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실 미소녀 게임-18화 (18/599)

〈 18화 〉 동아리 오디션

* * *

그렇게 박혜진과 다른 남자 2명과 나는 같이 지하철 역으로 나왔다.

“다왔다. 우리집은 여기 지하철역 바로 앞이야. 가 볼게.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 기현이랑 민현이는 과에서 보고 명한이는 다음에 동아리방에서 보자.”

“아? 진짜? 집이 바로 이 앞이야? 아...알았어 그래 다음에 보자.”

“아 그래 알았어 다음에 과에서보자. 조심해서 들어가고.”

“아...그래 다음에 보자.”

우리를 보고 해맑게 손을 흔들고 뒤돌아 가는 박혜진.

우리는 그렇게 박혜진을 닭 쫒던 개처럼 멍하니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고요

그렇게 박혜진이 우리를 떠나가자 덩그러니 남은 세 명에게 침묵이 지나갔다.

나를 제외한 두 명은 다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고 싶은지 지하철 역을 힐끗 거리다가 차마 지하철을 타고 다시 돌아가지는 못 하겠는지 휴대폰을 키고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고 여기에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검색하는 듯 했다.

검색을 마친 둘은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하아 이런 방해꾼이 나타날줄은 몰랐는데 이건 진짜 완전 예상 밖이네. 인생은 진짜 알 수 없다니까..할 수 없지. 다시 로드해야겠다. 상태창.’

나는 상태창을 눌러서 다시 로드를 눌렀다.

[저장된 시점으로 로드를 누르셨습니다. 로드하시겠습니까? 로드시 100골드가 차감됩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로드를 눌렀다.

[로드를 선택하셨습니다. 저장된 시점으로 이동합니다.]

다시 눈 앞에 펼쳐지는 술자리와 상태창.

[박혜진과 이나은이 시간이 늦어 술자리에서 나가려고 합니다. 주인공 유명한은 네 가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1. 술자리가 파토난 김에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 해보자고 제안한 후 자리를 옮겨서 이은세 선배의 공략을 진행하도록 한다.]

[2. 자신도 집에 가야 한다고 하고 술자리에서 일어나서 박혜진의 공략을 진행하도록 한다.]

[3. 자신도 집에 가야 한다고 하고 술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나은의 공략을 진행하도록 한다.]

[4. 자신은 아직 술자리에 더 남아있겠다라고 말하고 술자리에 그대로 앉아 강은지의 공략을 진행하도록 한다.]

‘자 가만있어보자. 아무래도 1번과 4번은 선택하기보다 3번을 선택해서 스토리를 진행해보는게 낫겠지? 일단은 이번에 3번으로 스토리 진행을 해보자.’

나는 3번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3. 자신도 집에 가야 한다고 하고 술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나은의 공략을 진행하도록 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3번 시나리오대로 현실이 진행이 됩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아까와 같은 상황을 겪은 후 똑같은 갈림길에서 이나은과 같은 방향을 선택했다.

우리는 박혜진과 작별인사를 하고 반대편으로 내려왔다.

‘제발….여기서는 이나은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말아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나는 이번에도 이나은이 아는 사람과 마주쳐서 또다시 세이브했던 상황으로 돌아가 로드를 해야 할 상황이 오는 것이 두려워 긴장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열차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한걸음 물러서주시길 바랍니다.]

지하철 안내멘트가 들려오고 다행히 이나은를 아는 척 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나은과 지하철에 탑승하자 운 좋게도 두 자리가 비어 있는 곳이 보였다.

“우리 저기 앉아서 갈까?”

“그래.”

그렇게 이나은과 지하철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가니 무언가 이것이 맞는 선택지였다라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휴우 현재까진 나쁘지 않아. 이 정도면 이게 맞는 선택지 같은데?’

원래대로라면 나는 모태솔로 아다인 탓에 이나은과 단 둘이서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했었겠지만 현생의 나는 이미 이나은의 성격과 성향 좋아하는 것 그리고 취미 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풀어나가기가 매우 수월하였다.

“명한이 너는 취미가 뭐야?”

“나는 집에서 좋아하는 영화보면서 혼맥하는 거.”

“헐 대박 진짜? 나도 집에서 좋아하는 영화보면서 혼맥하는 거 진짜 좋아하는데?! 그거 내 유일한 취미야!”

“헐 대박 진짜? 우와 나랑 취미가 똑같은 사람 처음봤어. 나 막 비오는 날 기분 우울할고 할때 밖에서 비내리는 소리 들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보고 집에서 맥주 마시면서 힐링하곤 하거든.”

“헐 진짜? 명한이 너도 비소리 좋아해?”

“당연하지. 뭔가 비내리는 소리 들으면 기분 청량해지고 상쾌해지지 않아? 비 내리면 날씨 우중충해져서 싫다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비내리는 날 그 특유의 창가가 촉촉히 젖으면서 물방울들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거랑 비방울들이 땅바닥에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너무 좋더라고.”

“우와아아아아아 진짜 대박. 나 나랑 이렇게 취향 같은 사람 처음봤어. 여자들도 보통 비오는 날 날씨 꿉꿉하다고 싫어하는 여자애들도 많은데 남자랑 이렇게 취향이 겹칠 줄은 몰랐는데 완전 신기하다.”

이나은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나의 말에 호응을 하였다.

그렇게 이나은의 취미와 성향을 바탕으로 이나은과 이야기를 나누어 나가자 이나은과 급속히 친해지는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오다보니 어느덧 신도림 역에 가까이 왔다.

[이번 역은 신도림 신도림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두고 내리시는 물건이 없으신지 확인하고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역은 신도림. 신도림]

나는 이나은이 말하기전에 재빨리 선수를 쳤다.

“나은아 나 이번에 내려야 돼. 오늘 즐거웠어.”

“어? 진짜 너도 여기서 내려?”

“응 나 용산 살거든. 그래서 여기서 환승해서 집에 가야 돼.”

“헐 대박 너 용산 살아? 나도 용산사는데 대박!”

거짓말이다.

나는 용산에 살지 않았다.

하지만 전생에 나는 이나은이 용산에 살고 있다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나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이나은이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만들었다.

“우와 우리 이웃주민이었어? 완전 신기하다.”

“그러게~ 나 내 친구들 중에서 용산 사는 사람 처음 봐. 명한이 너랑 이렇게 잘 맞는데 사는 곳까지 같으니까 신기하다. 게다가 오늘 면접 때도 같은 조 되고 술자리에서도 같은 조 되고...진짜 뭔가 인연인가?”

고개를 갸웃 갸웃 거리면서 신기해하는 이나은.

이정도로 우연히 겹치면 의심해볼 만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렇게 우연을 계속해서 겹쳐서 만들어낼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나은은 이 모든 것을 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렇게 이나은과 또다시 용산역까지 환승을 하며 이야기를 하자 꽤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나은은 아무래도 나와의 만남을 인연이라고 생각하면서 경계심이 많이 풀어진 눈치였다.

게다가 나는 이나은의 성격과 성향을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나은을 공략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미소녀 연예 시뮬레이션으로 따지면 미소녀 연예 시뮬레이션 공략집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용산역으로 나온 후 우리는 개찰구에 표를 찍고 나왔다.

‘하아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도 이나은의 집까지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아니면 그렇게까지 우연을 겹치면 너무 이상하게 생각이 되려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나은이 가는 방향으로 나도 헐 대박 나도 그쪽에 사는데! 하고 따라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우연을 설정해놓은 탓에 집방향까지 같아버리면 이나은이 뭔가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까와는 달리 이나은이 사는 지하철 역은 알아도 이나은이 사는 집의 방향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먼저 선수를 칠 수 없다라는 부담감이 컸다.

‘일단 이나은의 상태부터 확인을 해봐야겠다. 스카우터’

[이름: 이나은

나이: 20살

키: 163

몸무게: 52kg

가슴: B

난이도: G

호감도: 35%

흥분도:0%

민감도:0%

친밀도:22%

레벨:15

이상형: 자상한 남자

성적판타지: 대학교 안에서 섹스

키워드: 연기연습

공략방법: 제한으로 인한 접근불가 ]

이나은의 상태창을 확인한 나는 지금 이나은을 공략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호감도랑 친밀도도 아직은 그렇게 높지는 않네. 하긴 오늘 처음 본 사이니까 이야기 몇번 나눈 것만으로 엄청나게 호감도와 친밀도가 증가하진 않겠지. 아니지 오히려 이정도면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많이 높아진 건가?’

나는 처음에는 호감도와 친밀도가 그렇게 높아지지 않아서 실망했다가 저것도 내가 그나마 이나은에 대한 정보를 전생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올릴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흥분도와 민감도가 다 0%네. 하긴 내가 뭐 이나은을 특별히 흥분시키거나 민감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니.. 어떻게 해야하지 흥분도와 민감도를 올리려면 뭔가 스킨십을 해야하고 스킨십을 하려고 하면 단 둘이서 술을 먹는게 제일 좋은데 여기까지 온 김에 단 둘이서 술을 먹자고 해볼까? 아아 근데 오늘 처음 만났는데 단 둘이서 술먹자고 하면 너무 작업거는 것 같은데 여자 꼬시는 쉬운 남자라고 첫인상 찍히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은데…’

­띠리리리링

그때 울리는 이나은의 전화. 이나은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 명한아 잠시만. 여보세요 엄마.”

그러자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이나은의 어머니의 목소리.

“어디야 지지배야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해?! 통금시간 얼마 안 남은거 몰라? 너 아빠가 알면 어쩌려고...”

“아 다왔어 지금 지하철 역 앞이야 바로 들어갈게!”

이나은은 황급히 전화를 끊고서 내게 말했다.

“명한아 미안한데 나 통금시간 다 되어서 먼저 가볼게.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 다음에 또 보자!”

이나은은 황급히 내게 손을 흔들고 1번출구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그러고보니 박혜진이랑 이나은 둘 다 집에 들어가야할 시간이 다가온다고 해서 술자리에서 일어난 거였지. 그러면은 박혜진이랑 이나은의 공략이 아니었던 건가? 그럼 이은세 선배나 강은지를 공략했어야 하나…. 그런데 이은세 선배는 어차피 남자들에게 잔뜩 둘러쌓여 있어서 공략이 되었을 것 같지도 않고...강은지는 뭐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또 이쁜 것도 아니어서 또다시 돌아가 굳이 공략을 해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게다가 너무 피곤한데..’

나는 선택을 한 번 되돌렸다가 똑같은 일들을 두 번 겪고서 이나은과의 시나리오를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피로감을 느꼈다.

세이브한 시점으로 되돌려도 그 전에서 있었던 일들과 상황은 모두 다 누적이 되기 때문에 신체적 피로감도 누적이 되는 듯 했다.

아무래도 계속 세이브와 로드를 무한대로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시스템적 제약인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이은세 선배는 공략이 오늘 어려울 것 같고 굳이 한 번 더 세이브 로드 하면서까지 강은지를 공략하고 싶지도 않고 래도 이나은과 이정도로 친해졌으면 이게 맞는 선택지인 것 같은데? 어차피 박혜진은 공략 불가능했잖아. 이정도면 좋은 성과야 최소한 호감도랑 친밀도는 많이 올려놨으니까 이정도로 만족하자 명한아. 아니야 그래도 이은세 선배는 한 번 공략을 해볼까?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2학년 퀸카잖아. 어라? 잠깐만 가만있어봐’

나는 갑자기 무언가 하나 놓치고 있던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에 이게 맞는 선택지라면?’

나는 이은세 선배를 공략하는 1번 선택지가 맞는 선택지가 아닐 경우를 상상해봤다.

세이브한 시점으로 돌아가서 이은세 선배를 공략하는 시나리오를 했을 때 아무런 성과가 없는 잘못된 선택지였다면 지금까지 내가 이나은을 공략해 놓은 시나리오가 무효가 된다.

즉 나는 또다시 3번 시나리오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했던 과정을 그대로 똑같이 거쳐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하기에는 피로감이 너무 컸다. 거진 한시간 가까이를 똑같은 일을 똑같이 반복해서 해야하는 것이다.

‘으아아 똑같은 일을 또다시 하는 건 미친짓이야. 그냥 여기서 만족해야겠다.’

나는 이것이 맞는 선택지라고 생각하면서 이나은과의 시나리오로 상황을 종료하기로 했다.

‘하하하하 근데 진짜 이거 여자들 공략하는 것도 은근히 피곤한 일이네. 여기 용산역에서 우리집 가려면 시간도 그렇고 많이 갈아타야 하는데 참 여자 따먹기 쉽지 않구나.’

나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면서 웃으면서 다시 개찰구로 카드를 찍고 들어섰다.

그렇게 나는 지하철을 혼자 타고 돌아오면서 생각을 했다.

‘하아 진짜 선택을 한다라는게 쉬운 게 아니구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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