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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36화 (136/170)

136화 통합 (5)

S급 두 명의 싸움이다. 이셀라와 부족민들이 이 일대를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우리 둘의 힘이 충돌한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했다. 거기에 휘말린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 것이다.

퀘스트가 실패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화가 난 시스템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노인을 다른 곳으로 유인할까?

불가능하다. 노인이 나와 같은 S급인 이상 전장을 선택하는 것쯤은 그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간이동 마법으로 그를 옮겨버리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내 미숙한 숙련도를 생각했을 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한 번이라도 실패했다가는 노인이 이셀라를 포함한 부족민들을 모두 쓸어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당장 유일한 해법은 노인과 싸우지 않고 내가 도주하는 것. 그뿐이었다.

그렇게 발에 힘껏 마나를 모았을 때였다. 내 행동을 깨달은 노인이 나를 턱짓했다.

“찜찜함은 원하지 않는다. 오늘은 온전히 너와의 승부를 위해 온 것. 자리를 옮겨주마.”

노인이 호전적인 눈빛을 띠며 손에 쥔 창으로 사막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저기라면. 고개를 끄덕인 후 발을 굴렀다.

쿠웅!

쏜살처럼 달려간 우리 둘이 위치한 곳은 붉은 모래밖에 없는 곳이었다. 이곳이라면 우리의 힘이 맞닿는다 해도 사람이 죽는 일은 없겠지.

흑색 도복이 내려앉았다. 창을 빙글빙글 돌리는 노인은 답지 않게 신나 보였다.

나는 나대로 궁금한 것이 있어서, 노인에게 턱짓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그렇게 물어본 이유는 흑색 도복이 어떻게 내 마나를 감지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따라서 퀘스트를 당장 포기하고 내 몸을 숨길지 말지가 달려있다. 제국의 다섯 고수 중 나머지 넷이 언제 나타날지 모를 노릇이니까.

흑색 도복은 천생 무인으로 보였다. 그는 숨길 게 뭐가 있겠냐며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소문을 들은 순간 참을 수가 있어야지. 몇 날 며칠 이곳을 떠돌며 네 기운만 쫓아다녔다.”

“소문?”

“사막의 대전사가 등장했다는 소문.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군. 전설상으로만 들은 것이 다인지라.”

“…….”

“그래. 너는 그게 궁금한 거로군. 내가 네 기운을 어떻게 읽어 냈는지.”

미소를 지으며 이를 드러낸 장년인이 말했다.

“네가 힘을 발산했던 거기.”

아!

총독을 죽였을 때. 노인은 미처 지우지 못한 마나의 잔향을 쫓아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특정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끈기가 필요했을 터.

“내가 아니었으면 어떡하려고.”

“그랬으면 오늘 이 부족은 세상에서 지워지는 거지.”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한다. 거기서 깨달았다. 여느 강자와 비슷하게도, 놈과도 어떤 합의점은 있을 수 없겠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장년인과 나, 둘 중 하나는 죽는다. 반드시.

그러던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왜 본모습을 감추고 있는 거지?”

“무슨 말이지?”

“구태여 그러한 외양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

“대전사가 되고도 젊음을 놓지 못하다니. 이해할 수 없군.”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던 갑자기, 노인의 이마가 위로 올라갔다. 동그랗게 뜬 눈 안으로 놀람이 가득했다.

“설마. 설마.”

노인의 눈이 번쩍거렸다.

“설마 그 나이에 그 경지에 올랐다고?”

“…….”

제멋대로 묻고 제멋대로 답을 구한 노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던 문득 노인이 눈빛을 바꿨다. 그가 있는 힘껏 살기를 띠며 말했다.

“네가 내 나이쯤 어느 정도일지 감도 안 잡히는구나. 너를 살려둬서는 안 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죽일 수 있다는 듯이 말하는군.”

“크하하하!”

다시 한번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을 끝으로.

노인이 자세를 잡았다.

나도 검을 맞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우리는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발이 모래에 닿을 때마다 움푹움푹 바닥이 패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재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노인과 내가 스무 걸음쯤 떨어져 있다 해도 강자들의 세계에서 물리적 거리는 무의미한 법.

우리는 지금 거리를 재고 있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전투가 어떻게 될지를 그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무기를 쥔 서로의 손, 발걸음,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그러던 때,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우리는 동시에 몸을 멈춰 세웠다. 뜨끈한 바람이 한줄기 나를 스쳐 지나간 후에. 노인의 몸이 사라졌다.

곧장 몸의 긴장을 확 끌어올렸다. 시간이 정지된 듯 공기가 운행을 멈췄다. 그러고 나서야 노인이 보였다. 두 손으로 창을 쥔 채 내게 달려오고 있는 노인이.

선공은 노인의 몫이었다. 머릿속 전투에서 본 그대로였다. 내가 하수라서 선공권을 뺏긴 것이 아니다. 검신의 축복이 노인의 창술을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곡해한 노인이 포효했다.

“건방진!”

내가 기사단장에게 그랬듯, 노인 또한 나를 이마에서부터 양단할 작정이었다. 창대 끝을 잡은 노인이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리쳤다.

가볍게 잡은 롱소드를 위로 올렸다. 창대와 롱소드가 충돌했다.

콰앙!

서로의 힘을 재보기 위한 전초전이었을 뿐이었음에도 폭탄이 떨어진 듯했다.

주위의 모래가 터져나갔다. 동시에, 우리 밑에 깔려있던 몬스터 열 마리가 폭사했다.

경험치가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지웠다. 그러고 나자 노인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놈이 된 노인은 위에서, 나는 아래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했다.

중력이 사라진 듯 땅에 붙어 있어야 할 모래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전초전은 전초전일 뿐인지라,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뒤로 물렸다.

다시금 처음과 같이 거리가 벌려졌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노인은 심각한 표정이 됐고,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인의 얼굴이 굳은 이유는 생각보다 여유롭게 받아치는 내 힘이 강해서일 테지만. 내가 웃은 이유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문득 시스템이 생각났다. 검신의 축복을 수치로 나타내면 이렇지 않을까?

[노인의 창술 분석 진행률 : 2%]

가볍게 한번 맞댄 것만으로 무려 2%나 올랐다. 그것도 힘을 빼고 싸웠음에도 그랬다.

이는 검신의 축복이 또다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의미하고, 같은 S급임에도 노인과 내 격이 많이 차이 난다는 뜻이었다.

레벨만 따지자면 근소하게 노인이 더 높은데도 말이다.

검신의 축복이라는 사기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수없이 많은 깨달음을 통찰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서로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가던 우리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그러던 것이 빠른 경보로 바뀌었고, 빠른 경보가 이윽고 공기를 찢는 전력 질주가 됐다.

쿠웅!

창대와 검이 부딪쳤다.

역시나. 단순한 근력 스탯만으로는 놈의 힘이 나보다 조금 더 강하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격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법. 어느새 나는 여유를 되찾았다.

콰광! 쾅! 콰과과과광!

놈의 창술이 분해될수록 놈은 점점 여유를 잃어갔다. 겉으로는 나는 몰아치는 공격을 꾸역꾸역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노인의 호흡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반면, 나는 갈수록 이 승부가 지루해지고 있었다. 진행률이 50%가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굳이 100%를 채우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 전투를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끝내기엔 노인의 쓰임새가 아깝다. 원래 세상이나 이쪽 세상이나 이 정도의 강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더군다나 심상 속이 아닌, 현실에서 마법을 테스트해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검술로 그를 주저앉힐 수 있다는 것은 증명했으니, 다음은 마법 차례였다.

고리가 움직였다.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일곱 개의 고리들이 자신들도 할 수 있다고, 믿어달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고리가 작동하자마자 노인이 멈칫거렸다.

놈이라고 내 심장 속 기운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건 또 무엇이냐!”

놈이 경악스럽게 내게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노인을 대상으로 어떤 마법을 시험해 볼지 구상 중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써먹어 본 공간 마법이나 중력 마법은 제외하고. 당장 생각나는 마법이 많았다. 원소 마법, 정신계열의 흑마법, 혹은 디버프 계열의 저주마법까지.

“다 써보면 되겠지.”

쿠웅!

노인의 기세가 남달라졌다. 내가 지금의 전투를 지루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일 수도 있고, 농락당하지 않기 위한 저만의 발악일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는 대자연의 힘을 생생히 느꼈다.

촤르륵!

모래가 채찍처럼 변해 그의 사지를 옭아맸다.

“같잖은!”

퍼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인이 모래 채찍을 끊어냈다. 그런데 방금의 두 배가 넘는 채찍이 땅에서 올라와 그의 몸을 휘감는다.

세 배, 네 배.

이윽고 수없이 많은 모래 채찍이 그의 몸을 속박했다.

노인은 그때마다 안간힘을 쓰며 내게 다가오려 애썼다.

노인과 내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노인의 몸에 자상이 하나씩 늘어갔다.

그러고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는데도 아주 천천히, 나를 향해 독기를 품고 다가왔다.

원소 마법은 이 정도면 됐고.

다음은 저주 계열이다. 흑마법이란, 존재 자체가 사이하고 어두운 계열의 마법이다.

즉, 아락투스의 마력과 궁합이 잘 맞는 계열이라는 뜻.

수없이 많은 흑마법 중 몇 개를 골랐다.

-경직!

-침묵!

-감속!

그렇게, 순식간에 세 가지 마법이 노인을 덮쳤다. 안 그래도 모래에 의해 저지당하던 노인의 몸이 경직에 의해 더 느려졌다.

끊임없이 돌아가던 그의 몸속 마나가 침묵 마법에 의해 잠시간 끊겼다.

직접 써보고 나서야 마법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

이 정도라면, 활용도 면에서는 무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겠는데.

그때쯤엔, 노인이 우뚝 몸을 멈춰 세웠다. 꾹 다문 입술과 흔들리는 눈빛에 나를 향한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노인의 기세가 한순간에 돌변했다. 순간, 그가 노리는 것이 도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딜.”

들고 있던 롱소드를 아래로 그었다. 그것만으로 놈은 다리로 모았던 마나를 다시 창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혼자 와서는 안 됐다. 최소 두 명은 더 데리고 왔어야지.”

놈이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놈은 단전에 있는 마나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끌어올렸다. 뒤를 생각지 않고 나를 저승길 길동무로 삼겠다는 건데.

“가당치도 않다.”

끝끝내 내 앞에 도착하는 것에 성공한 노인의 이마를 짚었다. 마지막으로 시험해볼 마법이 있었다.

정신계열의 고등급 마법이 그의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주입됐다.

노인의 눈이 까뒤집어졌다. 그의 머릿속 정보가 서서히 내게 주입되기 시작한다.

이윽고 노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제국 황제의 큰 형.

카다도스 노아.

그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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