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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50화 (150/170)

150화 S급 던전 (1)

우리 시스템께서는 내가 강해지는 걸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허용한 범위, 자신이 허락한 방식에 한한 것이었지,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몬스터를 죽이고, 아이템을 획득하고, 유저의 힘을 제약하기 위해 쓸모없는 스킬과 특성도 넣어두고.

내가 그 모든 것들을 부수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멍해진 김수정에게 스킬을 정리할 시간을 잠시 주고. 내게도 시스템과 합의할 시간이 필요했다.

“당신이 바라는대로, 성요한을 죽이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쓸모없는 스킬과 특성을 정리하고 재분배하는 방법이요.”

-경고! 시스템이 안배해둔 길을 따라 가십시오.

“제가 배신할까봐 두렵습니까? 설마요. 사막에서부터 확인했지 않습니까. 옆에서 하는 헛소리에 제가 한 번이라도 귀를 기울인 적 있습니까?”

“지금도 당신과 합의하려고 대화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전처럼, 망나니마냥 제가 날뛰길 원하십니까?”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분이니 지금 제 마음을 읽어 보십시오. 허튼 생각을 하는지, 안 하는지.”

침을 꿀꺽 삼키고 뒤이어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지금이 중요하다. 과연 시스템은 이전처럼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을까?

답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쯤에서 나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시스템은 내 생각을 읽을 수 없다.

아마 시스템이 만든 상태창을 다룰 수 있게 된 순간부터겠지.

그것은 시스템과 나의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다른 말로는, 성요한과의 일이 끝난 후도 생각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허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부디 제 믿음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 몬스터와 성요한을 몰아내는 것. 이것만 생각합시다.”

침묵은 곧 긍정이다.

나는 속으로나마 쾌재를 불렀다. 지금 같은 순간을 위해 시스템을 열심히 따르는 척했다.

내가 시스템을 믿는다?

그것만큼 웃기는 소리가 없다.

성요한도, 시스템도, 이 땅에 사는 몬스터들도.

모조리 몰아낼 것이다.

***

“헤라의 시선. 헤라의 시선.”

계속해서 상태창의 스킬을 살펴보는 중인지, 김수정은 같은 말만 계속 중얼거렸다.

“효과가 뭐지?”

“어, 그게, 그러니까.”

나한테나 S급 스킬이 발에 채이는 것이지, 평범한 각성자들에게는 평생에 단 한 번도 보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당황하니까 조금 짜증나는데.

내 눈빛을 느낀 김수정이 몸서리를 친다.

그것도 잠시, 냉수까지 한 모금 들이킨 김수정이 머리를 털며 설명을 시작했다.

“효과 자체는 그전과 비슷해요.”

“비슷하다?”

“상대방의 약점을 관찰하고 파훼하는 것. 신의 이름이 들어간만큼 효율이 늘어난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한 건 아직 모르는군.”

“아직 못 써봤으니까요. S급스킬을 제가 들어나 봤겠어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라고 물어도 대답 안 해주실 거죠?”

김수정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제가 S급 헌터가 되다니. 아, 물론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할 거예요. 가족한테도. 안그러면 이태진 씨가 야밤에 등장해서 제 모가지를 쓱삭 해버릴테니까.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답니다.”

“…….”

“그런데 FBI 같은 곳에서 납치하러 오면, 이태진 씨도 저를 구해주러 와야…….”

“그만.”

더 듣고 있다가는 나도 혼이 나갈 것 같다. 김수정에게는 한 번 더 냉수를 들이켜게 한 다음, 검을 잡았다.

“지금 시작할까요?”

“아니. 지금 당장 해봤자 소용 없겠다.”

아마 며칠 동안은 제 스킬에 대한 감각 훈련이 필요할 터.

“김태평을 붙여주겠다. 3일 안에, 김태평의 약점과 공략 방법을 분석해 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김수정을 집무실 밖으로 쫓아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누구도 옆에 있어서는 안되니까.

이름 : 이태진

레벨 : 298

스킬 : 오러 블레이드(S), 아드레날린 부스트(S), 신성한 파괴자의 검술(S), 일점폭발(S), 집중(S), 도약(S)…….

특성 : 검신의 축복(S), 무아지경(S), 인내하는 자(S), 전사(S), 만독불침(S)…….

체력 : 338.

마력 : 310

근력 : 447

민첩 : 365

시스템의 의심도 걷어냈겠다, 쓸데 없는 것들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내 안의 것들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 몸 가장 깊숙한 곳에서 시스템의 구조가 눈에 띄었다.

스탯, 스킬, 특성 등, 분류된 공간마다 제 역할이 확실했다.

이것들은 얽히고 설켜있어,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의사가 수술을 집도하듯 조심스럽게 그것들 중 하나를 건드렸다.

[스킬, 도약(S)을 경험치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도약(S)이 경험치로 전환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것부터,

[스킬, 집중(S)을 경험치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집중(S)이 경험치로 전환됩니다!]

스킬보다 조금 더 무거운 특성,

[특성, 전사(S)를 경험치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전사(S)가 경험치로 전환됩니다!]

경험치가 죽죽 차오른다. 하지만 핵심은 경험치 그 자체보다, 앞으로 있을 남은 스킬의 숙련도에 있다.

[스킬, 일점폭발(S)을 경험치로 전환……!]

[특성, 무아지경(S)을 경험치로 전환……!]

[특성, 인내하는 자(S)……!]

[특성, 만독불침(S)……!]

단 두세 개의 스킬과 특성만 남겨두고 다 지운다.

각성자로서든, 혹은 이세계의 대전사로서든 끝에 다다랐다고 여겨지는 지금, 유일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를 이루고 있는 핵심 스킬과 특성이 하나하나 벗겨졌다.

그럴수록 몸이 가벼워진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덜어낼수록 남은 스킬과 특성이 빛을 발한다.

이윽고.

이름 : 이태진

레벨 : 298

스킬 : 오러 블레이드(S), 아드레날린 부스트(S), 신성한 파괴자의 검술(S)

특성 : 검신의 축복(S)

스킬 세 개와 특성 하나만 남겨뒀을 때, 눈을 떴다.

내 앞에 뜬 메시지 하나.

[레벨업!]

이제 성요한까지, 한 걸음이다.

***

당연하지만 네로드와 손정연이 죽었다고 해서 일반인에게 바로 알려지는 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은 그 자체로 1급 기밀로 다뤄질 터, 각국의 주요 정보기관을 제외하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떤 면에선 협회가 대단했다.

일성의 정보원들도 아직 손정연의 죽음을 모를 만큼 철두철미하게 일을 진행 중이니까.

“정말이에요?”

홍주연이 몇 번이나 되물었다.

“도무지 믿겨야 말이죠. 그래서, 제가 할 일은 어떤거예요?”

“조용히 퍼트려 주세요. 결국엔 모두가 알 수 있게. 출처 없이 나르려면 음지쪽이 편할 것 같은데.”

“예. 아무래도 그렇죠. 그런데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누구예요? 그러니까, 죽인 사람이.”

홍주연이 그러며 나를 슬쩍 바라봤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네로드. 전투 흔적은 한강 요트 선착장에 가보면 있을 겁니다. 마력 파장은 지우지 못했을 테니까.”

좀처럼 놀라지 않는 홍주연이 사색이 될 정도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더 설명 안 해도 될 것 같다.

더군다나 홍주연이 마음에 드는 점은, 내가 어떻게 이것을 알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소스를 캐내려고 협회에서도 저를 역추적하려 할 거예요.”

“경호가 필요합니까?”

“아뇨. 소스를 숨기고 정보를 퍼트리려면 그만큼 돈이 든다는 거죠.”

“액수를 적어 놓으십시오. 블랙마켓 계좌로. 아참. 저번에 부탁했던 하오란은 어떻게 됐습니까?”

홍주연이 찜찜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그쪽만큼은 도통 정보가 없어요. 어떤 루트를 써도 마찬가지예요. 마지막으로 위성사진에 찍힌 곳이 상하이 국제 공항. 그 외에는 철저하게 장막에 싸여있어요.”

그러면서 홍주연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마 한석훈 팀장님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네요.”

갑자기 웬 한석훈?

“화신 해체 후에도, 꾸준히 중국 쪽이랑 컨택한 게 한석훈 팀장님뿐이거든요. 뜨거운 제자 사랑, 그런 거 아닐까요?”

***

“요즘 수상해.”

한석훈이 흐느적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맞아요. 수상해요.”

“도통 뭘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 좋아하던 연무장에도 보이질 않던데.”

“맞아. 수상해. 설마 은퇴?”

“헉!”

“말이 되냐. 던전에 미친 저 사람이 은퇴를 하게.”

B팀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평소라면 같이 동조하며 나를 놀릴 임한나인데, 어째 오늘은 다르다.

확신에 찬 눈빛과 함께 애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저번 A급 던전이 좀 충격이었어야지. 너무 걱정하지 마. 조만간 다시 공략할 거니까. 그렇지?”

눈으로 사람을 쿡쿡 찌르면 저런 느낌일까. 아니라고 대답하면 너무 실망할 것 같은데.

나는 대답 대신 한석훈을 조용히 따로 불렀다.

옳다구나 하고 따라온 한석훈이 슬쩍 물었다.

“말해봐. 혼자 뭘 그렇게 준비 중이야?”

“하오란이요.”

“……뭐?”

“하오란이 저를 노리고 있다는 게 사실이에요?”

“야, 인마 그건.”

사실일 거다. 저번에 확인한 보고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하오란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그놈, 수상해요. 항간에는 저를 도모한다는 소문 있고.”

당연히 시스템의 미래 예지가 끊긴 지금은 더더욱 나를 죽이려 혈안이 됐겠지.

“중국 쪽은 팀장님이 전문이잖아요. 제가 뒤적거려 봤는데 영 나오는 게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저번처럼 넋 놓고 당할지도 모르고.”

“니가 가만히 당할 놈이냐?”

“그래도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한석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상한데.”

하여튼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나는 곤란한 표정을 만든 다음, 한숨을 쉬었다.

“사실 경고 정도는 해두려고요. 어차피 서로 건드려서 좋을 거 없으니까.”

“아서라. 지금 하오란이 옛날 하오란이 아니야. 너 괜히 까불었다가…….”

“바로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위치만 알려주세요.”

한석훈이 팔짱을 낀다. 오래 봐서 알 수 있다.

저건 오케이 사인이다.

“어차피 가고 싶어도 못가니까 알려준다.”

“못 간다고요?”

“그래. 하오란 그 새끼 지금, 미국에 있어. S급 던전 공략하려고.”

***

꾸아아아앙!

동굴의 벽면이 터져댔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리저드류의 몬스터가 수백이었다.

하나하나가 A급 이상의 괴물들.

하오란은 쏟아지는 몬스터를 가만히 바라봤다.

“젠장할! 피해! 하오란 님!”

파티로 들어간 30인 중 열다섯이 죽었다. 채 던전의 절반도 공략하지 못했는데도 그랬다.

하지만 애초에 하오란이 이 던전에 들어온 이유는 던전 자체를 공략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왜 저를 떠나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기 몬스터 안보여요? 하오란 님!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고 봐야……!”

콰직!

방금까지 자신을 끌고 가려던 녀석이 리저드에 잡아 먹혔다. 그러고도 하오란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그때, 하오란이 팔을 휘둘렀다. 창끝에 걸린 리저드가 반으로 갈린 것은 찰나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태진. 네놈이 벌인 짓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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