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경호 (3)
멀뚱멀뚱 나만 쳐다보는 민수정을 놔두고 생각에 빠졌다.
이제껏 미래를 볼 때마다 있었던 전조현상이 사라졌다. 왜지?
원래라면 미래를 보는 능력은 그런 식으로 진행됐어야 한다. 내 주변의 시간들이 모두 멈추고, 무색 무취의 마나가 나를 훑고 가는 찰나간의 순간 끝에 의식이 미래로 날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조현상을 스킵했다. 생각해 보니 답은 뻔했다. 미래를 보면 볼수록, 내가 ‘그것’에게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검신의 축복이 ‘그것’이 가진 무색무취의 마나를 분석하고 있었다.
때문에, 딱 한 번의 미래만 더 꺼내놨다면 반드시 ‘그것’은 제 정체를 들킬 수밖에 없었다.
추측대로 ‘그것’이 시스템과 관련 있는 존재가 맞는지, 인격체인지, 진짜 전지전능한 존재인지까지.
황당하게도 놈은 수줍은 성격인 모양이다.
전방을 바라보자 민수정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수증기 보여? 특수처리 된 용기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물이나 다름없거든. ‘연꽃 두꺼비’라고, A급 몬스터 중에 하나 있는데. 그 새끼들이 뿜어내는 거야.”
무덤덤한 내 감상과 달리 민수정은 달랐던 거 같다. 놀란 표정을 수습하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그녀는 지금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던 걸 실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 같은 마력쟁이들은 마시는 순간 즉사인 거지. 이래 봬도 어지간한 C급 전사들보다 체력이 낮거든. 몰빵충이 이래서 문제야.”
민수정은 자조적인 미소를 날리더니 날아간 여자의 목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방금까지 웃으며 대화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 사람이 멕시코 마약팔이입니까?”
“넌 저 여자가 남미 사람처럼 보여?”
“아뇨.”
“얘는 그냥 내 부하직원. 지금은 목이 분리돼버려 듀라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생전에는 꽤 유능했지.”
“사주 받았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걔들은 이렇게 치졸한 수는 쓰지 않아. 차라리 B급 열 놈 보내는 게 타코 스타일이지.”
“그럼 이 사람은….”
“레벨이 높아질수록 원한을 많이 사는 법이야. 역시 몬스터보다 사람이 무서워.”
한석훈이 내게 귀가 닳도록 한 소리였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위기도 많아진다. 아닌 게 아니라 화신과 연관된 수많은 기업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
혹은 원한은 없지만 제 이름을 드높이는데 나를 제물로 쓰고자 할 놈들도 있다. 그 뒤로는 네로드와 일 년 후 나를 죽일 정체불명의 괴한까지.
“왜 이런 걸까요?”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대체 어떤 원한을 샀길래 대낮부터 독살을 당할 뻔했는지 싶어서.
민수정은 거기에 대해 가타부타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쓴웃음 한번 짓더니 돌연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일처리 한 번 화끈하네. 대뜸 죽여 버릴 줄은 몰랐는데.”
나도 그 부분은 아차 싶긴 하다. 사주를 받았다면 누구에게, 혹은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면 누가 또 연관돼 있었는지 알아내야 했는데. 피를 토해내며 죽어가던 민수정의 모습이 뇌리에 또렷한 탓이었다.
“죄송합니다.”
변명 없이 사과해야 했다. 의뢰인이 준 돈에 비하면 조금 아마추어 같은 모습이었기에.
“아, 내가 칭찬을 별로 못해서. 잘했다는 소리야. 처리 한 번 깔끔하네. 굳이 찜찜하게 고문하고 뒷조사하고. 아주 지긋지긋해.”
그러더니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아주 잘했다는 얼굴로.
“다시 보니 우리 할아버지께서 제법 쓸만한 놈으로 보내줬네. 역시 일성이 돈값은 한단 말이야. 걱정마. 말로만 생색내지는 않으니까. 추가비용 넉넉하게 청구하라고.”
까탈스러운 의뢰인의 공치사를 들은 후였다.
꺅!
비명이 터졌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우리 쪽으로 왔다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호텔 레스토랑에 사람 머리가 굴러다니는 꼴은 역시 보기에 좋지 않았다.
“총장님. 피하셔야 합니다.”
비서가 차가운 표정 그대로 총장의 어깨를 둘러쌌다. 내게도 눈짓한다. 경호하라고.
가만 보면 저 비서도 심상치 않다. 찌르면 파란색 피가 흐를 것 같았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서 봤던 모습도 그랬다. 제 상관이 죽었는데도 침착함을 잃지 않더니.
민간인이라 해도 아카데미의 비서쯤 되면 이런 일을 자주 겪는 건가?
“경찰이 조만간 들이닥칠 겁니다. 이래 봬도 제가 방금 사람을 죽여서.”
호텔을 빠져나가려는 총장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각성자가 민간인을 말이다. 당장 백인호에게 보고를 올리고 일성의 법무팀을 찾아야 할 사안이었다.
“촌스럽게 무슨. 권력이든 금력이든, 힘이란 게 이런 데 쓰려고 있는 건데. 놔두고 와. 점심 먹기는 글렀다.”
민수정이 쿨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는 죽어버린 여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진짜 이렇게 가버려도 된다고?
급한 대로 김석환에게 간단히 상황을 요약해 문자를 전송한 후, 그녀를 뒤쫓아갔다. 이름 모름 여자의 시신은 처량하게 남겨두고서.
***
그 꼴을 보고도 나머지 일정을 모두 소화해낸 민수정에게 어떤 의미로든 감탄이 흘러나왔다. 멘탈 하나만큼은 배울 만했다.
그래서일까.
중도 포기하려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느낌이 그랬다.
이 여자랑 같이 있으면 뭔 일이 일어나겠다는 직감. 보통 이런 좋지 않은 예감은 잘 맞아떨어지는 법이다.
괜히 신경 쓰이기도 하고. 이 여자 죽으면 어제 살린 보람이 없잖아.
***
다음날이었다.
“또 왔네? 그만둔다고 할 줄 알았는데. 어제 거울 안 봤지? 표정이 아주 썩어 문드러져 있더라.”
“아무렴 총장님 주둥이만 하겠습니까?”
알게 된 지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누가 보면 친구인 줄 알겠다.
일성 바깥의 사람이라 그런 걸까. 평소라면 허허 웃고 넘어갈 일을 나도 모르게 따박따박 반박하게 된다.
절대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일성의 대표로 임무를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돈이 좋긴 좋아? 일성 도련님을 일주일이나 부려먹고.”
“어제 말씀하신 추가비용은 넉넉하게 청구해 놨습니다.”
“알아. 그렇게 화끈하게 지를 줄 알았으면 말 안 했을 건데.”
“제가 사양을 못 하는 성격이라.”
김석환이 전후 사정을 듣고 30억 원을 더 청구했다고 한다.
원래 목적이었던 멕시코 마약쟁이들과는 상관없는 일에 휘말렸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이유야 아무렇게나 붙이는 것뿐이고 실상은 김석환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으로 보였지만.
어쨌든.
“오늘 일정은….”
굳이 의뢰를 지속하기로 했던 두 번째 이유. 오늘 있을 일정 때문이었다.
“감개가 무량하겠네.”
민수정의 말대로였다. 근 1년 만에 찾는 아카데미였다.
그래. 딱 작년 이맘때쯤 아카데미를 졸업했던 기억이 난다.
아카데미. 그 지옥 같았던 훈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시절만 생각하면 절로 이가 갈렸다.
그리고 나는 지난 1년간 무던히도 성장했다. 지옥의 저승사자보다 무서웠던 교관들을 한 손으로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그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교관을 상대로 확인해 보고 싶을 뿐.
시간이 촉박했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 특히 나를 괴롭혔던 검술교관을 만나려면 빨리 가야 한다.
아예 운전까지 도맡아 민수정과 비서를 이끌고 아카데미가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는.
“아쉽게 됐네. 쯧쯧.”
이미 늦은 상태였다. 졸업식은 이미 한창이었다. 겨우 총장의 마지막 훈화시간 정도만 남아 있을 뿐, 대련을 요청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입맛을 다시며 일단 맡은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기습이란 보통 이런 때 이루어진다. 각성자가 많은 곳이다.
헌터들 고유의 마나 파동이 얽히고 얽혀 누가 누군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맥시코 청부업자라면 오늘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특정이 어려운 것도 검신의 축복 앞에서는 무의미해지는 법이다.
학사모 쓴 삼백열일곱의 졸업생들과, 스무 명의 교관들 모두를 한 명 한 명 구분해 놓았다.
특히나 익숙한 검술교관의 위치는 머릿속에 단단히 박았다. 혹시라도 졸업식이 끝나면 여유가 있을까 봐.
검술교관뿐만 아니라 앞에서 웃는 낯으로 수료생들을 바라보는 교관은 익숙한 낯들이 대부분이었다. 망할 교관들은 꼭 이럴 때만 웃더라.
졸업생 입장에서는, 저 웃음 한 번에 고된 훈련의 기억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얼굴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말았나 보다. 입꼬리가 올라간 게 느껴졌다.
오늘은 축제였다. 졸업을 앞둔 생도들의 얼굴에는 자긍심이 가득했다.
그때 모두의 열렬한 환호와 함께 민수정이 강당 위로 올라섰다.
“먼저 3년간 개고생한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아카데미의 총장으로서 축하드리는 게 우선입니다만, 오늘은 선배 헌터로서 꼰대 같은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겪게 될 수많은 고난과 역경은….”
총장 민수정이 교단 위에서 훈화를 시작했다. 정신을 붙잡았다.
나까지 축제 분위기에 물들 수는 없지. 조용히 민수정의 뒤로 갔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끔 완벽하게 기척을 지운 상태였다. 롱소드를 만지작거리면서 끊임없이 단전 바깥으로 파동을 퍼트렸다.
그때마다 잡히는 것은 삼백구십 명의 아카데미 관계자뿐이었지만.
확신컨대. 분명히 멕시코 놈들이 찾아온다면 오늘이 기점이다. 이만한 기회는 당분간 없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헌터들의 10년 생존율이 단 5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 아십니까? 무슨 말이냐고요? 네. 여러분들 이제 X됐다고요.”
“하하하!”
훈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니까 여기 계신 삼백 용사분들. 10년 후에 살아남는다면 꼭 저를 찾아와 주십시오. 제가 수고했다고 찐하게 키스라도 해 드릴 테니.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 눈앞의 몬스터를 외면하지 않을 용기, 평생 놀고먹을 돈이 있어도 던전에 들어갈 바보 같은 정의감이 있기를 한국 각성자 아카데미 총장 민수정이 바라는 바입니다. 지루한 연설 듣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뭐해요? 모자 안 날리고.”
“와아아!”
총장의 말이 모두 끝났다. 그럼에도 특정되는 공격이 없었다. 허나 아직도 확신하고 있다. 온다. 무조건 온다.
삼백여 개의 학사모가 허공에 떠올랐을 때.
파동에 포착되는 것이 있었다.
우웅-!
그러면 그렇지.
저 멀리 입구에서 점 하나가 일렁거렸다. 곧이어 흔들거리던 점이 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며 움직였을 때.
푸확!
세로로 공간이 죽 찢어졌다. 공간이동 마법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수준 높은 스킬. 고밀도의 마나가 그 안으로 집중된 게 보였다.
“게이트다!”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모두가 들릴 수 있게끔 마나를 가득 실어서.
민간인이었다면 가타부타 도망부터 치고봤겠지만. 어엿한 애송이 헌터들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철컹철컹!
곧장 그들이 장비를 차며 강당 입구에 찢어진 게이트를 응시했다. 전투 준비까지 걸린 시간이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들 십부장 밑으로 헤쳐모여!”
교관들도 순식간에 자세를 고쳐잡으며 졸업생들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교관들의 선택은 틀렸다. 지금이라도 학생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게 몬스터라면, 설령 A급이라 해도 필사즉생의 각오로 싸우는 게 맞다.
그러나 저 너머에 있는 것들은.
“사람?”
안쪽에서 오열을 갖춰 걸어 들어오는 놈들은 누가 봐도 사람이었다.
민수정이 위험하다. 감춘 기운을 폭발적으로 끌어내며 총장 쪽으로 다가갔다.
“어?”
“뭐, 뭐야!”
“습격이야! 몬스터가 아니다!”
쩍 벌어진 공간 안에서 우르르 인영들이 튀어나왔다. 이미 놈들이 게이트 너머에 있을 때부터 느껴졌던 기운이 정확히 전달됐다.
놈들의 숫자는 총 서른여섯, A급 둘에 B급 넷, 서른 명의 C급이다.
즉, 민수정이 참전한다 해도 여기 있는 모두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말이었다.
“타코 먹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애둘러 민수정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금 내게는 삼백의 목숨보다 민수정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그녀를 대피시키는 게 상책이었다.
[헬리오스의 심장을 착용합니다.]
허나 그럼에도 내 몸이 민수정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고소를 당해도 할 말 없다.
다행인 것은, 민수정도 나를 막지 않는다는 것이고.
“혹시 이것도 특수의뢰비로 청구할 거니?”
“서비스로 해 드리죠.”
내가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검술교관에게 복수의 딱밤을 먹여야 한다.
“시타둠은 위대하시다!”
아니나 다를까.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놈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죽일 이유로도 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