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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90화 (90/170)

90화 B-2팀. (3)

아락투스의 S급 던전도 시선이 갔지만. 하오란이 주는 임펙트가 더 컸다.

나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

무려 별 세 개짜리 보안문건이었다. 허투루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에도 ‘제거’라는 표현이 언급된 만큼. 하오란은 죽여야 할 적으로 상정하는 게 맞았다.

놈의 소시오패스적인 언행으로 미루어보아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는 했다. 행보가 지나치게 빨라서 그렇지.

마음속 살생부에 하오란의 이름을 올려두었다. BTO 때는 하오란의 감언이설에 속아 놈을 죽이지 못했다.

지금은 아니다. 언제든 놈을 만나면 심장에 칼부터 찔러넣을 것이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하오란을 찾으러 가는 것 또한 고개가 저어졌다.

“내실 다질 시간도 부족한 판에.”

넓은 중국 대륙을 샅샅이 뒤지고, 놈을 비호하고 있을 여러 세력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가성비가 좋지 않다.

더군다나 이제 막 팀장 자리에 올라선 지금은 더더욱 하면 안 될 일이다.

일부러 불안의 싹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하오란은 한 팔을 잃었다. 놈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또 어떤 기연을 만난다 할지라도 나를 이기지 못한다.

그것은 놈도 알고, 나도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거기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인트라넷을 켰다. 사내 익명 게시판은 나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굉장히 안 좋은 쪽으로.

-이태진이 강한 건 알겠어. 차기 S급 각성자로 유력한 것도 맞고. 근데 그거랑 팀장으로서 능력은 좀 다른 이야기 아닌가? 아무리 봐도 이번 인사는 이해가 안 가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함. 정철규가 거절했다고 하는데 뒤에서 어떤 압력이 있었는지 모르지. 한석훈, 김석환이 이태진 뒷배잖아.

-흠. 전주 던전? 거기서 파티장으로 공략 캐리했다고는 하던데. 정철규 죽을랑 말랑할 때.

-에이. 그때는 윤진아도 있었고 이규호도 있었잖아. 명목만 파티장이었을걸? 난 못 믿음.

-전주 던전 같이 갔던 파티원 중 한 명인데, 이태진 주도로 공략한 거 맞음. 보고서에도 다 나옴. 확실히 팀장으로서 잠재력도 있고. 그런데 음. 이태진이 B팀장이 되는 건 글쎄라는 말이 나오네. 정식 파티장을 맡기엔 너무 이른 것 같음.

평소와는 분위기가 정반대였다. 오늘 이태진의 검술이 대단했다느니,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느니 하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그런데 그럴만했다.

지난 활약이 대단했다 한들 나는 이제 막 1년 차를 지난 햇병아리다.

야구로 따지자면 팀을 먹여 살리는 에이스 신인 투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대뜸 프런트에서 그놈을 감독까지 시킨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그걸 환영해. 나 같아도 쌍욕부터 날릴 것 같은데.

-이태진부터가 거절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안 봤는데 권력욕이 상당하네.

-너 같으면 거절하겠냐.

-사람이 주제를 알아야지. 팀장이랑 팀원이 완전히 다른 위치라는 걸 모르나 봄. 쌍욕 몇 번 먹으면 주제 알고 알아서 내려올 듯.

이제껏 일성에서 쌓아온 내 건실한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선배들을 보면 깍듯하게 인사하고 묵묵하게 훈련하던 지난날들은 지고 건방진 햇병아리 팀장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속이 쓰리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후회는 없다. 이런 반응쯤이야 팀장이라는 독이든 잔을 권유받았을 때부터 예상했었다.

알고도 꿀꺽꿀꺽 원샷으로 삼킨 것이다.

주제를 모른다? 쌍욕 몇 번 먹으면 알아서 자빠진다?

글쎄.

두고 봐야 알 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팀이 잘 될 것 같단 말이지.

***

며칠 후였다. 다른 것보다 할 일이 있었다.

팀원이 팀장 단 한 명뿐인 B-2팀의 인원을 늘리는 일.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단위가 팀장을 포함한 여섯이다. 나 혼자 용병처럼 다른 팀에 얹혀서 던전에 들어가는 건 안 될 말이었다.

팀장도 된 겸, 이제 내 팀을 꾸릴 차례였다. 지금부터 최소 다섯 명 정도만 더.

“말이 다섯이지.”

B급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쓸만한 각성자들로 다섯을 어디서 구하라고.

쉬운 것부터 하자.

일단 임한나부터.

***

빠른 걸음으로 현재 임한나의 소속팀장을 만나러 갔다. 정확히는 C-2팀 소속 팀장 최찬규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자기 팀원 빼간다는데 곱게 보내줄 팀장이 어디 있다고. 욕 한 번 거하게 먹을 각오로 최찬규 앞에 섰을 때였다.

“태진아! 아니, 이태진 팀장님. 제발 임한나 좀 데려가 주세요. 제발!”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처럼 최찬규가 내게 말을 쏟아냈다. 와락 내 품에 안기면서였다.

“데려가기는 할 생각이었는데… 왜 이래요?”

“어? 진짜? 데려갈 거야? 정말이지?”

최찬규는 제 사람을 빼간다는데도 되려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 사람 왜 이래?

문득 생각나는 게 한가지 있었다. 얼마 전 임한나에게 덤볐다가 영혼까지 털렸다지.

부하직원으로 임한나를 데리고 있기는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뭘 이렇게까지 오버하면서 난리를 쳐?

무슨 트라우마라도 걸린 사람처럼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는데, 임한나가 근처에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 이럴 게 아니라. 혹시 또 필요한 거 없어?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 고맙다 이태진. 고마워!”

얼씨구. 아예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내 손을 맞잡았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한데. 단순히 아랫사람한테 한 번 졌다고 보이는 반응이 아닌데 이거.

“임한나가 뭘 어쨌길래 그래요? 걔가 말은 거칠게 해도 선배한테 대드는 스타일은 아닌데.”

옛날부터 말수 적고 제 할 일만 알아서 척척하던 임한나다. 세상사 달관한 것처럼 구는 게 녀석의 특징이고.

특히 남에게 관심 없는 건 아카데미 시절부터 유명했다. 아, 저 혼자 라이벌이라 여기는 나만 빼고.

“뭐? 뭔 소리 하는 거야. 아무튼 임한나 걔, 내가 다룰 수 있는 인간이 아니야.”

“그 정도라고요?”

이렇게까지 말하면 좀 무서워지는데.

최찬규는 나보다 한참 전부터 커리어를 쌓아왔다. 사람 다루는 기술은 나보다 몇 수 위라는 말이다.

그런 최찬규가 치를 떨 정도면, 내가 모르는 임한나의 모습이 있다는 뜻인데.

이거 나도 컨트롤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런 뜻을 내비치자 최찬규가 멀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까부터 뭔 소리야? 뭐야 이거. 진짜 몰라?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흡!”

목이 졸린 듯 최찬규가 숨을 들이켰다. 흔들리는 시선을 따라가 보니 집무실 입구에 임한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나, 난 그만 가볼게. 한나야. 내 밑에서 그간 고생 많았다! 수고해!”

흡사 귀신이라도 본 듯, 최찬규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나가는 최찬규에게 임한나가 꾸벅 인사하는 걸 봐서는, 도저히 둘 사이가 나쁘다는 게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이태진 팀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최찬규가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를 모르겠다. 장난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는 임한나는 내가 알던 평소의 모습과 똑같으니까.

“와줘서 고맙긴 한데.”

말하면서도 입이 썼다.

“생각보다 우리 팀 사정이 별로 안 좋다.”

“알아.”

임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내 옆에 있으면 욕도 많이 먹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무르고 싶으면….”

“괜찮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한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일체의 고민도 없어 보였다.

원래는 임한나가 내 제안을 거절하면, 구차하더라도 내가 좀 매달리려고 했다. 그런데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얘 왜이래?

“괜찮다고?”

“응. 괜찮은데?”

“천천히 생각을 해보고 말을….”

“아니. 충분히 생각해 봤어. 난 네 팀으로 갈 거야.”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고 못을 박아도 그럴 일 없다며 피식 웃기만 했다.

임한나가 뭔 생각하는지는 아카데미 때부터 늘 미스터리긴 했는데, 오늘은 특히 불가사의하다.

“언제는 들어와 달라며?”

그때는 상황이 이렇게 안 좋을 줄 몰랐지. 얘가 지금 상황을 모르나 싶어 인트라넷을 켜서 얼마나 내 욕이 많은지 보여줬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그러더라. 편견은 반전을 줄 때 효과가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임한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카데미 시절 때 치기 어린 의리로 결정하기에는 사안이 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도 임한나는 여전히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청문회 때 벌떡 일어난 것도 그렇고. 최찬규가 한 말도 그렇고. 영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게 단지 내 착각이면, 한번 쪽팔리고 말지 뭐.

“너 혹시 나 좋아….”

“지금 아니면 언제 B팀 부팀장을 해보겠어.”

아 부팀장.

자조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팀원이 둘 뿐이면 내가 팀장하고 네가 부팀장하면 되겠다고.

허울뿐이긴 해도, 일성의 B팀의 팀장, 부팀장이면 어디 가서 꿇리지는 않으니까.

그제야 납득이 갔다. 부팀장 자리라면. 이 정도 거래라면 나도 엄청 찜찜하지는 않지.

“그리고 넌 나 없으면 안 되잖아? 네가 그렇게나 부탁하는데 같이 가줘야지. 그게 어디가 됐든.”

***

출근 시간. 일성 사원증을 달고 있는 남자 두 명이 커피를 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 공고문 봤냐?”

“아, 그거?”

그중 한 명이 피식 웃으며 인트라넷을 켰다. 팀장 공고란 항목을 누르면서였다.

[공고 : B급 던전 이하 공략 제2팀 모집 공고.

새로 창설된 팀의 인원을 모집하고자 합니다. 지원이 가능한 등급에 제한은 없으니 많은 지원 바랍니다.

B-2팀장 이태진.]

무려 B팀 모집 공고, 그것도 팀장이 직접 올린 글이었다. 그런데도 반응은 시원찮았다.

“이거 올라온 지 일주일 됐나?”

“맞네. 지난주에 올라왔으니까 딱 일주일 됐지.”

“안타깝네.”

혀를 쯧쯧 찼다. 말은 안타깝다고 하는데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남의 실패는 왜 이리 기분 좋은지. 샷까지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달게 느껴졌다.

“아직도 사람이 안 구해지나 봐.”

“백인호 팀장님, 김석환 팀장님이었으면 5초 컷이었을걸?”

“야. 거기 들어가고 싶어서 다른 회사 퇴사하고 여기 오는 애들이 한 무더기다.”

“너라도 들어가 봐. 등급 안 가리고 뽑는다는데. 혹시 아냐? 이태진이 가르치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힌다며.”

“내가 어떻게 일성 들어왔는데. 커리어 망칠 일 있냐?”

낄낄대는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런데 뭔 B팀 씩이나 되는 팀에서 등급도 안 보고 뽑는대?”

“자신이 없으니까 아무나 뽑겠다는 거지. 저러는 게 더 없어 보이는데.”

“외부에서 데려오면 되잖아. 아, 인맥이 없나?”

“이제 입사한 지 1년 된 놈을 뭘 믿고.”

“이태진이 이때까지 너무 잘나가긴 했지?”

“헌터라면 넘어질 때도 있는 거야. 그러면서 더 강해지는 거지.”

웬 신입 한 명이 잘나가도 너무 잘나갔었다. 질투도 안날만큼 성장가도를 달리던 초신성이 이태진이었다. 그런데 원숭이가 제 발로 나무에서 떨어지겠다고 한다.

“사실 이제야 이야기하는 거지만 이태진 걔, 아니 우리 이 팀장님….”

“뭐. 이태진 팀장이 뭐라고?”

신나서 떠들던 두 사람의 말소리가 뚝 멈췄다. 한석훈이 자신들을 바로 보고 있었다. 미친개 한석훈이.

이태진을 안주 삼아 씹다 보니 회사 로비에 들어온 것도 잊고 만 것이다.

“이태진 팀에 들어가기 싫다고? 그 말 후회 안 해?”

“네?”

그런데 한석훈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이래 봬도 C급 각성자들이다. 이태진이 무릎 꿇고 부탁해도 옮길까 말까 한 판에 후회를 운운한다.

직원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뜻이 통했다.

“저희가 말실수했습니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할 것 같네요.”

“수고하십시오.”

한석훈이 이태진의 스승이라는 말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스승의 고슴도치 사랑에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미친개가 무서워서 피하지 더러워서 피하나?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둘은 그러면서 뒤를 돌아봤다. 홀로 남은 한석훈의 옆모습이 슬쩍 보였다.

‘웃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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