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조사단. (5)
뉴 에볼루션의 대표가 죽은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손영혁의 연락을 받은 협회의 감찰과를 비롯한 수사과, 감식과 등의 주요 부서장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대체 이게 무슨.”
현장에 도착한 협회의 주요 인사들은 하나같이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였어?’하는 얼굴을 했다.
설명을 바라는 그들을 손영혁에게 맡긴 후 나 또한 김석환 팀장을 비롯한 일성의 주요간부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자, 잡았다고?
웬 날벼락을 맞았다는 듯 김석환이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출장 나간다던 녀석이 레인 우버의 끄나풀을 잡았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설명을 끝맺기도 전이었다.
-지금 갈게! 지금 간다고!
위치가 어딘지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대로 툭, 전화가 끊겼다.
문자로 뉴 에볼루션의 위치를 찍어둔 뒤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아니, 아까보다 더 분주하게 협회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빨리 튀어오라는 감식과 과장, 남은 잔당들을 포승줄로 묶으며 혀를 차는 수사과장 등. 모두가 정신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우리 쪽으로 다가온 감식과 직원이 내게 혈액 샘플을 건네면서 말했다.
“확실합니다.”
다시 한번 죽은 장발의 남자, 그리고 뉴 에볼루션 대표의 몸을 훑어보던 직원이 말을 더했다.
“혈액에서 각성제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정기 검진에서 숨겼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옆을 돌아보자 손영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차가운 표정은 감찰과장다운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건 지금부터 뒤져보면 나오겠지.”
서슬퍼런 손영혁의 눈이 살아남은 직원들을 쏘아봤다.
잔당들은 제 대표가 죽고, 오른팔이 죽었음에도 슬픈 기색이 없었다. 그저 눈동자만 굴리며, 어떻게 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을지만 고심하는 듯했다.
특히나 녀석들은 내 눈치를 그리도 살폈다. 포승줄에 묶인 채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대상도 손영혁이 아니라 나였다.
아마 그것은, 협회의 직원들이 손영혁이 아닌 내게 먼저 보고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거기에서 내 의문이 시작됐다. 손영혁부터 응당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뉴 에볼루션을 지목했는지, 그것도 확신에 차서 이곳을 쳐들어왔는지에 대한 근거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손영혁이 내 권위를 인정해 주는 모양새로 이해할 수 있다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협회 직원들의 반응이었다.
민간의 사업체들이 협회를 싫어하듯, 협회에서도 민간을 꺼려한다. 그럼에도 앞서 말했듯 감식과장이며 수사과장과 같은 장급들도 내게 깍듯이 대하는 이유가 뭐지?
내 눈빛을 받은 손영혁이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에게 미리 말해뒀다. 나를 대하듯이 너를 대하라고. 또한 앞으로도 조사단장은 너다. 물론 단독으로. 회장님께서도 결국 용인하신 일이지.”
손영혁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너를 발판삼아 일성과의 협약을 도모하고 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을 굉장히 부담스러운 얼굴로 해 온다.
이걸 뭐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거지?
“그건 그렇고, 어땠냐니까? 내 검…….”
손영혁은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불시에 들이닥친 기운들 때문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건물 바깥에서 요란한 진동이 세 차례 울렸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김석환, 한석훈, 백인호의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한석훈으로 특정되는 기운이 가장 먼저 들이닥쳤다.
“이태진!”
콰직!
한쪽 팔밖에 남지 않은 한석훈 몸에서 어디서 힘이 그렇게 솟아났는지 모르겠다.
보호마법이 겹겹이 설정된 뉴 에볼루션의 유리문이 그 손짓 한 번에 개 박살 났다.
“여기라고?”
“진짜야? 이태진. 진짜냐고!”
뒤이어 김석환과 백인호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모두 무기를 손에 쥔 채였다. 특히나 백인호의 얼굴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아니어라. 아니어야만 한다. 그런 간절한 심정이 가득 담겨있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
그러던 백인호의 얼굴에 잠깐이나마 절망이 어렸다.
칼밥을 먹어도 나보다 십수 배는 더 먹은 백인호다. 일성 내 둘째가라면 서러운 레인저의 상황판단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굴러다니는 대표의 얼굴과, 죽은 장발 남자, 그리고 포승줄에 묶인 뉴 에볼루션의 잔당만 보고도 상황을 짐작했다.
“큰일 했네.”
한석훈이 이놈 내가 키운 거라며 자랑을 시작했다. 남들 다 보는 데서.
***
굳이 일성에서 대응하지 않아서였지. 언론에서는 협회와 일성을 압박하고 있었다.
각성제가 유통됐다는데 언제 잡느냐, 이대로 불법 각성제가 유통되면 우리도 어느 국가처럼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정부며, 언론이며, 심지어 비각성자들마저 불법 각성제라고 하면 펄쩍 뛰고 보는 이유가 있다.
중남미 쪽의 몇몇 국가들이 불법 각성제 때문에 나라가 망해버렸기 때문이다.
일시에 늘어나는 힘은 물론이고 강력한 중독성을 동반한 각성제는, 동시에 엄청난 패널티를 안겨 준다.
신체장애는 애교에 불가하다. 이성을 잃고 거리를 활보하는 각성자라니. 더군다나 그게 고위급 각성자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엘살바도르를 포함한 몇 개 국가는 이미 레인 우버의 손아귀에 있다 해도 무방했다.
때문에 일성과 협회에서는 발 빠르게 합동공고문을 냈다.
예상보다도 효과가 대단했다. 신문의 일면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것이 시작이었다.
-불법 각성제 유통, 드디어 꼬리 잡나?
-레인 우버 조사단장 이태진, 단장된 지 한 달도 안 돼 1개 조직 일망타진.
-젊은 나이의 팀장이라는 타이틀. 이태진에게만큼은 독이 아닌 복.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딘 특수 조사팀의 화려한 데뷔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홍보팀장 홍주연과 김주현은 아주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흐흐. 기다려 봐요. 아주 슈퍼스타로 만들어 줄 테니까.”
“저도 도울게요!”
“아무렴! 주현 씨. 일단 인터뷰 일정부터 잡아줘. 아, 저번에 MCC쪽 질문 준비한 거 괜찮던데.”
“그쪽에 아는 기자 한 명 있어요. 한 번 연락해 볼게요. 아마 버선발로 달려올걸요?”
“척하면 척이네.”
그 후로도 두 여자는 내가 이룬 성과를 어떻게 더 부풀릴지를 한참이나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다.
김주현과 홍주연의 호들갑이 호들갑이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었다.
최태성의 호출이었다.
***
대표실 문을 열자마자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터졌다.
“왔네. 왔어. 우리 조사단장님.”
김석환이 금덩이 보듯 나를 바라봤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였다.
“이야. 맡겨놓을 땐 불안해 죽겠더니. 이놈이 큰일 했네.”
“야. 김석환. 아직도 얘가 네 밑에 있냐? 적당히 해.”
“이봐요 한 씨. 유치하게 견제 좀 하지 맙시다.”
“이봐요? 한 씨?”
중년 남자 둘의 신경전을 뒤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곧장 맞은 편의 백인호가 심드렁한 얼굴로 한마디 툭 내뱉는다.
“큰일은 무슨.”
그러면서 나를 쳐다봤다. 백인호는 한번 피식 웃은 후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봤자 서른 명짜리 조직 잡은 게 단데. 다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닙니까?”
“그 별거 아닌 걸 누구는 반년째 못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석훈이 대신해 줬다. 속이 다 시원하다.
“그거 저보고 하는 말입니까?”
백인호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한석훈이 두 손을 드는 제스처를 취했다.
“들렸어?”
“어이구. 손영혁보고 그러는 거다. 됐냐? 됐어? 넌 우리 식구가 잘됐는데도 왜 이렇게 헐뜯어?”
“헐뜯는 게 아니라 호들갑 좀 자제하자는 겁니다. 이러다가 한번 삐끗하면 오히려 역풍맞는 거 몰라요? 그리고.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놈한테 넘긴 거지, 저도 다른 일 다 내팽겨치고 레인 우버 조사만 하라면 벌써 다 끝냈어요.”
그렇게 말한 백인호도 민망했던지, 헛기침을 내뱉으며 그래도 잘했다며, 듣고 싶지도 않은 칭찬을 해 온다.
그마저도 내가 피식 웃어버리자 바로 표정이 썩어들어 간다.
“한번 일 크게 벌여봐. 제대로 밀어줄 테니까.”
느긋하게 나를 쳐다보던 최태성이 그렇게 턱짓하며 말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직접적으로 ‘밀어준다’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회장님. 이 친구 팀장단 지 겨우 한 달 됐습니다. 그렇게 부담 주시면 고꾸라질 겁니다.”
백인호가 눈밑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말만 들으면 저게 걱정해 주는 건지 저주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 팀장 하는 거 보고 천천히 결정….”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인호의 말을 끊고 선수를 쳤다.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각 팀장들의 반응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놈 보게, 하며 헛웃음을 터트리는 김석환, 낄낄거리는 한석훈, 주먹을 말아쥐는 백인호까지.
좌중을 둘러보던 최태성이 피식 웃었다.
“이것까지 해내면 뭘 해줘야 하나.”
***
남은 잔당들의 심문은 협회에서 맡기로 했다. 공을 나눠주겠다는 손영혁과의 사전 약속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취조하고, 어쩌면 고문까지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협회가 전문가였다.
‘걱정하지 마라. 3일이면 제 마누라 속옷 색깔까지 불 테니까.’
그렇게 손영혁이 호언장담했다. 안심하고 그쪽은 손을 놓으면 되고.
대신 할 일이 있었다.
“팀장님!”
연무장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김세린이 몸을 배배 꼬며 다가왔다. 여동생은 없지만, 있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귀여우면서도 굉장히 징그러운 마음이 공존한다고 할까.
“어.”
“기체 후 일향만강하셨사옵니까. 식사는 꼬박꼬박 잘 드셨는지요. 팀장님의 건강, 이 소녀 늘 걱정하고 염려했답니다.”
“그래. 고맙다.”
“…….”
나름대로 준비한 작전이 통하지 않았던지, 김세린은 그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붙잡았다. 놓으라고 흔들어도 그게 제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도무지 놓지를 않는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핀잔을 주도고 남았어야 할 박하영이나, 심지어는 전용철마저도 내게 달라 붙어왔다.
기회를 포착한 고양이처럼 임한나까지 내 다리 한 짝에 매달린 것이 한계였다.
“그만. 그만. 알겠으니까 다들 그만.”
끝끝내 떨어지지 않으려는 임한나까지 떨쳐낸 후였다.
“오늘은 세린이 차례였지?”
내 한마디에 희비가 엇갈렸다. 김세린의 얼굴은 확 밝아지고, 나머지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아마 전용철의 수련을 도와주면서부터였을 것이다. 팀원들이 불법 각성제 중독자처럼 나를 애타게 찾아대기 시작한 것이.
특히나 김세린은 중증 환자였다. 언제였더라. 지나가듯 마나 경로를 조금 수정해 준 직후 김세린이 지었던 표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카메라로 찍어뒀어야 했는데.
“하영이는 내가 봐줄게.”
임한나의 말에 박하영도 금세 얼굴을 폈다. 혹시라도 말을 바꿀까 봐 황급히 임한나에게 붙어댔다.
남은 것은 허망한 표정의 전용철과, 저 뒤에서 뚱한 얼굴로 쳐다보는 이지은뿐이었다.
전용철이야 숙련도의 문제였기 때문에 굳이 지금 봐줄 필요가 없다지만.
“지은이는.”
도무지 버프나 힐 계열의 스킬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없는 것들이어서 이지은은 늘 혼자서 덩그러니 수련했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괜찮아요.”
항상 그렇듯 무뚝뚝한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지만, 1년 넘게 이지은을 살펴온 결과, 미세한 표정 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실망. 살짝 우울.
정도의 감정이었다.
아. 굉장히 찜찜한데. B팀 김아랑에게 한번 봐줄 수 있나 물어봐야 하나?
그때였다.
“제가 좀 도와줄까요?”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무장에 와서 긴장을 풀어놨기 때문일 것이다. 기척을 느끼기 전에 웬 여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박지현이었다.
박지현이 허리까지 오는 금발을 치렁치렁 늘어뜨리며 굽 높은 힐을 신은 채 또각또각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금빛 눈동자를 구붓이 구부리면서 다시 물어봤다.
“저 친구 힐러인 거 같은데…. 내가 도와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