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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11화 (111/170)

111화 러브 앤 썬더 (4)

“이태진 팀장님. 저한테만 슬쩍 말해 주면 안 돼요?”

“뭘요?”

“김태평 그 사람 왜 뽑았는지. 뭐가 있긴 한 거죠?”

인사팀 직원이 낭창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뭐가 있긴 하지. 원래대로라면 이 사람은 김태평에게 죽을 운명이었을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미심쩍게 웃었다. 그러자 직원이 되려 기대 가득한 얼굴이 됐다.

“와. 진짜예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 건데.”

“거봐요. 뭐 있다니까. 우리는 못 보는 그런 거.”

바로 옆에는, 똑같이 김태평에게 죽었던, 아니, 죽을 예정이었던 직원이 눈빛을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2차 면접도 한석훈 팀장님이 합격시켰다면서요? 역시 두 분은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보네요.”

그런 소름 돋는 소리는 그만 듣고 싶은데.

그 후로도 지나가는 사람마다 내게 달라붙었다. 오늘만 벌써 열 명째였나?

김태평의 정체가 뭐냐, 대체 뭘 보고 뽑았냐, 자기한테만 알려달라는 둥.

마냥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모두들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진짜 김태평에게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이게 다 그놈의 다큐 때문이었다. ‘미래를 보는 헌터’가 공전의 히트를 친 덕분에, JBC에서 아주 칼을 간 것이다.

대뜸 찾아와 무릎까지 꿇을 기세로 추가 촬영을 부탁했었다. 그것도 국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대충 고개를 끄덕인 게 내 실수였다.

설마 김태평이 내 팀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렇게 편집할 줄은 몰랐지. 그것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김태평에게 집중됐다.

-저거 다 설정인 거 아직도 모르는 사람 있냐. 다큐는 무슨. 방송국 놈들한테 한두 번 속아?

-그러니까. 김태평 저 사람 과거 보니까 아카데미에서 되게 잘나갔던 사람이더만. 딱 봐도 이태진한테 뭐 찔러주고 방송 탄 거.

-그런데 김태평 이야기 들어보면 그럴 돈도 없어 보이던데.

-주작할 거면 적당히 잠재력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꼽았겠지. 바로 옆에 있던 걔 누구냐. 천현우?

-대체 뭔 자신감으로 김태평을 골랐대? 걔한테서 뭐가 보였길래?

-지켜보면 알겠지. 난 이태진이 이번에도 성공한다에 한 표.

불법 회사들을 때려잡고, 레인우버까지 붙잡은 그 열기가 김태평에게 옮겨붙었다. 화제성이 된다는 건 그 자체로 긍정적이었지만.

그 불길이 너무 센 게 문제였다.

-그래서 김태평이 생각보다 별거 없으면? 처음으로 이태진이 실패하는 건가?

-그것도 한번 보고 싶긴 함. 이태진도 이때까지 성공 가도만 달렸지?

-언젠가는 한번 넘어질 텐데. 난 그게 김태평일 거라고 봄. 김태평 이 사람. 파면 팔수록 너무 별 볼 일 없거든.

웃기게도, 김태평이라는 존재가 나를 향한 시험대로 바뀌었다.

이래서 문제라는 거다.

그깟 평판이 좀 떨어지는 것 따위야 신경 쓰이지도 않지만. 미래를 바꾸려는 행동이, 또 다른 사건으로 번져 버리는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또 어떤 태풍으로 닥쳐올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 내가 내리는 선택 하나하나가 제2의 최찬규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땀을 쏟아내며 훈련에 열중하는 김태평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불안의 싹을 지워 버리는 건 어떨까.

김태평의 자세는 여전했다. 못 봐 줄 정도로 엉성하고 처참하리만치 비효율적이었다. 아니, 전보다 더 개판이지. 그나마 남아있는 기본기마저 내가 없애 버렸으니까.

일부러 그랬다. 평상시와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면 혹시나 어떤 깨달음이라도 얻을까 봐.

당연히 던전에도 들여보내지 않았고, 모종의 사연이 있어 보이는 천현우와도 마주치지 않게 했다. 편찮은 홀어머니를 위해 돈까지 쥐여줬고.

이 정도 했으면 된 거잖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잖아.

“식사하러 가시죠. 김태평 씨.”

그러니까 딱 반년. 반년만 내 밑에 묶어두는 것이다. 어떤 기연이든 김태평에게 오지 못하게, 딱 반년만.

***

그렇게 생각했는데. 돌연, 눈앞에서 도시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이 말이다.

잠시 당황했다가 깨달았다.

지금 나는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언제 의식이 빠져나간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마지막 기억이 회복 마법에 집중하기 위해 검신의 축복을 꺼놨을 때쯤이었나.

강제로 고개가 돌아갔다. 늘 그랬듯 몸의 통제권은 내게 있지 않았다. 깨진 차창 사이로 허망한 내 눈빛이 보였다.

“팀장님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무너진 건물 위에 우뚝 서 있는 김태평이 보였다. 손에 들린 시체 한 구도 같이. 천현우. 김태평의 아카데미 동기이자, 원래라면 내 팀에 들어왔어야 할 사람이었다.

저번에 봤던 미래와 비슷하다. 다짜고짜 일성에 쳐들어온 김태평이 천현우가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었지. 그게 찜찜해서 끝끝내 천현우를 내 팀으로 안 받아들였고.

그래. 거기에서부터 미래가 달라진 거다. 내가 천현우 대신 김태평을 선택한 것에서부터.

다만. 결과는 똑같아졌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해졌지. 지금은 서울 도심 전체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왜 이렇게 됐을까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죠? 천현우가 어머니를 죽였을 때부터였을까요? 아니면 제가 일성에서 쫓겨났을 때?”

김태평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나 현재의 그와는 전혀 다른, 강자다운 분위기를 지니면서였다. 이건 뭐 지킬앤 하이드도 아니고.

“결국 이렇게 될 거였다. 너 같은 쓰레기는 재활용도 불가능해.”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더불어 자조적인 미소가 지어졌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저절로 그려졌다.

이쯤 되면 고민하는 게 더 이상하다. 이곳에서 벗어나자마자 김태평을 죽인다. 그리고 증거는 깔끔하게 없앤다.

망설일 게 없었다. 모두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렇게 결심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팀장님이 절 죽이려 했던 것도 이해가 가요.”

“그게 각성제가 될 줄도 모르고.”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저한테 그런 게 숨어있는 줄은 몰랐으니까요. 여러모로 고마워요. 팀장님한테는.”

뭐?

생각할 틈도 없이, 김태평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레인 우버에는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맹세코 저도 이런 결과를 바란 건 아니었어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까지 여기에 휘말리다니.”

김태평이 손을 휘둘렀다. 축 늘어진 천현우의 시체가 쓰레기 버려지듯 던져졌다. 불타오르는 건물 사이로.

“팀장님은 제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죠? 이쯤 되니 정말 미래를 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못 믿겠지만 그때의 전, 착해 빠진 놈이었거든요.”

김태평이 이어서 말했다.

“어쨌든 팀장님한테는 좋은 감정만 남기고 싶었는데. 잘 안 됐네요.”

자못 씁쓸한 얼굴로 불타오르는 서울을 쳐다봤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터지고, 죽은 시체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았다.

“그럼.”

김태평이 손을 들었다. 그와 함께 내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렇게 우리 둘의 힘이 격돌할 줄 알았는데.

김태평이 피식 웃었다.

“제가 어떻게 팀장님한테 덤비겠어요. 그건 은혜도 모르는, 개만도 못한 놈이지.”

“뭐?”

“진심으로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팀장님.”

직후였다.

푸확!

부지불식간에, 김태평이 제 심장을 손으로 찔렀다. 내 심장이 아니라, 자기 가슴을.

화악!

***

잠시간의 현기증을 털어내고자 머리를 휘휘 저었다.

혼란스러운 미래였지만, 얻은 힌트도 많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무슨 짓을 하지 않든 김태평은 강해진다는 것. 그리고 김태평에게 돈을 쥐여주거나 엉뚱한 훈련이나 시키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것.

불타오르는 서울과 제 심장을 스스로 찌른 김태평이 겹쳐 보였다. 연무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훈련하는 순진무구한 청년도 그 위에 덧씌워졌다.

뭐가 진짜 김태평일까?

고개를 저었다. 김태평의 천성이 착한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유치한 짓은 그만뒀다.

감정은 한 톨도 남기지 말고, 드라이하게 상황을 직시했다. 그러자 머리가 맑아졌다. 뿌연 안개가 사라지고, 또렷한 길 하나가 보였다. 해 보자.

***

“대화가 안 통하네요. 일성이 이 정도로 꽉 막힌 회사일 줄은 몰랐는데. 계약하기로 했던 건 없던 일로 하시죠.”

“천인우 씨!”

인사팀장이 소리쳤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연봉도 맞춰주고, 아이템 수익 배분까지 맞춰 줬잖아요. 원하던 대로 기존 팀원들 다 데려와서, A-2팀 새로 만들어주는 것까지 오케이 했고! 여기서 뭘 더 해 드려요?”

“말했잖아요. 이태진 그 사람 때문에 저희 팀 이미지 구겨졌다고.”

“겨우 다큐 나온 거, 그것도 한 단락 나온 거. 겨우 그것 때문에요?”

“겨우라고 하기에는. 헌터들한테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아실 텐데요.”

천인우가 혀를 찼다.

“제 동생이 거기서 급도 안 되는 놈한테 발려서 자존심 잔뜩 구긴 거. 아직도 인터넷에 가십거리로 떠돌아요. 김태평한테 밀릴 정도면 천현우도, 천인우가 팀장으로 있는 팀도 별 볼 일 없을 거라고. 이걸 듣고 세상 어느 팀장이 가만히 있어요?”

인사팀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천인우 씨. 일성이 만만해요? 어디서 몸값 높이는 방법이라고 배워 온 모양인데….”

“몸값 올릴 생각 없습니다. 맞춰주신 조건들. 충분히 만족하니까.”

천인우가 딱 잘라 말했다.

“저도 많이는 안 바라고요. 이태진 씨가 공개적으로 저희한테 사과하는 거. 그거면 됩니다. 이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는 아닐 텐데.”

교활하게 미소지으며, 천인우가 턱짓했다.

“알아들었으면, 빨리 이태진 그 사람 불러와요. 당장.”

***

“형. 정말 이래도 돼?”

천현우가 불안한 얼굴로 속삭였다. 목소리에는 한가득 찜찜함이 묻어 있었다.

“뭐가 인마? 다 잘돼가고 있구만.”

“이러다 계약 엎어지면 우리도 새 되는 거 아니야?”

천인우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팔짱을 꼈다.

“급한 건 쟤들이야. 당장 우리 들어온다고 A급 던전도 일정 빡빡하게 다섯 개씩 잡아놨던데. 그거 캔슬하면 날아가는 돈이 얼마겠냐?”

“그런데 왜 하필 사과예요? 뭐, 화젯거리야 되겠다만 저희한테 별로 이득될 것도 없는데. 일성 쪽에서도 고깝게 보지도 않을 거고. 최 회장이 이태진 아끼는 거 몰라요?”

협상 자리에 함께 데려온 팀원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굴러온 돌이 자리 잡으려면, 박힌 돌이랑 힘겨루기 한번 해야 되거든요. 최태성이 나서면 더 좋죠. 공론화시키면 우리 이름값만 더 높아질 텐데.”

“혹시 이태진이 사과 안 한다고 하면, 그러면 어떻게 할 겁니까? 전 이 계약 놓치기 싫은데. 협회 쪽으로 가는 건 더 싫고. 거기 애들이랑 엮여서 좋은 꼴을 못 봐서요.”

“고개 한 번 숙이는 게 큰일도 아니고. 겨우 그것 때문에 A급 헌터 다섯 명을 잃겠어요?”

천인우의 입매가 교활한 미소를 그렸다.

***

잠시 뒤였다. 소식을 들은 건지 이태진이 협상 자리에 들어왔다. 표정은 마실 나온 것처럼 한없이 담담해 보였다.

“생각보다 담담해 보이네요. 자기 때문에 이 사단이 났다는데도.”

“불법 각성제 한창일 때 저 혼자 온 동네 회사들은 다 들쑤시고 다녔잖아요. 깜냥은 되는 놈인 거겠죠.”

동료들의 말에 천인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손영혁이 뒤에서 받쳐 줘서 가능했던 거고요. 저거 다 연기예요. 잘 봐요.”

천인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그쪽이 이태진 씨예요?

그렇게 말하며 기선제압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이태진이 턱을 치켜올렸다.

“그쪽이 천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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