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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05화 (105/170)

105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1)

즉사로 보였다. 최찬규의 편안한 얼굴도 그랬거니와 그의 가슴께로 보이는 자상이 명확했다.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최찬규가 차마 반응하지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심장이 찔렸을 것이다. 손영혁에 의해서.

천천히 최찬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던 내 걸음을 막은 것은 손영혁이었다.

“진정해라 이태진.”

진정은 이미 하고 있다. 아니었으면 검부터 들이밀었을 테니까.

손영혁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원수를 노려보듯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왜 죽였습니까?”

그런데 물어보는 나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손영혁의 씁쓸한 얼굴 때문만이 아니라, 최찬규의 목에서부터 시작된 감염 증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네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이후였다.”

천천히 한숨 쉰 손영혁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설명했다.

어둠 속 공간에 진입하려 했다가 실패한 후, 쉐도우 나이트의 그림자 군단을 막아서고, 동시에 손영혁조차 위기의 순간을 맞은 것까지.

문득 말을 멈춘 손영혁이 그때를 회상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마 놈이 각성제를 먹었겠지.”

폭주하듯 날뛰는 그림자들이 갑자기 타깃을 바꿨다고 한다. 최찬규로. 이제 막 B급에 올라선 최찬규로서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을 것이다.

어느순간 감염체에 속박당한 최찬규는 저항하지 못했고, 혈관과 눈동자가 흑색으로 바뀌기까지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영혁도 손쓸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감염이 진행된 것이었다.

그제야 쉐도우 나이트가 마지막에 어떤 말을 하려던건지 깨달았다.

-네 동료를 원래대로 만들어주는 대가로, 나를 곱게 보내라.

“스스로 죽여달라고 말했다. 더 늦기 전에.”

손영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런데 그 말에 부아가 치미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순간 마나가 요동쳤다. 검신의 축복이 곧장 반응했다. 손영혁의 투로를 예상하고, 힘을 어떻게 분배할지까지 모두 보인다.

그렇게 해서 최찬규가 살아돌아 온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그랬겠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허탈했다. 뒤이어 이어지는 손영혁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다시금 천천히 최찬규에게 걸어갔다. 문득 말을 멈춘 손영혁도 가만히 나를 지켜보기만 한다.

누워있는 최찬규의 얼굴은 수면에 빠진 듯 편안해 보였다.

목과 팔에 돋아난 검은색 핏줄이 아니었다면, 뛰지 않는 심장과 이미 단전 바깥으로 흩어져버려 찾을 수 없는 마나가 아니었다면.

단지 의식을 잃은 게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혹시 지금 이 상황이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나 검신의 축복은 활짝 열려 있었고, 움직이는 내 몸의 주도권 또한 온전히 내 것이었다. 심지어 ‘그것’을 특정할 만한 마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완전히 현실이라는 거네.”

그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손이 떨려왔다.

손영혁을 탓할 것 없었다.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었다. 감히 내가 무슨 자격으로 손영혁에게 뭐라 할 수 있을까.

나도 차마 못 할 결정을 대신 해줬는데.

자책감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뭐가 환골탈태고 뭐가 새로운 경지란 말인가.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대체 어디서 미래가 바뀐 걸까. 분명 최찬규는 1년 후 일어날 일성의 참사에서 죽는다. 죽는다 해도 말이다.

식어버린 최찬규의 손을 잡으면서였다. 그의 말이 귓전으로 들리는 듯했다.

‘팀장님. 저 던전밥 먹은 지만 7년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이런 애송이랑…. 급이 안 맞잖아요.’

‘이거, 한 번 더 붙으면 얄짤없겠네. 그냥 지금 진 걸로 하자. 내가 졌다.’

‘웃기지만 던전밥 좀 더 오래 먹어본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하지. 조급하지 마라. 거기에 먹혀버린 헌터를 수도 없이 많이 봤어.’

‘형이라고 불러라. 너한테만 특별히 허락하는 거야.’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번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죽은 최찬규의 시신을 끌어안고 그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함께해서 즐거웠다고, 꼭 전해달라고 하더군.”

최찬규의 유언이었다.

***

-큭. 꼴좋군.

수화기 너머 들리는 조롱에도 백인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햇병아리라 무시할 땐 언제고 왼팔이고 오른팔이고 다 잘리는 꼴이라니. 이현수는 종신형이라 했나? 이제 네 곁에 누가 남아있지?

“더 지껄여봐.”

나직이 말하는 백인호의 음성에 분노가 실렸다. 차마 반박할 수 없는 것은,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팀 분위기가 흉흉했다. 이현수가 제 아비와의 유착관계가 밝혀진 이후부터였다.

-여기까지 네 말이 들릴 정도야. 백인호가 레인 우버와 손을 잡은 것은 아니냐고. 이럴 게 아니라 기자회견이라도 열지 그래?

한때 A팀을 넘어 일성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몰고 다니던 백인호의 팀이 위상을 잃고 있었다. 반대급부로, 이태진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드높아지기만 하고 있고.

“내가 그래서 그 그림자 새끼 뒤에 한 놈 더 붙이라고 말했….”

-진정해. 일부러 그런 거니까.

“…뭐?”

-네가 말했잖아. 물고기를 잡을 때는 꾸준히 떡밥을 던져야 한다고. 겨우 먹이 좀 준 거 가지고 무슨 호들갑을 그렇게 떠시나.

전화기 너머 낮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먹이? 겨우 먹이?”

-그래. 겨우 먹이. 이현수든 쉐도우 나이트든. 이태진에 비할 바가 아니지. 다음 먹이는 어떤 걸로 줘야 하나? 아직 잡아먹기에는 조금 아쉬운데.

“이런 미친 새끼가!”

-큭. 세상 사람들이 너처럼 노골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내면 얼마나 좋을까. 마법을 쓸 필요도 없겠어. 친구. 다음 떡밥이 네가 될까 봐 무서운 거야? 이것 봐. 목소리부터 떨리고 있잖아.

“너. 너 이 새끼…!”

-걱정하지마. 넌 쓰임새가 많으니까. 앞으로도 내가 예뻐…

우지끈.

백인호의 손에 들려있던 대포폰이 그 순간 박살났다. 백인호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럴 때마다 망막 위로 떠오른 붉은 기운이 치솟았다 가라앉았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들끓었다. 옆에 있던 주사기를 팔뚝에 꽂으면서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나 하나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 이거지.”

혈기 어린 백인호의 얼굴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치솟은 분노도 마찬가지였다.

“오냐.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다 씹어먹어 줄 테니까.”

***

“국내 최초로 레인 우버를 추살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현재 심정이 어떠십니까?”

“조사단장 직을 내려놓고 다시 헌터로 복귀한다는 말은 사실입니까?”

“국내에 더 이상 불법 각성제는 없다고 보면 되는 건가요!”

한마디만 해달라는 애달픈 기자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본사 안으로 들어섰다. 곧장 축포가 터졌다.

“축하드립니다!”

“팀장님! 축하드려요!”

로비 여기저기서 환호성도 함께 터졌다. 백 명쯤 되는 일성의 핵심 인사들이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여기저기서 꽃다발이 쏟아졌다. 그것들을 모두 받고 일일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던 때였다.

가까이 다가온 임한나가 케이크를 건네줬다. 내가 가만히 그것을 쳐다보고 있자, 임한나가 눈을 찌푸렸다.

“초 불어. 빨리.”

한숨처럼 바람을 내뱉자 얼굴 가득 케이크가 나를 덮쳐왔다. 한 번 더 환호성이 터졌다.

한참이나 내 얼굴을 짓뭉개던 케이크는, 미동도 없는 내 반응에 결국 떨어졌다. 하얀 생크림 사이로 뚱한 표정의 임한나가 보였다.

“그렇게 죽을상으로 있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다시 장례식으로 돌아가야 할걸? 그러길 원하는 거야?”

임한나가 속삭이듯 언질을 주고 나서야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며칠 전부터 나만 보면 눈치 보는 김세린부터 평소에는 미동도 없던 이지은까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한석훈마저도 힐끗힐끗 내 표정을 살피고 있다.

한숨이 나왔다. 장례식이 끝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이 멍청한 놈은 분위기 파악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이다.

“다들 감사합니다. 나 참, 이거 어쩌죠? 네. 제가 또 한 건 해버렸네요.”

“건방진 놈!”

“아참. 김석환 팀장님은 방 언제쯤 빼시게요? 저한테 넘겨줄 때 된 것 같은데.”

“건방진 놈! 건방진 놈!”

장내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다큐는 언제 방송된대요? 제목이 뭐랬더라? 예고편 보니까 재밌어 보이던데.”

“내일모레일걸. 안 그래도 나는 다큐라길래 걱정했는데 웬걸. 예고편 보니까 살벌하더라.”

“해외에서도 반응 뜨겁더라. 아카데미에도 노미네이트 됐다던데.”

당연하지만 반응은 후끈했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들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졌다.

“이제 저 거만한 표정이 거만하게 안 보여. 진짜 뭐 있어 보인다니까?”

“몰랐냐? 쟤는 검신의 축복 아니었어도 뭐라도 됐을걸? 백인호 팀장도 못 한 걸 한 달 만에 싹 다 잡았잖아.”

“레인 우버 잡은 건 좀 충격.”

헌터 매체 중 가장 공신력 있는 잡지사에서는 나를 가리켜 대한민국의 보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것도 무려 20번이나.

고생한 보람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이 보여 줬던 미래를 바꿨다. 백인호와 대현을 건드렸다가 쫄딱 망하는 이태진은 사라졌다.

이 자리에는, 성공한 조사단장이자 떠오르는 리더인 이태진만 존재할 뿐이다.

“자자.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까 다들 한 잔씩 합시다!”

김석환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어느새 로비는 파티 분위기로 변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테이블과 음식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술과 음식을 즐기며 파티를 즐겼다. 그때쯤 해서 로비에 있는 문도 개방됐다.

일성에서, 정확히는 최태성이 날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들을 끌어모으고, 명망 있는 사회적 인사들도 초대했다.

사람들의 눈빛이 모두 나에게 향했다. 속삭이는 대화 중, 나를 소개해 달라는 말들이 대다수였다.

어느샌가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튀어나오고, 내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태진! 이태진! 이태진!”

“백 팀장님 지금쯤 술 좀 먹고 있을걸?”

“난 솔직히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백인호 팀장님은 임형원 때부터 감각이 영.”

아니면 백인호를 흉보는 대화거나. 내게 알랑방귀를 뀌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와 같이 비즈니스적인 얼굴을 만들면서, 기회가 되면 다시 팀원을 충원할 것이라는 말만 남겼다.

“괜찮은 거냐?”

어느새 한석훈이 그렇게 물었다.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저 화장실좀요.”

아까 케이크를 맞은 탓일까. 속이 좋지 않았다. 한석훈의 대답도 듣지 않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는 구역질이 변기를 보자마자 쏟아졌다.

“우웩!”

그렇게 한바탕 쏟아내고 나서야 속이 후련해지는 것이다. 세면대 앞 거울 속에 내 몰골이 비쳤다.

사람들을 향해 지었던 옅은 미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둥글게 휜 눈웃음 대신 스산한 얼굴만 남아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싸늘한 표정.

이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 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

협회장이 된 미래, 시타둠 교주가 된 미래에서 정확히 이 얼굴로 모든 명령을 내렸었다.

얼굴에 물을 적셔도, 마른 세수를 해도 소용 없었다. 거울 속 내 표정이 도무지 펴지질 않는다.

그럴 수밖에.

젠장할.

나는 최찬규를 잃었다.

나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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