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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54화 (154/170)

154화 S급 던전 (5)

하오란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했다. 그러고도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그렇게 안전에 안전을 기울인 끝에. 인벤토리 안에 잠든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을 꺼냈다.

우웅!

예상했듯, 마법사전이 흔들리며 자신을 열어달라 하고 있었다.

오냐. 열어주마.

촤르륵!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이 펼쳐졌다. 열다섯 번째 장부터 시작이었다. 두꺼운 마법사전에서 열다섯 번째는 그래봤자 극초반부.

7서클에 도달한 이후부터 늘 궁금했다.

7서클인데도 겨우 이 정도밖에 넘기지 못했는데, 이 두꺼운 마법사전을 언제 다 배우지?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사막에서 페이지를 넘길 때와 비교해도 속도를 비교할 수 없었다.

거기에 비례해 마법사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느려진 세상에서 오로지 마법사전만 배속을 더한 듯 속도를 냈다.

잠시만.

궁금하기는 했다만, 이건 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마법 사전을 열었을 때 겪었던 그 고통, 사막에서 깨달음을 대가로 뇌가 녹아내릴 뻔했던 사건들이 생각났다.

아락투스는 결코 친절한 스승이 아니다. 큰 힘에는 그만큼 큰 대가를 요구한다.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거기에 더해 의문 하나가 더 생겼다.

내가 배우지 못한 마법의 종류가 있었나?

물, 불, 대지 등의 원소마법부터 정신계열, 이계에서는 금지됐다고 취급받는 흑마법까지.

심지어 마법 이상의 마법이라 평가받는 공간을 다루는 마법까지 익혔다.

그런 내가 배우지 못한 종류의 마법이 있을 리가.

그사이 페이지가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스멀스멀 글자들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피부를 타고 위로 오는 그것들이 죽음의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침을 꿀꺽 삼킨 직후였다.

머릿속에 정보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한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줄어든 생명을 늘리는 법이 있다면 좋겠다는 것.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원한다면 노화와 죽음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반신의 경지라 말한 것도 거기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임한나는 다르다.

이미 줄어든 임한나의 수명과 빌어먹을 특성이 잡아먹은 생명력.

그것들을 되찾아올 방법은 없나?

화악!

그렇게 글자들이 팔을 올라타고 머릿속에 안착된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안도감이었다.

극한의 고통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종류의 마법도?

없다. 아니, 애매하다.

[공간 마법의 극의란.]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차원이동의 비밀.]

[드래곤이 사용하는 메테오 스톰의 원리.]

[저주 마법의 근원이란.]

[4대 원소의 최종.]

수십 장이 넘는 마법사전을 넘겼는데도 새로운 개념의 마법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반쯤 예상하기는 했다.

그것은 내가 이미 모든 종류의 마법을 다룰 줄 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에는 심지어 이계에서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이 익힌 것들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

마법의 숙련도 문제.

솔직히 말하자면 내 마법의 수준이 드래곤인지 뭔지 하는 것들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했었다.

낮더라도 한 끗 차이라도 생각했는데.

그것은 완벽한 오만이었다.

이제껏 내가 썼던 건 마법 흉내내기였다.

허탈한 감정 위로 마법의 개념이 단단하게 자리잡아 간다.

물, 불, 대지 등의 원소마법부터 상대의 정신을 건드리며 호르몬까지 조절하는 정신 계열, 흑마법까지.

어느새 나는 눈을 감고 있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울에 비친 눈동자는 충만한 만족감으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이 단 한 장을 제외하고 모두 열려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지막 장.

아마 마법의 끝이라 불리는 9서클에 도달해야 열 수 있겠지.

그것은 오로지 드래곤에게만 허락됐다는 경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더더욱 8서클과 9서클의 차이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감으로나마 예상하는 게 아닌, 체감할 수 있는 경지의 차이였다.

하오란은 이계에서 드래곤의 둥지에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것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하오란의 얼굴만으로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분명 나 못지않은 고통의 세월을 겪었겠지.

원래 강자라는 건, 생명체를 가리지 않고 같은 특징을 공유하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드래곤과 전력으로 맞붙으면 내가 질까?

아니.

“6:4로 내가 이긴다.”

9서클의 마법이 온 세상에 뿌려지겠지만, 그로 인해 이 세상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하겠지만.

그럼에도 300레벨 직전의 검술은 그것들을 감당하고도 남는다.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내친김에 한가지 가정을 더했다.

그렇다면 성요한과 내가 싸우면?

“반반.”

겪어보지도 않았던 드래곤을 상대로 승리를 점친 것과 반대로, 이미 마음속으로 수천 번은 싸웠던 성요한과의 대결은 보이지 않았다.

“미친놈.”

왜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면 저만큼 도망하고, 뛰어넘었다고 확신하면 내 위에 있는 거냐.

다만, 이번에야말로 턱끝까지 놈을 추격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하오란의 말대로, 부디 이번 아락투스의 던전에서 그 해답을 찾길 바란다. 부디 내 처절한 발악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약속대로 임한나는 연무장에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임한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가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기는 한데, 설명해줘봤자 믿지 못할 일만 가득하다.

임한나와 나의 신뢰에서 말은 필요도 없고.

바로 임한나의 어깨를 붙잡고 임한나의 내부 속에 들어갔다.

임한나의 상태창을 구성하는 스킬, 특성 부분이 보였다.

그중 가장 강렬하게 빛나는 것은 역시 특성 부분 중의 하나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검신의 축복보다 밝게 빛나는 특성이 있을 줄이야.

[천재박명(S) : 모태부터 각성자인 당신에게는 무한에 가까운 성장 잠재력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능력치가 올라갈 때마다 수명이 줄어듭니다. 짧고 굵은 당신의 삶이 화려하게 빛나기를.]

염병할 설명창까지 확인한 후였다.

드르륵!

거침없이 그것을 뜯어냈다. 그 과정 중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는 그냥 삭제해버리는 것.

이 경우 마력으로 이루어진 특성은 공중에 흩뿌려진다.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두 번째로는 단순히 경험치로 전환시키는 것.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이걸 먹어서 300레벨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SS등급이 되는 것의 조건에는 단순히 경험치만 필요한 게 아니다.

김수정을 통한 검술의 극의를 달성하고, 아락투스를 통해 마법까지 통달해야만 한다.

세 번째로는.

이건 나도 처음 알았다.

-특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특성 : 재인박명(S)!

바로 내가 얻어버리는 것.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기하급수적으로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나는 원한다면 불로불사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왔다.

특성 따위가 내 생명력을 어찌할 수는 없다. 패널티는 지우고,

지금 당장은 뚜렷한 효과를 확인할 수 없지만.

무려 검신의 축복보다 밝게 빛나는 특성이다. 이건 무조건 내가 가져가야 한다.

“꿩 먹고 알 먹고라고 해야 하나.”

“……뭐?”

“상태창을 확인해라. 임한나.”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허공을 맴도는 임한나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것도 강도가 8쯤 되는 대지진이.

임한나가 입술을 뻐끔거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얘가 이 정도의 리액션을 보여주는 건 정말 드문데.

“카메라로 이걸 찍어야 하는데.”

“내, 내 특성이.”

“그래. 사라졌다.”

“어떻게, 어떻게.”

“그 과정에서 네 생명의 절반을 살릴 수 있었다.”

마법사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생명의 불꽃이라는 게 있다. 촛농 크기에 불과했던 임한나의 생명력이 지금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남은 절반도. 조만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락투스의 던전에서, 9서클의 힘을 얻은 뒤에 말이다.

일단 그보다.

물에 휩쓸리듯 허우적거리는 임한나를 진정시켰다.

“이럴 땐 고맙다고 말하는 거다.”

“고맙지! 고마운데, 도무지 믿겨야 말이지. 뺨 한 대만 때려줄래?”

“원한다면.”

“아니. 기다려봐.”

제 볼을 꼬집은 임한나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아프지가 않아. 세게 꼬집었는데도 안 아프잖아. 빌어먹을 꿈이었다니.”

아무래도 애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나로서는 지금이 기회였다.

“임한나. 지금부터 들려줄 게 있다.”

임한나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쳐다본다.

“그래. 아무리 꿈이라도 설명은 들어야겠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내 특성을, 말해봐.”

“일성에 입사했을 때부터, 그러니까 첫날부터였을 거다. 내가 미래…….”

“안 들을래.”

“……?”

“생각이 바뀌었어.”

“뭐라고?”

아무리 여자의 마음이 갈대같기로서니, 이런 상황은 도무지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안 듣겠다고?”

“응. 현실에서 들을래. 대체 언제부터 잠들었던 거지?”

“……임한나. 여기가 현실이다.”

“내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긴 많았어. 이딴 개꿈이나 꾸다니. 그래 이건 심했어. 이태진이 백마 탄 왕자 스타일은 아니지.”

“그게 무슨.”

“됐고, 이제 나가줄래?”

그게 끝이었다. 어느 순간 피식피식 웃기 시작하던 임한나가 나를 밀어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내 몸은 속절없이 연무장 바깥으로 밀려 나갔다.

***

“돌아올 때까지 완벽하게 분석해놔야 할 거다.”

김수정이 울상이 된 얼굴로 비디오테이프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내 검술의 처음부터 끝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내 얼굴을 살핀 김수정이 히익, 하며 고개를 숙였다.

김수정이 가진 헤라의 시선을 내가 흡수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굳이 여기서 더 특성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김수정은 김수정대로 이용하면 될 뿐.

“아참. 한나 언니가 말 좀 전해달라던데요.”

김수정이 말똥말똥한 눈을 크게 들어올리며 말했다.

“다시 말해달라고, 이번엔 들을 준비가 됐다던데요. 현실인 줄 몰랐대요. 되게 간절해 보이던데.”

그 표정을 재현하듯 김수정이 애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래도 백마탄 왕자랑은 안 어울린다던데.”

“버스 떠났다고 전해라.”

***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호수에 잠든 S급 던전에 가기까지.

우리를 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사람이 없는 도시처럼 보였다.

썰렁한 도로는 죽은 자들의 도시를 방불케 했다.

“기자부터 다른 각성자 세력까지 막아뒀다. 아무도 추적하지 못하게끔.”

하오란은 오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듯했다. 사뭇 비장한 표정에 흐트러진 호흡까지.

웃기는 노릇이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는 세상이라지만. 하오란과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힘을 합칠 줄은 몰랐다.

던전이 가까워질수록 둥둥거리는 진동이 울렸다. 눈에 힘을 주자 호수 한가운데 두둥실 떠 있는 보라색 게이트가 보인다.

“던전에서 퍼지는 파동이다. 그래, 파동. 우리가 힘을 재는 단위 말이다.”

“게이트로 변하기 직전으로 보이는군.”

“그래. 색깔이 너무 진하지. 그것 때문에 시카고 전체가 이주를 시작하고 있다. 멍청한 짓이지. 그것들이 세상에 풀려나면 아메리카 대륙이 사라질 텐데.”

녀석이 나를 보며 억지로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녀석이 정색하며 말했다.

“우리 둘이 힘을 합쳤다는 건 이미 성요한이 알고 있을 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겠군.”

“많이 겪어본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두 번. 둘 다 사경을 헤매고 살아났지.”

“…….”

“이태진. 다시 말하지만 더 이상 나는 너를 도모할 생각이 없다. 내 목적은 오직 하나. 성요한을 몰아내는 것뿐이다.”

“그것참 믿음직스럽게 들리는데.”

“부디 극한의 상황이 닥쳐도, 이 나를 배신하지 말라는 말이다. 나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너를 살리려 노력하겠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운명공동체라는 걸 잊지 말도록.”

“……?”

녀석이 정면을 바라본 채 호흡을 골랐다.

“S급 던전은 성요한에게 가는 길이지만, 그 자체로 우리에게 내려진 시련이다. 심지어 이곳은 평범한 곳도 아니지. 등급이 있다면 SS급으로 불려야 할 만큼.”

“어지간히 긴장한 모양이군.”

“살아나왔으면 좋겠군. 입장한다.”

***

그러한 하오란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던전 진입 이틀 차.

“크아아아악!”

하오란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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