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조사단. (8)
“설마요. 이 팀장은 아끼는 후배이자, 선의의 경쟁자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인호가 사람 좋은 얼굴로 기자들의 질문에 응대했다. 넉살 좋고, 성격 좋기로 소문난 백인호답게 인터뷰 내내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아. 이러면 또 내가 그 친구 견제한다고 기사 나려나? 하하.”
장내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에이! 백 팀장님도 참. 저희를 어떻게 보고.”
“맞아요. 요새는 사람들도 그런 자극적인 기사 별로 안 좋아해요.”
하나둘씩 맞장구를 치던 기자들이 백인호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팀장 이현수마저 감탄할 정도의 여유였다.
“그럼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읍시다. 제가 공사가 다망한 사람이라.”
“하하하! 예 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요 앞 장어집 통째로 예약해 뒀으니까 맛있게들 드시고. 전 먼저 갑니다!”
백인호의 사람 좋은 미소는 고급 승용차에 올라타자마자 사라졌다.
퉤!
재수 없다며 창밖으로 침을 뱉은 백인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바로 옆에 탄 부팀장 이현수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팀장님. 다음부터는 저 혼자….”
“아냐. 나도 이 정도 액션은 취해 줘야지.”
짜증으로 물들어 있던 백인호의 눈에 신문 일 면이 들어왔다. 이태진의 웃는 낯이 떡하니 박혀있는 사진이었다. 제목도 가관이었다.
-힘만 센 헌터라는 오명, 이태진의 오해와 진실.
이현수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백인호를 지켜보던 찰나, 피식하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보면 볼수록 웃기단 말이야. 맨바닥에서 시작한 놈이 뉴 에볼루션은 어떻게 알고. 맹랑한 새끼.”
“기자들 호들갑일 뿐입니다.”
“호들갑 떨 만하지. 흥. 다른 건 몰라도 그놈 촉인지 뭔지는 인정할 만해. 럭키박스에서 성요한이랑 같은 특성 떴을 때부터 운빨 하나는 기가 막혔거든.”
이태진을 언급할 때면 늘 표정을 구기던 백인호의 얼굴에 웬일인지 웃음꽃이 피었다.
“지금 그쪽 분위기 어때?”
“말씀하신 대로 아주 개판인 것 같습니다. 협회 쪽에서 뉴 에볼루션 단서 가지고 이것저것 짜 맞추는 것 같은데. 듣기로는 딱히 성과가 없다 합니다.”
백인호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깟 놈이 운이 좋아봤자 한 번이지. 뉴 에볼루션 잡아낸 것도 천운이 따른 거야. 햇병아리들이 다 그래. 특성 하나 잘 떠서 올라온 놈들 내가 한두 번 상대했을까.”
지금의 이태진을 햇병아리라 부를 수 있을까?
이현수는 그런 생각을 숨기고 맞장구쳤다.
“아는 기자들 시켜서 슬슬 압력 넣겠습니다. 아니면 사내에서부터….”
“무슨 소리. 그렇게 조지기엔 너무 아깝지.”
“예?”
“잔챙이는 키워서 먹어야 맛있는 법이야. 이태진 그놈 쪽으로 정보 하나 흘려줘. 잔챙이 같은 거 말고, 큰 놈으로.”
이현수 부팀장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흘긋 백인호를 쳐다봤다. 그때도 백인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대양 에너지가 좋겠네.”
“팀장님. 거기라면.”
“장부가 있지. 네가 이태진이면 장부보고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아?”
“그야….”
이현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뒤에 나올 말은 농담으로도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일성, 대현부터 조지겠지.’
정확히는 백인호를 겨냥해서. 장부에 적힌 단서를 바탕으로 없는 증거라도 만들어내 백인호를 구속시킬 것이다. 백인호라는 대어를 낚을 기회인데 누가 마다할까.
“팀장님. 무슨 생각이신지….”
“이태진 고놈이 제2의 성요한이네, 서울역의 영웅이네 해봤자 나랑 급이 맞냐는 말이야. 그깟 송사리 하나 잡자고 조사단장을 넘겨 줬을까 봐. 이겨봤자 본전인 게임을 내가 왜 해?”
“네?”
“미끼 몇 개로 체급 좀 키워주고 잡아먹을 생각이었는데. 어째 이태진 고놈이 제멋대로 한 건 했네. 뭐, 그것도 상관없겠다.”
어깨를 으쓱이며 웃던 백인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지.”
대양 에너지라는 미끼를, 정확히는 대양의 대표가 가지고 있는 장부를 이태진에게 던져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럴 경우, 둘 중 하나다.
놈이 미끼를 물어 백인호를 비롯한 대현을 건드린다면. 이태진은 더 큰 상어가 자신을 물어뜯는 줄도 모르고 죽어갈 것이다.
미끼를 물지 않아도 상관없다.
자신이 대양을 터트리면 그만이다. 알려줘도 못 받아먹는 놈이라며, 살살 약 올려 주기만 해도 이태진이 쌓아 온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차 돌려. 이태진 면상 한번 보자. 점심 소화 좀 시키게.”
***
이태진의 무력이야 백인호도 인정하는 바였다.
검신의 축복이며, 알 수 없는 염동력까지 쓰는 이태진의 힘은 자신이 보기에도 꽤 살벌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뒷술수가 난무하는 정치 싸움에 이태진이 백인호를 상대한다?
웃기지도 않았다.
애송이의 심리란 뻔해서, 지금쯤 이태진은 잔뜩 초조한 상태일 것이었다. 다음 성과를 어떻게 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그 정도 애송이를 구워삶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만큼이나 쉬웠다.
그렇게 백인호가 조사단장실이라 적힌 문을 벌컥 열었을 때였다.
직후 대양 에너지 대표의 얼굴이 보였다. 포승줄에 묶여, 열심히 취조받고 있는 그의 얼굴이 천천히 백인호에게 향했다.
백인호는 순간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저 양반이 여기 왜….’
하마터면 입 밖으로 꺼낼 뻔했다. 설마 장부 들켰냐고.
또한 올라오려는 욕지기를 간신히 참았다. 불쑥 튀어나온 이마의 핏줄을 관리하는 데만 해도 안간힘이 들어갔다.
상상 속에서는 대양의 조 대표를 죽여도 백 번은 죽였을 것이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걸려들었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 대표.”
“백인호 팀장님! 여기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나가세요!”
백인호는 협회 수사과장의 그 말이 차라리 반가웠다. 여기 더 있다가는, 정말로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았다.
백인호는 억지로 웃는 낯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이런…. 내가 실례했네. 나가 볼게요. 그럼 수고….”
“여기까지 들어오셨는데.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뒤돌아 나가려는 자신을 붙잡은 건 역시나 그놈이었다. 이태진. 상석에 앉은 이태진이 여유롭게 고개를 까딱였다.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었습니까?”
이태진의 건방진 태도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자신이 부쩍 긴장했다는 것을, 백인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왜 긴장해.’
돌아가는 꼴을 보니, 꼬리가 밟힌 듯했다.
백인호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순식간에 결론이 나왔다. 코웃음 한번으로 긴장을 털어낸 백인호가 이태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할 말 있지. 아니, 있었지. 나도 이 사람 때문에 온 거였거든.”
“이 사람이라면.”
백인호가 포승줄에 묶인 조 대표를 가리켰다.
“대양 에너지 조 대표. 이놈이 레인 우버의 중간책이다.”
곧장 여러 반응이 날아왔다. 자신을 노려보는 조 대표, 어떻게 알았냐며 묻는 협회 수사과장. 그리고. 미동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태진까지.
백인호는 특히 이태진의 반응이 무척 거슬렸다. 이태진의 눈빛에서 어떤 동요나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나도 얼마 전에 알게 된 정보야. 그런데 넌 어떻게 알고?”
“저도 뭐. 얼마 전에 우연히…. 아참. 보여드릴 게 있는데.”
이태진이 막 생각났다는 듯 노란 장부를 꺼냈다.
“중간책이 맞더라고요. 그동안 각성제를 유통한 흔적도 발견했고.”
피식 웃은 이태진이 장부를 펼쳤다. 여러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저런 잔챙이들이 아니라.
“대기업 중에선….”
“없더라고요. 아직까지는.”
“…뭐? 아니. 그럼 여기 적힌 놈들이 다라고?”
“네.”
그럴 리가.
백인호가 장부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100쪽에 걸친 장부 기록 어디에도 일성과 대현이 적혀져 있지 않았다. 백인호가 심어놨던 폭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슬쩍 조 대표를 바라봤다. 아무도 못 볼 만큼 찰나간에 슬쩍, 조 대표가 백인호에게 눈을 찡긋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조 대표가 장부를 조작했다. 행여나 백인호에게 피해가 갈까 봐. 백인호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노릇이었다. 모든 게 다 이를 위한 작업이었건만, 웬 엉뚱한 노인네가 일을 망쳐 버렸다.
“…래서 조사는 순차적으로 진행될 겁니다.”
“뭐?”
“작은 곳부터 천천히요.”
이태진이 슬그머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잔챙이들 잡다 보면 거물급도 나오지 않을까요? 아니면 잔챙이들한테 먹이 좀 주고, 키워서 먹어도 되고.”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는 이태진에게. 백인호는 처음으로 소름이 끼쳤다.
***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조 대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배신감에 치를 떠는 모습이었다. 백인호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이 어지간히 충격인 모양이었다.
“아까 들으셨죠? 먹잇감으로 대표님 던져버린 거.”
“…닥치고. 약속이나 지켜.”
“약속? 아.”
조 대표와 그런 약속을 했었다. 우리 쪽에 협조하면 감형시켜 주겠다고.
“이런 반쪽짜리 협조 말고 제대로 하셔야죠. 입 좀 다문 게 무슨 협조입니까?”
“…뭐?”
“이를테면 백인호랑 레인 우버가 결탁한 증거라도 가져와야 감형을 시켜주지. 아니면 증언이라도 하든가.”
조 대표가 눈을 꿈벅꿈벅 감았다 떴다. 그러던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너 이 새끼!”
“그런 건 못하겠죠? 쯧. 아직 정신 못 차린 거지.”
조 대표가 황당하단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너, 너. 내가 가만…!”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파리 내쫓듯 손짓하자 조 대표가 포승줄에 질질 끌려갔다. 애초에 불법 각성제를 유통한 죄는 감형이란 게 없다.
쓰레기에게 지켜야 할 신뢰는 더더욱 없고.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가 잡아들인 사업체만 열 일곱 곳이다.
적중률은 백발백중. 내가 찍은 곳마다, 정확히는 장부에 적힌 회사마다 레인 우버와 결탁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덕분에 별명도 생겼다. 저승사자라고. 이태진이 찍은 회사는 무조건 파산하거나, 대표가 잡혀들어간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었다.
심지어 일성 내부에서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휙 하고 피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괜히 쳐다보지 마. 저 인간한테 걸리면 피도 눈물도 없다더라.’
‘야. 설마 같은 회사 사람까지 저격하겠어?’
‘혹시 모르지. 앞으로는 친한 척도 하지 마. 이제 우리랑 사는 세계가 달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만, 직원들의 대화 주제는 비슷했다. 이태진한테 밉보이지 말고, 인사나 재깍재깍 잘하자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조사단실의 문을 열었다. 곧장 수사과장과 그가 들고 있는 휴대폰이 보였다.
-저승사자는 개뿔. 그래서 이태진이 중견 이상 되는 급을 조사한 적 있음? 하나같이 소규모만 주야장천 잡아대는 놈이 무슨 저승사자. 큰 곳은 노릴 깜냥도 없는 거지.
“쯧. 이것들은 일을 열심히 해 줘도 지랄이야.”
머리를 긁적이던 수사과장이 댓글을 보며 혀를 찼다. 인기척을 내자 수사과장은 도둑질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휴대폰을 숨기며 말했다.
“단장님 정도 실력이면 협회에 들어오셨어도 됐을 겁니다. 일 처리가 워낙 깔끔해야죠.”
일 처리가 깔끔하다.
그만큼 기업체를 상대하는 데 있어 자비를 두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의 흰소리를 넘겨 들으며 서류 한 장을 건넸다. 곧장 수사과장이 눈을 부릅떴다.
“다, 단장님.”
큰 곳은 잡지 않는다라. 이제 그 말도 쏙 들어갈 것이다.
“슬슬 일성에 미끼 하나 던져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