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공대 수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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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행동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아름에게 재능충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처음이라고 말하자 이아름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호감의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우리 조별 과제 역할 분담도 어느 정도 된 것 같고 친목 도모 겸 좀 더 이야기하다 갈까?”
광석이 형이 아름이와 친해지고 싶은지 발표 부담 준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게 느껴졌다.
“아뇨 저희…”
“아 이야기 다 정리되었으면 저는 먼저 일어나 볼게요. 저 뒤에 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역시나 이아름과 함께 빠지려는 김가영. 하지만 나는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미리 선수를 쳐서 먼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아………”
역시나 이아름이 나를 당황스러워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광석이형과 지훈이도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광석이형 그리고 지훈아 저희 언제 저녁먹고 술 마실지 정해요. 저 광석이형이랑 지훈이랑 술 언제 마실지 정하면 시간 무조건 비워 놓을게요. 저희 따로 단톡방 하나 파서 날짜 잡을까요? 제가 잘아는 맛집있는데 그리로 초대할게요. 안주 3 개 고를 수 있는데 안주 종류 가리지 않고 세 개 주문에 18,000원이에요 어때요 괜찮지 않아요?”
나는 10년 넘게 마신 술의 짬밥으로 남자 공대생들이 좋아할만한 최고의 가성비집을 제시했다.
“헐 대박 안주 3개의 18,000원이라고 엄청 싸네? 종류는?”
“종류는 술 안주 생각할 수 있는 거 거의 다라고 생각하면 돼요. 마른 안주는 가성비가 떨어지니 제끼고 예를 들어 데리야끼 우동 볶음이나 치킨 닭강정 이런 안주류들과 계란탕 홍합탕 부대찌개 이런거 다 원한느 걸로 시킬 수 있어요.”
“츄릅 맛있겠다. 안주 3개 18,000원이면 엄청 싸네. 그럼 소주 안주랑 맥주 안주 시키고 하나는 그때 상황봐서 소주 안주나 맥주 안주 하나 하면 되겠네.”
“그래 그래 명한이 너 오늘 저녁에는 시간 안 되는거야?”
“그래 맞아 오늘 저녁에 시간 되는데 너 오늘 시간 안 돼?”
광석이형과 지훈이가 안주가 18,000원이라는 말에 가성비를 좋아하는 남자들답게 눈이 돌아가서 빨리 술 약속을 잡고 싶어하는게 느껴졌다.
“오늘 저녁엔 해야할 일이 있어서…”
내가 조금 곤란한 눈치를 보이자 광석이형과 지훈이가 아쉬워하며 황급히 다시 말했다.
“그럼 내일은?”
“내일은?”
“하!지!만! 광석이형과 지훈이와의 술 마실 기회를 놓치긴 아깝죠. 오늘 해야할 일은 내일로 벗어던지고 오늘 저녁에 함께 해요, 크크크크크크크.”
“크아 그래도 괜찮아 명한아?”
“진짜 오늘 마셔도 괜찮겠어?”
“그럼요 안 그래도 술 땡겼는데 오늘 우리 멋지게 한 번 공대 남자들의 우정을 쌓아보자구요.”
“그래 그래 크하하하하 안 그래도 요새 술 마시고 싶었는데 잘 됐다.”
“야 안주 세 개의 18,000원이면 안주빨 세워도 되겠다. 야 뭐 양 적거나 그런건 아니지?”
“크크크 그런데면 지훈이 너 데려가지도 않았어.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그렇게 우리가 왁자지껄 떠들어대자 대화의 낄 타이밍을 잃고 멍하니 우리를 쳐다보는 이아름과 김가영.
자신들이 남자들만 있는 테이블에서 대화의 소외되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지 어쩔 줄 몰라하고 우리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통해 내가 팀원들과 친목을 쌓으려는 것을 거부하는 그런 싸가지 없는 남자가 아니라 광석이형과 지훈이와 친해지는건 좋아하고 관심이 있지만 공대여신 이아름과 김가영과는 굳이 친해지지 않아도 된다라는 그런 쿨한 마인드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둘을 힐끗 보자 이아름은 남자들의 대화와 시선에서 자신이 제외된 채 대화가 진행되는게 낯선 듯 우리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희 그럼”
“아 저 그럼 가볼게요. 아름씨와 가영씨도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뵈어요. 광석이형 지훈아 이따 카톡할게요. 오늘 신나가 한 번 마시고 달려보아요 고고!”
또다시 치고 나오려는 김가영의 말을 끊고서 나는 또다시 한 번 먼저 선수를 쳤다.
“크크크크 그래 내가 술과 안주 사기로 했는데 안주 18,000원이면 개혜자네? 술값은 특별히 더 비싸거나 그런거 아니지?”
“네 다른 술집이랑 똑같아요. 아니다 맥주 3,000 cc는 다른 술집보다 1,000원 정도 더 쌌던 것 같은데?”
“그럼 무조건 콜 가즈아아아아아아~!”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
광석이 형과 지훈이 그리고 나는 어느새 팔을 크로스하며 공대 남자들의 우정의 크로스를 했다.
광석이형과 지훈이도 오늘 나의 태도를 통해 내가 마음에 든 듯 했고 나도 광석이형과 지훈이의 대화방식과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우리 셋이 엄청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자 그럼 오늘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아 수고했어 명한아 깨톡에서 보자.”
“크크크 그래 오늘 저녁에 같이 달리는 거야!”
“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오빠 저희도 그럼 일어나볼게요.”
“아 그래? 너네도 가야해?”
“아 네 저희도 뭐 따로 이야기할게 있어서요.”
“흐음 그래? 지훈아 우리 어떻게 할까?”
“형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야기 좀 하다 가요.”
“그럴까 그럼? 그래 그럼 우리는 좀 더 이야기하고 갈게. 먼저들 들어가~”
“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오빠.”
“수고하셨습니다 오빠.”
그렇게 나와 이아름 김가영은 같이 카페를 나왔다.
카페를 나오자 이아름이 나에게 물었다.
“저 어느 쪽으로 가세요?”
“저는 지하철 역쪽이요.”
“잘 됐네요. 저희도 그쪽으로 가는데 같이 가요.”
이아름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아름이 공대 여신이 된 이유에는 아름다운 외모와 빼어난 몸매 탓도 있었지만 사근사근한 성격탓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내 옆으로 나란히 다가오는 이아름과 김가영.
김가영은 그런 이아름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을 삐쭉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상태창에서 선택 메세지가 떴다.
[이아름과 김가영과 함께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1. 이아름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2. 김가영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3. 이아름과 김가영 둘 다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4. 지하철 역으로 같이 걸어가자라는 제안을 무시하고 혼자 쿨하게 걸어간다]
‘우오오옹? 선택지가 떴네? 가만 있어보자 어떤 것을 선택해야 되지?’
‘자아 일단 안전하게 세이브부터 하고 진행하자.’
나는 상태창에서 세이브를 눌렀다.
[현재 선택지의 상황을 세이브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이브를 하는데에는 100골드가 소요됩니다. 세이브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나는 예를 눌렀다.
[현재 상황을 세이브 하였습니다. 100골드가 차감되었습니다.]
나는 마치 시험 문제를 푸는 것처럼 선택지를 하나 하나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가만 있어보자. 일단 4번을 선택해야 하나? 근데 4번은 너무 철벽치는 것 같은데. 아무리 차가운 도시남 설정이라고 해도 카페에서 그렇게 차갑고 시크하게 굴었는데 여기서까지 둘을 무시하고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면 너무 역효과 나지 않을까? 만약에 이번에까지 차갑게 굴면 김가영 성격상 백퍼센트 내 뒷담화 할 것 같고 그러면 이아름도 나에 대한 호감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으니 4번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4번 선택지를 제외하기로 했다.
‘3번도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근데 저러면은 또 뭔가 카페에서 둘에게 차갑게 대했던 것과 좀 반대되는 이미지인 것 같은데...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이아름이랑 김가영이랑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하면 이아름이랑 이야기할 때는 김가영이 질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나라고 해도 포커 페이스는 아니니까 이아름과 대화할때 좀 더 즐거워하고 신나하는게 느껴질 것 같은데… 3번도 일단은 제외하기로 할까?’
나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대 여신인 이아름이 내 바로 옆에서 걷고 있었고 또 이아름의 향기가 바람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아름과 김가영과 이야기를 번갈아 주고 받을 경우 김가영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김가영의 가드를 내리게 만드는 것이 좀 더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1번 선택지도 마찬가지로 위험해. 이거는 3번 선택지보다 더 아찔한 선택이야. 이러면은 김가영도 나를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은 남자라는 것을 눈치채고 나에게도 철벽을 세울지도 몰라. 그렇다면 2번 선택지를 해야되겠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아름을 공략하기 위해 김가영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하는 2번 선택지를 선택했다.
[2. 김가영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선택지를 선택하셨습니다. 2번 시나리오대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네 그래요. 어차피 가는 방향도 같은게 같이 걸어가요.”
움찔
흠칫
이아름과 김가영은 아까까지의 나의 차가운 태도로 인해 내가 같이 걸어가자는 것을 진짜 받아들일줄은 몰랐던지 내가 같이 걸어가자고 하자 살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 가만있어보자. 무슨 이야기로 물꼬를 터나갈까?’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이야기를 하려 옆을 쳐다보았다.
옆을 보니 이아름은 눈웃음을 생글생글 지으며 대화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김가영은 무엇이 그렇게 불만인지 입을 삐쭉 내민채 땅을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아 가영씨.”
움찔
휘익
“네?”
내가 자신을 부르자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는 김가영
“가영씨 피피티 만드시는 솜씨가 진짜 훌륭하던데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드시게 된 거에요?”
대화의 중심이 다시 자신으로 돌아가자 가영이는 순간 얼굴이 발개지며 어버버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가영은 당연히 내가 자신의 옆에 있던 공대 여신인 이아름에게 말을 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김가영은 잠시 당황하다가 기분이 업된 듯이 내게 말했다.
“아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었거든요. 미술은 항상 거의 100점 받을 정도로 디자인 감각이 뛰어났었어요. 그리고 계속 미술 학원도 다녔었거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미대를 진학하려다가 미대가면 돈이 엄청 많이 든다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공대에 오게 되었어요. 그래도 대학교 들어와서도 계속 취미로나마 디자인 공부하고 했더니 피피티 만드는데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신이 난듯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쪼잘쪼잘 김가영이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 자신에게로 오는 관심에 많이 기분이 좋은 듯했다.
“아아 어쩐지 디자인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미대까지 가고 싶어하던 분이면 확실히 디자인 감각이 남다르겠네요. 저는 전형적인 공대남이라서 그런지 그런 미적 감각이랑 디자인 감각이 없거든요. 그래서 미적 감각이나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신 분들 보면 부러운데 김가영씨한테는 그런 점이 부럽네요.”
“아...제가 부럽다구요?”
한 대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보이는 김가영. 누군가에게서 자신이 부럽다라는 표현을 들은 것이 처음인 것 같았다.
“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얻는 부분을 가진 타인을 부러워하잖아요. 저는 학창시절 항상 미술 70점대 후반 아니면 80점대 초반 받고 그랬거든요. 게다가 저는 색약이 있어서 색깔 구분에도 좀 지장이 있어서 미적 감각이나 디자인 감각이 떨어져서 미적 감각이나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저도 성격이 좀 낙관적인 스타일이어서 왠만하면 그렇게 큰 부러움은 안 느끼는데 김가영씨의 미적 감각이랑 디자인 감각은 좀 부럽네요.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이라서 김가영씨의 그런 감각들이 눈에 더 잘 띠었거든요. 그래서 김가영씨가 피피티 보여주기 전에 그런 김가영씨의 미적 감각과 디자인 감각을 알아챌 수 있었던 거구요.”
“아……...칭찬 감사합니다...그나저나 색약이 있으시다니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김가영.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내가 미적 감각이나 디자인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맞는데 그것이 색약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색약이 있긴 했는데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을 주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색약이 질병도 아니고 생각보다 상당히 흔하게 나타나는 그런 시력 이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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