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BTO (1)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응접실을 가득 채운 순간이었다. 곧장 하오란의 팔에서 분수처럼 피가 터져 나왔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놈이 제 팔을 스스로 자른 것이다. 아니, 이 경우에는 뽑았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지.
응접실이 녀석의 피로 물들어갔다. 너무 황당한 그 광경에 나는 표정을 굳힌 채 그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놀란 반응 정도는 보여줄 줄 알았습니다. 되려 민망하기까지 하군요.”
놀랐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놀랐다. 그저 표정만 무심한 척 하고 있을 뿐이다. 팔짱을 끼길 잘했다. 나도 모르게 손을 움찔하고 말았으니.
하오란이 내 얼굴을 살피기도 잠시, 당황한 기색 한 점 없이 지혈을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나는 놈의 저의를 해석하느라 바빴다.
혹시 또 다른 꿍꿍이가 숨어있을까? 나를 죽이고자 방심을 노린다거나.
곧장 고개를 저었다. 결단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왼손을 바쳤어야 했다. 놈의 오른쪽 어깨는 왼쪽보다 확연하게 발달된 모양이다. 속일 수 없는 부위였다.
즉슨, 한 끗 차이였던 하오란과 나의 간극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뜻이다.
사이코패스 내지는 소시오패스.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하란다고 정말 할 줄은 몰랐다. 아니, 저 반응으로 볼 때 애초부터, 그러니까 나와 만나려고 결심한 순간부터 이 장면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쯤 되면 믿음을 드렸는지요. 이것으로 인해 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당신을 쓰러트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광기에 가까운 녀석의 갈망이 엿보였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놈이다. 이쯤 되면 악순청을 죽일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도망치는 방법도 가지가지군.”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이제는 나조차도 하오란을 상대하기 싫어졌다. 놈은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지옥불도 웃으면서 들어갈 놈이다.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러며 나를 응시한다. 이제 내 차례라는 뜻이었다.
“흥. 악순청의 목부터 가져와라.”
하오란을 상대하기 꺼리는 것과 별개로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게 더 위험하다. 얕보이는 순간 물어 뜯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결 당일날에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맹세컨대 악순청은 최태성을 이길 수 없습니다. 혹, 아직 저를 못 믿으십니까? 다른 팔까지 드리면 되겠습니까?”
녀석은 내가 말하면 당장 그러겠다는 듯 남은 팔 한 짝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실로 소름끼치는 놈이다. 하오란의 팔 두 짝을 모두 가져간다?
명분에 있어서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BTO고 나발이고 화신에서는 무조건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귀엽긴. 협박도 할 줄 알고. 흥미가 식었다. 외팔이 놈을 죽여봤자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 하오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말의 찝찝함이 남아 있었지만, 앞으로를 생각해도 녀석과 나의 간극은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선을 넘는다 싶으면 그때 죽여도 된다.
“아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해 봐. 전지하신 ‘그분’에 대해서.”
지금은 살려둬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 하오란은 나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것’에게 선택받아 성장해왔다. 나보다 ‘그것’을 더 잘 알 수 밖에 없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 하나까지 모두 얻어낸 후여야 한다.
“네가 말하는 것만 들으면 꼭 시스템을 종교로 만든 사이비 광신도들이 생각난단 말이지.”
내 말에 하오란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그 바보들은 시스템에 자아가 있다고 믿죠.”
“시타둠 교도들을 만나본 적 있나?”
“시타둠?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신흥 종교단체인가 보군요?”
그쪽 계열은 아니고. 계속 말하라는 뜻에서 놈을 향해 턱짓했다. 하오란은 계속된 내 건방진 태도에도 호의를 보이려 애썼다. 녀석이 쓰는 극존대의 호칭만 봐도 그랬다.
참 이상하다. 그 모습이 꼭 처음 손영혁을 만났을때를 떠올린다. 가면을 쓰고자 했지만 어설펐던 손영혁과 달리, 이 녀석은 진심처럼 보이는 점이 다르기는 했지만.
“칼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쓰는 망나니가 잘못 된거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스템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그 도구를 만든 자가 저희를 인도하시는 ‘그분’일거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놈이 하늘을 가리키며 검지를 쿡쿡 찔렀다.
“너는 그게 신이라 생각하는 거고.”
“저희에게 초인적인 힘과 미래를 보여주시는 분이 신이 아니라면 뭐겠습니까?”
단번에 놈의 말을 반박하지 않은 것은 하오란의 정보를 뽑아내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나 또한 지금껏 생각해온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팔장로인지 뭔지 하는 것이 나를 습격했을 때부터는 확신에 가까웠고.
내게 미래를 보여주는 그것의 정체는 필히 시스템과 연관이 있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그놈은 네 생각만큼 전지전능하지 않다.”
생각을 정리한 후 하오란에게 말했다.
하오란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그것’은 절대 신이 아니다. 전능한 유일신은 더더욱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협회장이 일전에 언급한 SS급 각성자에 가깝다고 보는게 맞지.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우리를 이용할 뿐이지. 너는 한 번이라도 강제성을 띈 임무를 받은 적 있나? 그놈은 우리를 어떤 장소로 유도할 수만 있다. 자유의지로 설명하기에는, 큭. 너 또한 그것의 조급함을 경험해 봤을거고. 신 치고는 안절부절하는 그 모습 말이야.”
내 말에 생각에 잠긴 듯 하오란의 시선이 빈 허공속에 가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하오란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럼에도 그분의 능력은 신이라 불러 마땅합니다.”
하오란 또한 생각해 본 화두였던 듯했다. 녀석의 눈빛은 처음과 같이 확신에 차 있었다.
지금 당장 이 문제를 두고 토론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것’이 제 목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그때 다시 생각해 보면 될 일이다.
어쨌든, 하오란의 흥미로운 주장은 귀에 담아둘 만했다. 신 어쩌고 하는 거 말고 각성자들의 시스템은 도구일 뿐이라는 말.
녀석과의 거래를 마친 후 응접실을 나온 직후였다. 하오란과 같이 왔던 덩치 두 명이 제 상관의 오른 팔을 보자마자 당장 내게 달려들려 했다.
짜악!
일성 쪽에서 덩치들을 제압하기도 전에, 하오란의 왼손이 덩치들의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험악한 표정으로 덩치들을 꾸짖는 하오란이 꽤나 낯설었다.
“이 원한은 잊지 않겠다.”
그리고는 까드득 거리며 나를 분노에 찬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사전에 합의된 모션이기는 했다. 저 정도로 리얼하게 할 줄은 몰랐지만.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보일 정도다.
“얼마든지.”
나 또한 그렇게 맞받아쳤다. 한석훈을 포함한 사람들의 표정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한 팔이 잘린 채 나온 하오란을 한 번, 그 팔을 들고있는 나를 한번. 번갈아가며 쳐다보면서 상황을 추측하는 듯했다.
어떤 생각에 다다른 걸ᄁᆞ.
“이거 일냈네.”
김석환이 이마를 짚으며 이건 또 어떻게 해결 해야할지 난감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한석훈을 포함한 A급 각성자들이 모조리 최태성의 방으로 불려 올라갔다. 나는 감금되다시피 회사 내에 머물러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석훈에게 이마 한 대 쥐어박히며 들을 수 있었다.
합당한 복수.
선을 아슬아슬하게 걸쳤다고 한다. 하오란의 말대로, 화신과 일성의 전면전이 일어나는 불상사는 없었다. 다만 BTO의 선수가 교체 됐다고 한다. 복수에는 끝이 없다고, 하오란의 팔이 잘린 복수를 내게 한다고 한다. 아까 뺨을 맞았던 그 덩치 녀석이.
향후 반드시 S급 각성자가 될 헌터의 한 팔을 자른 대가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악천후. 악순창 회장의 아들이자 하오란의 양형제다. 만만치 않은 놈이야. 단단히 준비해야 할거다.”
“네.”
“뭐?”
“단단히 준비하면 되겠네요.”
“너 인마… 어휴. 아니다. 앞으로는 사고 치기 전에 말 한마디만 좀 해주라. 아주 피 말리는 기분이야.”
“사고는 뭐가 사고야. 아주 시원하고 합당한 복수지. 고맙다! 이태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얼굴로 나를 보는 것과 반대로 한석훈은 킬킬대며 재밌어하고 있다. BTO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아 하는 모습이다. 그게 고맙기는 한데, 어째서일까. 왜 얄밉지?
“솔직히 하오란 그 새끼는 뭐랄까 찝찝했거든. 그것도 굉장히.”
이게 A급 헌터의 감이라는 걸까. 한석훈이 되려 마음이 놓인다며 한결 가벼운 투로 잘됐다며 박수를 짝짝친다.
“걱정 마. 이태진. 죽을 거 같으면 내가 대신 그새끼 조져줄테니까.”
임한나는 아예 내 생사결에 끼어들어 훼방놓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고 있고. 표정으로 보나, 임한나에게서 풍기는 파동으로 보나 장난 같지가 않다.
그러고보니 임한나한테서 느껴지는 파동이 전과도 다르다. 묵직하고 강인한 힘.
“너 뭐냐? 뭘 숨기고 있길래.”
“뭘 숨겨.”
추궁하듯 굴자 임한나가 총총거리며 자리를 피한다.
경황이 없어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느껴지는 기운만 봐도 최소 190레벨에 근접한 것 같은데. 전주 던전에 갔다올 동안 얘가 무슨 일을 겪은 것 같기는 하다.
“성형외과에 번 돈 다 갖다 바치는거냐? 피부도 그렇고 어째 갈수록….”
무슨 물광이라도 바른 듯 날이 갈수록 깨끗해지는 피부며, 머리의 윤기며. 찰랑거리는 흑색 단발이 한올 한올 살아있는 것 같다. 아카데미 시절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솔직히 이런 말 하기 오그라드는데 좀 심하게 예뻐졌다.
“회광반조라는거다, 이 자식아.”
내놓은 답도 쌩뚱맞은 말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대화를 해보긴 해야 할 모양이다.
어쨌든. 하오란과의 대결이 무산됐다 해도 일성과 화신 두 공룡기업의 단두대 매치는 아직도 유효했다. 원래부터 최태성과 악순청의 대결 때문에 이 난리가 난 것이기도 했고.
나 또한 대결에 나가는 건 변함없다. 악천후는 김석환의 말대로 만만히 볼 녀석이 아니다.
심지어 녀석의 등급도 A급에 창을 주로 쓴다는 점도 하오란과 똑같다. 하려던 준비를 마저 하는게 맞았다.
집에 오자마자 받은 전리품을 모조리 꺼냈다.
한 개의 다이아박스와 두 개의 플레니텀 박스, 다섯 개의 골드박스.
이번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것들이었다. 팀원들의 공로가 있었음에도 그랬다. 전부가 내 보상으로 책정됐다. 던전에 들어갔던 전원이 찬성했다고 한다. 목숨을 건진것에 감사해야 한다며.
“고맙기는 한데.”
받아도 될지 모르겠다. 사양하기에는 내 처지가 물불 가릴 때가 아니라 두 눈 딱 감고 감사하다고 넙죽 받아왔다. 강해질 수 있다면 뭐든 해야 하는 게 내 처지다. 염치는 무슨.
또 한가지.
웅웅 거리는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이 부르르 떨었다. 그래. 다음 장을 열 준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