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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14화 (114/170)

114화 검신의 흔적 (1)

“미래를 볼 줄 안다.”

고백하듯 내뱉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정말 어려운 결심이었는데.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우리 팀장님께서는 초능력자셨지.”

“농담 아니라 진짜로. 진짜 미래를….”

“암. 그렇고 말고.”

질끈 감은 눈을 뜨자 임한나가 웃고 있었다. 환한 얼굴로.

환장하겠네.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다. 꾹꾹 눌러 담았던 진실을 토했는데 거짓으로 치부 당하다니.

“아니. 진짜, 진짜라니까? 진짜 미래를 본다고! 내가 인지도 못 하는 사이에! 그냥 시시때때로!”

“언제는 방송 얘기만 나와도 기겁하더니, 이젠 컨셉에 취하기까지 하네. 나쁘진 않아. 프로페셔널해 보여.”

미치겠네.

앞으로 일성에 악당이 찾아오고, 또 시스템과 연관 있어 보이는 ‘그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서는 시타둠 교와 하오란까지도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래서는 병신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달아올랐던 기분이 확 꺼졌다. 그러고 나자 임한나의 얼굴이 면밀히 보였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아니라. 아까보다 한결 풀어진 얼굴이었다.

이건 이것대로 괜찮은 건가.

“그래서 미래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진대? 내가 죽기라도 한대?”

“…….”

정곡에 찔린 기분이다. 임한나의 눈이 커졌다.

“이쯤 되니까 진짜 같네. 꽤 신통한 구석도 있고.”

“…그러니까 막아야지.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는 거다. 임한나. 네가 꼭 필요하고.”

“그건 전에도 들었던 말이야.”

“중요한 말은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몇 번을 들어도 나쁘진 않네.”

“그럼 몇 번 더 말해 줄게. 임한나 네가 꼭….”

임한나가 깔깔 웃는다. 그 웃음소리를 듣자니 물감을 풀어놓은 듯 기분이 말랑말랑해진다.

“방송물 좀 들더니 사람이 능글맞아졌어.”

“다큐 좀 찍은 것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나.”

“성격 더러운 박지현이랑도 잘 통하던데.”

“그게 잘 통하는 걸로 보였다면 좀 충격인데.”

“거기다 생긴 것도 예쁘장하지.”

“…….”

“왜 대답이 없어?”

“뭐가?”

“뭐가라니.”

임한나가 고개를 훽 돌린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역시 그게 기분 나쁜 거였어.”

한 번 더 잔잔한 웃음이 퍼졌다. 그제서야 느껴졌다. 어지간히 긴장해 있었구나.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을 슬며시 풀어버린 듯했다.

이건 한석훈에게서도, 심지어 나 자신을 관조했을 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효과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임한나는 단순한 동료 이상인 것을.

그런 소망 하나가 생겼다. 언젠가 때가 되면, 임한나도 제 속에 품은 기운 덩어리의 정체를 말해 줬으면 좋겠다고.

***

급하게 만든 기자회견장이었다. 김태평과 천현우의 대결 영상이 퍼져 나간 뒤, 수습을 위해 만든 자리.

“긴장돼요?”

“조금이요.”

천현우와 죽네 사네 할 때도 태평하던 얼굴이 오늘은 유독 굳어있었다.

“어머니가 기자회견 본다고 하셨거든요. 말 잘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셔서….”

그러더니 머쓱하게 웃는다. 그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순진함이 가득한 김태평의 눈동자에 안도감이 들었다. 비참하게 죽는 김태평의 미래를 바꾼 것 같아서.

“긴장할 거 없어요. 약속된 질문만 던지기로 기자들이랑 합의됐으니까.”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김태평이 단상 위로 올라가자마자, 번쩍거리는 플래시와 함께 질문이 쏟아졌다.

“김태평 씨. 불과 며칠 전까지 E급이었던 걸로 확인이 됩니다. 그사이에 무슨 일을 겪은 겁니까!”

“특성이나 스킬을 얻은 겁니까?”

김태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을 얻었습니다.”

“어떤 스킬이죠?”

“스킬명과 등급을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까지는 사전에 합의된 그대로였다. 어차피 밝혀질 스킬과 등급이다. 우리가 먼저 터트리는 게 훨씬 낫다.

“이름은 오딘의 격노. S급 스킬입니다.”

얇은 목소리로 말한 김태평의 떨리는 음성이 현장 곳곳에 퍼졌다.

파급이 작지 않았다. 얼빠진 얼굴로 카메라를 내려놓은 기자가 넋을 놓은 듯 내뱉었다.

“뭐야. 진짜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였다. 어지간해야 믿지. 이게 말이 되나?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어…. 김태평 씨.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스킬 이름이 뭐라고요?”

“오딘의 격노. S급 스킬입니다.”

“네? 다시 한번만….”

“…….”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기자들이 넋을 놓고 나를 쳐다봤다. 김태평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쳐다본다.

뭐 실수했냐는 듯. 익히 예상한 상황이라 고개를 끄덕여줬더니.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신의 이름이 붙었잖아!”

“빨리! 속보부터 띄워! S급 스킬 떴다고. 뭐? 스킬? 일단 띄우라고!”

김태평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해 갔다.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김태평의 얼굴이 시선 가득 채워졌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이 퍼부어졌다.

“이태진 씨를 만나기 전부터 획득한 스킬인가요!”

“현재 등급과 레벨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태진 씨는 이 사실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겁니까? 김태평 씨! 대답해 주십시오!”

이건 예정에 없던 질문이다.

그러면 그렇지. 합의는 개뿔. 하나같이 자극적인 소스를 얇게 저민 질문들이었다. 저기에 잘못 휘말리면 어떤 제목으로 기사가 올라갈지 모른다.

슬쩍 홍주연을 눈짓했다. 이미 준비됐다는 듯 재빨리 그녀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한 분씩 차례대로 질문 부탁…!”

“오딘의 격노? 들어본 적 있어? 사기 아냐?”

“데스크 팀! 스킬 이름은 오딘의 격노다. 오딘. 북유럽 신화 오딘! 알아 처들었으면 뭐해! 빨리 사실 확인 안 하고!”

기자들의 광기 앞에 그 노련한 홍주연도 도리가 없어 보였다.

김태평의 얼굴에 카메라 세례가 쏟아지고,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질문을 던지고.

빠르게 현장을 튀어 나가는 기자들도 있었다. 아비규환이었다.

홍주연이 손가락으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해 왔다.

흥분은 일반인의 몫만이 아니었다. 뒤쪽에서 우리를 구경하던 각성자들, 그러니까 일성 소속의 헌터들도 눈을 부릅뜨고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김태평 씨! 스킬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기자가 질문다운 질문을 해 왔다.

오딘의 격노.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종류의 스킬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신의 이름이 붙어 있으니. 그의 단전에서 일어난 폭풍이 검신의 축복에 버금갈 정도로 거셌으니.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서 본 김태평의 힘이 충격적이었으니.

S급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김태평이 내게 눈빛으로 허락을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설명은 힘들지만, 대략 버프형 스킬입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격 속성이고요. 거기에….”

“자, 잠시만. 잠시만요!”

“거기까지.”

그쯤에서 김태평의 말을 끊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머지 사실확인은 추후 기자회견을 통해서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뒤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홍주연과 김주현이 눈치 빠르게 기자회견을 정리했다.

다음날, 뉴스 헤드 라인을 장식한 것은 나와 김태평이었다.

***

일성의 정기 간부 회의장은 여느 때보다 술렁였다. 원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이태진, 김태평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오딘? S급 스킬? 진짜야?”

“그럼 뻥이겠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뭐가 그럴 줄 알아?”

“김태평 그 사람 심상치 않았다고요.”

“웃기고 있네. 언제는 일성 개망신당하게 생겼다고 죽일 듯이 노려보더만.”

“이놈이 사람 오해하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 팀장 들을라.”

“어? 이 팀장?”

“……!”

“농담이야.”

“이 새끼가!”

C팀의 1, 2, 3팀장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덧붙였다.

“어쨌든 진짜 신기하네. 김태평이 S급 특성 뜬 것도 신기한데. 이태진은 어떻게 저렇게 될 줄 알았던 거야?”

“미래를 본다니까.”

“뭘 그렇게 쉽게 말해요?”

“아니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던 때. 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물쭈물대며 등장하는 김태평과, 그 옆의 이태진이 회의장으로 걸어왔다.

“쟤야? 김태평?”

1팀장이 작게 소곤거렸다.

“얼빠진 얼굴은 여전하네.”

“간부회의에 쟤는 왜 왔는데?”

“회장님이 불렀대.”

“그래봤자 C급일 거 아니야. 잘만 하면 꼬실 수도 있을 것 같고. 빌려달라고 말이나 해 볼까?”

“미쳤냐? 따귀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

“그렇지? 그냥 원래대로 김세린으로 만족해야겠네.”

“김세린 정도? 요즘 그쪽 팀 멤버들 구하려면 기본 대기기간 3개월이야 인마.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네. 얘가.”

3팀장이 앓는 소리를 냈다.

“팀원 없다고 앓는 소리 낸 게 엊그제였는데.”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지금이라도 그쪽 팀 못 들어가나?”

“팀장 버리고 거길 들어간다고요?”

“못 버릴 건 뭐야.”

“아서라. 괜히 쪽만 팔리지. 보니까, 최소 200레벨 이상만 구하는 것 같더라.”

입맛을 다신 2팀장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쪽 팀원들은 뭔가 좀.”

“이상하지. 특히 이태진 팀장이 훈련 봐주면서는 더더욱.”

“이참에 나도 봐달라고 하면 안 되나? 그렇게 족집게라며.”

“D급 시절이면 몰라도. 지금은 옛날 그 이태진 아니다. 말 걸기도 전에 커트 당할걸?”

그때 간부 회의가 시작됐다. 이태진의 자리는 네 번째였다. 최태성을 중심으로 김석환, 백인호, 그다음 이태진.

이태진의 실권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저거 보이지? 한번 말 걸어보든가. 검 좀 알려달라고.”

“안 비꼬아도 다 알아듣는다.”

정철규가 마이크를 잡았다.

“첫 번째 안건입니다. 최근 불거진 천인우, 천현우 형제의 계약 취소 건으로….”

순간, 이태진이 꿈틀거렸다.

“이번엔 또 어떤 미친 소리를 해댈지 궁금하네.”

“최 회장님이 뭔 짓을 벌여도 다 봐주니까 그렇지.”

“봐 줄 만하니까 봐주는 거야. 너도 레인 우버를 때려잡든가, 아니면 김태평 같은 놈 하나 데려오든 해봐. 안 예뻐할 수 있나.”

“뭐 잘못 드셨어요? 왜 그렇게 틱틱대?”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제기랄. 난 언제 S급 뜨냐.”

팀장들의 시선이 이태진에게 다시 돌아갔다. 간부 회의 때마다 기상천외한 안건들을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이태진의 입을 쳐다봤다.

“표정 보면 이번엔 그냥 넘어갈 것 같은데.”

“좀 쉴 때 됐지.”

“혹시 모르죠. 또 미친 소리 할지.”

“여기서 더 미칠 거라면 A급 던전이라도 공략하겠다고 해야….”

때마침 이태진이 손을 들었다. 모두가 이태진을 쳐다봤다. 기대 반, 불안함 반이 담긴 시선으로.

여느 때처럼 이태진이 차분한 톤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제가 A급 던전 맡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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