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107화 (107/170)

107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3)

2부작으로 기획된 다큐멘터리의 첫 방영일이었다. 오로지 나를 주제로 삼은 다큐멘터리.

특히나 불법 각성제를 다룬 내용이다보니, 인터넷부터 오프라인까지 반응이 활활 불타 오르고 있었다.

-제목이 미래를 보는 헌터. 이태진은 답을 알고 있다? 이게 뭔 소리임?

-다큐 제목치고는 너무 어그로 끈 거 아닌가

-미래 예지? 뭐 그런 거냐?

-나의 미래는 로또 1등 당첨되어서 부모님께 효도하는거.

└아니 님 왜 갑자기 플래그 세우는 건데? ㅜㅜ 내 꿈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고 고향에서 빵집하는 거랑 뭐가 달라!

└죄송하지만 당신들의 미래. 이태진이 가져갑니다.

시큰둥한 여론과 달리 나는 화살이라도 한 발 맞은 줄 알았다.

뭐? 제목이 뭐라고?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여지껏 귀찮아서 다큐멘터리에 관련된 건 홍주연에게 다 맡겨뒀는데.

그러니까 제목이 이거라고?

미래를 보는 헌터?

집에 혼자 있길 잘했다 싶었다. 아니었다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줬을 테니까.

그렇게 뜨끈해진 속을 다스리고 있는 사이 광고가 끝났다. 화제의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오빠, 아니, 팀장님이요?]

김세린의 얼굴이 제일 먼저 잡혔다. 원체 이런 걸 좋아하는 애다 보니 인터뷰도 가장 적극적으로 했었지.

[처음에는 좀 이상했죠. 아, 입사 첫날부터 던전 들어갔거든요. 네? 아뇨. 당연히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김세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이런 상황이 될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마치 한 번 경험한 것처럼 오크랑 싸우는데 그때부터 알아봤죠. 이 사람, 뭔가 이상하다.]

[맞아. 지은이 구한 거. 보스전에서 말이야. 너 그때 기억나지?]

박하영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카메라는 어느새 옆에 있는 이지은에게 렌즈를 돌렸다.

[네. 맞아요. 그때 보스몹이 저를 죽이려고 했는데….]

[지금이면 제 마법 한 방에 죽을 놈이죠. 헤헤.]

[가만히 좀 있어. 멍청아.]

[오크가 분노상태였어요. 저는 힐러다 보니 얼어있었고요. 그런데 그때 이태진 팀장님이….]

자막이 떴다.

-천부적인 전투 감각은 그렇다 치고, 보스몹의 분노상태는 어떻게 알고 막아낸 걸까?

[잠시만요, 잠시만요. 또 있어요. 이게 진짜 대박. 공략 끝나고 실버 박스하고 브론즈 박스가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때 오빠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듯 우다다다 쏟아내는 김세린의 말은 자막으로 예쁘게 처리됐다. 내가 브론즈 박스를 골랐고, 거기서 A급 스킬 아드레날린 부스트가 떴다고.

[아참! 그리고 그때 회식 때. 우리가 물어봤거든요. 혹시 로또 번호 좀 알려 줄 수 있냐고….]

박하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야, 설마 너!]

[아니 혹시나 해서 사봤지.]

하며 박하영이 멋쩍은 듯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요. 2등 당첨됐어요. 세금 떼고 4천만 원.]

의미심장하다는 자막과 함께 장면이 전환됐다.

[그때는 우연인 줄 알았어요. 웬 미친놈이 호기롭게 럭키박스에서 좋은 게 나올 거 같다고 해서.]

[아 그때.]

D팀 헌터들이었다. 내가 검신의 축복을 뽑았을 때, 바로 옆에서 직관했던 사람들.

[그런데 그게 진짜더라고요. 거침없이 럭키 박스 깔 때만 해도 불안했는데, 거기서 S급 특성이 나올 줄은….]

장면이 점점 빠르게 전환됐다. 서울역 게이트 생존자라는 자막이 붙은 남자였다.

[그분이요. 제 생명의 은인이죠! 이태진 씨가 아니었으면 저도 죽었을 테니까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게이트가 뜨기 직전에 이태진 씨가 대피 명령을 내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에 따라 자막은 점점 가관이 돼 갔다.

-점점 그런 의혹이 든다. 혹시 이태진은 큰 사고가 일어날 줄 알았던 게 아닐까?

오싹한 배경음이 깔렸다. 절정은 전주 던전에서 살아나온 정철규의 심각한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였다.

[무조건 위험하다고 하더라고요. 왜냐고 물으면, 그냥 얼렁뚱땅 느낌이 안 좋다고만 하는데. 이상하잖아요. 느낌이 안 좋다고 공략 일정을 올스톱시킨다는 게. 전 그게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꼭. 미래를 보는 것 같다고.]

그게 방점을 찍는 한마디였다. 그때쯤 인터넷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듯 활활 불타고 있었다.

-잠시만요ㅋㅋㅋㅋ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누가 정리 좀!

-간단함. 이태진이 브론즈 박스에서 A급 스킬을 띄웠고 럭키박스에서 S급 특성을 띄움.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에 이태진이 안 낀 데가 없는. 그런 상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말이 됨? A급이니 S급이니 게이트니. 너무 어지러운데. 저걸 느낌으로 다 때려 맞힐 확률이 얼마나 되는 거임?

-길 가다가 번개 두 번 맞고 산 로또가 1등 당첨될 확률 정도?

-이제 보니까 제목이 어그로가 아니었던 거임.

-ㅋㅋㅋㅋㅋㅋ정직한 제목, 정직한 내용.

화면이 다시 PD가 있는 실내로 전환됐다. 무슨 호러영화처럼 내 사진을 둥둥 띄워 놓은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PD가 촬영 세트를 걸어다녔다.

[이 모든 사건들이 우연의 일치일까요? 그럴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요. 차라리 이태진이 미래를 본다는 말이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부에서 계속됩니다.]

그 말과 함께 다큐멘터리가 종료됐다.

-와 미쳤네. 웬만한 드라마보다 꿀잼인데? 이거 진짜 다큐 맞음?

-그래서 2부는 언제 하냐?

-한 달 뒤임ㅋㅋㅋ 그냥 시청자들 애간장 태우는 데 달인.

-그래서 이태진이 미래를 본다는 거? 진짜임?

-진짜겠냐. 그냥 하는 말이지. 근데. 뭔가 수상하긴 함.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운빨이 좋을 수가 있지?

재밌다는 반응과 달리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 한참이나 벙찐 상태로 가만 있었다.

비밀스럽게 간직한 일기장이 온천하에 발각된 기분이었다.

다행인 것은, 인터넷이나 주위 사람들이 오는 문자만 봐도 진지한 분위기는 없었다. 다들 재미 삼아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별명을 만들어 놀리기 바빠 보였다.

그래. 이 반응이 정상이지. 어떤 미친놈이 진지하게 미래를 본다고 믿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십년감수했네.”

이마를 짚으니 식은땀이 맺혀있다.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한숨을 덜어냈다. 긴장이 사라지자 은근슬쩍 쾌감이 올라왔다.

무덤까지 비밀로 간직할 줄 알았던 내 초능력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은 꽤 묘한 기분이었다.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최근 들어 얼마나 긴장하고 살았는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겨우 다큐멘터리 한편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주위 사람에게만큼은. 이 사실을 알려도 되지 않을까?

***

“야. 가서 아이템 좀 주워라.”

그 말에 김태평이 헐레벌떡 몬스터 사이로 뛰어갔다.

종 부리듯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상급자의 명령도, 강한 산성을 남기고 죽은 몬스터의 가죽을 벗기는 일도, 그 안에 떨어진 아이템을 줍는 일도 김태평에게 익숙했다.

“야. 태평이가 무슨 개냐? 내 친구야, 이 새끼야. 잘해주라고.”

“아 맞다. 죄송합니다.”

“태평아 들었지? 미안하대!”

이런 조롱도 익숙하다. 아무렴. C급 던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게 어디인가.

물론 전투에 참여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상위 각성자들의 심심풀이 샌드백, 이동용 인벤토리 역할밖에 못 하지만.

E급 던전을 돌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입과 경험치가 보장된다. 그것으로 됐다. 표정을 숨기는 건 일도 아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는데요?”

“그럼 괜찮아야지. 홀어머니 모시고 살려면 이것보다 더한 꼴도 봐야 할 텐데. 아참. 어머니는 괜찮으신 거지? 한번 찾아봬야 하는데.”

자신의 친구라던 천현우가 이죽거리며 말하자 주변의 각성자들이 오버하듯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어쩐지 오늘은 똥냄새가 안 나더라. 역시 돈이 좋지?”

“태평아! 나중에 한 번 찾아뵌다고 전해주라!”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취급은 버틸 수 있다. 당연히 버텨야 한다. 하고 되뇌어도. 찰나간에 구겨지는 표정은 도무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빠악!

역시나, 표정을 관리 못 한 대가가 곧장 돌아왔다. 반응하지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발길질이 온몸으로 쏟아졌다.

“미쳤냐?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네가 우리한테 그런 표정을 지어?”

“파티 끼워준 게 어딘데 태평아! 네가 먹는 경험치랑 돈을 생각해 이 기생충 같은 새끼야. 응?”

C급 각성자들의 몸놀림은 감히 자신이 쫓아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바퀴벌레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살려달라고 애원할 뿐이었다.

“그만. 그만해. 내가 말이 심했다. 그렇지?”

느릿느릿 다가온 천현우가 팀원들을 말리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비를 베푼다는 듯 손을 내밀면서.

“아닙, 커헉! 아닙니다.”

“아니야? 내 말이 안 심했어?”

“죄…송합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자, 손!”

정말이지 분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자비랍시고 손을 내미는 천현우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스스로가 역겨웠다.

김태평은 이를 꽉 깨물며 피떡이 된 자신의 오른팔을 천현우의 손에 올렸다. 고개를 푹 숙이면서.

“옳지. 잘하네. 이거 봐. 하면 잘하는 놈이. 친구야. 그래도 나밖에 없지? 어디든 가 봐. E급 짜리 각성자를 이런 곳에 끼여 주나.”

기르는 강아지를 칭찬하듯 천현우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말에 김태평은 반박하지 못했다. 벌레처럼 납작 엎드린 채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단칸방으로 돌아온 김태평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머니가 불치병에 걸렸을 때?

아니. 그럴 리가. 그런 생각은 있을 수 없다. 그분의 청춘은 자신 하나만을 위해 희생됐다. 매달 나가는 포션값이 천만 원이 넘는다 해도, 웃으며 값을 치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성장이 멈췄을 때?

아카데미 시절만 해도 김태평은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때만 해도 무난히 B급 헌터는 찍을 줄 알았고, 어쩌면 꿈의 영역이라는 A급도 달성하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도 했었다.

“미쳤었지. 정신이 나갔거나.”

헌데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7년째. 자신은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다. 둔재라 할지라도 무난히 D등급에는 올라서야 할 시기였지만. 김태평의 재능은 시스템조차 학을 뗄 정도로 형편없다는 게 문제였다.

E급 던전을 허덕이며 몇 년을 노력했건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최근에는 성장 속도가 더뎌지기까지 했다.

이유 따위는 모른다. 커야 할 키가 미리 큰 듯 아카데미를 벗어난 자신은 E급 던전을 전전하는 머저리가 됐을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어머니가 그때쯤 원인불명의 불치병에 걸린 것이다. A급 헌터의 스킬이 담긴 포션이 아니라면 연명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 김태평?’

그때 만난 게 천현우였다. 아카데미 당시에는 서로를 라이벌이라 부르며 동고동락한 녀석. 좋은 추억이 많은 친구였다.

‘이 친구야. 그런 사정이 있으면 연락을 하지 그랬어. 쯧, 내가 뭐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게. 아! 이럴 게 아니라 같이 던전 들어가는 건 어때? E급 던전보다는 경험치도, 수입도 훨씬 좋을 텐데.’

‘던전? 현우야. 말했다시피 나는 E급….’

‘알지. 인마. 친구 좋은 게 뭐냐.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근데 팀원들 성격이 조금 거칠어서. 괜찮지?’

“그럼! 괜찮고말고. 나야 너무 고맙지. 이 은혜를 어떻게. 병신같으니.”

고개를 털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시계를 본 김태평이 서둘러 단칸방을 나섰다.

이제 곧 요양보호사가 퇴근할 시간이다. 눈물 자국을 없애며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을 때.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벌써 퇴근했나?”

초조한 마음으로 메시지 함에 들어갔다.

[일성 신입사원 공개채용 최종면접 날짜 안내]

***

일성의 신입사원 면접.

헌터라면 누구나 일성에 들어오기를 꿈꾼다.

높은 연봉, 체계적인 관리, 고여있지 않은 인사. 최태성이라는 모든 헌터들의 워너비까지.

최근에는 입사한 지 1년 만에 B팀의 팀장에 올라선 이태진의 신화도 더해졌다. 안 그래도 굳건한 일성의 이미지가 이태진으로 인해 화룡점정을 찍었다.

헌터로서 은퇴를 고려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 시점에 김태평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김태평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론이야 우수하다. 누르면 툭 튀어나올 만큼 몬스터와 던전 지형에 대해 달달 외워놨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실전이 문제였다. 겨우 E급, 레벨로 따지면 70레벨에 불과한 자신이 일성의 최종면접까지 올 줄이야.

원서 지원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복권 사듯 지원해 본 것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합격한 거지?’

짚이는 데가 하나 있기는 하다. 한석훈이라고 했던가? 2차 면접 당시, 심드렁한 얼굴에 담배 냄새 풀풀 풍기는 중년의 외팔이 남자가 퍼뜩 생각났다.

한참을 이죽거리던 면접관이 제일 자신 있는 게 뭐냐고 묻길래 ‘혼신을 다하는 노력’이라고 답했었다. 그리고 이제껏 들어갔던 던전 리스트를 쫙 보여줬었다.

일렬로 나열된 글자들에 자신의 생애가 담겨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던전에 들어간 나날들, 맑은 하늘보다 어두컴컴한 던전에서 먹고 잤던 세월이 말이다. 물론 E급에 불과한 던전들이었지만.

어쨌든 지금 생각해도 멋대가리 없는 그 답변을 외팔이 면접관이 좋게 봐줬던 것 같기도 하다. 멍하니 한참을 그 리스트를 쳐다봤으니까.

“기대하지 말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자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기까지 온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도 기대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치로 일성에 들어가는 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먹힐 이야기였다.

“그래.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어쨌든 잘해보자. 김태평.”

옆자리, 자신과 같은 면접 조에 배정된 천현우가 비릿하게 웃으며 어깨를 툭툭 쳤다.

자신은 경력직 채용이라며, 왜 신입사원들과 같은 조에 배정됐는지 모르겠다며 한참을 그렇게 속을 긁어내던 놈.

“3조 면접 들어가실게요!”

김태평은 녀석을 무시하고 면접실로 입장했다. 오늘만큼은 놈에게 휘둘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넓은 면접실의 정면에는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정철규처럼 유명인사도 있었고, 비각성자처럼 보이는 사람도 보였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앉으세요.”

무덤덤하게 말하는 이태진이었다. 저 사람이다. 서울역의 영웅, 중국의 거대한 화신 그룹을 무너뜨린 주인공.

최근에는 아카데미에 일어난 테러를 피해자 하나 없이 막아냈다지.

꿀꺽 침을 삼켰다. 아카데미 기수로 따지자면 한참 후배다. 허나 비정한 각성자 세계에서는 강자가 곧 선배고 법칙이다.

김태평 같은 헌터쯤은 사단으로 달려들어도 이태진의 손짓 한 번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건 옆에 있는 천현우도 마찬가지일 테고.

‘매스컴에서 봤던 것보다는 따뜻한 인상이기는 한데.’

이태진의 공허한 눈빛에서는 읽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루한 영화라도 보듯 자신들을 감상하는데, 오연해 보이는 그 모습이 되려 자연스러웠다.

긴장한 것은 옆에 있던 천현우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들어오기 전까지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뻣뻣한 몸짓으로 주춤거리는 놈이었다.

“계속 서 있으실 겁니까?”

“아!”

이태진의 심드렁한 말이 다시 한번 들리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태평을 비롯한 네 명이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나서야 면접이 시작됐다. 질문은 대체로 평이했다.

예상이 맞았다. 이 자리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술형 평가, 실전 능력 테스트, 2차에 걸친 면접까지. 옥석을 가리는 절차는 이미 끝났다.

‘그럼 그렇지.’

김태평에 대한 질문은 일절 없었다. 관심은 옆에 있는 동기에게 집중됐다.

“흐음. 천현우 씨는 C급 던전도 무난하게 클리어하셨네요?”

“예! 때마침 검술재능, C급 특성을 얻은 때인지라.”

“오, 그거 얻기 힘든 특성인데.”

“칭찬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점핑 스킬도 가지고 계시고. 괜찮은데?”

“그러게요. 제일 눈에 띄네.”

“천현우 씨 형제도 이번에 일성에 들어오기로 했죠? 천인우 씨. 유명하잖아요. 어때요? 형과 비교되면 불안하거나 조급한 마음 없어요?”

“아카데미 시절부터 늘 들었던 질문입니다. 옛날에는 그런 것들이 참 속이 상했는데요. 지금 돌이켜보니…….”

자신 있게 답하는 동기는 다시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합격을 자신할 만했다.

실망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면접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때쯤 김태평은 아까 봐뒀던 던전 리스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일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 있었던가? 그런데 저 사람은 왜 계속 날 쳐다보는 거지? 이거 기분 탓이야?’

면접이 시작된 후, 한마디도 하지 않던 이태진이었다. 오만하다기보다 그게 더 자연스러웠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왠지 아까부터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기분. 특히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린 건 우연이라기엔….

“저기요. 혹시 합격하면 저희 팀 들어올 생각 있어요?”

열릴 줄 모르던 이태진의 입술이 뜬금없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내용은 더 뜬금없었다. 대번에 면접장이 침묵에 휩싸였다.

그때까지도 김태평은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자신을 보고 하는 말일 리가 없어서 눈만 감았다 뜨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대신, 동기 녀석의 입이 헤벌쭉 찢어졌다.

“예? 아, 아! 영광입니다! 이태진 팀장님. 사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아. 아뇨. 천현우 씨 말고. 옆에 김태평 씨. 혹시 우리 팀 들어올 생각 없어요?”

슬쩍 얼굴을 찌푸린 이태진이 아예 자신의 이름을 콕 집었다.

“…예?”

김태평은 그 직후 후회했다.

‘예? 라니. 이딴 얼빠진 대답이나…!’

“우리 팀 들어올 생각 있냐고요.”

“뭐야. 싫은 거야?”

이태진의 옆에 있던 면접관이 허탈한 웃음으로 대답을 종용했다. 이 순간에도 이태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대답? 대답이라니. 그야 당연히.

“시, 시켜면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천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거기서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아!’

지금이 꿈이라 해도 좋았다. 이곳이 현실이라면, 인생에 쓸 수 있는 모든 운을 다 끌어썼다고 해도 불만이 없었다. 이 순간, 김태평은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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