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조사단. (7)
근 한 달 사이 벌써 세 번째다. 비슷한 미래를 통해 ‘그것’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백인호에게 함부로 덤비지 말라고. 절대로.
‘그것’이 지금껏 이 정도로 뭔가를 강조한 전례가 있던가?
표정이 구겨졌다. 대체 백인호가 얼마나 위험하길래 이렇게까지 경고하는 거지?
혹시 백인호와 싸우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내 숨소리가 거칠었다. 심장박동도 평소보다 지나치게 빠르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다시 정리해봤다. 상황은 분명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백인호가 손도 못 댄 일을 이태진은 어떤 방법으로 한 달 만에 해냈는가.
당장 이런 제목의 칼럼이 하루에도 몇 개씩이고 쏟아지는 판국이니까. 안 그래도 이미지에 환장하는 백인호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또 한 가지. 이다음에 내가 취해야 할 행동도 명확했다. 패배했던 미래의 내가 했던 말에 힌트가 있었다.
[대양 에너지. 놈들을 잡고 나서부터요. 거기서부터 줄줄이 끄나풀들이 연결된 겁니다. 젠장할. 곧장 대현을 덮치지만 않았어도. 차근차근 끄나풀을 잡아나가기만 했어도 내가 지금…!]
‘그것’이 힌트를 떠먹여 주다 못해 저작 운동까지 해주는 판이다.
그래. 이제 꿀꺽 삼키기만 하면 된다. 멀리까지 내다 볼 필요도 없다. 정 아니다 싶으면 발을 빼면 그만이다.
생각을 마친 후 집무실을 나왔다. 곧장 레인 우버 조사단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멀리도 아니다. 내 집무실 바로 밑층에 임시 사무실이 마련돼 있으니까.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 십수 명의 인력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곧장 협회 수사과장이 보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손때 묻은 보고서만 뒤적거리고 있던 그가 나를 발견했다.
“단장님!”
그 소리에 다른 인원들도 벌떡 일어나 고개부터 팍 숙여왔다. 꼬박꼬박 단장 호칭을 붙여대면서.
“방해되는 건 아니죠?”
“방해는 무슨요. 안으로 들어오시죠. 여기 커피 하나!”
급하게 마련된 과장실로 들어가면서 넌지시 물어봤다.
“일하는 건 어떠세요?”
“좋습니다.”
표정을 보니 진심인 것 같다. 처음 일성에서 일하라고 했을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일성 직원들을 보며 안색이 나빠지는 것 하며, 텃세 있는 거 아니냐며 걱정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영원히 여기 눌러앉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 단장님 덕이죠.”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단장님이 직원들한테 지시해 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손에 든 커피를 흔들었다.
“요새 일성 직원들이 매일 커피 돌리잖아요. 덕분에 우리 애들은 카페까지 갈 일 없다고 좋다 하더만. 이런 거 하나가 작은데 또 큽니다. 아참! 사람들이 커피 주면서 꼭 단장님한테 말 좀 잘해 달라고 부탁하던데.”
“그거라면.”
아직도 내 팀에 들어오는 것에 미련을 못 버린 녀석들이 벌인 일이었다. 나를 공략하지 못하겠으니, 내 주위의 환심을 사겠다는 전략.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김세린이 한가득 선물을 받았다며, 사내에 자길 좋아하는 남자가 많은 것 같다며 우쭐댔던 기억이 났다.
그 생각을 떨치려고 고개를 저으며 본론을 꺼냈다.
“실마리는 나왔습니까?”
“그게….”
역시나 곤란한 얼굴이었다. 뉴 에볼루션으로 조사단이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린 만큼, 수사과장은 열의가 가득했었다.
잔당들을 고문한 흔적이나, 보고서의 디테일만 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당연했다. 뉴 에볼루션부터가 전적으로 내가 본 미래에 의존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으니까.
그렇게 민망한 표정으로 열심히 조사 중이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던 수사과장이 문득 내 얼굴을 응시했다. 수사과장의 눈이 함박눈처럼 커졌다.
“뭐 좋은 소스 있습니까?”
“대양 에너지 아십니까?”
“예? 어디요? 대양 에너지요?”
수사과장이 의뭉스럽게 물어왔다. 그러면서 보고서를 다시 뒤적거리는데, 어디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없었던지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 듣는 곳인데….”
나도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래서 수사과장에게 물었던 것이다. 뉴 에볼루션처럼 무턱대고 처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쓸 수 있는 자원은 써먹어야지.
“거기 한번 쑤셔보시죠. 뭐 하나 나올 겁니다.”
뭔진 나도 모르지만.
수사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뉴 에볼루션을 짚어낸 사람이 나인 걸 아는 그는, 오히려 방향이 잡혔다며 박수를 쳤다.
뉴 에볼루션을 칠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단 한 번의 실적으로도 수사과장의 신뢰를 얻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것을 느꼈는지 수사과장이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긁적였다.
“단장님 아니었으면 실마리도 못 찾았을 텐데, 뉴 에볼루션 이후로 저희도 협회에서 면이 좀 섰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래서, 언제 오면 되겠습니까?”
수사과장이 씨익 웃었다.
“30분이면 됩니다. 커피 한잔하고 있으시죠.”
***
“헌터 관련 상품 유통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최근 자체 브랜드 사업으로 용병업을 확장시키면서 꽤 이름을 날리고 있네요.”
“규모는요?”
“작년 매출이 1000억쯤 되는데, 아직은 규모가 좀 작죠. 물론 향후만 보자면 비전은 있습니다만.”
수사과장이 종이 몇 장을 건네왔다. 30분이면 된다고 호언장담할 만했다.
대양 에너지의 매출 구조는 물론이고 현금 흐름, 임원들의 개인정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심지어 대표의 가족관계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는 것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일성 쪽에도 재료 몇 개 납품하고 있네요.”
수사과장이 대양의 대표와 백인호 팀장과 손을 잡는 사진을 가리켰다. 헤벌쭉한 얼굴로 웃고 있는 노인이 대양의 대표였다.
원래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다. 백인호 팀장 같은 마당발이 어느 업체와 협약을 맺는 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그런데 뭐랄까. 타이밍이 참 묘하다. 미래를 몇 번이나 확인한 지금, 강력하게 의심되는 것 하나가 있었다.
레인 우버와 백인호의 관계. 더 나아가 네로드와 백인호의 관계 말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또다.
또 심장이 멋대로 춤을 추고 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미래의 패배자가 눈에 아른거렸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거다.
“어때 보여요?”
“좀 더 쑤셔봐야 알겠지만.”
수사과장이 팔짱을 끼며 이어서 말했다.
“별다를 것 없습니다. 심지어 세무 쪽에서도 깨끗해요 완전히. 단장님은 얘들이 의심스러운 거죠?”
그러면서 내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라며 표정을 구겼다.
“레인 우버 이놈들이 아주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그 말이 맞다. 정황상 레인우버, 그리고 놈들의 대장인 네로드가 대한민국을 잠식하려고 아주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레인 우버가 중남미를 집어삼켰을 때는 이런 식이 아니었다. 각성자 집단을 끌고 가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부터 시작이었지.
심지어 불법 각성제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이나 중국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갱단 하나를 포섭하는 게 레인우버의 방식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작은 기업부터 좀먹고 있다.
놈들이 아주 서서히, 그리고 오랫동안 계획을 준비했다는 게 느껴졌다.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이 몇이나 됩니까?”
“서른 명입니다.”
“좋습니다. 어지간하면 무력은 쓰지 않는 쪽으로 하고,”
아무리 조사단장에게 막강한 권력이 쥐어졌다고 한들 기업 하나를 건드릴 때마다 대표를 죽여대면 분명 안 좋은 소리가 나올 것이다.
“한번 구경이나 갑시다.”
***
“감당할 수 있겠어요? 이태진 씨?”
갑자기 회사를 급습당한 것치고 대양 에너지의 대표는 침착해 보였다. 그래도 완전히 굳은 얼굴은 사진에서 봤던 웃는 얼굴과는 딴판이었다.
“그놈의 감당, 감당. 어디 유행어인가?”
수사과장은 그런 협박쯤은 우습다는 듯 노인의 팔을 꺾어 수갑을 채웠다. 옆에는 다큐 촬영으로 부른 JBC 방송국 직원들이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거 놔! 이태진 씨! 나랑 대화 좀 합시다. 예?”
“단장님 바쁘니까 저한테 말하세요. 수갑은 찬 채로.”
“대체 날 잡아가는 이유가 뭡니까? 조사단장이라고 이래도 되는 줄 아나 본….”
“이래도 되는 거 맞으니까 불만 있으면 고소라도 하시든가.”
실실 웃으며 나 대신 대답하던 수사과장이 노인의 품에서 열쇠를 꺼냈다. 좀도둑보다 빠른 솜씨로.
“야! 그게 뭔 줄 알고 네놈이 만져! 이리 안 줘!”
대표가 기겁하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각성자도 아닌 노인이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필사적이었다.
단숨에 그것을 제압한 수사과장이 나를 돌아봤다.
“단장님. 이거 냄새나는데요?”
그러니까. 그것도 아주 진하게 난다.
그 직후 대표실을 뒤적거리던 수사과장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손에는 책 한 권을 든 채였다.
“다, 단장님!”
나를 보는 표정이 흡사 귀신을 본 듯했다. 그러면서도 씰룩씰룩,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대박이요! 이거 대박인데요?”
슬쩍 옆을 보자, 열심히 이 상황을 찍던 카메라맨과 PD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이거 대박이다, 드디어 한 건 했다, 같은.
“이 새끼들아! 그거 건들지 마! 건들지 말라고! 건들지 마세요. 흑흑.”
***
대박. 대박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대박이라도 너무 대박인 점. 일이 점점 커져 갔다.
“…이거 어떡하죠?”
수사과장과 손영혁이 나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대양의 대표가 가지고 있던 장부만을 뚫어져라 쳐다 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슬며시 물어봤다.
“대양은 관리책인 거죠?”
“예.”
관리책.
레인 우버가 대양 에너지에 맡긴 임무였다. 적당히 작은 크기의 회사이며, 일성까지 거래를 튼 발이 넓은 유통업체. 대양이 관리책으로 선정된 이유였다.
“하나만 두진 않았을 테고.”
“…예.”
수사과장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검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면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손영혁도 움찔움찔 댔다.
“여기 적힌 알파벳 A랑 B가 어디라고요?”
처음 장부를 발견했을 때 신난 얼굴은 어디 가고 수사과장이 숨을 들이킨 채로 굳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손영혁이 대신 답했다.
“…암호화된 상태라 완벽하게 파악하진 못했지만. 정황상… 일성과 대현이다.”
“그 두 곳이 관리책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 해도 대양처럼 회사 전체가 가담하진 않았을 거다. 대표급이나 바로 밑 급이 일을 벌인 거겠지.”
손영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두 거대기업을 들쑤시라 말할까 봐 내 눈치를 여러 번 살폈다.
솔직히 미래에서 보고 들은 정보가 없었다면 그렇게 말할 뻔했다. 대현 한번 건드려 보자고.
그 정도로 낱낱이 정황이 드러나 있었다. 정확한 주체는 모르더라도, 거래 일자와 거래량만 따져도 조사할 가치는 충분했다.
“…어떡할까요?”
수사과장이 넌지시 물어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말은 어떡할지 묻는데, 표정은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뜻이 명백했다.
톡톡.
의자 받침대를 두드리다 마른세수를 했다. 침착하자. 이성을 지키자. 몇 번이나 그 말을 되뇌었다.
느껴진다. 지금이 분기점이다. 미래의 패배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승자가 될 것이냐를 가르는 지점이.
여기서 바로 일성과 대현을 쳐버리면 예정대로 패자가 되는 건가?
“치라면 치겠습니다. 일 잘못돼도 단장님 원망….”
“아뇨. 저희 체급에 두 곳은 아직 감당 못 하죠.”
아직은.
내 말뜻을 오해한 수사과장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그럼요, 그럼요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까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던 수사과장이 너털웃음과 함께 농담을 던졌다.
“옷 벗을 각오까지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부담되는 것도 사실인지라. 허허.”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같이 웃어 줄 수 없었다.
“제 말을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대현, 일성. 레인 우버와 관련 있으면 무조건 조사해야죠.”
“예?”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수사과장에게 말했다.
“거기 명단에 적힌 것들 모조리 터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예? 아. 넉넉잡아서 한 달쯤….”
“예. 그럼 일성, 대현은 한 달 후에 건드리는 걸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