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일상 (2)
-저희 취재진은 일주일 전, 협회 소속 헌터, 백인호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확인 했습니다. 협회는 이를 목적이 있는 살해로 규정짓고 용의자를 추적 중에…….
세상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잠잠해 보이는 일상과 별개로 각성자들의 세상은 치열하기 그지 없었다.
일성을 제외한 거의 모든 A급 각성자들이 협회로 갔다해도 무방하다.
또한 던전은 날이 갈수록 그 수를 늘리고 있다.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수도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모두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다. 몬스터라면 저쪽 세상에서 지긋지긋하게 잡았으며, 이 세상에서 던전을 없애겠다는 원대한 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의 내 목표는 오로지 일성에서의 미래를 막느냐, 못 막느냐. 그것뿐이다. 성요한이 내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미래.
과연 나는 그것에서 벗어났는가.
“지금으로서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혹시 몰라 일성 내에 보이지 않는 마법진들을 설치 했다. 성요한으로 특정되는 자가 그곳에 나타나면 언제든 날아갈 수 있게끔.
그렇게 생각하며, 앞에 있는 햄버거를 입에 물었다.
“걸신 들렸냐?”
한석훈이 희한한 놈 쳐다보듯 나를 바라봤다.
“얘 지금 몇 개 째야?”
“다섯 개요.”
“원래 이렇게 잘먹던 놈이었어?”
“아닐걸요?”
김세린이 꼬박꼬박 대답하면서도, 시선은 햄버거를 먹는 내게 집중했다. 박하영도 거기에 입을 보탰다.
“특히 최근에는 던전용 육포밖에 안 먹던데. 무슨 일 있어요? 혹시 실연이라도 당한건가?”
“그럴리가.”
임한나가 햄버거 포장지를 까주면서 대신 대답했다. 한석훈은 여전히 못 미더운 시선으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A급 던전 바로 도전할 생각은 아니지?”
예전에는 몰랐는데, 아니, 알아도 모른 척 했는데, 이제 보니 보인다.
아슬아슬하다.
한석훈이 나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었다.
언제 넘어져도 크게 넘어지겠구나, 하는 감정.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똑같다.
또 내가 이상한 사고라도 칠까 봐 노심초사하는 얼굴들이었다. 거기에 대고 나도 한마디 툭 던졌다.
“안 가요. 던전.”
“안 간다고?”
“예.”
“안 간다고?”
“예.”
“안 가? 니가? 던전을?”
한석훈의 얼굴이 되려 괴상해졌다.
“무슨 놈이 이렇게 매사 극적이야? 언제는 미친놈처럼 던전 안에만 있더니, 지금은 던전의 디귿도 안 꺼내고. 사춘기냐?”
“거기에 예능도 나간다고 하질 않나. 저 오빠 요새 수상해요.”
“A급 던전 공략 실패가 충격이 크긴 큰가 봐요.”
“공략 실패가 처음이었나?”
“어라.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네요. A급에 올 때까지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거니까.”
“그래서 요새 표정이 똥씹은 거였어?”
팀원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말했다.
내 표정이 안 좋은 것이나,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거나.
그러라고 하지.
다른 차원에 갔다 온 것보다는 그편이 더 설득력 있겠다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팀원들이 말하는 A급던전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굳이 억지로 떠올려보자면.
리저드 던전이었었지.
엉금 엉금 기어가며 지하로 내려가는 미궁형이었고.
거기까지 떠올린 나는 고개를 털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신경 쓸 가치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10분 안에 그것들 모두를 쓸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당분간은 던전도, 협회도,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레인 우버도 내 관심 대상이 아니다.
내 레벨업은 이제 그런 것들로 채워지지 않는다.
S급 던전이라면 모를까.
아직까지도 백인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티비에서 시선을 뗀 후, 햄버거를 한입 더 베어 물었다.
머리 아픈 것들보다는, 단돈 8천 원짜리 햄버거가 더 놀라웠다.
이게 마법이 아니라면 뭐가 마법인데.
단언컨대. 사막에서 먹던 온갖 진귀한 음식들도 이 햄버거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
“여, 여기가 대기실입니다.”
김정연 작가라고 했었나?
며칠 전 나와 미팅한 여자가 쭈뼛대며 문 앞을 가리켰다. 방문을 열자 쾌적한 내부가 펼쳐졌다.
A급 연예인들만 쓴다는 단독 대기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신경 쓴 티가 났다.
온갖 간식들도 그렇고, 적당한 온도와 습도, 먼지 한 톨 없는 내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합격.”
나 대신 임한나가 고개를 흡족하게 끄덕였다.
맞다. 합격이긴 한데.
“넌 왜 여길 와?”
“오면 안 돼?”
“그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
“변했네.”
임한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일주일 전엔 잃어버린 가족을 30년 만에 찾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그게 무슨.”
“변했어.”
임한나가 마저 고개를 저은 후 대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뭐지?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그런데 그런 걸 직접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황당스러운 가운데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 씨 휴가잖아. 그래서 내가 대신 매니저 하는 거뿐이야.”
그러고 보니 김주연에게도 휴가를 줬다. 지난 1년간 내 밑에서 밤낮없이 일했으니, 쉬고 오라는 뜻에서, 넉넉한 휴가비와 함께.
그제야 임한나가 왜 이리 오버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임한나는 아예 내 매니저가 되기로 작정한 건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출연료는 얼마나 준대?”
“2억.”
잠시 멈칫거린 임한나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진 않네.”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아주 후하게 쳐준 거다.
잠시 기다리자 대기실에 피디가 찾아왔다.
“이 팀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찾아가서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워낙 바빴다 보니 늦었습니다. 더 게임 총괄 피디 황덕연입니다.”
“이태진입니다.”
나는 문명인처럼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표정도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대번에 황 피디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예?”
“혹시 마음에 안드시는 점이 있을까요?”
“……아뇨. 다 마음에 드는데요.”
빠르게 표정을 고친 황 피디가 얼른 말을 이었다.
“얼른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저희 1화, 혹시 보셨습니까? 삼일전에 첫 방영돼서 모르실수도 있습니다만.”
“다 보진 않았고 가볍게 훑어봤습니다.”
각성자들을 잔뜩 모아놓고 벌이는 생존 서바이벌 예능, 더 게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생존 물품을 파밍하고, 팀을 맺고, 적을 없애는 뻔한 소재의 예능이었다.
하지만 뻔한만큼 그만한 시청률을 보장하고 있었다.
1화 시청률이 13프로가 넘었다지.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오늘 제 역할은 뭔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럭키 박스입니다.”
황 피디가 들고 있던 큐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좋은 게 뜰 확률이 100퍼센트인 럭키박스예요. 이 팀장님을 잡으면 우승에 핵심적인 아이템을 드랍시킬 예정이거든요.”
“그렇다는 말은.”
“예. 모든 생존자들이 이 팀장님을 잡으려고 혈안이 될 겁니다.”
황 피디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이 팀장님은 거기서 적당히 상대해 주시다가, 그러니까 적당히라는 게.”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돈 받은 만큼 최선을 다 할 테니까.”
황 피디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러며 내게 방울 하나를 쥐어줬다.
그러니까 이걸 빼앗기면 안 된다는 말이지.
방울에는 여러 가지 마법적 처리가 들어가 있었다.
먼저는 위치 추적.
나는 세트장 안의 생존자들에게 24시간 내내 내 위치를 숨길 수 없다. 그들은 밤이고 낮이고 나를 도모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사용자의 마력을 제한할 수 있는 기능도 더해져 있다.
아마 고등급 각성자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장착된 것으로 보였다.
멋쩍은 듯 황 피디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이 팀장님 수준이 너무 높으시다 보니 밸런스를 위한 조치였습니다.”
“세트장 안에 A급 헌터들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게 아무래도 특별 게스트시고, 빠른 진행을 위함이다 보니.”
게임에 너무 방해되지 않게끔 적당히 방송 분량 뽑고 퇴장하라는 거다.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황 피디가 말을 덧붙였다.
“아무쪼록 살살 부탁드립니다!”
말은 살살이라고 하는데, 열심히 해도 별 수 없을거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거. 아무도 못 뺏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
“그러니까 생존자들이 아무도 제 방울을 아무도 못 뺏으면요.”
“그렇게 되면.”
“살살은 해도, 대충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네요.”
황 피디가 짐짓 고민하는 척을 했다. 옆에 있는 김정연 작가도, 같이 온 조연출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다 연기다.
내 기분을 맞춰주려는 연기.
황 피디가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야 더 좋죠. 그림 예쁘게 나올텐데.”
***
“후아!”
“8부 능선은 넘었네요.”
조연출이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황 피디가 복도를 걸어가며 말했다.
“예고편 반응은 어때?”
“끝내줍니다. 유튜브 조회수는 700만 넘었어요.”
“예고편이?”
“예. 아무래도 이태진 다큐가 해외에서도 터졌잖아요. 방송국도 같겠다, 이번에도 기대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에요. 댓글 반응도 후끈하고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황 피디가 기분 좋게 낄낄거렸다.
조연출이 분위기를 틈타 은근슬쩍 말했다.
“그런데 박 부국장님이 그런데 심기가 안좋으신가 봐요.”
“누구?”
“박중현 부국장님이요. 다큐 연출하셨던.”
“그 새끼 심기가 왜 뒤틀려?”
“말도 없이 이태진 갖다 썼다고……. 세부에서 전화 왔다고 하던데요?”
“웃기는 새끼네 그거. 이태진이 물건이야? 지 허락받고 쓰게? 헛소리 할 기력 있으면 코코넛이나 처먹으라고 해.”
말투는 심술이 가득한데, 황 피디의 만면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지 딴에는 그랬겠지. 동기 중에 제일 빨리 국장 달 줄 알았는데, 떡하니 내가 떠버리니까. 그런데 어쩌겠어. 기회가 온 건데. 잡아야지.”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황피디가 편집실 문을 열었다.
아니, 편집실을 가장한 상황실이라 불러야 했다.
온갖 카메라들이 실시간으로 세트장을 비추는 상황실.
“세트장이 아니라 섬이야. 섬.”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온갖 공간 마법이 겹겹이 중첩된 아공간이었다.
세트장을 짓는 데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으니, 황 피디의 얼굴이 전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황 피디는 상황실에 들어가자마자 익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전장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된 황 피디가 말했다.
“1번 카메라! 줌인 해봐.”
“옙!”
“저거 뭐 하는 거야? 지금 똥 싸는거야?”
“그, 그런 것 같은데요?”
“드러운 새끼. 왜 똥을 밥 먹다가 누는거야. 돌려! 3번 카메라, 김수정 쪽.”
“예. 지금 전투 중입니다!”
“누가 이길 것 같아?”
“김수정이 무난하게 이길 것 같습니다.”
“5번, 7번, 16번 카메라도 같이 붙어. 각도 여러 개로 해서 영상 뽑게.”
황 피디는 스무개의 카메라를 능숙하게 지휘하며, 조금이라도 재밌어 보이는 부분은 칼같이 캐치해냈다.
옆에 있던 예능국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황 피디님 이번에 칼 가셨네.”
“그럴만도 하지. 저번에 박 부국장님 때문에 승진 한번 미끄러졌잖아. 그래서 이번에 죽자고 예산 땡겨온 거고. 이거 망하면 퇴사할 예정이었대.”
“아깝네. 저 양반 얼굴 안 볼 수 있었는데. 프로그램이 대박 나는 바람에.”
“될 놈은 뭘 해도 되나 봐. 이태진까지 끌어들인 거 보면.”
“다 들린다!”
황 피디가 여전히 시선을 화면에 둔 채로 소리를 질렀다. 입을 꾹 다문 직원들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킬킬거리며 그 장면을 지켜보던 조연출이 황피디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요.”
“또 뭐.”
“이태진이 진짜 안뺏기면 어떡하죠? 아닌 게 아니라, 마냥 허세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너도 감이 와?”
“이상하게, 쉽게 뺏길 것 같은 그림은 안 그려져요. 분명 마력 제어장치에 위치추적기까지 달려 있는데. 쉽게 죽을 것 같지가 않아요.”
황 피디가 조연출을 바라봤다.
“너도 방송국 물좀 먹었나보다. 감 살아나는거 보니.”
“예?”
“나도 그놈 말 들어보니까 감이 오더라. 이거, 그림 제대로 살아나겠어.”
황 피디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계획 좀 바꾸자. 럭키 박스에서, 보스몹으로. 예고편 하나 뜰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