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연기 연습
* * *
“아냐 아냐 너 기분 좋으라고 내가 지금 시나리오 칭찬하고 있는게 아니라 진짜 재밌고 흥미로워서 그래! 분명히 다른 선배님들도 좋아할거야. 우리 이거 해보자 하자 하자.”
“그래 나도 혜진이랑 같은 의견이야.단순히 시나리오가 그냥 괜찮은 수준이었으면 칭찬하고 말았을텐데 나도 이거 해보고 싶어! 아마 우리 이거 잘만 하면 동아리 신입생들 중에서도 선배들 눈에 확 띌 수 있을 것 같아! 해보자 명한아.”
나는 박혜진과 이나은의 말을 듣고 마지못해 너희가 원해서 한다라는 식의 반응으로 이야기했다.
“그...그럴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너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거니까 하는거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그럼 그럼! 딴소리하기 없기!”
“그래 꺄아 이거 진짜 재밌겠다. 근데 너 이거 우리 생각하고 만든 시나리오야?”
내가 박혜진과 이나은에게 건넨 시나리오는 친구인 두 여자가 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이야기였다.
원래 전생에서는 한 여자를 친구인 두 남자가 좋아하는 내용이었지만 현생에 맞춰서 박혜진과 이나은을 생각하면서 남녀 성별을 바꾸고 그에 맞게 시나리오를 각색해서 가져왔었다.
“으응 너네 생각하면서 만들어 온 것 맞아.”
“우와 대박 진짜 명한이 너 시나리오 작가해도 될 것 같아.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런 시나리오를 완성해왔지?”
“명한이 너 예전에 고등학교때 뭐 극작가 이런거 했었어? 퀄리티가 진짜 대박이다. 잠시만 나 이거 다시 꼼꼼히 읽어볼게.”
그렇게 박혜진과 이나은은 내가 가져온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한참을 시나리오를 읽은 박혜진과 이나은이 말했다.
“근데 여기 세나랑 미나 나오는데 누가 누구를 하면 좋을까?”
“흐음 나는 혜진이가 세나하고 나은이가 미나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미지상.”
“헐 진짜? 나은이 너 생각은 어때?”
“나? 나 미나해도 좋은데 혜진이 너는?”
“진짜? 나 세나 좋은데 나 세나 해도 돼?”
“꺄아 잘됐다. 나는 미나가 더 좋았는데 혜진이 너는 세나가 더 마음에 드는 거지?”
“우와 응응 와아 그럼 내가 세나하고 너가 미나하면 되겠다. 꺄아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인가봐.”
“그러게 헤헷 혜진이와 나는 천생연분!”
그렇게 둘이서 서로 원하는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사실 이것은 내가 둘의 성격과 캐릭터를 고려하여 일부러 캐릭터들을 조금 수정해서 가져온 공이 컸다.
하지만 그것을 까맣게 모르는 박혜진과 이나은은 다행히 자신들의 취향이 겹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둘의 모습을 보니 무언가 내가 미래를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과 같은 뿌듯함과 쾌감이 몸을 휩쓸기 시작했다.
“우와 그럼 우리 테이크 원 장면부터 해볼까?”
“응응 그래.”
“첫장면은 주인공이 20살 때로 회귀하는 거지?”
“응응 맞아.”
“와 명한이 근데 너 어떻게 시나리오에 회귀를 넣을 생각을 했어? 진짜 참신하다.”
“그러게 나 시나리오에서 회귀하는 시나리오는 처음 봐. 이게 진짜 너무 흥미로운데?”
현대 웹소설에서야 회빙환이라고 불리는 회귀 빙의 환생이 필수적인 요소였지만 내가 회귀한 20살때 이 시점에서는 웹소설이 유행하기 전 시기였기 때문에 회빙환이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박혜진과 이나은은 그러한 회귀를 한 주인공에 대해서 매우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후후후훗 그게 시나리오 뿐만 아니라 너네 눈 앞에 있는 사람도 사실은 회귀자라고. 실제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인데 너네는 꿈에도 모르겠지.’
나는 실제로 20살때로 회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시나리오라고만 생각하며 놀라고 있는 박혜진과 이나은을 골리고 싶어졌다.
“하하하하하 사실 내가 20살 때로 회귀한 회귀자라서 그래.”
“우오옹?”
“아앙?”
내 말을 듣고 두 눈이 동그래지는 박혜진과 이나은.
‘어라? 농담삼아 대사 친건데 설마 믿는 건가?’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나는 난데없이 고백을 한 걸까라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 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꺄하하하하하 명한이 너 진짜 웃긴다. 너 생각보다 개그 센스가 대단한 애였구나? 하긴 글을 잘쓰려면 개그 센스도 좋아야지. 우와 진짜 웃겼어 방금 내가 올해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재밌었다 명한이 너 크크크크.”
“아하하하하하하 명한이 자기가 회귀했대. 꺄하하하 아 배아파 아 어떻게 인간이 회귀를 해. 너가 만약에 20살 때로 회귀한 사람이면 나는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야 꺄하하하.”
“나..나은이 너 터미네이터였니?”
“꺄하하하하 명한이 개그 봐 아 나 얘 진짜 웃기네 꺄하아아아.”
“아하하하하하 명한이 너 진짜 웃긴다 그래 나 터미네이터야 윙 치킷 윙 키칫 윙 키칫 윙 치킷.”
그대로 내 앞에서 터미네이터 로봇 흉내를 내는 이나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화기애애하고 엄청 좋아졌다.
박혜진과 이나은이 나의 사실을 개그라고 착각하며 나를 엄청 호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단순히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후후훗 이거 사실을 말해도 개그로 받아들이니 느낌이 매우 묘하네.’
“자 아무튼 여기까지 개그하고 시나리오 대로 연습을 해보자.”
“응 그래.”
“앙앙 알았어.”
“자 첫번째 장면은 20살때로 회귀한 주인공이 전생에 자신들과 썸을 탔던 여자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장면이지?”
“응응.”
“앙앙.”
“자 그럼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해볼게.”
달칵
“어서오세요. 사진찍기 동아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슨일로 오셨어요?”
“아 네 이번에 신입생 모집한다라는 공고 보고 왔는데요. 신입생 지금 가입 신청 가능한가요?”
“아 신입생 가입 신청하러 오셨구나. 이리로 오세요. 제가 신청서 가져다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어때 명한아?”
“어때 명한아?”
자신들의 대사와 표정이 어떻냐고 나에게 궁금하듯이 묻는 박혜진과 이나은.
솔직히 말해서 둘 다 아직 연극영화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매우 어설펐다.
“아 둘 다 좋은 것 같애. 연기에 소질이 아주 있는데?”
“꺄아아아 진짜 진짜? 나 이래봬도 드라마 보면서 엄청 연기 연습 많이했어!”
“나도 나도 거울보면서 막 유명한 여배우 연기 몇십번씩 따라하고 그랬다고 엣헴엣헴.”
나의 칭찬이 진짜인줄 알고 뿌듯해하는 박혜진과 이나은. 아까부터 무언가 둘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라는 생각에 웃음과 쾌감이 동시에 번져오기 시작했다.
“응응 다 좋은데 조금만 연기를 다듬으면 좋을 것 같아.”
“아 어떻게?”
“어떤 부분에서?”
“예를 들면 혜진이가 사진찍기 동아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여기에서는 내가 동아리 가입을 하러 온 것을 모르는 상태잖아. 물론 혜진이 너야 시나리오를 읽은 상태여서 미리 알고 있는 상태지만 극중 세나는 주인공을 처음 본 상태이고 또 신입생인 것을 모르니까 무슨 일로 동아리를 찾아 왔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거든. 동아리야 신입생이 가입하러 올 수도 있고 뭐 다른 동아리 사람들이 용무가 있어서 찾아올 수도 있고 외부 사람이 사진 촬영 부탁하러 올수도 있고 경우의 수가 많거든. 그래서 좀 더 무슨 용무인지 궁금하다라는 듯이 그리고 무슨 일로 동아리를 찾아왔는지 의아하다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면서 연기를 해야해.”
“아 맞네 그러네? 내가 너무 동아리에 가입하러 온 것을 이미 알고있다라는 티가 났나봐.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의아하게 용무를 물어봐야 한다는 거지?”
“응 그래 맞아.”
“그리고 나은이는 신입생 가입 신청하러 오셨구나. 이부분에서는 좀 더 신입생이 우리 동아리를 찾아왔다라는 듯한 기쁨의 뉘앙스를 담아서 말하면 더 좋을 것 같고 이리로 오세요. 이부분에서는 손짓을 하면서 실제로 나를 데리고 가려는 듯한 포즈로 나를 안내해주면 좋을 것같고 제가 신청서 가져다 드릴게요.라는 부분에서 친절하게 웃으면서 말하는게 좋을 것 같아. 그냥 대사를 한다라는 느낌으로 하지 말고.”
“아아…. 그러네 나는 대사를 외워서 그걸 뱉는다라고 생각했는데 세 개 대사에서도 각각 다 표정이랑 뉘앙스 행동을 다 신경써야 하는 구나.”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박혜진과 이나은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더니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어라 뭐지?’
그러더니 박혜진과 이나은이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우와 명한아 너 근데 어떻게 연기 지도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잘해?”
“그러게? 와 너 진짜 우리랑 같은 신입생 맞아? 누가 보면 연극영화 동아리 한 10년 한 사람인 줄 알겠어.”
실제로 나는 연극영화 동아리 활동을 10년을 한 사람이 맞았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알길이 없는 이나은은 감탄을 금치 못하는 얼굴로 이야기하였다.
사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듣기에 간단해 보여도 연극영화 동아리 신입생 수준에서는 매우 지적하기 어려운 연기 지도였다.
왜냐하면 연극영화 동아리 신입생들은 제대로 된 연기를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고 이렇게 시나리오를 읽고서 연기를 해본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연기지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박혜진과 이나은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나의 연기지도에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양새였다.
“아 내가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서 시나리오 상에서 세나와 미나가 하는 행동들을 머리속에서 그림 그려내듯이 상상했었거든. 그래서 실제로 세나와 미나가 행동을 했다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서 해준 말이야. 아무래도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고 상황이니까 나에게는 그런게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지.”
“아아 그렇구나 이것이 시나리오 작가의 위엄인 것이구나. 명한이 너 진짜 멋있다...진짜 시나리오 감독같아. 아아 그리고 그런 명한이랑 같이있으니까 내가 시나리오 여자 배우가 된 것 같아 어떻게해. 연기하면서 벌써 떨려.”
도리 도리 도리 도리
자신의 양 볼을 감싸쥐고 부끄러운 듯이 그리고 행복한 듯이 도리도리 움직이는 박혜진. 그모습이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그러게. 아아 내가 뭔가 이렇게 하니까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야. 아아 나 살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 느껴봐. 너무 재밌다. 히히히힛 흥분돼.”
박혜진과 이나은은 여자 주인공이 되어보는 경험이 처음이기 때문에 매우 즐거운 듯이 그리고 매우 흥분한 듯이 나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나또한 내가 만들어낸 여자 주인공 캐릭터에 1학년 미모 쌍두마차를 이끌고 있는 박혜진과 이나은이 뿌듯함과 동시에 행복해하며 몰입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자 다시 한 번 해보자.”
“응응.”
“앙앙.”
달칵
“어서오세요. 사진찍기 동아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슨일로 오셨어요?”
“아 네 이번에 신입생 모집한다라는 공고 보고 왔는데요. 신입생 지금 가입 신청 가능한가요?”
“아 신입생 가입 신청하러 오셨구나. 이리로 오세요. 제가 신청서 가져다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어때 명한아?”
“어때 명한아?”
또다시 아까처럼 묻는 박혜진과 이나은.
순간적으로 미소녀 현실 게임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내가 세이브와 로드를 눌렀나라는 착각이 들었다.
‘하하하하하하 나도 현실 미소녀 게임에 너무 적응이 잘 되었나보네. 똑같은 대사 치니까 세이브한 지점으로 로드 한 것 같잖아.’
“아 아까보다 훨씬 좋아졋어. 이대로 하면 될 것 같아. 근데 혜진이 너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가 달칵하는 소리에 반응해서 뒤를 자연스럽게 돌아보는 연기가 더 좋을 것 같고 나은이 너는 이리로 오세요하고서 제가 신입생 신청서 가져다 드릴게요 하는 부분에서 나를 쳐다보면서 말하는게 더 좋을 것 같아.”
“아…………….”
“아…………….”
박혜진과 이나은은 내가 더 디테일하게 연기를 지적해주자 마치 나를 연극영화 감독을 쳐다보는 것 처럼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전생에서는 단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는 박혜진과 이나은의 동경과 선망의 눈빛에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 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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