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통합 (1)
총독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나를 제외하고는 인지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총독이 내 멱살을 잡은 즉시 목이 날아간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잠시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너무나도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총독의 호위를 맡고 있던 기사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하면, 눈을 부릅뜬 채 총독의 머리만 주시하고 있었다.
난감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이셀라를 도울 이유는 없었지만, 훼방을 놓을 생각도 아니었는데.
이셀라는 방금까지 자신을 희롱한 총독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 한가득 절망과 당혹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쪽이 한 짓인가요?’
그런 뜻을 담은 눈빛과 함께.
“모두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즉시 죽인다.”
죽은 총독을 호위하던 기사 중,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는 기사가 그렇게 말했다.
그때쯤엔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의 사방을 둘러싸며 퇴로를 막는 한편, 낙타 부족의 족장을 불러오라는 고함이 이곳저곳에서 터졌다.
기사들의 대장이 저벅저벅 내 쪽으로 걸어왔다. 대장이 쓰러진 총독의 머리와 몸을 천천히 만졌다.
대장이 깊은숨과 함께 침음을 삼켰다. 천천히 일어나는 대장의 얼굴 위로 많은 생각이 엿보였다.
대장이 총독의 잘린 머리를 한번, 나를 한번, 그리고 이셀라를 한번 쳐다봤다. 특히 나를 바라보는 날 선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많은 생각이 엿보였다.
호위 대상을 지키지 못한 그는 소속으로 돌아가 큰 징계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웅성대는 낙타 부족을 쳐다본 대장이 결심이 선 듯 말했다.
“전부 다 죽여.”
기다렸다는 듯 기사들이 사방팔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그들이 첫 번째로 목표 삼은 것은 나와 이셀라였다.
검집에서 뽑힌 검 다섯 자루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천천히.
생각할 시간이 충분했다.
퀘스트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퀘스트 발생 : 이셀라를 안전하게 마을로 이동시키십시오. 시스템의 계획 속에 있는 일입니다. 시스템이 당신을 도우려고 하는 이때, 시스템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보상 : 모든 스탯 +10]
역시나 이번 퀘스트도 조건이 까다롭지 않았다. 까다롭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쉬워서 의아할 정도다.
희한할 정도로 시스템이 내게 스탯을 퍼부어주고 있다.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받아먹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기사들의 검은 아직도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총독을 죽인 시점에서 제국이라는 곳과 나는 척을 지게 됐다.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윽고 나는 기사들의 대장이 했던 것과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어차피 이것들을 살려둬봤자 후환만 남게 되겠지.
고리의 마력이 움직였다. 가장 왼쪽에서 다가오는 기사의 내부로 마력이 침투했다.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콰직!
눈을 부릅뜬 기사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다음으로 신성한 파괴자의 롱소드를 뽑아 휘둘렀다. 이셀라에게 달려들던 놈의 목이 허망하게 떨어져 나갔다.
이셀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나와, 떨어져 나간 기사의 목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사색이 된 채 외쳤다.
“뒤!”
알고 있다.
여전히 시선은 이셀라에게 둔 채였지만, 이곳의 상황이 하늘에서 지켜보는 듯 내 통제 아래에 있었다.
중력 마법의 이해도가 극에 달했다고 느껴진다. 뒤에서 회심의 일격을 노리며 뻗어오던 두 놈의 사지가 우드득, 뒤틀렸다.
총독이 끌고 온 기사 다섯 중 넷이 죽었다. 남은 것은 명령을 내린 대장뿐이었다.
뒤를 돌았다.
대장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총독이 죽었을 때와 비교해도 그랬다. 아까까지의 살기는 어디 가고,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러는 대장의 몸에서는 풀풀, 마력이 흘러나왔다. 수준을 따지자면 한석훈과 동일하다.
그만큼 살벌한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그의 몸 위로 올라가고 있는데도, 대장에게서는 싸울 의지가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대장은 자신과 나의 수준차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밝히시오.”
대장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에 경계가 잔뜩 섞여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그려진 듯했다. 놈의 눈빛이 불안으로 일그러졌다.
“나를 죽이면 제국에서 당신을 지옥 끝까지 추격할 것이오.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아비, 아비가 없다면 당신의 자식까지도. 여기 있는 모두가 당신 하나 때문에 죽게 될 거요. 당신도 그것을 원하는 건 아니지 않소?”
“…….”
기사가 천천히 자신의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두 손을 들었다. 명백한 항복의 의사였다.
“하지만 나를 살려준다면 말이 달라지지. 총독의 죽음은 우연이 될 것이오.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사막의 모래처럼, 지나가는 일이 될 것이오. 이 넓고 거대한 사막에 사람 시체 몇 더한다고 뭐가 바뀌겠소?”
대장의 말을 요약하자면 자신을 살려주기만 한다면, 총독을 죽인 일을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럴 생각이 있다. 내 인간성을 되찾아준 이셀라 무리에 대한 보답으로.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상의 참거짓을 알려주는 흑마법은 놈의 말이 거짓이라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총독에게는 정치적 앙숙이 있소. 그자는 총독이 죽기만을 바라고 있지. 나를 그곳에 보내 주시오. 그자라면 이번 일을 덮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오. 그러니…….”
“그만.”
녀석의 되먹지도 않은 말을 잘랐다. 슬며시 이셀라를 바라봤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름대로 미래를 그려보는 중이겠지.
총독이 죽은 지금, 그리고 총독을 호위하는 기사들마저 죽은 지금,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부터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이셀라는 종국에 그런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이 기사를 살려서, 제국의 첩자로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유용하겠다고.
감히 내게 말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눈으로나마 그렇게 제 의사를 표하고 있었다.
이 사람을 살려 주면,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허나.
아까도 말했듯 기사가 하는 말은 하나부터 끝까지 거짓이었다. 혹시 모를 화근이 될 녀석은 차라리 죽이는 게 나았다.
이셀라를 턱짓하며 말했다.
“예외는 없다.”
그 직후, 대장의 정수리에서 시작된 실선이 사타구니까지 이어졌다.
“어?”
손을 번쩍 든 기사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진 순간이었다.
푸확!
놈이 뭐라 말하려 입을 연 직후 놈의 몸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후두둑 튀기는 살점을 뒤로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더 이상 나, 혹은 이셀라를 향해 살의를 띠는 놈은 없었다. 총독이 데려온 300의 병사들도, 낙타 부족의 부족원들도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향한 지극한 두려움을 품고서.
이셀라를 지나쳐 총독이 데려온 제국의 병사들 앞으로 걸어갔다.
원래는 총독의 뒤에서 기세등등하게 창을 쥐고 있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병사들이 한걸음 물러났다.
그 짓을 세 번째 반복했을 때. 혀를 한번 찬 후, 병사들 중 가장 계급이 높아 보이는 장정을 손짓했다.
장정이 나를 괴물 보듯 보더니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당장이라도 힘이 풀려도 이상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예, 예?”
그렇게 되물었어도 장정의 눈은 내 말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장정은 뒤룩뒤룩 굴리던 눈알을 멈춰 세웠다. 녀석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저, 저희들은 사막을 건너다 폭풍을 만났습니다. 후미에서 출발하던 병사들은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초, 초, 총독님과 기사님들은 폭풍에 휩쓸려 그만……!”
거기까지 말한 장정이 슬며시 고개를 올렸다. 제발 자신이 한 말이 정답이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사실 녀석이 무슨 말을 지껄이든 상관없었다. 애초에 입을 맞추기에는 목격자도 많을뿐더러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다만, 아무리 내가 사막에 물들었기로서니 아무 죄 없는 인간 삼백 명을 죽일 만큼 미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녀석들을 살려주기 위한 빌미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눈을 바라보고, 진심을 담아 경고했다.
“우리가 또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다시 이셀라 쪽으로 걸어갔다. 이셀라와 라반, 세쿤더스가 나를 뚫어져라, 혹은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공통된 감정이 있었다.
두려움.
불쌍하게 여겨 챙겨줬던 부랑자가 알고 보니 신위의 경지에 이른 대전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런 두려움이 한가득했다.
이셀라는 특히 더 그랬다. 고요한 호수에 운석을 처박으면 저럴까.
한참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러한 침묵이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셀라. 네 마을로 돌아간다.”
그녀는 흠칫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거부한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내게 칼을 겨누지 않는다면 나도 가만히 있겠다.”
그 말이 그녀를 안심시켰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라반과 세쿤더스를 흠칫 놀라게 했다. 며칠 전 그들이 내게 칼을 겨눈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이셀라가 라반과 세쿤더스를 향해 말했다.
“이 마을을 빠져나갈 때까지 우리 앞을 막는 것들은 모조리 벤다.”
라반과 세쿤더스가 그 말을 듣자마자 자신들의 시미터를 뽑았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충분히 훈련받은 전사라는 것을 증명했다.
“내가 앞장선다.”
그렇게 말하며 이셀라를 뒤에 달고 걸음을 옮겼다.
낙타 부족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철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얼른 집으로 도망치는 아낙네들, 겁 없이 칼을 뽑아 들며 내 주위를 맴돌며 주춤대는 부족의 전사들, 제국에서 온 병사들.
나를 대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내가 걸어가는 자리마다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출구로 보이는 성벽에 도착했을 때였다. 서둘러 이쪽으로 다가오는 강력한 기운이 있었다.
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봤던, 족장이었다.
“이셀라. 대체 이게 무슨 짓이지?”
족장의 뒤를 이어 줄줄이 튀어나오는 전사들의 숫자가 삼백이 넘는다. 하나같이 100레벨이 넘었고, 몇몇은 200이 넘는 것들도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원래 세상을 따져도 일성과 엇비슷한 전력이다. 겨우 부족 하나가 말이다. 이 세상의 평균 레벨이 원래 높은 것일까?
궁리를 하는 사이 족장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설마 이 짓을 벌여놓고 그냥 떠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