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S급 던전 (3)
일성의 직원들이 우르르 로비를 빠져나왔다.
“후아! 이제 살 것 같네.”
“하여튼 팀을 옮기든가 해야지. 왜 이렇게 지랄이야? 나한테 뭐 맡겨놨어?”
“킥킥. 그러게 미리미리 검술 좀 훈련하면 좀 좋아? 팀장님 성격 알면서.”
직원 중 하나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면 거기 지원해 보는 거 어때? 이태진 팀장님 팀. 사람 구하고 있다던데.”
“그래? 저번에는 경쟁 치열해서 못 들어갔잖아. 이번에는 좀 쉬우려나.”
“말도 마라. 그때보다도 힘들어질걸? 이번에는 다른 팀보다 보수 두 배에, 아이템까지 약속했으니까.”
“와. 돈으로 쓸어 담겠다는 거야? 아서라. 난 그런 팀 싫다.”
“헌터가 돈 많이 주는 데 가는 거지, 싫긴 왜 싫어?”
“정이 없잖아.”
방금까지 팀장을 욕하던 직원이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눈빛은 착 가라앉은 게 이태진에 대한 감정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야. 이태진 특기 알지? 뭐든 잘 가르치는 거. 그거 때문에 외부에서도 이태진 팀 오려고 난리잖아. 이태진 팀장한테 한번 교육받고 나면 검술이 달라진다고.”
“그거 유명하긴 하더라. 그런데 뒤에서 볼 땐 별거 없던데. 너무 거품 낀 거 아니야?”
직원들의 반응을 살핀 그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래봤자 근거리 딜러만 잔뜩 모일 거고. 아무리 이태진이라도 힐러를 가르치진 못할 거 아니야.”
“그건 그것대로 박지현 덕에 해결했다더라. 박지현이 자진해서 힐러들 키우겠다 했다더라.”
“그 까다로운 박지현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진 팀장이 구워삶은 거지. 하여튼 능력 좋다니까.”
“능력이 좋기는. 좋았으면 A급 던전 실패했겠어?”
“그래서 이번에 또 갔다 왔잖아. 뭐야, 못 들었어?”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난 전처럼 막 신비로운 이미지는 사라진 것 같다.”
“신비로운 이미지?”
“그렇잖아. 갑자기 예능을 나오지를 않나, 초코바를 먹질 않나. 좀, 깨지.”
나머지 직원이 입을 샐쭉 내밀며 이어 말했다.
“마치 실패를 예쁘게 포장하려고 애쓰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뭐?”
“솔직히 이태진 팀장님. A급 던전 공략도 한석훈 팀장한테 업혀 갔을걸? 한 팀장님이 그 사람 엄청 챙기잖아.”
말을 마친 직원이 아차했다. 분위기가 요상했던 탓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눈빛마다 의아함이 섞여 있었다.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왜 이래들? 저번에 나랑 같이 이태진 깠던 거 기억 안 나? 태세전환이야 뭐야.”
그러던 문득, 자신을 바라보던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대체. 못 들었어 진짜?”
“반응 보니까 아무것도 못 들었나 보네.”
“뭐, 뭐? 뭘 못 들어.”
혀를 끌끌 찬 직원이 다른 직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A급 던전 공략 최단기간 레코드 경신했잖아. 이태진 팀장이.”
“……뭐?”
“그것도 웬 음지 애들이랑 들어갔다더라. 나오는데 옷도 그렇고 상태도 그렇고. 다친 곳 하나 없었다더라.”
“오늘 자 속보니까 몰랐을 수도 있겠다마는. 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한 대 맞을걸?”
직원이 로비 바깥으로 길게 늘어선 줄 하나를 가리키면서 마저 말했다.
“저기 저 줄이 이태진 팀 들어가려고 선 줄이야. 야. 세상이 달라졌다. 일성의 이태진이 아니야. 이태진의 일성이다.”
***
처음 들어갔던 던전이 6일 걸렸다. 그다음 던전은 5일, 그 다음은 4일이다.
시간이 하루씩 당겨질수록 사람들은 열광했다.
처음에는 내 공략 사실을 의심하던 대중들도 이제는 다음 공략이 며칠 안에 끝날까 궁금해할 정도.
그래서였다. 던전이 게이트로 바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공략을 끝내고 나왔을 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여기 야산 아니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곧장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이태진 씨! 한 말씀만 부탁드릴게요!”
처음에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어버버하던 팀원들도 이제는 익숙해진 상태였다. 심지어 박지현은 익숙한 듯 손을 흔들었고, 조영은은 이때가 기회라며 카메라에 대고 정체불명의 미소까지 지어댔다.
“이제 나도 스타 되는 건가?”
“웃어. 광고주들은 웃는 거 좋아해.”
“역시 저 언니가 싸가지는 없어도 뭘 좀 아네. 음지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장하다, 조영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조영은을 지나쳤다.
이어지는 발걸음 그대로 걸어갔다. 야산 중턱,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스카프를 치렁치렁 두른 홍주연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다가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한석훈 팀장님 말대로였어요. 미국 시카고, S급 던전 내부에 있었다더라고요.”
“아락투스.”
“맞아요. 그 던전 안에 들어가면 그런 메시지가 뜬다고 하더라고요. 아락투스의 권역 내에 있다고.”
미국 시카고의 한 호수에서 발견된 S급 던전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던전은 내 마법적 근간을 이루는 아락투스의 권역 내에 있는 던전이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공략하려고 했던 것이고. 거기에 있는 몬스터, 뜨는 아이템들은 필히 내게 이득이 되면 됐지 손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혹시 하오란은 이걸 알고 그 던전에 간 것일까?
확률로 따지자면, 알고 그랬을 가능성이 99퍼센트다.
놈 또한 시스템의 예지를 받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공략은 어떻게 됐습니까? 성공했습니까?”
“아뇨. 실패했습니다.”
속으로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같이 데려간 팀원이 서른에 가까운데, 살아 돌아온 건 하오란 한 명뿐이었어요. 같이 들어간 동료들도 하나하나 네임드급 헌터였는데 말이죠.”
“하오란도 상태가 안 좋겠군요.”
그럴 것이다. 아락투스의 던전인 만큼 리저드 류가 튀어나왔을 것이며, 필히 중독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지금이 기회……!
“아뇨. 다친 곳은 한 군데도 없었어요.”
“예?”
“아이템도 손상된 것이 없었고, 몸 상태도 던전에 들어가기 전과 다를 게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아, 마치 지금 팀장님처럼요.”
“어떻게요?”
“예?”
“아닙니다.”
어떻게 그곳에서 아무 부상도 달지 않고 나올 수 있었지?
“하오란은 계속 추적 중입니까?”
“아뇨. 팀장님 말씀대로 직접적인 접근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정보통도 일반인으로 구성돼 하오란의 저택에서 가사 일을 하고 있고요.”
“잘하셨습니다.”
“다음 보고 사항은, 손정연… 사후 협회 분위기인데요.”
홍주연은 유독 손정연이라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올 사람 없으니까 편하게 말하세요.”
정확히는 내가 기막을 쳐놔서, 와봤자 대화를 못 듣는 것이지만.
“네로드 관련해서 떡밥 던져 주니까 확실하게 물더라고요.”
“확실하게 물었다는 건?”
“손영혁 협회장 대리가 조만간 손정연의 사망을 발표할 예정이고, 협회의 총력을 나머지 레인 우버를 잡는 것에 다할 것으로 보입니다.”
“레인 우버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쪽도 협회에 맞설 것으로 보이더라고요. 자기들 대장이 죽었는데 가만 있으면 면이 상한다는 거겠죠.”
계획대로다. 이이제이라고, 저들끼리 알아서 망해 주면 이보다 좋은 시나리오는 없다.
더군다나 놈들의 전쟁이 길어질수록 내 주위는 안전해질 것이고.
“협회에서도 이태진 팀장님 팀에 대한 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손정연이 죽은 지금, 협회는 메리트 없다는 말도 많고.”
“협회에서 온다고 하면 묻지 않고 연봉협상은 맞춰준다고 했으니까요.”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가도 될까요? 협회가 좋게 보지는 않을 텐데.”
“레인 우버만 해도 정신없을 겁니다. 더군다나 손정연이 사라진 지금 국회의 견제를 막을 수도 없을 거고요.”
“민수정.”
아카데미 총장 민수정.
그녀에게 몇 가지 언질을 줘놨다. 협회를 공략할 거면 지금 하라고.
아마 이 일로 민수정은 정계에 회려하게 데뷔할 것이고, 그것은 내게 빚을 진 것과 다르지 않다.
민수정의 권력이 커질수록 내 권력이 커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힘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지만, 힘으로만 해결했다가는 내가 봤었던, 끔찍한 미래처럼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안 그래도 이태진 팀장님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분이.”
“뭐라고 했는지는 안 들어도 알만 하군요.”
“옆에 있었으면 키스를 갈겨 줬을 거라던데. 혹시…….”
“그런 사이 아닙니다.”
“은근 인기 많네요.”
몇 번 더 실없는 소리를 하던 홍주연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 시타둠 교에 대해서는 아직 나오는 게 없더라고요. 워낙 베일에 싸인 종교라 그런지.”
“그놈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미래는 모두 내가 흘려 보냈다. 협회장이 되는 것도, 일성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 미래도.
하지만 시타둠 교만큼은 내가 요긴하게 쓸 예정이다. 제일 위에 있는 일 장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고 많으십니다.”
“별말씀을요. 저도 재밌고 좋네요.”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만 위험할 것 같다 싶으면.”
“제 몸부터 빼죠. 당연히.”
홍주연이 씨익 웃었다.
***
“오빠. 아니, 팀장님. 저거 보여요?”
김세린이 내 집무실 창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람들 줄 선거. 다 우리 팀 오려고 그러는 거래요.”
“얼씨구. 김세린. 그 변태스러운 웃음은 뭐냐? 어디서 건방을 떨어?”
곧장 박하영이 김세린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내가 뭘! 야! 이거 놔!”
“이게 또 선배 노릇 하려고. 저기 있는 사람들 다 너 하나쯤은 한 손으로 발라먹는 거 모르냐?”
“한 손은 아니야! 그리고 선배 맞지. 엄연히 내가 이 팀 먼저 들어왔는데.”
“얼씨구. 한 대 맞고 울지나 마라.”
“그땐 팀장님이 나 지켜줄걸? 맞죠, 팀장님?”
달라붙는 김세린을 가차 없이 떼어냈다.
“그런데 이 시간에 팀장님이 웬일이에요?”
“할 일이 있어서.”
“새 팀원들 뽑는 거요?”
“그건 조금 뒤로 미뤄두고.”
오늘 회사에 온 이유는 임한나 때문이다.
드디어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임한나의 몸에 있는 이상한 혹덩이를 떼어낼 확신.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연무장에서 땀을 흘려대는 임한나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가진 힘을 팍팍 드러내며 화살을 쏘아대는 임한나.
그러던 중, 임한나가 나를 발견하고 머쓱하게 웃었다.
“이것 봐. 이 정도면 A급 던전에도 꿇리지 않겠지?”
“…….”
“뭐야? 그 눈빛은.”
“무슨 눈빛.”
“굉장히 수상한 눈빛인데. 뭔데. 까 봐.”
이제 보니 알 수 있었다. 임한나가 점점 더 예뻐지는 이유는 다름 아닌 녀석이 몸에 지닌 특성 때문이었다.
“설마 한꺼풀 더 벗겨낸 거냐?”
느낌을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매커니즘도 봉인을 풀수록 수명과 힘을 맞바꾸는 것 같고.
“뭐?”
“이번엔 얼마나 수명이 줄어들었지? 이게 무슨 헛짓거리냐. 임한나.”
덤덤하게 물으려고 했는데, 화가 치솟았다.
그러나 화내는 것보다 할 일이 먼저였다. 임한나의 어깨를 잡고 그녀의 내부를 관조하려던 그때였다.
“팀장님.”
뒤를 돌아보자 김주현이 헉헉대고 있었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터라, 나가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 기감에 잡힌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멀지 않다. 이 건물 내부에, 그것도 내 집무실 안이다.
“오래된 친우가 찾아왔다고 전해 달라던데요. 그런데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써서 누구인지…….”
“갈게요.”
하오란.
놈이 내 쪽으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