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레인우버 (2)
전화를 끊자마자 엉거주춤 서있던 이현수에게 몸을 던졌다. 본래 놈은 날 공격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비밀스러운 공간을 발견했을 당시 본능적으로 마나를 끌어 올린 것뿐, 다시 기운을 갈무리하려 했을 것이다.
허나 이현수의 마나 운용술이 나만큼 되지 않는 이상, 마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예상했듯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이현수가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왔다.
이현수가 아차한 것은, 놈이 내 옆구리에 주먹을 한 방 먹인 이후였다.
“야 이현수!”
“당장 잡아!”
겉보기로는. 내가 걸어간 것뿐인데 이현수가 날 공격한 것처럼 보였다. 황당하다는 얼굴을 만든 다음 말했다.
“뭐하는 짓이지?”
“무, 무슨!”
이현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곧바로 놈이 그랬듯 나 또한 이현수의 왼쪽 옆구리를 갈겼다. 곧바로 이현수가 꺽꺽대며 무너졌다.
그때는, 굉음을 듣고 쫓아온 조사단원들이 대표실로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눈을 부릅뜨며 뚫린 벽면을 쳐다봤다. 벽면을 턱짓하며 말했다.
“안쪽 깊숙한 곳에 다른 것들도 숨겨져 있어요. 찾으세요.”
잠시 뒤였다. 아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돌벽으로 만들어진 통로에서 쏟아져 나왔다.
수천 개의 주삿바늘과 각성제.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하! 이것들 봐라.”
수사과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눈길로 이성열 대표를 쳐다봤다. 놈은 패색이 짙은 얼굴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내 아들은 상관없는 일이….”
빠악!
이성열, 놈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놈이 엎어진 채 얼굴을 부여잡았다. 바로 옆에는 수사과장이 주먹을 흔들고 있었고.
“지금부터는 묻는 말에만 대답해.”
수사과장이, 수사과장다운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수사과장이 나를 쳐다봤다.
그의 기대에 부응했다. 천천히 상석에 앉으며 물었다.
“전화 온 거 누굽니까?”
“…….”
대표놈이 부르르 떨어댔다. 화려하게 꾸며진 대표실은 어느덧 취조실로 변했다.
은근슬쩍 백인호를 쳐다봤다. 차라리 한바탕 난리를 쳤다면 좋겠는데, 백인호는 아까부터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뭔가를 생각 중이었다.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말 안 해?”
수사과장이 우드득, 주먹을 쥐면서 일어났다.
“단장님. 한 시간만 주십시오. 입 열어 놓겠습니다.”
“말할게요! 말하겠습니다!”
이성열이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놈도 알고 있는 것이다. 협회에서 각성제 유통자를 어떻게 심문하는지.
“레, 레인 우버! 레인 우버 중 한 명입니다….”
“레, 레인 우버?”
그때만큼은 수사과장도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앓는 소리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레인 우버의 악명 때문이었다. 나라 하나쯤 전복시키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놈들.
이성열이 은근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내일, 자정, 부산항에서 각성제와 보급로를 정해주기로 했습니다.”
“누가.”
“쉐, 쉐도우 나이트.”
***
여기에서 볼일은 끝났다. 이성열 대표는 물론이고 이현수 또한 당연히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문득 백인호를 쳐다봤다. 만약 벽면에서 느껴진 아주 미약한 파동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든 백인호가 일을 크게 벌였겠지.
미래의 내가 대현을 건드리다 그 꼴이 난 것처럼 말이다.
이제 보니 알겠다. 미래의 내가 얼마나 지독한 수법에 당했는지. 팔짱을 끼며 나를 노려보는 백인호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수사과장님. 이현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조사단장을 공격하려 했으니 일단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겠고, 아버지 기업과의 유착이 발견되면.”
그는 눈치가 없는 자가 아니다. 나와 백인호의 관계가 어떤지, 또 어떻게 하면 그를 엿 먹일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수사과장이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백인호의 맞은편에.
“세 번짼가요?”
“뭐?”
“세 번째요. 김찬현, 임형원, 이현수. 본의 아니게 팀장님네 사람들. 제가 아웃시켰네요.”
“…너 그거 무슨 의미로 말하는 거냐.”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팀장님은 레인 우버 쪽이랑 연관 없죠?”
“뭐?”
백인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저는 백 팀장님한테 악감정 없는데 자꾸 일이 이렇게 되네요.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어서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슬쩍 뒤를 돌아봤다. 큭. 저 얼굴을 사진으로 남겨둬야 하는 건데.
***
쉐도우 나이트. 당연하지만 들어본 적 있다. 레인 우버 간부 서열 중 마지막에 위치한 놈.
마지막 자리라 해서 우습게 봐서는 곤란하다. 협회에서 파악한 쉐도우 나이트의 힘은 A급 말엽이니까.
문득 플래터가 생각났다. 당시 플래터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손짓 한 번에 놈 앞에 있는 공간을 절삭하다니.
당시 놈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머릿속으로 플래터를 그려봤다. 그리고 그 앞에 현재의 나를 뒀다.
그런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놈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즉시 내 목이 잘리는 그림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플래터와 나 사이의 실력차가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간 나는 충분히 성장했고, 지금 당장 붙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허나 무기력했던 기억이, 상상 속에서마저 나를 제한하고 있었다. 손끝이 떨려 왔다. 젠장할. 이러면 안 되는데.
곧 결투가 있을 것이다. 쉐도우 나이트라는 놈과.
손영혁이 넌지시 말해줬다. 쉐도우 나이트와 플래터가 동급일 것이라고.
***
부산으로 가는 협회의 전용기 안. 맞은편에서 수사과장이 내게 말했다.
“많이도 해먹었네요.”
수사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부는 발견 못 했습니다만 비밀 창고에 있는 각성제 양만 해도 0.2톤쯤 됩니다. 약 660만 명 정도에게 투약 가능한 양이죠.”
돈으로 환산하면 1조 3천억 원.숨을 들이켰다. 가쁜 호흡이 밀려왔다. 잠시나마 쉐도우 나이트를 잊을 정도로 아찔한 양이다.
“후아. 이것들 세상 밖으로 빠져 나 왔으면 생각만으로 끔찍하네요.”
수사과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각성제가 일으킬 문제로부터 세상을 지켰다는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얻게 될 보상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귀 밝은 기자들은 벌써 눈치챘을 겁니다.”
터트린다면 우리가 먼저 터트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수사과장이 아까부터 조마조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이유였다.
“쉐도우 나이트 포획 즉시 터트리세요.”
그런 내 말에 수사과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던 것도 잠시, 수사과장이 씁쓸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단장님은 대체 어떻게 알고 여길 캐낸 겁니까?”
“우연입니다.”
당연하지만 수사과장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백인호를 레인 우버로 지목한 것도, 대구 테크니컬을 지목한 것도.
아니 처음으로 돌아가 뉴 에볼루션부터 지금까지. 내가 주는 확신이 없었다면 손도 못 댈 사건들이었다.
“저희가 이 성과를 이태진 단장님과 나눠 가져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협회가 없었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죠. 영장도 없이 어떻게 저따위가 그런 기업에 쳐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수사과장이 고개를 저었지만. 그를 위로하는 대신 다른 주제를 꺼냈다.
“이현수는 어떻게 됐습니까?”
“원하는 죄는 뭐든 덮어씌울 수 있습니다. 분부만 내려 주시죠. 뭐. 이 경우엔 단장님의 확실한 서포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만요. 저희도 일성 B팀 부팀장 건드리는 건 평소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멋쩍은 듯 웃으며 수사과장이 말을 덧붙였다.
원하는 죄라.
못해도 헌터전용 교도소에 수감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때였다. 옆에 앉아있던 최찬규가 심각한 얼굴로 태블릿을 건네왔다.
“그래서. 여기서는 왜 허리를 꺾어야 한다고?”
“대체 몇 번이나 말했어? 넘어가.”
그러자 반대편에 앉아있던 손영혁이 단호하게 고개 저었다. 슬쩍 디스플레이를 보자 열심히 최찬규가 검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매우 엉성한 동작으로.
“좀 가만히 있어 봐요. 허리를 얼마나 꺾으라고? 10도? 20도?”
“그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느낌이라고. 아니다. 넌 그냥 그렇게 평생 휘적거려.”
“휘적거리다뇨? 아, 그렇게 잘나신 과장님은 왜 지금까지 이태진 옆에서 알짱거리십니까?”
“알짱거리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하고 있는 거다. 일방적으로 받아 처먹는 너와 다르지.”
틈틈이 그들의 검술을 봐주고 있던 게 어느새 수업시간처럼 변했다. 투닥거리는 둘을 무시하고 창밖을 쳐다봤다. 푸른빛 동해가 보였다.
***
밤이 된 후, 우리는 4번 선착장이라 적혀있는 곳으로 향했다. 은연중에 흩날리는 짠내와 더불어 붉고 푸른 수천 개의 컨테이너가 태산처럼 쌓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컨테이너들 사이에서 덜덜 떨고 있는 이성열 대표가 있었다.
“용케 안 도망치고.”
“정말 협조하면 살려주는 거 맞는 거요?”
수사과장이 그랬다. 이성열 대표는 빼도 박도 못 하고 종신형일 것이라고.
그럼에도 이성열 대표는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형을 감형시켜 줄 것이라는 말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이후에 마주치게 될 쉐도우 나이트가 우리를 모두 죽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즉, 놈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적인 미소로 화답했다.
“평소대로 거래해 주십시오.”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선착장 어디에도 배가 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잔뜩 움츠러든 이성열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기척도 없이, 어둠 속에서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시린 달빛에도 흑색 인영의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다.
감각을 확장시켜 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그림자처럼, 인영의 얼굴을 확대시킬수록 칠흑밖에 보이지 않았다.
-목표물 확인.
좌측 컨테이너에 있던 손영혁이방음 마법이 걸린 무전으로 전해 왔다.
-인력 충원 요청 권고.
-안 됩니다. 말했던 대로 작전은 우리끼리 속행합니다. 백인호는 어떻게 됐습니까?
-감시 중. 별다른 징후 보이지 않음.
-좋습니다. 신호를 보내면 즉시 공격해주세요. 최찬규 팀장님도.
-확인.
그사이 컨테이너 사이에서 놈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었다. 이성열이 약속했던 신호를 보내지 않았지만.
그보다 의문인 것은, 어째서 감각을 확장 시켜도 둘의 대화가 들리지 않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쉐도우 나이트라 추정되는 흑색 인영의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생명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기의 흐름이!
때문에 쉐도우 나이트의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 일체 파악할 수 없었다. 공격을 망설이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젠장할 플래터가 또다시 떠올랐다.
그때였다. 어둠 속 확인되지 않던 인영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 순간. 이성열 대표가 우리 쪽을 가리켰다.
“저 미친 새끼가 기어코!”
최찬규가 검을 치켜들었다. 직후였다. 쉐도우 나이트의 팔이 움직였다. 이성열 대표의 목이 떨어져 나간 것과 동시에, 놈이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