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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95화 (95/170)

95화 조사단. (3)

그날부터는 서류에 파묻혀 있는 시간이었다. 검을 휘두를 시간도 없었다. 연무장에 들를 때는 팀원들에게 몇 가지 훈련에 대한 조언을 던질 때뿐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레인 우버가 얼마나 우리나라에 침범했는지, 불법 각성제는 또 얼마나 유통됐는지를 중점으로 파악했다.

백인호의 말이 맞았다. 겨우 반년으로는 놈들의 끄나풀 하나 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불법 각성제가 유입되는 정황은 계속 발견되니 협회로서도 거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인 우버, 그리고 놈들의 수장인 네로드는 그만큼이나 철두철미한 놈이었다.

“자신 있게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요즘 표정이 안 좋다?”

복도를 서성이던 백인호가 나를 보자마자 한마디 던졌다. 이것도 한두 번이어야 넘어가지, 매일같이 나를 찾아와 속을 긁어대니 슬슬 인내심의 한계였다.

그렇게 한마디하려던 무렵. 불현듯 ‘그것’이 신호를 보내왔다.

잠시 후 미래를 보게 될 것이란 신호!

정말 맹세코.

이때만큼 ‘그것’의 신호가 반가웠던 적이 없을 거라 단언한다. 망설일 것 없었다. 검신의 축복을 끄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화악!

빛이 번쩍거리자마자 단서 하나가 귀에 꽂혀 들어왔다.

“이태진이 이렇게 몰락하다니. 뉴 에볼류션 그것들 잡을 때까지만 해도 대박 하나 터트리나 했더니.”

직원 중 한 명의 말이었다. 당장 머릿속에 단어 하나를 쑤셔 넣었다.

뉴 에볼루션, 뉴 에볼루션.

생각은 그다음이었다. 뉴 에볼루션이 어디였더라?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감각에 더 집중했다. 미래의 나는 내 집무실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시야 사이로 박스 안에 정리된 내 짐이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들리는 이 말은 감각 확장에 의한 반응이었다. 아래층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작은 길드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그것도 능력이야.”

“그때만 해도 백인호 팀장님 밟고 올라서는 줄 알았지.”

“밟고 올라서긴 개뿔. 난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이제 이 팀장님 어떻게 될까?”

“이 팀장님? 넌 아직도 그 소리가 나오냐? 일성 팔아먹은 그 배신자 새끼지 그게.”

내가 일성을 팔아먹었다라. 때마침 내 몸이 움찔거렸다. 안면 근육도 사정없이 구겨진다.

“백인호 팀장님이랑 사이 안 좋은 건 좋다 쳐. 그렇다고 레인 우버하고 백인호 팀장님이 한통속이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트려?”

누가 누구랑 한통속이라고?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살 떨린다. 이태진 팀장님, 아니 이태진 그 새끼는 백인호 팀장님 압수수색 하지를 않나, 백 팀장님은 정식으로 BTO 요청했다질 않나.”

점입가경이었다. 상상 이상의 말들이 튀어나왔다. 이제야 슬슬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진다. 미래의 내가 어떻게 몰락했는지.

“어쨌든 잘됐지. 이제 볼 일 없으니까.”

화악!

현실로 돌아왔다. 정면에서 능글맞게 웃고 있는 백인호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어쭈. 이제 노려보네? 왜, 불만 있냐?”

이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도 못 했다. 백인호와 레인 우버라니.

아. 아니지.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미래의 나는 백인호를 레인 우버로 지목했다가 엿 됐으니까.

설마 백인호가 파둔 함정이라는 게 이거였나? 자기를 레인 우버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 나는 옳다구나 그 미끼를 물어버렸고?

“아뇨. 그냥 좀 놀라서요.”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복잡한 백인호니, 레인우버니 하는 것들은 머리 한켠으로 밀어 넣었다.

그 대신 확실한 단서 하나를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뉴 에볼루션.

먼저 가야 할 곳이 있었다.

***

“어디요?”

“뉴 에볼루션이요.”

“뉴 에볼루션, 뉴 에볼루션.”

협회 수사과장이 영 못 미덥다는 얼굴로 서류를 뒤적거렸다.

“여기 있네.”

한참을 뚫어져라 종이를 쳐다보던 수사과장이 마뜩잖다는 얼굴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단장님. 규모도 그렇고 위치도 그렇고. 그럴 만한 곳이 아닌데요?”

한숨을 쉰 수사과장이 애 다루듯 나를 다독였다.

“지금 초조하신 거 아는데요. 여기는 별거 저희도 몇 번 들쑤셔… 어어?”

수사과장이 들고 있는 종이를 낚아챘다. 설명할 시간도 없다. 굳이 할 필요도 없고.

“지원요청 할 수도 있습니다. 협회 쪽 직원들 대기시켜 놓으세요.”

그 말만 남겨두고 길을 나섰다.

발걸음을 옮긴 곳은 홍보팀이었다. 홍보팀의 문을 열자마자 여기저기서 폭음이 들린다.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총 대신, 입으로 벌이는 전쟁터. 직원들 모두 수화기를 들고 정신없이 말을 쏟아붓고 있었다.

“저희 공식 입장 낸 것도 하나 없는데 그렇게 억측하면 안 되죠!”

“그딴 식으로 기사 낼 거면 물어보긴 왜 물어봐요?”

“홍 팀장님! 얼굴 한번 직접 보자는데요!”

“볼 시간이 어딨어 지금! 박 기자님! 듣고 있어요? 이봐요! 이봐! 야!”

거칠게 수화기를 던진 홍주연과 눈이 마주쳤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던 홍주연이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언제봐도 대단한 여자다.

“요새 좀 시끄러워서요. 기레기 새끼들. 먹이 하나 물었다고 난리도 아니네요.”

“먹이요? 무슨 먹이?”

“이태진 팀장님 레인 우버 조사단장 맡은 거죠 당연히. 그런데 당사자는 왜 그렇게 평온해요? 억울하게.”

평온하다고? 내 머릿속을 보면 깜짝 놀랄 텐데.

“여론은 어때요?”

“완전 안 좋죠.”

홍주연이 가감 없이 말했다.

“B팀 팀장도 이해 안 가는데 무슨 조사 단장이냐, 이태진이 최태성 숨겨둔 아들이냐 같은 이야기도 돌고 있어요.”

“그렇게 나쁜 건 아니네요.”

이 정도면 애교 수준이다.

“이때까지 만든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팀장님. 진짜 자신 있는 거예요? 천하의 백인호 팀장도 절절매던 일인데.”

“네. 자신 있어요.”

자신 없어도 그렇게 말해야지. 보는 눈이 몇 개인데.

홍주연이 의외라는 듯 큰 눈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러기도 잠시, 깊게 파여있던 미간의 골이 점점 펴진다.

표정 관리를 위해 짓고 있던 억지 미소 또한 더 없이 음흉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에 화답하듯, 내가 말했다.

“홍 팀장님. 저희 다큐 하나 찍죠.”

이참에 여론 좀 확 바꾸게.

***

JBC 예능국 회의실 안.

“요즘 너희들은 시청률 어떠냐?”

“꽝이죠 뭐. 선배님 쪽은요?”

“말도 마라. 안 그래도 개편 때 사라지니 마니 하더라. 국장님. 살려 주십쇼!”

피디들과 작가들의 한숨 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그 이후에도 한국 예능의 실태, MZ세대의 OTT 탈주 같은, 곡소리의 향연이 이어질 때쯤.

“일성에서 프로그램 제작 어떠냐고 물어보더라.”

회의 내내 똥 씹은 표정으로 팔짱만 끼고 있던 박중현 국장이 말했다. 그것과 동시에 엎어져 있던 직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일성? 일성이요? 완전 좋죠!”

“안 그래도 요즘 미칠 지경이었는데!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일성이면 스타급들만 있잖아요. 박지현부터 윤진아, 정철규만 나와줘도 땡큔데.”

시름시름 앓아 죽어가던 예능국 피디들과 작가들이 물 먹은 화초처럼 살아나기 시작했다.

“걔들도 좋긴 한데, 역시 대세는 이태진이죠.”

“이태진 좋지! 이번에 B팀 팀장 됐다며?”

“듣기로는 특수수사팀 팀장도 맡았다더라.”

“안 그래도 지금 그것 때문에 여론 들끓고 있잖아요. 잘 나가다가 뭐하는 짓이냐고. 이태진 정신 나간 거 아니냐고.”

“로열로드에 기스 하나 생기는 거냐고 좋아하는 네티즌들도 많고.”

“화제성 하나는 문제없겠다. 그래서 국장님. 이태진 나와요?”

피디들과 작가들이, 특히 총괄 피디가 기대를 가득 안고 박중현 국장을 바라봤다.

“나오냐고? 이거 이태진 단독 프로그램이야.”

총괄 피디의 얼굴이 헤벌쭉 찢어졌다. 아예 벌떡 일어나며 유레카를 외치는 직원들도 있었다.

“지, 진짜요? 와! 걔가 단독 프로그램을 한대요? 그 이태진이?”

업계에서는 유명하다. 일성 홍보팀에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태진 인터뷰는 꼼꼼히 신경 쓴다고.

“걔 원래 신비주의 컨셉 아니에요? 일성에서 완전 철저하게 관리하던데. 질문도 틀 벗어나면 아예 빽 시키고. 홍주연 그 사람 살벌하더라니까요?”

“이태진도 인터뷰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 시키니까 억지로 하는 느낌 아니야?”

“사람이 좀 물욕이 없던데. 그런 쪽에 초탈했다고 해야 하나. 꿈이 뭐냐고 물으니까 몬스터 멸종이라고 했을 때 기억나요? 난 그거 개그인 줄 알았다니까.”

“아 그거. 근데 그때 반응 좋았잖아요. 젊은 놈이 패기 있다고.”

“여자 팬들도 그때 좀 생겼지. 엉뚱한 게 꼭 너드 남친 같다고.”

“이태진이면 뭔들 안 좋겠냐. 아닌 말로 화신 무너뜨린 다음부터는 우리나라 헌터 중에 걔 만한 스타성이 어딨어.”

흐뭇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총괄 피디가 여전히 똥 씹은 표정의 박중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일성에서는 이태진 데리고 무슨 예능을 찍어 달래요? 단독 예능이면 관찰인가 역시?”

“아니.”

“아. 관찰 예능은 이제 한물갔죠. 일성이 역시 뭘 좀 아네. 아니면 MC 몇 끼고 버라이어티 어때요? 유재동 수요일 스케줄 빈다고 하던데.”

“그런 게 아니야.”

박중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예능이 아니라 다큐를 찍어달래.”

“네?”

순간 시끌벅적하던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방금까지 침을 튀겨가며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구상하던 총괄 피디의 얼굴에는 소나기가 내렸고, 당장 대본을 작성할 것처럼 굴던 작가진들의 키보드 소리는 뚝하고 멈췄다.

“다큐요?”

“응, 다큐.”

“왜, 왜요?”

총괄 피디가 억울한 얼굴로 물었다.

“몰라. 지들이 하겠다는데.”

“이태진 데리고 다큐 찍으라고? 예능 색깔만 입혀도 재밌는 소스 뽑을 수 있는 게 몇 갠데! 돌돔 가지고 매운탕 끓이라는 거랑 뭐가 달라요!”

총괄피디가 절규하듯 말했다.

“설득하면 안 돼요? 저희 자신 있다고, 재밌게 만들 자신 있는데!”

“네가 해볼래?”

“…….”

“일성이 설득한다고 되는 놈들이야? 그것도 홍주연 그 독한 여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잘도 되겠다.”

“그럼 어떡해요? 진짜 다큐로 가요? 아씨. 그냥 보도국한테 던져줘야 하나.”

“미쳤어요?”

이번에는 가만 있던 작가진들이 들고 일어났다.

“총괄 피디님은 그 정도 자신도 없어요? 언제는 이태진 밥 먹는 것만 찍어도 시청률 두 자리 띄울 자신 있다며!”

“보도국한테 넘겨줄 바에 우리가 다큐 찍고 말지. 그것도 이태진인데!”

그제야 총괄 피디도 아차 했다, 돌돔으로 매운탕을 만든다길래, 잠시 정신이 나간 듯했다.

“다들 자신 있어?”

박중현이 그렇게 묻자 모두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박중현의 눈이 번뜩였다. 오랜만에 보는 눈빛이었다. 가장 끝쪽에 앉아있던 막내 피디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게 그거지? 전설처럼 내려오던 거.’

‘그런가 봐. 나도 처음 봐. 국장님이 저렇게 눈빛 변할 때마다 프로그램 초대박 났다던데.’

‘설마 이번에도?’

박중현이 씹어 삼키듯 말했다.

“이태진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라. 내가 무조건 재밌게 만들 거니까. 프로그램 대박 낼 거니까. 넌 지금보다 더 유명해져야 돼. 내가 그렇게 만들 거고.”

***

이태진이 레인 우버 조사단장이 됐다는 말이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백인호는? 원래 그거 백인호 팀장이 하던 거 아니었어?”

백인호 팀장 하면 일성의 얼굴이다. 최태성이야 상징 같은 존재니 논외로 치고.

A팀 팀장인 김석환도 대중이나 다른 각성자들의 관심을 싫어하는 인물이다. 그래서다. 일성과 일을 하려면 백인호를 통해서 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더불어 일성이 얼마나 네로드에게 민감한지를 알면 단순히 조사단장이 교체됐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나 중소기업 같은, 일성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소규모 길드 단위의 조직은 더 그랬다.

뉴 에볼루션의 간부들 또한 그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이거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

“힘의 균형이 바뀌었다? 백인호에서 이태진으로?”

“듣기로는 최태성 회장이 이태진을 특별히 아낀다고는 하던데.”

장내에 침묵이 맴돌았다. 모두가 의미 모를 눈치를 살폈다. 그러던 중 간부 하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설마. 백인호 팀장이 누군데. 그런 햇병아리 하나 컨트롤 못할까.“

“그래. 무슨 사정이 있겠지. 아무리 이태진이 난다 긴다 해도 아직 백인호한테는 한참 멀었지.”

“대표님. 일단 백인호 팀장한테 연락 후 조치 취해 놓겠습니다.”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언제나처럼 하면 될 문제였다.

“그렇게 방심하다 한 방에 훅 간다.”

가만히 듣고 있던 대표가 툭 던진 말이었다. 웃고 있던 간부들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헌터한테 방심은 죄악이야. 이태진? 고 젊은 놈이 무슨 사연으로 조사단장을 넘겨받은지는 모르겠다만. 아마 잔뜩 신나 있겠지.”

눈썹을 꿈틀거린 뉴 에볼루션 대표 김수겸이 말을 이었다.

“햇병아리들이 다 그래. 벌집인지 꽃밭인지 구분도 못 하고 죄다 헤집어 놓을 거라는 말이다. 뭔 뜻인지 알겠어?”

“예. 애들 상태 주기적으로 체크 해가면서 각성제 투여…!”

간부의 말이 끝맺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대표님!”

들어온 비서의 얼굴이 사색이었다. 몇 번이나 말을 더듬던 비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이, 이, 이태진이 밑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당장 간부들이 벌떡 일어났다.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놈이 왜?, 어떻게 지금?’

생각보다도 몸이 빨랐다. 대표를 제외한 간부들이 부리나케 일 층으로 달려나갔다.

일 층 로비에 곧장 이태진과 이태진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보였다.

“그러니까 영장을 보여 달라고요. 예?”

“영장은 무슨. 조사단장 권한으로 여기 있는 인원들 현 시간부로 출입 통제하는 줄 아니까 다 입 닫고 조용히 있어요.”

“아저씨는 누군데 아까부터 이래라저래라 명령인데요.”

“난 최찬규요.”

“지금 저랑 말장난해요?”

“우리 그럴 시간 없으니까 비키기나 해요. 지금부터 셋 셀 동안.”

이태진의 부하직원이 한창 뉴 에볼루션의 막내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이태진은 지루하단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간부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영장도 없이 이곳을 찾아와 다짜고짜 압수수색을 하겠다?

확신했다. 이태진과 그 부하는 햇병아리가 맞았다. 각성자들의 생태가 어떤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간부가 한 발 앞으로 나서려던 때였다. 변수가 생겼다. 이태진을 막던 막내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막내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약의 부작용이었다.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나.”

이성을 잃은 막내가 투둑, 소리를 내며 목을 풀었다.

이대로라면 이태진에게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막아야한다.

“뭐해. 빨리 막아!”

그렇게 말한 직후, 간부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빠악!

막내의 얼굴이 주저앉았다. 지금껏 하품이나 쩍쩍하던 이태진의 주먹이 거기 꽂혀있었다.

“이상한 약 냄새가 나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태진의 표정은 아까와 같이, 평온한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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