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로이든을 향한 험난한 여정(1)
"베르트니 단장님! 이제 웰빈가와 잉스턴가는 모두 수색을 끝냈습니다. 내일 호든가를 찾아보면 잉글햄 전역을 다 뒤져본 것입니다."
"그런가? 정말 그동안 수고가 많았소, 셔논 사제!"
"저... 단장님, 이곳 영주에게 정식으로 부탁해서 기사단과 병사들을 동원하면 쉬운 일을, 이렇게 변장까지 하시면서 해야 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사단들도 며칠 동안 야영을 해서 고생이 심할 텐데 말입니다."
"절대로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비밀이요.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쥬(Ju)를 섬기는 자들, 그까짓 야영이 무슨 대수라고. 허튼소리 말고 어서 숙소로 돌아가세."
신성기사단장 베르트니의 말에, 뒤를 따르던 샹그릴라 신전의 사제복을 입은 신성기사단원들과 신관들 30여 명이 주택가의 좁은 길을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
반대편 주택가와 시장 골목을 바라보는 베르트니 기사단장은 샹그릴라를 떠나기 직전에 대주교가 들려주었던 엄청난 비밀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베르트니, 이제부터 나는 자네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네. 아마도 자네는 나를 영원히 저주하겠지.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네. 나 혼자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버거워. 더구나 일이 밖으로 번진 이상, 내가 힘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네. 정말 고민하고 또 고민했네. 미안하네, 나를 용서하게."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이것이 정말 사실이란 말씀입니까?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우리는 그 어떤 희생을 치러도 이 죗값을 씻을 수는 없을 겁니다."
"미안하네. 하지만 이 사실은 역대 대주교들만이 아는 사실이네. 이제 성스런 돌이 외부로 유출된 이상, 예언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으려고 할 것이네. 다행스럽게도 운명의 시계가 잠시 멈추었지만, 결국은 운명을 바꿀 수는 없는 법. 저 잔인한 운명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면, 그때 우리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지더라도 용서받지 못하겠지. 제발 부탁하네! 자네만이 이 위기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어!"
"어떻게,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결국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제가 악마가 되지요......."
"고맙네... 고마워."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는 대주교를 뒤로하고, 베르트니의 눈이 벽화에 박힌 채 움직일 줄 몰랐다.
'하늘과 땅이 창조되고 그 땅 위에 뛰어놀 생명들을 풀어놓으시매, 이들이 어여삐 자라나는 모습에 그분은 영원한 시간 중에 처음으로 기뻐하셨다.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삶을 얻으라 하고, 이름을 주시매 인간이라 하였느니라. 하나, 이 어여쁨이 너희들에게 화가 되어 돌아갈 것이니, 네 아비인 쥬(Ju)께서 행하신 일이니 그가 너희를 파멸하실 것이요. 그가 강림하여 네게 4가지 낙인을 찍어주실 것이니, 그때가 오면 위로 하늘의 빛과 아래로 원천의 암흑이 세상을 집어삼킬 것이다.
첫 번째 낙인-괴물들의 물결이 인간 세상을 뒤덮으매, 인간의 강이 인간의 피로 물들 것이로다.
두 번째 낙인-이교도의 왕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세 번째 낙인-쥬(Ju)의 믿음이 도리어 배신하며 그의 마음이 사악하매, 아나무나크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폴렌시아의 반석인 성자가 나도다.
네 번째 낙인-성스런 돌이 샹그릴라를 떠나지 아니하매, 폴렌시아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길 바라고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리하여 4개의 낙인이 모일 때 하늘이 열리고, 아나무나크의 저주가 쥬(Ju)의 바람을 실천하리니, 창조자께서 자신의 자식을 멸하시매 이를 막을 자 아무도 없으리라.'
'왜? 왜입니까? 당신의 세상을 멸하려고 하시나이까, 왜!'
똑! 똑! 똑!
"단장님! 단장님!"
'이런, 내가 그날 일을 생각하느라 밤을 새고 말았군.'
"들어오게!"
"단장님, 안에 계시면서 왜 대답하지 않으신 겁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흠, 미... 미안하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아니,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셨기에 그렇게 문을 세차게 두드렸......."
"아닐세. 어서 나가지. 오늘 호든가를 뒤져보면 물건을 찾을 수 있겠지."
베르트니가 황급히 밖으로 나가자 그를 깨우러 왔던 기사들과 셔논 사제는 좀 황당했지만, 서둘러 단장을 따라 나섰다.
잠시 후, 수십 명의 로브를 걸친 사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주택가 사이로 사라졌다. 저 멀리 호든가를 향해서.
"저도 데려가요, 네? 제발요, 제발! 제발! 제발! 제가 그래도 신관이걸랑요? 여행길에 신관은 참으로 유용한 존재랍니다. 제~ 에~ 발 저도 데려가세요!"
지금 호크의 이마는 내천(川)자가 깊이 파이고 있었다. 도대체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갑자기 나타나서는 호무관이 제 집인 양 빌붙어 살고 있는 것까지는 불쌍한 마음에 그냥 두었지만, 어떻게 된 녀석이 호크가 샌드백 기둥에 매달아놓은 다음부터는 호크 뒤를 어찌나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지, 스토커란 바로 저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눈앞의 금발 머리 꼬마가 케린버그의 왕성으로 백작의 위를 받는 수여식에 가려는 자신의 신성한 여행길을 막고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떼를 쓰고 있으니, 예전 같으면 성질대로 하겠지만, 지금의 호크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디안 요새의 전투 이후로 그야말로 구국영웅으로서 명망 있는 인사가 되어서, 요즘은 길을 다닐 때면 발걸음 하나하나 조심스러웠다.
캐더린과의 결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자신의 성질을 누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괜한 구설수로 캐더린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매일매일 고상한 귀족처럼 예의 있게 행동해왔는데, 눈앞의 저 악마 같은 놈 때문에 옛날 성질이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백작님! 사람들 눈도 있는데 그냥 데리고 가시지요!"
"끄응! 짐... 짐마차에 실어라! 핸들러, 저 꼬마가 앞으로 내 눈에 안 보이게 해줘. 부탁이다. 다음번에는 내 블레이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
핸들러는 호크의 말에 흠칫거렸다. 정말이지 어느새 호크의 오른손이 등 뒤에 있는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고개를 몇 번 흔든 핸들러는 꼬마를 마차에 싣고서 출발신호를 보냈다.
이미 핸들러와 피터슨은 호크의 기사로서 보직이 변경되었다. 그래서 핸들러와 그의 친구들은 이제 모두 호크를 정식으로 섬기게 되었고, 이번 수도행의 정식호위로서 따라나서게 되었다.
물론 사이클론은 부르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라면서 저렇게 마차 1대를 구해서 뒤에 따라붙었다.
"해리슨 사범! 내가 없는 동안 호무관을 잘 부탁한다. 나 없다고 땡땡이치지 말고 제대로 굴려. 알았지!"
"넵, 백작님. 걱정 마십시오."
"좋아! 자네만 믿어. 그리고 루니야, 너도 이제 귀족가의 여식이니 좀 조신하게 행동하고, 캐더린 언니에게 많이 배워야 한다."
"응! 걱정 마, 오빠. 이 호무관은 루니가 책임지고 지킬게."
"그래그래, 귀여운 녀석. 그럼 어머니, 식구들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잘 다녀와요. 몸 건강히 다녀와야 해요."
어느새 정이 든 루니 모녀와는 이제 가족이 되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모르고 살았던 호크가 낯선 이계(異界)에 와서 가족을 얻게 된 것이다. 아직은 어색한 점도 있지만, 루니만은 정말 친남매 같았다.
"호크님! 제발 몸조심하셔야 해요. 알았죠?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전......!"
어느새 캐더린의 그 큰 초록색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자 호크가 재빨리 눈물을 닦아주었다.
"바보, 왜 울어? 울지 마! 캐더린, 나를 봐, 어서!"
"네, 호크님. 흑흑!"
"그래, 이렇게 예쁜데 울면 보기 싫어. 자! 저 하늘을 봐. 저 두 개의 태양이 하늘에 영원히 있듯이, 우리의 사랑도 영원할 거야. 난 너에게, 넌 나에게 소중한 의미로서 말이야. 아무 일 없이 돌아올게. 걱정하지 마. 사랑해! 캐더린!"
"저도요, 호크님! 읍! 읍!"
난데없이 격렬한 키스가 이어지자 루니 엄마는 루니의 두 눈을 가렸고, 나머지 일행들은 오늘 아침에 느끼한 것을 먹었는지 속이 매우 불편해 보였다.
각자의 마음을 담은 이별의식이 끝나자 마차 3대와 20여 명의 인물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무관을 빠져나가던 호크는 수련장 구석에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는 나 장군를 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결국은 말고삐를 잡아챘다.
"저기... 장군님, 제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잘 알지만, 불가능하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계속 그렇게 폐인처럼 사시는 모습, 보기가 괴롭습니다. 제가 사단장님보다 덜 배우고 나이도 어리지만, 전 이곳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살아있다 것,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말이에요. 그리고 기왕에 살기로 했으면 열심히!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름대로 이곳에서 살면서 배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 왕이 저한테 귀족 자리를 하나 준다고 하네요. 전 예전에도 대한민국 권혁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지만, 폴렌시아의 호크로서도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장군님도 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병신처럼 살 건지, 아니면 있는 힘껏 살아갈 건지. 제가 돌아왔을 때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하사 권혁, 백작의 위 수여차 케린버그의 수도인 로이든에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속에 있던 말을 다 하고 나자 좀 기분이 나아졌는지, 호크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이미 호무관을 빠져나간 일행들의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마차 옆을 지나가자 사이클론이 마음씨 좋은 노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요? 그 웃음은 뭐예요?"
"허허허! 아니다. 이제는 조금 어른이 되었나 싶어서. 제법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허허허!"
"거참! 노인네가 귀는 밝아가지고서는."
"허허허! 이 녀석이! 그 양반은 괜찮을 거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어. 꽤 심지가 곧고 강한 사람인 거 같아. 우리가 돌아올 때쯤이면 아마 달라져 있을 거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여간 우리 호무관에는 왜 이렇게 밥만 축내는 사람들이 많은 거야. 이럇!"
앞으로 사라지는 호크를 바라보는 사이클론은 점점 성장해나가는 호크의 모습에 가슴이 뿌듯했다.
"백작님, 마법진을 이용해서 웰스 영지까지 이동한 다음에 수도로 향할 것입니다."
"마... 마법진? 그냥 말을 타고 계속 가면 안 될까?"
"네? 그게 무슨...? 농담도 심하십니다. 여기서 거기가 어디라고요."
"하하... 참,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낭만이 없어? 팍! 하고 이동하는 게 뭐가 좋다고 그래? 그저 주변 풍경을 즐기면서 그렇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바로 참 여행이지."
"하하! 속이 울렁거리는 것은 아니고?"
"할아버지!"
"흠흠! 아니다. 내가 잠시 노망이 들었나 보다."
호크의 약점을 들추려는 싸이클론에게 살기 짙은 시선을 메가톤급으로 쏘아준 후에 갖은 핑계를 대는 호크의 고집 때문에, 편한 마법 이동진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로이든으로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호크는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잉글햄의 내성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처남과 장인어른을 만나기 위해서였지만.
내성을 향하는 관도를 지나며 호크가 갑자기 생각나기라도 난 듯이 핸들러에게 말을 붙였다.
"그나저나 저번에 그 쥐새끼들에게서 무슨 정보라도 얻어냈어?"
"죄송합니다, 백작님! 원래 어쌔신들이란 게 입이 무거워서 좀처럼 정보를 캐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괜찮아! 핸들러, 네가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곧 또 달려들 테니까."
"네? 그게 무슨......."
"한 번 보냈는데 또 보내겠지.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나한테 볼일이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나를 궁금해하는 놈이 내가 이렇게 밖으로 나왔는데 가만히 있겠어? 좋다고. 또 한 꾸러미 엮어서 보내겠지."
"아니, 백작님은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적은 인원만 데리고 오신 겁니까? 당장에 성에 기별을 넣어서 병사들을......."
"아이고, 됐네요! 호들갑스럽기는. 그냥 조용히 가자. 그래야 놈들도 입질을 하지. 우리 대가리 수가 많으면 놈들도 피곤하고, 우리도 피곤해. 너는 내가 어떻게 하는지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
"구... 굿 떠... 떡......?"
"으이구! 그냥 그런 게 있어! 넌 너무 고지식해서 탈이야."
충직하지만 너무 고지식해서 답답한 핸들러를 보면서 호크는 입으로는 볼멘소리를 했지만, 기분이 아주 좋았다. 뒤를 따르고 있는 부하들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정말 몸뚱이 하나였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마음을 함께하는 부하들까지 생겼으니. 흠흠! 저기 자신에게 얹혀사는 노인네 1명하고. 이제 호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점차 자신도 모르게 가치관이 변하게 됐다.
혼자라는 것과 둘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폴렌시아라는 땅에 와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좀 어린아이 같은 면도 있었지만, 서서히 생각이 깊어져가고 있었다.
고삐를 잡은 두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고, 가슴을 힘껏 펴자 확실히 예전보다 의젓해지고 진중해진 모습이다.
"호무관의 호크 백작님이시다! 문을 열어라!"
"오~ 호크 백작님이시다!"
성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가는 동안,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굽히고 예를 표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는 의미로 절하자 호크의 기분은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오~ 위대하신 전사시여!"
"어쩜! 잘생기기도 하셨네!"
"구세주님이시다!"
호크에게 어울리지 않는 칭송이 거듭되자 호크의 인내심 제어장치가 위험수위를 넘어서 빨간 경고등이 켜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례하던 호크의 볼 살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큭!"
"왜 그러십니까, 백작님?"
"큭! 아냐, 아무것... 아냐. 핸들러, 그냥 기분이 좋...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방으로 침을 튀어 보내면서 경박하게 웃어대는 호크를 보면서 방금 전에 의젓해졌다고 한 말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영주와 캐더린 오빠의 걱정을 뒤로한 채 말 고삐를 돌린 호크 일행이 한낮의 태양을 등지고 잉글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낯선 신세계, 폴렌시아에서의 첫 여행이었다.
"자, 어서 서둘러라. 꾸물거리다가는 에딘버그에서 야영을 할지도 모른다. 서둘러!"
잉글햄을 떠난 지 보름이 흘렀다. 케린버그가 아무리 산악지형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온통 첩첩산중인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언제 평야가 나타날지 궁금하던 호크는 핸들러가 급히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이, 핸들러! 에딘버그가 어떤 곳인데 그래? 전염병이라도 도는 곳이야?"
"아니, 호크님! 에딘버그가 어떤 곳인지 모르세요? 제가 드린 '케린버그의 영광과 오욕의 세월'을 안 읽어 보셨군요. 이제 귀족으로서 품위를 위해서라도......."
"그만! 알았으니 일 절만 해라! 내가 네 잔소리에 늙어죽겠어. 으휴!"
"잘 들으세요, 바로 마지막 드래곤이 살았던 곳입니다. 아직도 그 근처에서는 간혹 가다가 거대한 상단이나 군대들이 이유 없이 실종되는 일이 생겨서 모두들 마의 에딘버그라고 부릅니다. 저희도 원치 않는 사고를 막으려면 빨리 서둘러서 잉스턴까지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밤을 보내야 안전합니다. 에밀, 마부에게 서두르라고 해! 피터슨과 제이크는 좀 더 앞쪽의 상황을 보고 와줘. 어서!"
"짜식, 겁주기는. 흠흠! 그런데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한 거예요, 할아버지?"
"있다, 없다, 뭐 그렇게 이야기하자면 분명히 존재했었지.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 천년 전부터 그 존재들이 사라졌다 이건데, 그 이유를 우리 같은 하찮은 인간들이 알 리 없지만,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확실히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다는 게 정설이다."
'흠! 거참, 이거야 원, 동화 속 이야기도 아니고. 하기야 저 노인네 같은 마법사들도 동화 속에서나 나왔었지.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
지금 호크의 생각을 핸들러가 알았다면 그를 주군으로 모시는 것을 다시 고려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렇게 위험하고 뒤를 생각하지 않는 자를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바로 돈키호테를 모시는 산쵸판자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말이다.
일행이 에딘버그에서 드래곤의 비늘이라고 불리는 숲길에 들어서자 호크는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제법 안으로 들어가니 꽤 커다란 공터가 나타나 호크는 일행을 멈추게 했다.
삐이익~
호크가 휘파람을 불자 선두의 핸들러가 호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백작님!"
"손님들이 오셨다. 에밀과 피터슨, 제이크는 짐마차를 보호하고 지미와 톰슨, 루브카는 영감을 챙겨. 핸들러, 너는 나머지를 데리고 뒤쪽을 맡아. 뒤통수치는 놈은 언제나 꼭 있기 마련이니까."
호크의 명령에 일행들이 일사불란하게 배치를 끝내자 호크는 말에서 내려 공터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흠흠! 자, 여러분!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제 제가 왔으니 그렇게 숨어 있지 말고 고개를 들어 저를 보세요."
엽기적인 호크의 말에 이곳에서 3일 전부터 함정을 파고 있던 다크 문의 요원들과 어쌔신들은 당황했다. 분명히 마법사와 그의 제자만 경계하면 되고, 나머지는 별것 없다는 지령이었다. 그래서 마법탐지대항 아이템으로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었는데, 저 검은 머리 청년은 마치 자신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다 안다는 듯이 이리저리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것도 인원을 배치해놓은 요소요소를 정확히 바라보면서 짚어냈다.
"분명히 탐지마법이 실행된 적은 없지?"
"틀림없습니다. 마법은 조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림없이 맞는 법인데, 어쩐다!'
이번 습격조의 조장인 데브란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전투마법사 7명, 어쌔씬 20명, 검사 50명, 이 정도면 작은 영지 하나는 점령할 수 있는 인원이다. 저쪽은 7써클의 마법사가 1명에 이제 소드익스퍼트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검사 7명이라,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짧았다.
이번 일에 조직이 거는 기대는 아주 크다. 병력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작전이 성공하면 자신의 지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앞으로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수하들이 죽건 말건 상관없는 그에게 망설임이란 없었다.
그가 입에 뿔피리를 물고 가볍게 불자 김빠지는 소리가 났다. 일반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다크 문 요원들과 어쌔씬들은 그 소리에 훈련되어 있기에 공격신호를 받자 미리 명령을 받은 대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은밀하게 한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의 기척을 감지하고 있던 호크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렇게 나오시겠다? 하지만 어쩌나? 이거 아는지 모르겠네. 안 나오면 쳐들어 간다란 말이 있거든. 웃차!"
호크는 오른발을 굴러 몸을 띄워 3미터 높이의 나뭇가지 위에 쉽게 올라섰다.
"한 놈 잡고!"
호크가 나뭇가지에 올라서자마자 나무 등걸을 정권 찌르기로 쳤다. 그러자 나무껍질이 벗겨지면서 검은 복장의 남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남자의 등을 타고 낙하던 호크가 등을 박차고 옆의 나무로 타고 올라가면서 발로 나무의 몸통 여러 군데를 발로 찼다. 그럴 때마다 신음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땅바닥으로 굴렀다.
"어떻게 된 놈들이 은폐와 엄폐의 기본도 모르는 거야! 니들 킬러라면서 겨우 이 정도냐? 레옹에게 배운 마틸다가 니들보다 훨씬 낫겠다."
탁탁!
가볍게 손을 턴 호크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에는 이미 10명의 어쌔신들이 신음을 흘리면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자! 자! 빨리, 빨리 끝내자고, 어두워지기 전에. 설마 하니 이 밤을 나하고 불태우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이... 모두 저 녀석을 죽여라! 마법사들과 어쌔씬들은 사이클론을 노려라!"
순식간에 어쌔씬 10명이 전투불능이 되자, 나무 사이에 그물을 쳐놓고 숨어 있던 데브란이 검을 빼어들고 명령을 내렸다. 기습이란 게 적이 모르는 상태에서 해야 효과적이지, 이렇게 노출된 판국에 더 이상 숨어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데브란의 명령에 덤불 속에 숨어 있던 50여 명의 다크 문 검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크크! 그래야지. 요즘 이도류(쌍검술)의 재미에 한참 빠져 있는데, 너희들이 나 좀 도와줘야겠어. 난 이상하게도 연습보다는 실전을 통해야만 실력이 느는 것 같아서 말이야."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등 뒤의 블레이드에 손을 가져가는 호크를 보면서 다크 문의 검사들은 진한 살기에 몸을 떨었다.
'뭔가 잘못됐다.'
그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크학~ 헉!"
"아악! 내 팔!"
"으아악! 내 다리!"
날렵하게 블레이드를 빼어든 호크가 맨 앞의 남자 어깨를 밟고 올라간 후에, 그 뒤에 몰려 있는 적들의 어깨며 머리를 밟고 징검다리 건너듯이 바닥에 내려서자 10여 명이 그대로 쓰러졌다. 그들의 신체 각 부위는 호크의 검에 의해 커다란 상처를 입은 뒤였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아직은 조금 부족한가 보네. 부드럽지 못해. 기를 검 주위에 입힌다는 생각보다는 검 자체에 흐르게 하는 것이 좀 더 나은 거 같은데. 흐른다... 흐르게 한다... 강물이 흐르듯이 폭포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또 다시 태극심법의 호흡법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자연과 동화시키자 숲속에 고요가 찾아온 듯했다. 한순간의 정적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호크가 짧은 2개의 블레이드로 원을 그리면서 가슴 어림에 모으자, 검 주위로 희뿌연 아지랑이가 피어나면서 하얀빛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적들은 지금이 전투 중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서는 멍하니 호크를 바라보았다.
만약 이 장면이 온라인 게임이라면 '레벨 업!'이란 문구가 떴겠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사라질 뿐이었다.
실전을 거듭할 때마다 점점 더 폴렌시아에서의 전투방법에 눈을 뜨는 호크였다. 정확히는 마나와 검술에 관한 것이라고 해야 맞겠지만.
어쨌든 그제야 다크 문 검사들도 정신을 차리고 40여 명이 무기를 높이 쳐들고 호크에게 달려들었다.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달려드는 모습이, 마치 두려움에 미쳐서 그걸 잊어버리기 위해 달려드는 짐승 같았다.
이제는 거의 깊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빛이 가라앉은 호크는 가슴에 모았던 블레이드를 아래로 향하게 하더니 빠르게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마주 달려오던 40여 명의 검사들과 충돌했다.
그저 빛이 번쩍일 뿐이었고, 그럴 때마다 1명씩 쓰러졌다. 검도 잘리고 그 두껍고 단단한 베틀엑스도 수박 잘리듯 잘렸다.
40대 1의 승부가 끝난 것은 불과 20여 분이 지나서였다. 다크 문 본부에서 보내온, 제법 소문난 칼잡이라고 알려진 애꾸눈 잭의 칼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어느새 잭의 등 뒤로 돌아선 호크의 팔꿈치가 잭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것으로, 땅 위에 서 있는 자가 데브론 혼자가 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제... 길! 쟝님이 분명... 마법사라고 했는데! 너는 스카라무슈로구나!"
"후~ 뭐? 무슨 ...무슈?"
블레이드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돌아선 호크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입을 열자 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반문했다.
혼자 남은 적을 살펴보니 의외로 평범한 상대였기에 안심한 호크는, 고개를 돌려서 일행들을 살폈다. 어쌔씬들은 에밀과 동료들이 제법 잘 막아내고 있었고, 마법사들은 사이클론과 핸들러가 이미 모두 제압한 후였다.
'하하! 영감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나도 마법사들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운데 말이야. 마법사에는 마법사가 적격인가 보네. 왼손 투수에는 왼손 타자가 제격... 응? 뭐야, 갑자기 이 기분 나쁜 기운은?'
잠시 일행들을 살펴보던 호크는 데브론이 빨간 약병을 꺼내들어 마신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빌어먹을! 우리는 잘못된 정보로 엉뚱한 병력을 데리고 왔어! 부하들을 다 잃었으니 어차피 이 상태로 살아 돌아가도 문책을 피할 길이 없을 테지! 크크크! 그 지옥을 겪느니 가족들이라도 편히 살게 해주어야겠군. 크크크! 이봐! 같이 죽어줘야겠어!"
전투 중에 갖는 방심은 큰 화를 불러오는 법인데, 상대를 가벼이 보고 경계를 푼 호크는 갑자기 달려든 데브론이 자신을 끌어안자 당황했다.
"이런 미친! 야! 떨어져, 이거 놔! 난 남자는 취미 없어! 헉! 이거 팔 힘이 왜 이렇게 세!"
데브론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호크는 그를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그의 두 눈이 핏물로 붉게 물들고 몸이 점점 풍성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이클론은 하나 남았던 마법사에게 홀드를 걸어주고, 핸들러가 쉽게 목을 베자 뒤에 서 있던 어쌔신과 마법사들을 빙정(氷精) 계열의 마법으로 쉽사리 제압해버렸다.
호크의 부하들은 디안 요새의 전투 이후에 실력이 부쩍 는 탓인지, 자신의 주변을 잘 지켜줘서 사이클론은 느긋하게 마법을 시전 할 수 있었다.
이제 장내에 호크 일행을 제외하고는 서 있는 자들이 없자 사이클론은 만족하다는 듯이 마차에서 내려섰다.
'응? 이 기운은 설마 하니......!'
"안 돼! 호크야! 어서 놈에게서 떨어져, 어서!"
"젠장~ 나도 떼어놓고 싶은데! 이 녀석의 팔 힘이 얼마나 센지 꼼짝도 안 한다고요!"
"백작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핸들러가 데브론의 뒤에서 검으로 내려치려 하자, 기겁한 사이클론이 소리 질렀다.
"안 돼! 그랬다가는 모두 죽는다! 검으로 베어선 안 돼! 제길! 대지의 숨결이여! 권능의 힘이여! 그대의 힘으로 악을 제압하라!"
사이클론이 두 손을 높이 들었다가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내려치자, 데브론의 발밑에 있던 흙더미가 두 발을 무릎까지 감싸버렸다.
"지금이야! 어서 떨쳐내라! 저놈의 머리카락 색이 붉게 변하면 모두 끝장이다!"
'제기랄! 제발 좀 떨어져라, 떨어져! 나 아직 결혼도 못했다고! 제발! 이 자식,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마나가 폭주하기 시작했지? 마치 몸속에 용광로가 있는 것 같잖아. 이런 멍청한 놈! 호신술의 기본도 잊고 있다니!'
"할아버지, 제 발밑의 땅 좀 꺼지게 해 주세요, 어서요!"
호크의 다급한 외침에 사이클론은 다시 한 번 대지의 마법을 사용했다. 이내 영창이 끝나자 호크의 발밑에 지름 1미터 정도의 구덩이가 파였고, 호크는 전신의 기운을 하단전으로 보내면서 주저앉았다. 그러자 어떻게 해도 풀어지지 않던 데브론의 품에서 호크는 미끄러지듯이 쏙!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구덩이에서 한 바퀴 텀블링을 해 빠져나온 호크는 사이클론과 일행들 옆으로 갔다.
"어휴! 저 자식, 갑자기 왜 그러는 거예요! 뭐 못 먹을 거라도 먹었나?"
"그래, 맞다. 저 저주받을 약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다니!"
"약이라뇨? 저 녀석이 지금 약기운 때문에 저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 저주받은 마약이라고 불리는 레드 블러드(Red Blood)야! 한 번 마시면 해약도 없다. 드래곤의 피로 만들어졌다는 저 약을 마시게 되면, 인체를 매개체로 한 강력한 인간 폭탄이 되어버린다. 삼백 년 전, 복수를 한답시고 저 레드 블러드를 마시고 케인 왕국에 뛰어들었던 어떤 기사 덕분에 왕궁이 전부 날아가 버린 적도 있어. 그 이후, 대륙의 모든 나라들이 저것을 없애기 위해 거의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는데, 저 마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그럼 텔레포트해버려요!"
"어디로 말이냐? 우리야 사라지면 그만이라지만, 바로 뒤에 있는 저 마을은 쑥대밭이 될 거다. 젠장 할!"
"그럼 어디 바다 한가운데로 저놈을 텔레포트 해버려요!"
"이 녀석아! 저놈에게는 마법도 안 들어. 그러니 내가 이러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한다......."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호크 일행은 점점 뒷걸음쳤다. 데브론의 머릿결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하는 데까지 해보아야겠다. 대지여! 악의 기운을 가로막아주길! 흙과 돌의 벽으로 악을 덮으리라!"
자신의 최대 방어마법인 절대방어벽을 시전한 사이클론 전신의 마나를 쏟아냈는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짐마차에 숨어서 구경하던 금발 머리 꼬마가 겁에 질린 새하얀 얼굴을 하고서도 용기를 내서 마차에서 내린 다음, 일행에게 다가와 사이클론에게 신성력을 뿜어내 기운을 회복시켜주었다.
그때만큼은 호크도 스톤을 고맙게 여겼다.
사이클론의 얼굴색이 좋아지자, 호크는 전면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데브론을 쳐다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그냥 조용히 사는 것도 힘드는구먼. 핸들러, 일행들 데리고 마을로 가라. 최대한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해봐!"
"백작님은 어쩌시려구요!"
"저놈을 될 수 있으면 멀리 갖다 버려야지."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야! 어서 서둘러!"
말을 끝내자마자 호크는 데브론을 들쳐 메고서는 숲속으로 뛰기 시작했다.
핸들러가 안 된다고 악을 썼지만, 이미 호크는 숲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두 다리에 자신의 기운을 모두 보내면서 호크는 오로지 산 정상을 향해 뛰었다. 산이 있으면 동굴이 있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동굴 속이라면 피해가 덜 할 거라고 생각하고 취한 행동이었다. 어깨에 메고 있는 녀석의 몸이 부들부들거리는 떨리는 것이 심해지는 것으로 보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호크는 발걸음을 더 빨리 놀렸다.
휙휙~
수풀 속을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던 호크의 발이 급히 멈추어졌다. 거의 산 정상 부근에 대리석 기둥으로 된 동굴 입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거의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동굴은 위태롭게 기둥 2개가 입구를 간신히 떠받치고 있었다. 신상들이 옆에 죽 늘어서 있었는데, 무슨 신전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살펴볼 때가 아니었으므로 호크는 무작정 입구로 뛰어들었다. 습하고 지독한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신경 쓰지 않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젠장! 뭐 하려 이 녀석들까지 살리는 겁니까! 백작님은 지금 목숨을 걸고 불길 속에 뛰어드셨는데요."
"녀석도 이걸 원할 걸세. 떠들지 말고 어서 마을로 가세나. 어서 알려야 해!"
사이클론과 꼬마 신관이 살아남은 적들도 싣고 가자, 열 받은 에밀이 소리쳤지만, 사이클론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말을 모는 고삐를 움켜진 사이클론의 손에는 땀이 가득했다.
'제발 무사해라, 얘야! 제발! 도대체 누가 그 마물을 다시 등장 시킨 거지, 누가!'
"헉헉! 젠장! 깊기도 하지. 얼마나 깊이 들어온 거지?"
제법 깊이 들어온 것 같은데도 끝이 보이지 않자 호크는 망설였다. 이쯤에서 내려놓고 돌아갈 것인지, 더 깊이 들어갈 것인지. 벌써 데브론의 머리카락이 3분의 2 이상 붉게 물들었고, 두 눈에서는 핏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위험한 순간인데도, 호크는 저 안 깊은 곳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느낌에 결국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눈앞의 코너에서 왼쪽으로 몸을 꺾자 갑자기 발밑이 꺼졌다. 너무 놀란 호크가 데브론을 놓쳐버렸고, 그는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대롱대롱 간신히 매달려 있던 호크는 몸을 흔들다가 반동으로 몸을 튕겨서 반대편에 간신히 내려섰다.
'젠장! 골로 갈 뻔했네. 자, 이제 몸을 피해야겠다.'
부지런히 달려가던 호크는 복도가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자 표정이 구겨졌다.
드드드드드드드!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할! 왜 하필!'
어마어마한 흙무더기가 호크에게 쏟아져 내렸다.
쿠콰콰콰쾅!
에린버그의 드래곤 산 정상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하늘로 피워 올랐다.
그 폭발로 그 일대의 숲은 흙과 돌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려 폐허로 변해버렸고, 산 정상이 칼로 자른 듯 날아가 버렸다.
마을 도착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려던 사이클론과 일행들은 거대한 산의 정상이 폭발하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세... 세상에......!"
"오! 신이시여, 쥬(Ju)의 가호를!"
"백작님! 안 돼! 흐흐흐흐흑!"
"싸이클론님, 백작님이... 백작님이......!"
핸들러가 사이클론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자, 사이클론은 자신도 눈물이 나려는 것을 애써 참으면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방정맞은 소리 하지 마라! 그 애는 그렇게 쉽게 죽을 애가 아니야! 어서 일어나라! 다행히 마을에는 피해가 없으니, 어서 호크를 찾아보아야겠다. 서둘러!"
"네... 넵!"
'그렇지, 얘야! 네가 그렇게 쉽게 죽을 거라고는 믿을 수 없다. 너를 꼭 살려내마. 꼭!'
바람처럼 마을에 나타났던 마차와 사람들이 사라지고, 피난을 가려고 짐을 챙기던 마을사람들만이 멍하니 흰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2권에 계속
[용어 해설]
1. ATT는 군 전투력 측정(Army Training Test)의 약자로, 지휘관이 얼마나 부대 통솔을 잘 했는지를 측정하는 일종의 시험인 전술훈련입니다. 지휘관 임기 동안 계속해서 측정하게 되는데, 인사고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므로 대대 행사 중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FM
Field Manual의 약자입니다. 육군의 야전교범을 말하죠.
3. 달지차
원래는 닷지입니다 그런데 흔히들 달지차라고 부릅니다. 거의 모든 부대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군용 트럭입니다. 그야말로 전천후로 쓰이는 차량입니다.
4. 외인부대(레종 에트랑제)는 프랑스 외인부대의 통칭입니다.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용병부대 중에 가장 전통 있고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죠. 일전에 우리나라의 한 분이 이곳에서 복무하던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출간한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5. CARP → 프랑스 외인부대는 사령부, 교육연대, 공병, 기갑, 보병, 공수 등으로 나뉠 만큼 규모가 큰 부대이다. 또한 외인부대의 정예전투요원으로 구성된 공수연대 내에는 약 50여 명 정도 규모의 외인부대 최정예 특수임무대 CRAP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6. CP는 사단 사령실을 말합니다. 그냥 지휘부라고 아시면 되겠죠.
7. 특공무술이 만들어진 계기는 이렇습니다. 제4공화국 당시 대통령경호실에서는 완벽한 경호임무 수행을 위해 1978년 6월 대테러부대를 창설하게 되었고, 이 부대는 부대 임무상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됨으로 인해 특수한 기법의 무술개발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수한 기량을 가진 무술인을 개별적으로 조사한 결과, 사단법인 대한특공무술협회 장수옥 총재를 동 대테러부대 전임사범으로 임명하고, 특수임무수행에 적합한 무술연구와 새로운 기법을 개발토록 하였습니다.
1978년 11월, 개발한 새로운 무술을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특공무술로 명했고, 1979년 6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임석한 가운데 청와대 연무관에서 시범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청와대 전 직원들은 물론 전 군에 보급하여 전투력 증진에 힘쓰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계속적인 연구와 새로운 기법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유명한 얘기로, 북한의 귀순병사 1명을 우리나라 군인 누구도 당해내지 못하자, 박정희 대통령께서 '저런 무술을 개발하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특공무술은 정신수양과 함께 인간의 신체를 극도로 무기화하는 전율스런 살인기(殺人技)였습니다.
8. M10 리볼버 밀리터리 & 폴리스 : 2인치의 소형 리볼버로, 휴대하기에 매우 간편한 것이 장점입니다. 이 모델은 장성급 지휘관에게 지급되고 있으며, 공군 조종사 자위용 무기로 지급되기도 하였습니다.
9. M18A1 클레모어, 지향성 지뢰
주의사항 : 안전거리 16미터 이상 유지
◈ 제원
도폭약 콤포지션 C4
파편 철제볼 700발
확산도 수평각 좌우 60도, 높이 2미터
기 21.6*3.0*13.0
살상반경 50미터
유효반경 100미터
위험반경 250미터
10. K4 고속유탄발사기 : 발사 속도가 보통사, 급사, 최대사가 있는데, 보통사는 분당 48발, 급사는 60발, 최대 발사는 350 플러스, 마이너스 25발입니다. 탄통은 24발, 48발입니다.
11. 50MG: 혹은 MG 50 속칭 캘리버 50 등등 으로 불리는 컬리버의(12.7mm) 미군 M2COQ사양에 준한 중기관총입니다.
◈ 제원 MG-50
전장 : 1,654mm
총신 : 1,143mm
중량 : 37kg
발사속도 : 450~600발/분
12.팬저파우스트(Panzerfaust 3 Recoiless Grenade Launcher:무반동포)
구경 : 60mm
탄두부 : 110mm
길이 : 1,200mm
무게 : 3.8kg
사정거리 : 500m
장갑관통룍 : 700mm
13. 페브리페교는 중세 프랑스 종교전쟁 당시에 원인이 되었던 경전의 이름입니다. 여기서는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로베니아의 국교 이름으로 인용되었습니다.
이제 곧 로베니아의 종교전쟁이 전 대륙으로 번져나가게 됩니다.
14. 은폐(隱蔽, Concealment, Masking) : 직사화력과 관측으로부터 아군 병력이나 물자를 보호하기 위해 해지는 조치.
15. 엄폐(掩蔽, Cover) : 자연 또는 인공적인 장애물에 의하여, 적의 관측과 사격으로부터 보호되는 것. 은폐는 단지 적의 관측으로부터 보호되지만, 엄폐는 관측 및 사격으로부터 동시에 보호됨.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