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화 〉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 * *
“오오오오오오 카이자씨는 도박묵시록 카이자 오타쿠인가 보군요. 흉내를 엄청 잘 내시는데요?”
“그러게요. 크으으으으 도박묵시록 카이자 명작이긴 하죠. 저도 그대사를 참 좋아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좀 특이하시긴 하네요. 보통 남자들은 여자캐릭터 좋아하는데 카이자씨는 남자캐릭터를 좋아하시다니.”
나의 말이 먹혀들었는지 다른 에니메이션 동아리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끄덕이면서 넘어갔다. 어떻게 된게 강미혜가 자기 소개를 할 때 보다 내가 자기 소개를 할 때 더 반응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여기 일본 에니메이션 동아리 사람들이 자신들의 여자캐릭터만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현실 세계의 여자와 대화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직은 잘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잠시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의 시간을 갖고 내 앞에 앉아있던 카리나란 여자의 차례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리나고 나이는 21살이에요. 좋아하는 에니메이션은 여러분도 다들 아셨겠지만 어둠의 흑마법사 에니메이션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세리나 캐릭터를 가장 좋아합니다. 주특기는 수정구슬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기분을 읽어내는 것이고 높은 확률은 아니고 낮은 확률이기는 한데 영적인 존재나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 하는 식스 센스를 느낄 수 있어요. 으으으으응 뭐라고 블링크? 왜 갑자기 말을 거는 거야? 응? 으응응. 그래? 신기하네. 호오오오오 그래 그래? 흐으으으으응.”
그렇게 난데없이 자신의 수정구슬과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카리나.
나는 우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수정구슬과 이야기를 하는 카리나가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뭔가 나는 그게 카리나의 컨셉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컨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진지하고 또 뭔가 컨셉 특유의 오글거림이 없었다. 무언가 카리스마가 있다고나 해야할까 아니면 진실성이 느껴진다라고 해야할까?
뭔가 리플리 증후군이나 아니면 과몰입한 컨셉이라고 보기에는 보는 다른 사람들을 빨아드리는 그런 마력이나 포스가 있었다.
한 마디로 카리스마가 있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우리는 잠시 우리들과의 대화를 멈추고 자신의 수정구슬과 이야기를 나누는 카리나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카리나는 자신의 수정구슬과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나를 쳐다봤다.
홰액
뜨끔
‘뭐…뭐지? 왜 나를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카리나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저기 카이자씨라고 하셨죠?”
“네 그런데요?”
“제 수정구슬에게서 카이자씨에게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풍긴다라고 하네요. 다른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사람들과는 다른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요.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라고 하는데…. 무언가 저희랑 다른게 있으신건가요?”
의아한 듯이 묻는 카리나.
나는 순간 나만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를 가입한 사람이 아니였었기 때문에 순간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로 지목당한 것처럼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야? 저 수정구슬이랑 대화를 해서 내가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사람이 아닌 걸 찾아낸건가? 아니면 혹시 그것보다 더 깊게 내가 지금 나 혼자만 현실 미소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것은 아니겠지?’
“그…글쎄요? 아무래도 제가 다른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사람들과는 달리 남자인데도 남자캐릭터를 좋아해서 그렇거나 아니면 제가 오늘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처음 나와서 그런게 아닐까요? 다른 분들은 보니까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여러번 참석하신 분들이신 것 같은데 저는 오늘이 처음이라서요. 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당황한 듯이 이야기를 하자 카리나는 고개를 갸웃 갸웃하더니 그려려니 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리나가 소개를 마친 후 케이지란 사람의 차례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케이지입니다. 나이는 20살이고 페이트짱과의 데이트를 위해 오늘 이자리에 나왔습니다. 아 참고로 제 페이트짱은 수줍음이 많으니 가급적 말을 걸거나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부끄럼이 많고 수줍음이 많거든요. 그렇지요 페이트짱? 오이 오이 벌써 부끄러워서 저의 페이트짱의 얼굴이 빨개졌네요. 갑자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서 부끄러운가봐요. 괜찮아요 페이트짱 그렇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돼요. 정면을 바라봐주세요. 우리 페이트짱은 너무도 아름다우니까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다른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회원들에게 널리널리 보여줘야해요. 아아아아앗? 아니에요. 제 눈에만 이뻐보이는게 아니라 다른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회원분들에게도 이뻐보여요. 그렇죠 회원님들?”
끄덕
끄덕
끄덕
끄덕
끄…..끄덕
나는 순간 눈 앞에서 펼쳐지는 케이지와 페이트짱의 대화 앞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서 반응을 못 하였다.
하지만 다른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회원들은 케이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 끄덕하면서 호응을 해주고 있었다.
나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따라 끄덕였다.
그렇게 자기 소개를 마친 후 테이블 위에 메뉴판이 놓여지기 시작했다.
“자 저희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회비 만원 걷겠습니다. 그리고 앞에 놓인 메뉴판을 보시고 만원 이하 가격대 음식은 자유롭게 시키셔도 됩니다. 주문하신 음식의 총합이 만원 이하라면 몇번 이고 음식을 다시 시키셔도 됩니다. 예를 들어서 돈까스 6000원짜리 시키셨다면 남은 4000원 어치를 음료수나 후식 디저트로 시키셔도 됩니다. 단 죄송하지만 음식값 총합 만원 이상의 음식은 시키시면 안 됩니다. 자 그럼 대화를 하시면서 즐겁게 드셔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기 시작했다.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주섬
그렇게 강미혜도 자신의 일본 세일러 복에서 지갑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뭔가 강미혜가 내 과외 학생인데 더치페이를 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이 좀 찝찝해졌다.
그래서 강미혜에게 나의 지갑에서 2만원을 꺼내면서 말했다.
“미혜야 여기.”
스으으으윽
강미혜는 내가 지갑에서 꺼낸 2만원을 보고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말했다.
“아..아니에요 쌔……아 아니에요 카이자 저도 돈 있어요. 제 회비는 제가 낼게요."
나는 그런 강미혜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오이 오이 그런 것은 다매다요. 어서 돈은 지갑에 넣어두라고. 나머지는 이 카이자짱이 해결하도록 할테니. 우리 나리아짱의 아름다운 마음은 마음만 받겠어."
내가 일부러 오타쿠 말투를 흉내내면서 말하자 강미혜의 두 눈이 동그래지더니 빵터지면서 말했다.
"꺄하하하하하하하 선생님 그 말투는 뭐에요 와 진짜 어처구니 없다 너무 웃긴다 푸하하하하하하."
그러자 갑자기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회원들이 의아하다라는 눈빛으로 강미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모두 약속이나 한듯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회원들은 선생님이란 말과 함께 머리 위에 물음표를 동동 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궁금함을 못 참겠다라는 듯이 카리나가 강미혜에게 물었다.
"나리아씨 아까 여기 계신 카이자씨와 20살 동갑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선생님이라구요? 그리고 둘이 동갑이신데 카이자씨는 나리아씨에게 반말을 쓰고 나리아씨는 카이자씨에게 존댓말을 쓰네요."
뜨끔
뜨끔
나는 순간 날카롭게 들어오는 카리나의 말에 순간 당황함을 느꼈다.
삐질 삐질 삐질 삐질
삐질 삐질 삐질 삐질
옆을 보니 강미혜도 나와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와 강미혜는 동시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상황을 설명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강미혜가 20살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여자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는 점과 개인 프라이버시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게 껄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서 재빨리 머리를 굴린 후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여기 나리아짱이 일본 세일러달 작품에도 오타쿠 기질이 있어서 그 세계관속에서 사는걸 좋아하거든요. 여기 보세요 옷도 일본 세일러달 옷을 입었잖아요. 이렇게 일본 세일러달 옷을 코스프레 할 정도로 좋아하다보니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일본 세일러달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다 여자 고등학생들이잖아요. 그래서 미혜도 20살이지만 일본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자 고등학생입니다. 그리고 저..저도 일본 세일러달 참 좋아하는데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일본 세일러달에서는 여자 캐릭터들만 주인공들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여자 주인공들과 가까이지내는 느낌을 내고 싶어서 저는 세일러달에 나오는 학교 선생님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부연설명을 하자 카리나와 다른 일본 에니메이션 회원들은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라는 듯이 마치 별거 아니였다라는 듯이 납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일본 에니메이션 회원들의 반응과는 달리 자신의 수정구슬을 만지면서 또 혼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응 왜 그래요? 블링크? 네에에에에에? 뭔가 알 수 없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느껴진다라구요? 흐으으으으응 아까 카이자씨가 다 설명을 했잖아요. 나리아씨가 일본 세일러달 작품에도 오타쿠 기질이 있어서 그 세계관속에서 사는걸 좋아한대요. 그래서 자신을 여자 고등학생이라고 생각을 한대요. 그리고 카이자씨는 일본 세일러달을 참 좋아하지만 여자 캐릭터 주인공들밖에 없어서 세일러달에 나오는 학교 선생님 역할을 했대요. 그래서 저렇게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나리아씨가 카이자씨에게 존댓말을 한대요. 후우우우우웅 그래도 뭔가 네 네? 흐으으으으음 그래요? 알겠어요."
그렇게 자신의 수정구슬과 혼잣말로 이야기를 나눈 후 카리나가 갑자기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나는 나를 지그시 쳐다보는 카리나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얘 뭐야 무서워...진짜로 컨셉이 아닌 것 같아. 내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는 것 같잖아. 진짜로 신기가 있거나 뭔가 식스 센스가 있는 건가? 어떻게 이렇게 뭔가 잘 잡아내는 것 같지?'
카리나는 나를 잠시 지그시 쳐다보더니 이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후후후후후후훗 방금 말씀하신 세일러달 저도 참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나는 갑자기 사람좋게 웃는 카리나의 모습에 한결 마음을 놓으면서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렇죠? 역시 세일러달이 세기의 명작이죠. 한국 사람들 중에 세일러 달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렇게 카리나를 바라보는데 뭔가 느낌이 싸하다.
왠지 모르게 나에게도 식스 센스가 발동되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말을 마치면 뭔가 애매해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잽싸게 세일러달 주제가를 부르면서 내가 진짜 세일러달 오타쿠인 것처럼 일본 에니메이션 동호회 사람들에게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세일러달은 주제가가 쩔지 않아요? 크으으으으으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들어봤을 주제가. 미안해, 전화하지 못 한 내가 지금 이 느낌이 꿈이라면 빠르게 너에게로 달려가 모든 걸 말해줄텐데 연락도 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자꾸만 흔들리는 내 마음 영화 속 사랑의 세계로 손 짓하는 저 달 빛 밤 하늘 저 곳에서 빛나고 있는 솜사탕 같은 우리의 기억 수 없이 많은 달빛 중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천번의 한번 행운이라고 할 수 있어 기적의 세일러 달!"
나는 일부러 오버하면서 희망차게 세일러달을 불렀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이정도로 내가 오버해서 세일러달 주제가를 불렀으면 카리나도 인정하고 넘어가겠지?'
물끄러미
그렇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리나가 나를 보면서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머머머 그렇게 노래 가사를 완전히 외우고 있으신 것보니 확실히 일본 세일러달 좋아하시는 것 맞는 것 같네요."
"하하하하하하하 그렇죠? 제가 세일러달 참 좋아한답니다."
"후후후후후훗 저랑 이야기가 잘 통할만한 사람이 나왔네요. 그럼 저랑 이야기 좀 나눠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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