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적응 (2)
쾅!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마법에 대한 지식이 물밀 듯이 덮쳐왔다.
네 번째 장은 원소 마법에 대한 것이었다. 물, 불, 바람, 모래 같은. 자연이 만들어 낸 속성마법이었다.
깨달음의 고양감도 동시에 찾아왔다. 마법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사실이 흡족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쾅! 쾅!
또다시 번개가 쳤다.
네 번째 장에서 머물던 마법사전이 멋대로 페이지를 넘겼다.
다섯 번째 장은 흑마법과 관련된 것이었다.
저주, 세뇌, 정신착란 상태에 빠지게 만들거나 심지어 사람의 영혼을 전이시키는 극악무도한 흑마법도 있었다.
동시에, 거기에 대한 방어법도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 어떻게 세뇌마법에 대항해야 하는지, 영혼전이 마법을 파훼하는지에 대한 것들.
하마터면, 여기서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실제로 몸이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정보량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고통이었다. 과열된 머리가 이대로 터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콰앙!
세 번째 벼락이 쳤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심장의 고리가 춤추고 노래한다. 둑이 터진 듯 마법을 흡수하고 또 흡수했다. 벼락이 치는 숫자만큼,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참 거짓을 판별해 내는 마법, 공간의 기억을 읽는 법, 버프, 힐링, 디버프, 흑마법까지.
늘어나는 마법의 양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거기에서 오는 쾌감과 고통도 덩달아 상승한다.
문득, 마법사전이 왜 변덕을 부리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네 번째 장을 열 때는 죽일 듯이 나를 시험하더니, 갑자기 끝도 없이 마법을 알려주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좋은 게 좋은 것일 뿐이라고, 갑자기 마법사전이 진도를 팍팍 나갔을 뿐이라고 좋아하기에는 내가 받는 대가가 너무 컸다.
그러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 나가기엔 머릿속 천둥 벼락의 강도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아아악!
더군다나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환장할 여섯 고리의 상태가 이상했다. 간만의 마법 습득에 환호성을 지르던 고리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묵직한 탱크가 움직이듯 천천히 회전하던 그것들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맹렬하게 작동했다.
회전에 맞춰 사막에 뿌려진 마나가 내 몸으로 들어온다.
태풍이 수증기를 잡아먹고 커지듯, 심장의 고리가 마력을 빨아먹으며 그 크기를 부풀리고 있었다.
아니, 부풀리는 정도가 아니라 빅뱅이 터지듯 팽창했다.
머리에는 끝도 없는 정보가, 심장에는 끝도 없는 마력이.
온몸이 세포 단위로 재구성되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아니라 진짜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어두컴컴한 밤인데도 세상이 하얗게 빛났다.
이전에 이미 경험해본 익숙한 느낌이기도 했다.
환골탈태.
그때와 비슷한 감각이 내 몸을 덮쳤다. 그렇기에 의식을 잃지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침착하게 내 몸을 관조할 수 있었다.
다행히 희망이 보였다. 진행률로 따지면 99퍼센트.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머릿속의 번개도, 심장의 회전도 막바지 단계였다.
머릿속의 숫자가 100을 가리켰을 때였다. 이윽고 회전도, 번개도 멎었다.
우우웅!
생생히 느껴지는 기운 하나가 먼저 느껴진다.
여섯 번째 고리 위로.
고리 하나가 더 추가됐다.
이건. 6+1의 산술로 계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법의 힘은 고리의 개수에 달려있고, 그리고 고리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힘은 제곱으로 커진다.
일곱 번째 고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력의 양이나 농도나 하위 고리 모두를 합친 것만큼 거대했다.
쿵! 쿵!
살아있는 생물처럼, 일곱 개의 고리가 심장에 맞춰 맥동했다.
신기한 것은, 거기에 맞춰 단전이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제야 마법사전이 변덕을 부린 이유를 깨달았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맞았다. 웃긴 비유지만, 연이은 검술의 깨달음과 성장을 마법사전이 질투를 한 것 같았다.
심장의 고리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라고. 네가 쓰는 검술 못지 않을 거라고.
맞다. 한참 앞서갔던 검술을 마법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검과 마법, 어느 것도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됐다.
성요한에게 또다시 한 걸음 나가는 순간이었다.
***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원소마법부터 버프마법까지.
적응되지 않은 마법들을 하나씩 체화해 나가는 나날들이기도 했다.
몸은 사막 한가운데 있되, 정신은 원래 세상에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였다. 처절하고 아쉬운 전투를 떠올렸다.
처음은 백인호였다. 심상 속 백인호는 죽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각성제에 한껏 취해, 붉은 아지랑이를 나풀나풀 퍼 올리는 모습. 등 뒤에는 빛이 번쩍거리고 있고, 활과 화살이 그의 손에 들려 있다.
내가 백인호를 죽였을 때. 단칼에 죽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암살이라는 특수한 상황 덕분이었지, 그와 나의 수준차가 그 정도라는 말은 아니었다.
당시의 백인호와, 그것도 각성제에 취한 백인호와 정면승부 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긴다 해도 한 끗 차이였을 것이다. 나는 죽음에 가까운 상처를 입고 힐러를 부르짖었겠지.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마법의 경지와 정신적인 성장이 비례하는 바, 기억 속 인물을 심상으로 초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눈을 깜박였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백인호가 앞에 나타났다. 살벌한 얼굴의 백인호가 내게 말했다.
“이태진. 이 씹어먹을 새끼가.”
놈이 화살을 날렸다. 동시에 사방에서 단검이 쏟아진다. 어디까지나 심상 속이라지만, 정신적인 충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붉은 아지랑이를 묻히고 날아오는 비기들이 내 몸에 박히기 직전이었다.
퍼버버벅!
암기들이 날아갔다. 원래 주인에게로. 선인장처럼 온몸 가득 암기가 박힌 백인호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사막의 모래가 됐다.
다음 상대가 나타났다. 일본도를 든 중년인. 성요한의 제자였다.
놈이 비릿하게 웃었다.
“시스템의 기치 아래……!”
놈이 말을 끝내지 못했다. 좌에서 우로 손을 그은 순간 놈의 목이 날아갔다.
날아가는 놈의 목은 비릿한 미소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놈이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는 뜻이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심호흡을 한 뒤였다. 내 앞에 남자가 나타났다. 머리를 뒤고 넘긴 남자의 손에 사브르가 들려 있었다. 그의 무정한 눈이 나와 마주쳤다.
성요한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사막을 둘러봤다.
공격해야 하는데.
미치겠다. 몸이 움직이지가 않는다. 겨우 심상일 뿐인데도 그랬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고 있는건가?
빌어먹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다. 매마른 줄 알았던 감정이 들썩거렸다. 등줄기에 소름이 쭉 돋아났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죽어라.”
그렇게 성요한의 몸이 사라지고.
콰득!
내 심장에 사브르가 박혔다. 아니, 박힐 뻔했다. 그의 검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오기 직전 심상에서 빠져나왔으니까.
사막의 뜨끈한 공기가 폐부를 훑었다. 이 뜨겁고 습한 공기가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젠장.
아직도 대응조차 할 수 없는 것인가? 대응은 무슨. 인식할 수도 없는 속도였지.
고민이 깊어지던 무렵이었다. 이셀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현재의 내 모습을 어떤 식으로 오해한 듯했다.
“다들 멈춰. 휴식이다.”
응? 벌써?, 하던 다른 녀석들도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셀라의 무리에서 여전히 나는 가진 힘을 모두 잃은, 도움받아야 할 불쌍한 녀석쯤으로 있는 상태였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그늘이 펼쳐졌다. 그 아래에서 방금의 상황을 복기했다. 그런데 단 한 합만에 끝난 승부를 복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혀를 한번 차고 일어났을 때였다. 이셀라의 부하 중 한 녀석, 라반이 바닥에 침을 뱉고 있었다.
“빌어먹을.”
라반의 얼굴에는 패색이 가득했다. 이제껏 길잡이를 도맡았던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덩달아 다른 녀석들의 표정도 안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분위기가 심각했었다. 내가 심상에서 성요한의 제자를 죽였을 때쯤부터였나?
이유가 뭔지는 금방 드러났다.
라반이 제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길을 잃었다.”
“뭐?”
모두가 고개를 휙 돌렸다. 잘못 들어서 되물은 게 아니었지만, 라반은 거기에 확인사살을 했다.
“길을 잃었다고.”
망망대해에서 조난을 당한 뱃사람들의 표정이 저럴 것이다. 급격하게 이셀라 무리의 표정이 굳어갔다. 머리를 벅벅 긁던 라반이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솔직히 인정할게. 이런 루트는 처음 본다.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길이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반. 농담하는 거지?”
“…….”
이셀라가 할 말을 잃은 듯 입술을 뻐끔거렸다. 라반의 친구 세쿤더스가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라반. 네가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게 납득이 안 되는데.”
“누구나 처음은 있지. 사막의 무궁무진한 변화는 감히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길잡이 라반이 분통을 터트렸다.
“처음부터 이상했다고. 빌어처먹을 몬스터는 왜 한 마리도 안 보이는지, 갑자기 지형은 또 왜 이렇게 지랄맞게 변했는지.”
“믿을 수가 없어. 라반, 네가 길을 잃었다고? 부족 내 최고의 길잡이 라반이? 농담이지?”
그렇게 분위기를 환기시켜 보려 했지만, 세쿤더스조차 눈빛이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쿤더스가 라반을 놓아줬을 때, 라반의 몸이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안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어떤 길잡이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이래서는 누구도 길을 찾을 수 없어.”
“자세히. 자세히 설명해봐.”
이셀라가 한 줄기 희망을 담은 채 그를 턱짓했다.
라반이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근방의 기운이 이상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길을 잃어버리게끔 유도하고 있다고.”
“유도?”
“말이 그렇다는 거다. 불규칙한 변화에도 정도가 있는데, 며칠 사이에 이런 식으로 사막 전체가 지형을 틀어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지. 미치겠군.”
“별이 있잖아. 별을 기준으로 걸어가는 건?”
“마력 파장이 이래서는 불가능해. 젠장할. 불가능하다고!”
이셀라가 고개를 저었다. 현실을 부정하듯 천천히.
‘그럴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없어.’ 입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라반이 발로 모래를 걷어찼다. 그러던 녀석이 돌연 눈빛을 굳혔다. 벌떡 일어난 라반이 이셀라에게 말했다.
“이셀라. 낙타 부족은 잊어라. 다른 부족도, 제국에 맞서겠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야. 사막 한가운데서 죽을 일만 기다리든지, 아니면 마을로 돌아갈 방법을 구할지. 선택해.”
모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그들로서는 선뜻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듯했다.
그때였다.
불현듯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떴다.
[퀘스트 발생 : 이셀라를 도와 길을 안내하십시오. 시스템의 계획 속에 있는 일입니다.
보상 : 모든 능력치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