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레인 우버. (1)
조 대표가 가지고 있던 장부에는 잔챙이밖에 없었다. 아, 일성과 대현을 제외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레인 우버가 우리나라를 공략하는 방식도 그랬거니와, 애초에 조 대표가 알고 있는 정보도 많지 않았다.
만약 백인호가 함정을 파놓지 않았다면 내가 장부를 발견할 일도 없었겠지.
때문에 좀 더 큰 대어를 잡기 위해서는, 정확히는 백인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 과감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이곳. 대구 테크니컬이다.
대구 테크니컬은 경상도에서 주름 좀 잡는 회사다. 직원 숫자만 천 명이 넘는 대기업.
고용 창출은 물론이고 대구 내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던전을 공략하고, 치안까지 신경 써주니, 시의원이나 시장조차도 대구 테크니컬 대표 앞에서는 쩔쩔맨다지.
일성과 대현에 비하기에는 뭣하지만, 이제껏 상대했던 잔챙이들과는 말 그대로 급이 달랐다.
그런데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큰 것만 노리던 미래의 나와 달리, 지금껏 지루하게 잔챙이를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한 번쯤은 실수해도 될 만큼 커리어를 쌓아 올린 것이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수해도 본전은 찾을 수 있게.
***
늘 그랬듯 나와 최찬규가 선두로 출발했다. 대구 테크니컬 정문을 열자마자, 로비의 데스크에서 손님을 응대하던 여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
헛것을 본 것처럼 여직원이 얼어붙은 채로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동그란 눈으로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던 그녀가 다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갔다.
“쟤, 쟤들. 걔들 아니야?”
“저, 저승사자….”
더불어 점점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늘어났다. 거기에는 경계심이 가득하지만, 그보다 두려움이 더 커 보였다.
저승사자 이태진이 여길 왜?
하나같이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좀 해 봐.’
‘뭐. 뭘 어떻게 하라고.’
‘햇병아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쫄았냐?’
‘그거야 한 달 전 이야기고. 지금 저 새끼 눈에 잘못 들어갔다가 끌려간 놈들이 한둘이야? 들어보니까 없는 죄도 뒤집어씌운다더만. 그냥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웃어. 웃으라고!’
직원들이 나에 대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이야기가 바로 위에서도 들렸다. 부리나케 내려오고 있는 이성열 대표에게서.
-뭐? 누가 와? 혼자야?
-둘입니다. 손영혁은 안 보이고요.
-바늘 가는 데 실이 안 왔을까. 조만간 협회 것들이 여기를 쓸어버릴 거다. 뭐 걸릴만한 거. 지금 얘기해. 당장.
-어, 없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세금 쪽으로도 깨끗하고, 각성제 쪽으로는 아예 손댈 것도 없습니다.
한참을 직원들에게 으르렁대던 이성열 대표가 밑으로 내려왔다. 웃는 낯으로.
“이태진 씨, 아니, 조사단장님이라 불러야 할까요? 이놈들이 손님 맡는 게 영 서툴러서. 제가 모시겠습니다. 올라가시죠.”
내 옆에 달라붙은 이대표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그는 사태를 파악하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났다.
그런데 그것보다 이상한 게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가면을 쓴 것도 아닌데, 왠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제가 손님은 아니죠.”
손가락을 튕겼다. 그 즉시 대기하고 있던 조사원들이 우르르 건물 안으로 쏟아졌다.
“현 시간부로 대구 테크니컬 압수수색을 진행하겠습니다. 모두 협조 부탁드립니다.”
최찬규가 눈빛을 바꾸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성열 대표가 표정을 구겼다.
그것도 잠시일 뿐, 크게 한숨을 쉰 이성열 대표가 쇠 긁는 소리와 함께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시죠.”
***
아무것도 없다.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구 테크니컬은 정말로 깨끗했다.
레인 우버는 고사하고 각성제 비스무리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조사한 바로는, 정말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선형기업이었다. 협회에서 아주 좋아할 만한.
대표실에 걸려있는 협회장이며 대통령 상장 몇 개를 쳐다보다 정면을 바라봤다.
이성열 대표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똥씹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다 끝나신 겁니까?”
“겨우 하루 만에 일이 끝나겠습니까.”
말은 태연자약하게 던져놨는데 속은 짜증 나기 그지없었다. 이제껏 쌓아온 저승사자 이미지가 없었으면 피만 볼 뻔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더 무슨 볼일이 남아 있다고요.”
이성열 대표의 말을 무시하며 생각했다. 이대로 넘어가야 하나? 실패인가?
그러기엔. 아까부터 걸리는 이 감각도 그랬거니와, 저 밑에서 달려오는 기운 두 개가 거슬리는데. 그것도 굉장히 심하게.
“아버지!”
벌컥 대표실을 열고 나타난 남자가 보였다. 이성열 대표를 아버지라 부르는 남자. B-1팀의 부팀장이자, 백인호의 오른팔. 이현수.
***
실패해도 본전, 성공하면 대박이라고 했을 때. 백인호의 오른팔을 건드리는 것은 가장 확실하게 경고장을 날릴 수 있는 카드였다.
네가 무시하던 애송이도 한 방쯤은 먹일 수 있다는 뜻이 담긴 확실한 카드.
“너 이 새끼…!”
이현수가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내게 달려들려 했다. 아주 한 대 칠 기세였다.
단순한 무력부터, 사회적 위치까지 이현수와 나는 급이 다르다. 백인호가 내게 그랬듯, 상대해 주는 것만으로 내가 손해였다.
이현수도 그걸 알 텐데 어째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걸까. 제 아버지가 내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에?
아니다.
아래층에서부터 진하게 풍겨오는 파동이 있었다. 백인호의 것으로 추정되는 깊고 진득한 마나가 쿵쿵대며 진동하고 있었다.
파동만으로 기분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느긋하게 올라오고 있는 백인호가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이태진! 여기가 어디라고 처들어와! 당장 나와!”
그러니까 지금 이현수가 이렇게나 오버하는 것은 백인호의 지시 때문일 것이다.
“이거 놔! 저 새끼랑 오늘 끝을 보려니까.”
이현수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당황한 최찬규가 그를 말리고, 이성열 대표가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한창 대표실을 뒤적거리던 수사과장과 조사단원들마저 깜짝 놀랄만한 기세였다.
이현수가 기어코 막아서는 최찬규와 조사단원들을 뚫고 내 앞에 섰다.
“이태진. 일어서.”
“부팀장님이 앉으세요.”
쾅-!
그때였다.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백인호가 나타났다.
“부팀장님이 앉으세요?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백인호가 웃는 듯 화난 듯,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두들 얼어붙어서는, 하나같이 백인호의 눈치만 살펴댔다. 수사과장이나 최찬규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나 이성열 대표는 왕이라도 행차한 듯 황급하게 허리를 푹 숙였다.
“우리 직원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다 제 불찰입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대표에게 말하던 백인호가 내 앞에 털썩 앉았다. 곧장 대표가 찻물을 다려왔다.
“뭐, 나오는 거 있어? 없잖아. 보고서 올라온 장부에서도 대구 테크니컬은 없었고. 근데 뭐 때문에 여길 털어?”
그렇게 나를 윽박지르는데도, 백인호는 어쩐지 신나 보였다. 마침내 건수를 하나 잡았다는 듯이.
지난 한 달 동안 간부 회의만 되면 끙끙거리며 속앓이를 하더니, 그 스트레스를 오늘 다 풀겠다는 명백한 의지가 보였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내 실수를 크게 번지게 할지도.
“설마. 나 때문이냐?”
백인호가 알만하다는 듯 옅은 웃음을 지었다.
“나랑 네 사이가 안 좋다고 이딴 식으로 일을 벌여? 너 제정신이야?”
톡 쏘아붙이는 백인호를 보며 뭐라 말하려다가 일단 참았다. 은근슬쩍 수사과장을 쳐다보니 맹렬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입모양으로는 ‘아무리 털어도 뭐 없습니다. 이쯤에서 접어야겠는데요?’ 하고 속사포로 말하고 있다.
“협회에서 힘 좀 실어주고, 회장님이 예뻐해 주니까 아주 뵈는 게 없는 거냐? 어디 그 뚫린 입으로 더 지껄여 봐. 왜, 나 오기 전까지는 온갖 똥 폼 다 잡더니.”
“생각 중이라서요.”
“뭐? 무슨 생각.”
내 촉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
“너 말이야. 이대로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마라. 너도 각오는 했겠지. 내 사람 건드렸으면 벌 받을 각오.”
백인호의 말을 무시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다시 생각해 보자. 대구 테크니컬을 처들어온 이유. 단순히 백인호에게 경고장을 날리기 위해? 그리고 이현수가 백인호의 오른팔이기 때문에?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이유가 맞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정확히는 대표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거기에 확신 하나가 더해졌다.
온전히 정신을 집중해야만 느껴지는 파동이 있었다.
백인호의 뒤편에서, 뱃속 태아의 심장처럼 아주 미약하게 뛰는 파동 말이다.
만약 검신의 축복이 없었다면, 내가 A급에 올라서지 못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만큼 작고 귀여운 기운인데도.
아까부터 그게 굉장히 거슬렸다. 도저히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버틸 정도로.
벌떡 일어났다.
“어딜 일어서? 앉아!”
백인호의 말을 무시하고 터벅터벅, 벽 쪽으로 걸어갔다. 다가갈수록 미약한 파동이 점점 진해졌다.
아니, 이걸 미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고등급의 보안 마법이라 봐야 하지….
그 순간 이성열 대표와 눈이 마주쳤다. 찰나간에 흔들리는 그의 동공을 보자마자였다.
주먹을 내질렀다.
와지끈!
새하얀 벽이 내 주먹 한 방에 금이 갔다. 얼씨구. 벽이 터지는 게 아니라 겨우 금이 가?
이성열 대표가 채 내게 달려들기 전이었다. 전력을 담은 마나가 주먹에 실렸다.
콰앙!
쨍그랑!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걸려있던 은밀하고 강력한 보안 마법이 날아가는 소리였다.
“큭.”
웃음이 나왔다. 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공간이 튀어나왔다. 최태성의 집무실 안에 있는 아공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좁았지만, 시선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나 대신 최찬규와 수사과장이 서늘한 통로로 걸어갔다 나왔다. 그 손에 들린 휴대폰이 하나 보였다.
“이게 무슨.”
얼떨떨한 표정의 수사과장에게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백인호 또한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고, 이성열, 이현수 부자는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이현수는 심지어 마나를 끌어 올리는 게, 자칫하면 덤벼들 기세였다.
아까와 달리 진심으로.
띠리리리-.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동시에 이성열 대표가 헛숨을 크게 들이켰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공포영화라도 본 마냥 눈을 부릅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장내가 침묵으로 물든 사이 벨소리만 크게 울렸다.
띠리리리-.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눈여겨보다 통화버튼을 눌렀을 때였다.
-내일, 자정, 항구.
남자 목소리였다. 어눌한 한국말로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담듯이 말하는 남성이 뒤이어 말했다.
-대답은?
그때쯤 내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고, 칼끝이 향한 곳은 당연히 이성열 대표였다.
“화, 확인.”
이성열 대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화가 그대로 툭, 끊겼다.
“앉아.”
내 서슬 퍼런 얼굴이 이성열 대표의 망막 위로 비쳤다.
***
“야. 이거 다 찍었냐?”
아까부터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박중현 국장이 메인 피디에게 속닥거렸다. 옆에 있던 메인 피디의 표정으로 보건대,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이태진이 위기 맞는 거 하며 극복해내는 것까지. 그림으로 딱 좋긴 한데.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갑자기 백인호가 여기 왜 떠?”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리던 때. 순간적으로 기괴한 웃음을 짓는 메인 피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야, 너!”
“국장님.”
메인 피디가 들고 있던 펜을 흔들었다. 정확히는, 거기에 들어있는 초소형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편성 언제 나온대요? 예고편부터 내보내야 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