게 제 뜻대로 되지는 않더라구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그러다 보니 귀족이란 직위도 얻고 그만큼 돌볼 사람들도 늘어가고요."

"짧게 하게, 짧게."

"큭큭, 네. 여하간 말이죠. 이곳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분쟁이 끊이질 않네요. 뭐, 현대사회처럼 국제분쟁기구나 유엔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힘을 가지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죠. 모른 척하고 피한다거나, 혼자 숨어버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이번 여행길에 느낀 게 많거든요. 인간이 있는 이상 전쟁은 피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다면 맞닥뜨려야죠. 장군님은요?"

"후후! 글쎄, 나는 자네처럼 거창하지는 않아. 다만 한낱 나비도 삶을 위해서 처절하게 투쟁하는데, 적어도 인간인 내가 하릴없이 인생을 허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 아! 저기 김 대위가 올라오는군."

나 장군의 말에 고개를 돌린 호크의 눈에, 언덕 계단을 자신처럼 목발을 짚고서 올라오는 대위가 보였다.

"장군님, 바람이 찹니다. 너무 오래 밖에 계시면......."

"어서 오게, 김 대위. 자, 인사하지. 오늘 처음 보는 걸 테니."

"충성! 권혁 하사입니다."

"아! 자네구먼, 우리를 구해준 것이. 고맙네. 내가 다쳐서 누워 있다 보니 인사도 못했군."

"아닙니다, 김 대위님!"

"그래, 응? 가만! 권혁, 권혁이라... 아! 수색대의 그 권혁?"

"하하! 그래, 맞아! 바로 그 권혁이지! 미군 레인져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준 바로 그 권혁이지. 하하하하!"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나형석 장군이 호쾌하게 웃어 젖혔다.

"바람이 찹니다. 이제 곧 이곳의 겨울인 윈터러(Winterer)의 계절입니다. 안으로 자리를 옮겨서 말씀 나누시죠."

호크의 제안에 세 사람은 집 안으로 몸을 옮겼다.

이들의 회동은 서서히 태동하는 원대한 계획의 출발이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찻잔을 앞에 두고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무겁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김 대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우리가 그 정체 모를 빛에 휩싸이고 난 뒤 바로 그 숲에 떨어졌네. 그 직후에 괴물들이 나타났고, 그런데 자네는 이미 이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니. 믿기지 않는군. 정말로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에 빠진 것 같군."

"어찌됐든 우리가 아는 상식이나 과학 지식 가지고는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저도 끊임없이 돌아갈 방법이나 그 현상에 대해서 알아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어차피 살아가려면 이곳에 적응해서 새로운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라, 새로운......."

나 장군이 자조적인 말을 읊조리자 김 대위가 나 장군을 슬쩍 곁눈질을 하더니 호크에게 궁금한 일들을 물어왔다.

그때부터 약 2시간여 동안 이곳 폴렌시아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로는 크게 놀라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반문도 하던 김 대위가 두 손에 턱을 괴고 한동안 생각에 빠졌다. 나 장군이야 이미 사이클론과 호크에게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그저 의자 손잡이에 두 손을 올린 채 손가락만 튕기고 있을 뿐이었다.

"휴! 어렵군, 어려워. 하지만 자네 말대로 살자고 한다면 어쨌든 이곳 사람이 되어야겠지. 그럼, 자네 생각은 뭔가? 자네처럼 이곳에다 도장을 차리고 살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말이야."

이제야 본론이 나왔다고 생각한 호크가 의자를 바싹 끌어당기면서 두 사람에게 눈빛을 보냈다.

"저희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하자는 것입니다"

"잘하는 일? 그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는 직업군인인데 잘하는 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가? 나는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인단 말일세!"

김 대위의 반문에 호크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바로 그것입니다. 군대를 육성하는 겁니다."

"군, 군대?"

"네, 장군님! 바로 장군님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케린버그 왕국은 장군님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호크의 주변 정세 설명과 현 케린버그 왕국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이번 수도 행에서 이루어진 국왕과의 밀약 등이 상세하게 두 사람에게 설명되었다.

"불행하게도 제가 속한 나라는 힘이 약한 나라입니다. 이곳에다 힘을 좀 주고 싶은데요. 그러자면 장군님과 대위님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이곳에 군대를 만든다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나 지금이나 군대의 목적은 똑같네.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 내가 배웠고 또 제일 잘할 수 있는 것 또한 모두 군대에서 배운 것뿐, 자네와 내가 뜻을 합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보람 있는 일이겠지."

"자, 장군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겠지. 내게 할 일을 주어서 말이야."

"앞으로 바빠지겠군요."

"후후! 바쁜 게 좋은 거지."

"네, 그렇죠."

김 대위의 굵고 힘찬 대답소리와 함께 붉게 물든 석양이 밤으로 이끌고 있었다.

"나호 샴바다 보다 욘 크무치 아크난!"

우우우우웅~

검은 수정구가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자신의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어떤가?"

"틀림없습니다. 흔적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타나지 않는 걸로 보아 이미 누군가 숨겼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젠장! 어떤 놈이야! 빌어먹을!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잔아!"

"본국의 쟝님께서도 심려가 깊으십니다."

"그래서 자네들이 오지 않았나? 그래,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추적자들을 풀어야겠습니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분명히 찾아낼 수는 있습니다."

"좋아! 이 일은 자네들에게 일임하겠네. 나는 그 빌어먹을 호크란 녀석을 없애버려야 하니까."

"그 일도 쟝님께서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형님께서? 후후~ 이번에는 형님도 다급해지셨군!"

"그래서 섣불리 나서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북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응? 레센이? 설마. 우리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조짐도 포착하지 못했는데."

"내부 정보이니 아무래도 확실할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벌써 그 상처를 회복했다는 말인가?"

"전쟁에 미친 자들 아닙니까?"

"그거야 우리도 마찬가지지. 안 그런가?"

"그러나 저희는 표면적으로는 평화지향주의입니다, 공작님!"

"그래. 알았네, 알았어. 원 참, 농담도 못하겠구먼. 어쨌든 이제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네, 공작님! 쓸데없이 호크 백작을 자극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쟝님께서 준비하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실 거라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알았네. 최소 감시 인력만 남겨두고 다른 정치적 공세는 하지 않겠네. 그러나 확실히 놈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해!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직감 하나는 남다르다고 생각하네. 그놈은 반드시 제거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대업에 반드시 방해가 될 존재야. 틀림없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두 번의 실패는 없을 겁니다. 잉글햄에 저희가 있을 만한 거점만 확보해주십시오!"

"로베르트가 알아서 준비해줄 걸세. 그럼 수고하게!"

"네, 공작 각하! 위대한 로베니아와 발렝 폐하를 위해서!"

"황제 폐하를 위해서!"

'후후후후! 형님께서 이 정도 인물들을 보내주실 줄은 몰랐군. 자, 이제 형님이 호크 그 녀석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지켜봐야겠구나, 그나저나 레센에서 움직인다라... 흠~ 잉글햄의 인력을 모두 그쪽 라인으로 돌려야겠군.'

잉글햄의 디안 요새로부터 2km 정도 떨어진 디안 협곡 내 골짜기, 겨울이 다가오는지 제법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괜찮지 싶은데요?"

"흠! 뒤쪽이 막힌 것이 좀 부담스럽지만, 전체적으로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군. 좋아! 지금까지 본 곳 중에서 가장 최적지야!"

"하하!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제 곧 공사가 들어가야 하니 부대 내 막사와 건물에 대한 시공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장군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만한 기술자들이 있겠는가?"

"드워프라고 인간 유사종족이 있는데, 그 솜씨가 정말 죽입니다. 한번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영내(營內) 구성은 어떻게 하실지 오늘 오후에 한번 검토해보시죠!"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나?"

"글쎄요, 일단은 지휘관이 전무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적어도 분대장급들이 많아야 뭘 해도 할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부대 구성보다 분대장급 이상의 지휘관들을 배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장군님!"

"그렇지. 우선은 하사관급을 키워내야겠어. 인력이나 물자 같은 지원은 충분하겠는가?"

"케린버그 국왕이 약속했습니다. 곧 장군님도 한번 만나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우리의 입장이 참 그렇구먼. 정규군도 아니고 그렇다고 용병부대도 아니고 말이야! 더구나 외지인이 만든 부대라......."

"하하하! 네, 그렇죠? 그야말로 외인부대(外人部隊, Legion Etrangere)입니다."

"레종 에트랑제라... 졸지에 외인부대장이라니! 한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라는 건가?"

"부담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수많은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 더구나 전쟁이야, 전쟁!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이 전쟁이야! 그런데 그런 전쟁을 위한 집단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지. 그래서 별(Star)은 아무나 다는 것이 아니야!"

"휴~ 그렇죠. 하지만 이 폴렌시아에서 별을 다신 분은 오직 나 장군님뿐입니다."

호크의 말에 나 장군의 어깨가 흠칫거렸다.

"장군이라! 새삼 별의 무게가 느껴지는군."

"저야말로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장군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나? 이왕 다시 하는 군 생활, 기운내서 해야지!"

"네, 그렇죠."

"사람하고는. 기운 내게! 내게 큰소리치며 훈계하던 권혁 하사는 어디 간 건가?"

"장군님도 참! 그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십니까?"

"크하하하! 여자도 아니고 삐친 건가? 하하하하!"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호크는 고개를 크게 젖히며 웃고 있는 나 장군의 모습에 실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에휴! 이제 그만 내려가야겠습니다. 아마 수도에서 많은 이들이 와 있을 겁니다.

"오, 훈련병들인가?"

"네, 그렇죠. 새끼 병아리들, 어떤 놈들인지 가서 구경해야죠."

"후후후! 이거 예전 생각이 많이 나겠구먼. 확실하게 굴려야겠지."

"크흐흐! 그렇죠. 확실하게, 아주 잘근잘근 밟아주어야죠. 땅개 훈련은 원래 그런 거 아닙니까? 으하하하하하!"

과연 누구를 위한 훈련인지 조금은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어서 오세요, 헬렌 백작님!"

"반갑네. 수도에서 만난 후로 벌써 삼 개월이나 지났군! 그래, 준비는 잘 되어가나?"

이 대목에서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히 속삭이는 헬렌 백작이었다.

"후후! 여부가 있습니까.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아닐세. 오늘은 지난번에 의논했던 인력 때문에 온 거네. 케론스, 그 작자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지켜보고 있을 텐데 조심해야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이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힘들었네!"

"수고하셨습니다. 수도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케론스 공작 무리가 조용하다네. 그래서 전하께서 오히려 근심이 많으시네. 저들이 또 무슨 일을 획책하고 있는 거는 아닌지 해서 말이야!"

"그러고도 남을 놈들입니다. 아마도 저를 제거하기 위해서 계획을 짜고 있겠죠!"

"휴~ 자네에게만 큰 짐을 지우고. 너무 미안해서 내가 고개를 못 들겠네."

"너무 걱정 마세요. 나중에 이 부대가 전면에 나서게 되면 그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르다 뿐인가? 참, 내 정신도. 여기 명단이네. 부디 전력에 보탬이 되면 좋겠네."

잠시 명단을 살피던 호크가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헬렌 백작에게 속삭였다.

"출신이야 어떻든 이들은 제 마음대로죠?"

"그럼 이제부터 자네 사람들이네. 모두들 자원한 녀석들이니까 말이야! 케린버그를 위해서 자기 한 목숨 내던진 놈들이니, 군말 없이 따를 걸세. 이제부터 지져 먹든, 볶아 먹든 자네 마음이야!"

"후후후!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말한 식량 대체 문제는 어떻게 됐나? 자네가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난 요즘 그 생각으로 잠이 오질 않아!"

"백작님이야말로 자나 깨나 나라 걱정뿐이시네요."

"흐유! 말도 말게. 말이 원조이지, 그 잘난 로베니아에서 곡식을 건네줄 때마다 얼마나 속이 뒤집히는 줄 아는가? 그놈들 한 번 만날 때마다 내가 십 년은 늙어! 게다가 케론스, 그 자식이 건방떠는 모습을 보는 것은 죽는 거보다 더 힘드네. 어서 빨리 우리가 자급자족하는 것이 소원이야!"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동안은 저들의 곡식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눈치를 못 채지요. 그런 다음 뒤통수를 쳐야 합니다. 당한 만큼 돌려줘야죠!"

"그래,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꼭 그렇게 될 겁니다! 반드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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