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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08화 (108/170)

108화 러브 앤 썬더 (1)

“이번 조도 별로네.”

옆에 있던 정철규가 혀를 찼다. 마음에 드는 인원이 없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넌 던전 들어간다더니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사람이 없어서요. 같이 던전 공략할 사람이.”

“뭐?”

웃기지 말라며 정철규가 핀잔을 줬다.

“네 팀 지원한 놈들이 몇 명인데 사람이 없기는 뭐가 없어? 당장 B급으로만 서른 명은 채우겠다.”

“뭐. B급은 그렇죠.”

내가 원하는 헌터가 A급이라 문제지.

“인원 제한도 풀렸겠다. B급 던전 공략하면 되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

급하지.

돈을 벌거나,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면 B급 던전만 주야장천 공략해도 된다. 그런데 칼 든 살인마가 쫓아오고 있는 게 현실이라.

“뭔가 또 미래를 봤겠죠. 노스트라다무스께서.”

윤진아가 심드렁하게 진실을 말했다. 안 그래도 요즘 유행어가 된 말이다. 내가 자판기에서 음료만 뽑아도 미래를 보는 중이라느니, 밥만 먹어도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거라느니.

“뭣하면 내가 도와주고. 네 팀으로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지만. 용병 정도는 괜찮잖아.”

“감사합니다.”

넙죽 고개부터 숙였다. 내가 물불 가릴 처지도 아니고 A급 원거리 딜러가 도와준다는데 감사히 받아야지.

그런데 그건 최후의 수단 같은 느낌이고. 일단 이번 면접에서 쓸만한 각성자들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다.

신입사원을 뽑는 자리인 만큼, 당장의 고레벨을 바라지는 않는다. E급, 아니, F급도 괜찮다. 성장 잠재력만 높으면 된다.

“사람 뽑는 게 제일 힘들다니까.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자기도 몰라.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그걸 알아보고 뽑아?”

“이규호도 원래 E급이었다가 3년 만에 B등급 찍었잖아. 사람 일 모른다니까.”

“반대로 B급까지 순식간에 찍고 고꾸라진 놈들도 많고. 어떤 놈이 A급 되고, 어떤 놈이 S급 될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정철규가 한숨을 쉬며 이력서를 뒤적거렸다. 그러며 슬며시 나를 쳐다본다. 마치 나한테 답이 있는 게 아닐까, 기대하는 눈빛으로.

“에이. 그런 능력 있으면 진작 회사 차렸죠.”

“그렇지? 너도 그런 건 못하지?”

“네.”

뜨끔거리는 속내를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흙 속의 진주를 발굴하는 것. 내가 자신 있는 것 중 하나다. 그저 파동을 읽어내면 그만이니까.

“다음 조는 그래도 경력직 껴 있네요.”

윤진아가 혀를 차며 말했다.

“천현우? 입사는 확정이네?”

“얼굴도장 찍으러 온 거지, 뭐.”

“흠. 얘는 그렇다 치고. 다른 애들은 썩….”

“네. 2차 면접 때 저도 참관했는데, 인물은 없더라고요. 요새는 협회 쪽으로 다 가는 추세라.”

“쯧. 요새 협회 하는 짓거리 보면 이것들이 쿠데타라도 꾸미는가 싶다니까. 아예 대한민국 각성자들 다 끌어모을 기세야.”

“그쪽은 계속 주시해 볼게요. 다음 조, 들어오라고 하세요.”

윤진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줄줄이 다섯 명이 들어오는데, 누가 천현우인지는 곧장 알아챘다.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꽤 쓸만한 능력치를 가졌다.

그런데 정작 시선은 다른 쪽으로 갔다. 천현우 옆에. 거칠게 생긴 30대 중반의 남자에게로.

첫인상은 황당함이었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로.

뭐지?

어떻게 최종면접까지 뚫고 올라온 거지?

걸음걸이로 보나, 느껴지는 파동으로 보나 뭐하나 눈에 띄는 게 없다. 성장 잠재력을 따질 필요도 없다. 잘 커봤자 D급이다.

혹시 뒷배가 있나?

그렇다기에는 표정이 영 부자연스러운데.

경직되고 웃음기 하나 없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와서는 안 될 곳에 입장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앉으세요.”

그렇게 말을 던지고 남자의 프로필을 살펴봤다. 정확히는 2차 면접관의 이름을.

역시나 한석훈 이 양반이었다. 그제야 납득이 갔다. 줄이 있는 게 아니라 변태한테 찍혔구나. 한석훈이라면 뭔 짓을 벌여도 그려려니 싶으니까.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김태평에게 관심을 끊으려고 했다. 속으로는 천현우를 내 팀으로 키워볼까, 생각도 들었다. 당장 쓸 전력은 안 돼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

그런데 왜지? 계속 남자에게 시선이 갔다. 낙하산이 있나 의심했을 때보다도 더. 혹시나 싶어서 파장을 몇 번이나 더 살펴봐도 똑같다.

별 볼 일 없는 E급 헌터. 혹시라도 일성에 입사하더라도 채 한 달을 못 버티고 제 발로 퇴사할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 찝찝한 직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강력한 느낌이 들었을 때 꼭 무슨 일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한마디 하자마자였다. 시야가 번쩍거렸다. 시간이 멈추는 전조증상이 일어난 후였다.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의식이 전환됐다. 뭐가 뭔지 분간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내 의식이 미래로 들어갔다.

화악!

눈을 감았다 뜨자 장면이 바뀌었다. 회사 건물 내부였다.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고 정면에는 반 팔 입은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일성의 인사팀이었다.

언제지? 반년쯤 뒤?

“천현우 그 친구는 완전 계 탄 거지.”

인사팀 직원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이태진 팀 들어가서 그렇게 잘 풀릴 줄 누가 알았겠어.”

“요즘 천현우만큼 잘나가는 애 없지?”

“없지. 천현우 정도면 확고한 스타지.”

천현우. 바로 머릿속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아마 내 팀에 들어와서 잘됐다는 것 같은데.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확정된 미래는 오랜만이라서.

“사고도 안 쳐, 성장도 빨라. 아이고. 이태진 팀장님 저기 오시네. 양반은 못 된다니까.”

“제 뒤에서 흉보고 계셨어요?”

미래의 내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예. 아주 크게 흉보고 있었습니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럴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간만에 좋은 미래가 보이나 싶던 그때였다.

콰광!

시야가 난잡하게 이지러졌다. 분명 찰나 간에 옆에 있던 창문 유리가 터져나가는 건 확인했는데. 그다음이 어떻게 됐지?

미래의 나는 판단이 빨랐다. 곧바로 장비를 착용하고 흔들리는 몸의 중심을 잡았다. 때마침 뿌연 먼지가 흩어지고 사람 하나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혹시 그놈?

일성을 그렇게 만든 그놈이 찾아왔나?

하고 고개를 휙 돌렸을 때. 내 동공이 진동했다.

“김태평?”

현실과 전혀 다른 느낌의 김태평이 깨진 유리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느껴지는 기운이 가히 나와 필적할 만큼 거대했다.

인사팀 직원의 시체를 쳐다보는 김태평의 눈은 더없이 차가웠다.

“천현우 어딨어. 아, 그전에. 너도 똑같은 새끼지.”

김태평이 슬그머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미래 속의 내가 이를 악다물고 몸을 날리려 했다.

그리고 직후.

화악!

면접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그렇지.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이었다. ‘그것’이 또 나를 위기로 내몰고 있었다. 이번엔 생전 처음 보는 남자를 통해서.

숨을 돌리고 정면을 보자, 여전히 우물쭈물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김태평이 보였다.

이 남자를 죽일까? 곧장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모르는 사건의 인과관계는 무시해 버리고. 뭐가 됐든, 나와 일성을 공격하는 것만큼은 명확하니까.

증거?

증거를 없애는 것 따위야 얼마든지….

이런 미친.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아무리 내가 변했다 한들, 다짜고짜 사람부터 죽일 생각을 하다니.

고개를 저었다. 재빨리 김태평의 이력서부터 다시 되짚어봤다.

그런데 다시 살펴봐도 여전했다. 뭐가 없어도 너무 없다. 느껴지는 파동도, 성장 잠재력도 형편없었다.

젠장. 그런데 이런 놈이 당장 반년 뒤에 나와 같은 수준이 된다는 거지.

어떡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지만, 어쨌든 당장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혹시 우리 팀 들어올 생각 없어요?”

***

집으로 되돌아가려던 때, 주차장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오늘 하루 동안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 장본인.

“김태평 씨?”

김태평은 초조한 얼굴로 주차장을 서성이다가, 내 얼굴을 본 직후 사색으로 물들었다.

“이, 이, 이태진 팀장님.”

거친 얼굴과 달리 말까지 더듬으며 내게 다가온다. 코에서는 스포츠카처럼 콧바람을 내뱉고, 두 눈은 오갈 데 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도저히 연기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미래의 그 눈빛과 비교하면 한없이 나약해 보였다.

“여기서 왜 그러고 계십니까? 합격 문자는 갔을 텐데.”

“그, 그게 아니라….”

한참을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던 김태평의 목소리는 눈을 감았다 뜨고도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솔직히, 왜 저를 합격시켜 주신 건지, 그것도 왜 팀장님 팀에 들어오라고 하신 건지….”

“가능성을 봤습니다. 김태평 씨의 성장 가능성이요.”

못 봤다. 그저 내 옆에 뒀다가,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죽일 계획만 세우고 있는 판이다.

“이태진 팀장님. 저는 1987년생, 레벨은 70이며 각성한 지는 올해로 8년 차, 현재 보유 중인 특성과 스킬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김태평은 제 이력을 줄줄이 나열했다. 이럴수록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설마 저희 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겁니까?”

“그,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김태평이 얼굴만큼 거친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성의 B팀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럼 됐네요. 김태평 씨. 김태평 씨 잠재력은 제가 보증합니다.”

혀를 차며 말을 덧붙였다.

“그보다는 댁으로 돌아가 푹 쉬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력서에는 그렇게 적혀있던데. 밥 먹듯이 던전 드나들었다고. 일성에 입사했다고 편해질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끈기 하나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선생님! 아니, 팀장님! 믿어만 주십시오!”

김태평의 눈빛이 간절해졌다.

지금 김태평이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면, 그는 당장 할리우드에 가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도 무미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예. 그러면 내일부터 출근하시는 걸로 하시고, 그만 돌아가 보세요.”

결국 벌게진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쏟던 김태평이 겨우 돌아갔따.

“하아.”

김태평에 대한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할 일이 있었다. 저번부터 깨달은 것을 체화할 시간.

먼저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을 앞에 뒀다.

[조건 : 아락투스의 예비된 시험이 존재합니다. 공간의 이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아니.”

아직은 때가 아니다. 마법 사전을 꺼낸 것은 단지 마기의 보충을 위해서일 뿐이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마기를 코로 흡입하며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 이렇듯 심장에서 공전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다섯 개의 서클. 그 안에 가득 충전된 마기가 꾸물대고 있었다.

스킬을 발동하는 마나와, 아락투스의 마기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은 나다. 환골탈태를 겪은 지금은 운용이 더없이 빨라지고 있었다.

우웅-!

돌아가는 다섯 개의 고리가 길을 따라 천천히 몸을 타고 올라갔다.

다른 잡생각은 모두 몰아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마기를 주체하지 못 한다.

머릿속에 강제로 입력된 중력 마법이 아닌, 온전히 깨달은 바를 실현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그때를 생각했다. 박지현이 내 앞에서 치유 스킬을 썼던 그때.

우우웅!

목을 지나간 마기가 더 위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머리 쪽으로 향한 마기가 자리를 잡은 그때.

눈 감은 그대로 손톱을 들어 반대편 팔을 그었다. 손톱이 지나가는 곳마다 얇게 벌어지는 상처가 느껴졌다.

지금이다. 머리에 맺힌 기운을 이동시켰다. 끊임없이 그때를 회상했다. 하얀색 치유의 기운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기억하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화악!

뭔가가 느껴진 것과 동시에 눈을 떴다.

“아아!”

손끝에 맺힌 희미하고 작은 기운이 보였다. 박지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반딧불 정도 크기의 하얀 빛무리였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얻어낸 결과물치고는 매우 미약했지만 벌렁대는 심장은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떨리는 손끝을 천천히 반대편 팔로 이동시켰다. 예상이 맞았다. 기운이 닿는 곳마다 벌어졌던 상처가 아물어갔다.

쿵쾅대는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이거다. 그토록이나 원하던 능력을 드디어 얻었다.

전사이자 힐러이자 마법사.

나는 그렇게 세 가지 능력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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