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일상 (3)
세트장이라 이름붙은 공간에 진입하는 순간.
쑤욱 밀려드는 압력이 느껴졌다. 던전에 입장할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것은 JBC가 이 세트장에 얼마나 큰 공을 들였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겨우 1회성 예능 프로그램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건 아니겠지.
어쨌든 감았던 눈을 뜨자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방송국 내부에서, 더 게임 속 현장으로.
더 게임의 현장은 섬으로 구성돼 있다.
제주도 절반 정도의 크기 안에 사막, 얼음, 늪지, 용암으로 이름 붙은 네 구역으로 나뉜 섬.
다만 내가 착지한 곳은 네 구역 중 어느 곳도 아니었다.
섬의 중앙인 중립지역. 때가 되면 보급품이 떨어지는 곳이었다.
식량을 구하기도 쉬워 보이고, 숨을만한 곳도 딱히 없다.
그런 곳에 떡하니 럭키박스 하나가 드랍 됐으니 이건 뭐.
싸움 일어나기 딱 좋은 곳이다.
지금쯤, 저들이 지급 받은 홀로그램 팔찌 바깥으로 그런 퀘스트가 떴을 것이다.
-럭키 박스 등장!
-섬의 중앙에서 럭키 박스를 차지해 생존을 도모하십시오! 단, 이번만큼은 팀원을 꾸리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과연 예상대로 내가 섬에 등장하자마자 섬 곳곳의 마력들이 멈칫거리는 게 느껴진다.
사막에서, 눈 덮인 산에서, 펄펄 끓는 용암을 피하면서.
섬의 생존자들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뒤였다.
“웃기는군.”
섬의 중앙으로 쉴새 없이 뛰어오던 것들이, 나를 보자마자 급제동을 걸었다.
녀석들이 기겁하며 은신 스킬을 발동한다. 미처 흔들리는 파동은 생각지도 못하면서.
“이태진?”
“저 새끼가 여기 왜 있어.”
“럭키 박스가 이태진이었어?”
“방울! 이태진 손에 들린 방울을 빼앗으래!”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냐고. 니미. 가다가 우리 먼저 뒤지겠지. 포기다.”
“잠시만. 이번에 한해서 티밍을 허용한다는데?”
걔 중에서도, 이곳저곳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들이 있었다.
우승 후보로 보이는 생존자 무리들. 다른 생존자들과 달리 유독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김수정. 계획은?”
“일단은 지켜볼 거예요.”
“그리고?”
“틈을 타 이태진을 공격한다.”
“…설마 그게 끝이라고?”
“뭐가 더 필요해요? A급 헌터 세 명에, B급 다섯인데.”
“상대는 이태진이다.”
“알아요. 얼마 전 A급 던전 공략에 실패한 이태진이죠.”
“만만히 보지 마라.”
“내 성격 몰라요? 철두철미한 거. 그리고 냄새나는 입 좀 다물어줄래요? 아니면 꺼지든가.”
“…이것부터 분명히 하지. 박스에서 튀어나오는 보급은 반반이다.”
“그쪽 팀원들이 동의할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좋아요. 이번만 손 잡는 겁니다.”
떡 줄 놈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녀석들은 벌써 나를 잡고 난 이후를 그리고 있었다.
그 사이.
“으아아악!”
첫 번째 녀석이 나를 향해 용기 있게 돌진하고 있었다.
녀석은 말 그대로 미끼였다. 원래도 탈락이 예정된 생존자.
그러니까 지금의 이 행동은 어디까지나 다른 녀석들과 약속이 된 상태다.
가령 밖으로 나간 후, 돈을 받기로 했겠지.
녀석이 찔러 들어오는 검을 가볍게 피한 후, 녀석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어?”
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동작은?”
“그게.”
“없나?”
“…네. 없는데요.”
까까머리 생존자가 낭창하게 말했다. 은신인 것도 잊은 채 몇몇 생존자들이 터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수고했다.”
“예?”
따악!
녀석의 이마에 갖다 댄 손을 한번 튕겼다.
딱밤을 맞은 녀석이 뒤로 넘어갔다. 목숨에는 지장 없을 정도로, 딱 그 정도 힘으로 기절시켰다.
이대로 반나절은 푹 자겠지.
“다음 나와라. 없으면 내가 간다.”
그런데 이거.
힐링 맞나?
일상을 되찾으려고 기껏 예능까지 출연했는데, 상황만 보자면 전과 다를 바 없잖아.
내 얼굴을 한번 만져봤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에 따라 흠칫거리는 파동이 수십 개씩 퍼지고 있다.
힐링 맞네.
***
김수정이 태연하게 말했다.
“저거예요. 이태진이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
“자세히.”
옆에 있는 털복숭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눈은 여전히 섬 중앙의 이태진에게 떼지 못한 채였다.
“딱밤은 눈속임에 불과해요. 이태진의 진짜 능력은 상대방의 힘을 파악하는 것.”
“검신의 축복.”
“맞아요. 그쪽 돌대가리로는 이해 못 할 테지만, 구태여 설명하자면.”
김수정이 질겅질겅 씹던 껌을 뱉었다. 사냥감을 노리는 그녀의 눈빛이 이태진에게 향했다.
”이태진은 한번 본 스킬은 뭐든 따라 한다는 거. 들어봤죠?”
“들어봤다.”
“사실 그건 진짜 능력의 부산물에 불과해요.”
“부산물?”
“순식간에 대상의 능력을 파악하고, 약점을 공략한다. 그러니까 대상의 스킬을 따라 하는 건, 어디까지나 플러스 알파라는 거고.”
털복숭이의 시선이 돌변했다.
“괴물이 따로 없다는 거군.”
“검신의 축복이 S급 중에서도 사기급 특성으로 불리는 이유예요.”
“어떻게 이태진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팬이거든요. 여기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어쨌든 그건 됐고.”
김수정이 인벤토리 안의 무기를 착용했다.
하나같이 A급이 넘는 고등급 아이템들로 무장한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7일 차까지 살아남은 녀석들이 몇이죠? 나와 팀을 맺고 싶다면, 이 부분은 정확히 공유해야 할 거예요.”
“50명.”
“딱 절반이네. 그중에서 우리와 같은 수준은?”
“세 무리가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놈들이랑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얼마나 자세한 소통이 필요한 거지?”
“간단한 의사전달이면 충분해요.”
“가능하다.”
털복숭이가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들을 제외하고, 이태진을 노려보며 숨어있는 세 무리의 위치가 느껴졌다.
물론 나머지 잡몹들도 사이사이 끼어 있지만, 어차피 그것들은 우승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이곳에서 활약할 가능성도 티끌만큼도 없다.
“신호를 주면 동시에 덮칠 거예요.”
“그러면 전리품도 나눠야 할 거다.”
“무슨 소리예요. 그때부터 시작이지.”
“뭐?”
“이태진 잡는 건 우리로도 충분해요. 쟤들을 부르는 이유는, 이 기회에 생존자들 정리 좀 하려는 거고.”
“실력에 자신이 있나 보군.”
“아니었으면 여기에 신청했게요? 지금 공중에 떠다니는 카메라 보이죠? 우리 찍고 있는 거.”
“보인다.”
“인사해요. 우리가 주인공처럼 보여서 찍고 있는 거니까.”
김수정이 비릿하게 웃은 뒤, 털복숭이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셋을 센 뒤에 돌진할 거예요.”
털복숭이가 눈을 감은 채 김수정이 한 말을 똑같이 중얼거렸다.
“전달했다.”
“셋을 셉니다. 예외는 없어요. 전력을 터트려야 할 겁니다. 이태진이 분석을 완료하기 전에 체력을 다 깎아내야 한다고요.”
“할 말은 끝났나? 귀가 닳겠군.”
“여유 부리는 척하지 마세요. 셋. 둘.”
김수정이 크게 호흡한 뒤, 외쳤다.
“하나!”
콰아아!
털복숭이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한 힘이었다. 털복숭이뿐만 아니라, 신호를 전달받은 나머지 세 무리도,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털복숭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김수정은 근거리 딜러. 분명 같이 출발했다면 탱커인 자신보다 한 발자국 먼저 가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보이지 않는 거지?
털복숭이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뒤쪽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김수정이 보였다. 그녀의 입모양도 선명하게.
‘바이.’
털복숭이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났다.
“넌 끝나고 뒤졌어.”
일단은 이태진부터다.
다시금 정면을 바라봤다. 이태진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표정이 생생해졌다.
‘웃고 있어?’
이태진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털복숭이는 그것을 보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A급 던전에서, 보스몹을 만난 그때가 떠올랐다.
아니. 압박감만 비교했을 때는 그때보다도 더했다.
“으아아아악!”
털복숭이가 기합을 지른 후,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곧 다가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자 잠시나마 손을 잡은 녀석들에게 틈을 주기 위해서였다.
[철괴를 시전합니다!]
예상대로였다. 이태진의 신형이 사라지자마자 자신의 앞에 보였다.
한 턴만 벌면 된다. 그러니까 지금, 방패를 노리는 이태진의 주먹……이 아니라.
‘손가락?’
꼭 딱밤을 때리기 위한 동작처럼 보인다. 아니,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딱밤을 때리려 하고 있다. 자신의 방패에다가.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처럼 보였다.
찰나간에 주위를 살폈다. 과연 다른 생존자들이 이태진에게 온갖 스킬을 집어넣고 있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그때였다.
따악!
“어?”
방패를 뚫고 들어오는 충격이 느껴졌다.
눈을 한번 깜박거린 순간, 자신의 몸이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이마에서부터 시작된 통증도 함께였다.
골이 울리는 듯 머리가 웅웅댄다.
그 와중에 찰나간에 보이는 모습 하나.
따악! 따악! 따악!
이태진이 무자비하게 생존자들의 이마에 딱밤을 갈기고 있었다.
***
JBC 상황실.
침묵이 깃든 그곳에는 딱밤 때리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연출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채로 말했다.
“피디님.”
“그래. 너도 느끼고 있지?”
“예.”
억지로 침착함을 가장했지만, 조연출은 떨리는 두 주먹을 참을 수 없었다.
“진짜 보스몹이네요.”
“야.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마력 제어 저거. 제대로 작동하는 거 맞아? 방금 달려들었다가 나가떨어진 놈. 최동수잖아. A급 탱커.”
“어, 그게 그래프상으로는 220레벨 마력으로 뜨긴 하는데요. 정확히는 아무래도 협회 감별을 받아봐야…….”
“됐어. 감별은 무슨. 이것도 찍어놔.”
“예?”
“완벽한 밸런스와 힘의 분배로 인한 어쩌고저쩌고. 그런 거 있잖아.”
황 피디가 악당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예고편부터 다시 만들자. 이거 그림 나오네.”
황 피디가 벌떡 일어났다. 빠르게 상황실을 벗어나던 그가, 제동이 걸린 듯 멈췄다.
“방금 영상 내 메일로 보내고! 이태진은 현장 빠져나오면 어떻게든 다음 회차 나올 수 있게 설득시키고!”
“출연료는요!”
“원하는 대로!”
***
더 게임 2화 방영이 끝났을 때.
포털 실시간 검색어는 내 이름으로 도배됐다.
-이태진, 그는 신인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A급 헌터를 무더기로 상대할 수 있는 거임?
-다른 애들도 마력 제어 구속 찬 것도 그렇고, 며칠 동안 섬 안에서 힘도 뺐고. 영 말도 안 되는 건 아님.
-말도 안 되는 게 아니긴 무슨. 이태진은 마력 제어구 안 찼냐? 그리고 저기 나온 A급 헌터만 해도 다섯이 넘는데, 딱밤 한 대에 나가떨어진다고?
-같은 조건일 때 상대했을 때 마력 제어 밸런스 좋은 놈이 유리하니까. 알못은 그냥 좀 조용하면 안 될까?
-알못은 너가 알못이고. 이태진 까들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대가리가 안 굴러가지?
-내가 이태진 까라고? 너야말로 말도 안 된다면서, 치트 유도한 거 아님?
거기까지 본 뒤, 기사를 닫았다. 티비에는 더 게임 2화의 재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특히나 하이라이트 부분만 집중돼서.
“김수정이랬나?”
그 여자가 마지막이었다. 제 나름대로 나를 분석하고 파해친 뒤에 도전한 생존자.
확실히 놀랐다.
검신의 축복에 대해 그렇게까지 이해하고 있을 줄은 나조차 꿈에도 몰랐으니까.
허나 그런 김수정도.
따악!
두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한 건 똑같지만.
2화의 마지막은 내가 어깨를 으쓱한 채,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순간 시청률 17퍼센트.
더 게임의 성적표였다.
때마침 뒤에서 울리는 목소리 하나가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는데.”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전부터 그가 내 집무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앉으세요. 대표님.”
최태성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