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B급같지 않은 B급 (7)
극한의 고통에 뇌가 반응하는 방식은 늘 이랬다. 고통스러웠던 기억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의 발현이었다.
그래서 리저드퀸을 잡자며 들어간 뒤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했다.
곧, 여러 기억의 파편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억.
거대한 공동에 다다랐을 때 익룡의 서늘한 눈빛이 우리를 꿰뚫듯 비추었다.
익룡?
아니다. 동굴을 가득 채운 흑색 파충류의 몸집은 S급 몬스터라 추정되는 드래곤에 버금가는 크기였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으로는 차마 실감할 수 없었던 위압감이 우리를 덮쳤었다.
“내 등 뒤로 숨어!”
그 말과 함께 손에 잡힐 듯하던 기억이 다시 날아갔다.
뒤를 이어 날아드는 두 번째 기억.
A급에 다다른 능력치를 인정한다는 걸까. 보스전 직전에 그런 메시지가 떴었다.
[헬리오스의 심장이 잠긴 능력치를 해금합니다.]
[태양신의 가호 : 10분간 모든 물리, 마법적 데미지에 대한 피해를 50% 감소시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48시간.]
본능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집채만 한 몬스터의 아가리에서 뿜어진 액체가 우리를 덮쳤을 때 분명 태양신의 가호를 사용한 기억이 있다.
[독에 대한 내성이 높습니다.]
[일부 저항에 성공합니다.]
[초당 최대 체력의 3%만큼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습니다.]
허나 그것을 뚫고 들어오는 자주빛 액체에 닿은 순간, 개미 수천 마리가 혈관을 갉아 먹는 듯한 경험을 겪어야만 했다.
다행인 점이라면, 그때까지는 팀원들의 부상이 심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 번째.
아드레날린 부스트의 잔여 시간이 채 1분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익룡의 꼬리를 자르는데 성공했지만, 그뿐이었다.
그것이 지르는 괴성에 비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헬리오스의 심장마저도 제 빛을 잃어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정말로 의문이었다. 이 던전을 이 사람들끼리 어떻게 공략한 걸까.
네 번째.
“이태진! 멈춰!”
헬리오스의 심장은 인벤토리 속으로 도망치고, 롱소드도 없다. 그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익룡의 등에 올라타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을 감행했을 때는 죽은 부모님이 보였었다. 나를 데리러 오신 걸까.
저승으로 가기 전, 놈의 척추뼈를 부숴야 했다. 부글부글 기포가 들끓는 주먹을 있는 힘껏 내리쳤던 순간.
[케르르륵! 케륵!]
기어코 익룡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언제나 그렇다. 시련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어째서 성장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이뤄지는 걸까.
이번뿐만이 아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살아남는다 해도 다음에는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던전에 들어온 것도 ‘그것’의 계획 중 일부라고.
“천상의 축복!”
저 멀리서 들리는 김아랑의 목소리와 함께였다. 불현듯 밝아진 시야 안으로 윤진아의 쓰러진 모습이 들어왔었다.
결국엔 막지 못했다는 생각에, 지긋지긋한 괴로움의 연속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검신의 축복은 그 상황에서도 내게 길을 제시했다. 아니, 가혹한 환경일수록 검신의 축복이 숙련도를 높여간다. 그때도 그랬다.
어떻게 중력을 다뤄야 할지, 검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여야 할지.
그제서야 놈의 움직임이 패턴화되어 내 눈에 보였었다. 아드레날린 부스트의 유지 시간이 단 10여 초 남은 시점이었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불현듯 기억 속 마지막 파편이 손안에 들어왔다.
분명 무아지경 속 시스템이 그런 메시지를 띄웠었다.
[오기조원의 경지를 일부 엿보…!]
꿈틀거리는 단전 안의 마나가 심장 속 마기와 합쳐졌던 게 생각난다. 아마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테지만, 그때는 그랬다.
일곱 가지 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오러가 대검의 형태로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윤진아가 만든 태양과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광채를 뿜어내는 그것을 들고 놈에게 휘둘렀을 때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없이. 놈이 둘로 쪼개진 것을 끝으로 던전이 무너졌었다. 익룡의 죽은 시체에서 순식간에 마기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온 것이 보였다.
화악!
그렇게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재에 이르렀다.
“빨리! 뭐해! 이태진부터!”
윤진아가 그렇게 외치고.
“야, 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버텨. 정신 차리라고!”
김아랑이 내 옆에서 따뜻한 빛을 내뿜었을 때도 그랬다. 왜 이렇게 오버 하는지. 나는 이렇게 괜찮은데.
아니,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희열과 깨달음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팔팔한데.
다섯 번째 고리가 완성된 기쁨에 방방 뛰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귀찮은 부축 따위는 필요도 없어 손짓하려고 했다.
어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통각이 느껴지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느낄 수 있는 건 충만한 만족감뿐이었다.
뭐지 싶어 슬쩍 힐러가 집중적으로 지혈하는 곳을 쳐다봤다. 왠지 허전하더라니 복부 왼쪽이 뻥 뚫려있었다. 그것도 손바닥 넓이만큼이나.
오른손을 슬쩍 보자 아예 떨어질 듯 말 듯 덜렁거리고 있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부모님이 보이더라니. 유언을 남기면 되나요?”
할 수 있는 모든 마나를 끌어모아 회복 마법을 쏟아붓고 있는 김아랑과, 있는 포션을 모조리 끌어모아 내 몸에 부어대고 있는 윤진아에게 말했다.
농담처럼 한 말이 그렇게 들리지 않았나 보다. 윤진아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물라고 했다.
“네 공로가 얼마나 큰데. 죽기 아깝지. 네가 살린 목숨을 생각해봐.”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내가 이 사람들 살리려고 얼마나 노렸했는데.
“철규 선배는 어떻게 됐어요?”
“네 걱정이나 해. 그놈은 하도 팔팔해서 죽지도 않으니까.”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정철규가 죽었으면 개고생이 헛수고가 될 뻔했으니까. 마음이 놓인 것 때문일까. 졸음이 몰려왔다.
“좀 자둬.”
그 말이 수면제처럼 내 눈을 감겼다. 던전 밖은 유난히 푸르른 겨울의 창공이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
임한나가 조용히 감은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밀실 속에서도 몇 시인지, 또 이곳에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있었다. 레인저 고유의 스킬 중 하나였다.
“보름.”
깊게 숨을 내뱉었다. 세 번째 봉인을 마침내 풀어냈다. 한결 가벼운 몸에 비해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걸로 또 얼마나 줄어든 거니?”
“엄마.”
천천히 일어나 밀실 밖을 나왔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중년의 여인이 앞을 막아섰다. 대한민국의 사방신(四方神) 중 하나인 임혜원이자, 자신의 어머니였다.
걱정스러운 눈빛 그대로 자신의 몸을 훑는데 영 뿌듯한 감정과 마뜩잖은 감정. 상충된 두 마음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내 생각은 그래. 지금이라도 생사결인지 BTO인지 당장 엎으라고 해. 남의 자식 귀한 줄 모르고 감히. 아니지. 차라리 내가 직접 가…!”
“그만요. 그만. 이미 결정된 일인걸요.”
“그 새끼는 아니? 네가 어떤 대가를 지불했는지.”
“…….”
“이태진인지 뭔지. 그놈이 뭐라고 수명 깎아 가면서 따라다니니? 그래서 도장은 찍는대?”
“엄마!”
쏟아지는 이태진에 대한 불평은 어머니로서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도장이라니. 자신과 이태진은 그런 남사스러운 사이가 아니다. 엄연히 전우로서, 아카데미에서부터 이어진 동료일 뿐이지.
“그런 사이 아니에요! 이태진은 그냥 친구일 뿐이지.”
“얼씨구. 눈물겨운 우정 나셨네. 친구 때문에 수명 깎아서 레벨 올리는 건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다.”
쯧쯧 혀를 차는 어머니에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선천각성자로서 패널티를 얻은 자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A급 헌터에 달하는 잠재력을 얻은 자신이지만, 그랬기에 가혹한 대가도 뒤따랐다.
레벨이 오를수록 수명이 줄어든다. 이유는 모른다. 어째서 레벨이 오를수록 수명이 줄어드는지.
왜 성장의 대가는 자신의 목숨인지. 시스템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특성, 천재박명(S) : 모태부터 각성자인 당신에게는 무한에 가까운 성장잠재력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능력치가 올라갈 때마다 수명이 줄어듭니다. 짧고 굵은 당신의 삶이 화려하게 빛나기를.]
그런 말 하나가 끝이었다.
‘화려하게 빛나? 까고 있네.’
원망하고 불평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지난 과거는 묻어뒀다. 조금뿐이지만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도 얻었다.
여섯 겹으로 이루어진 봉인으로 특성을 막아두는 것이다. 그럼에도 완전하게 특성의 힘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S급의 특성은 겨우 봉인 스킬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그렇게 자신에게 부여된 인생은 서른셋까지였다.
“이렇게 된 거 즐기자.”
어디 얼마나 대단한 특성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차피 죽은 목숨, 써보기라도 하자는 심정이었다.
아카데미에 들어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헌터 자격증을 발급받기 위해서.
그때 그 녀석을 만났다. 이태진. 몬스터에 대한 독기로 똘똘 뭉친 놈. 거기에 반해 물욕이나 명예 따위는 관심도 없는 놈.
신기했다. 자신처럼 단명이 예정된 것도 아니면서 돈이나 명예에는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는 것이.
“넌 꿈이 뭔데?”
하루는 그렇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도 희한했다.
“지구상 모든 몬스터의 박멸.”
세계 정복만큼이나 해괴한 소리를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내뱉는 이태진이 퍽이나 웃겼다. 그래서 더 지켜보고 싶었다.
“넌 어떻게 소름 돋을 정도로 나랑 성적이 똑같냐?”
가끔 그렇게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올 때는 그저 웃어 보였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한결같이 몬스터에 대한 독기만 보이는 녀석이 너무 신기했다.
저 녀석은 하루를 살아도 몬스터를 죽이며 살겠구나. 삶에 대한 가르침처럼 느껴졌다.
자신도 저렇게 살라는.
그것이 신기해 결국 녀석이 지원한 회사까지 따라갔다. 자신에게 하나 남은 가족인 어머니가 잔뜩 토라진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이태진을 따라다니면 재밌는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 녀석이 A급 스킬을 얻지 않나, 곧이어서 S급 특성까지 얻었다.
특히 검신의 축복을 얻은 직후 얼빵한 표정을 짓던 녀석이 왜인지 신경 쓰였다.
“아, 저거 어디 가서 사기당할 것 같은데.”
그래.
단지 그런 동정심과 친구로서 걱정되는 마음일 뿐이었다. 잘 쳐봤자 동생을 향한 누이의 마음 정도일까.
그쯤 해서 첫 번째 봉인을 풀었었다. 이태진이 얻은 특성에 발맞춰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곧장 1년 치의 수명이 깎여 나갔지만 상관없었다. 하루살이가 하루를 사나 이틀을 사나 그게 그거지.
“짧고 굵게 살라며.”
그 덕에 이태진의 재밌는 기행에 따라갈 수도 있었으니, 후회는 없었다.
이태진이 성장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어느 순간 그게 삶의 유일한 유희 거리가 됐다. 때문에 이번 BTO에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두 번째 봉인을 푸는 것도 그랬다.
이태진 옆에 서서 걔가 S급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결국 녀석이 말한 대로 지구상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박멸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본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짧고 굵은 자신의 생애에 그것만큼 화려한 피날레가 있을까?
“너희 기수들은 진짜 이상하다니까. 뭐가 어떻게 된 게 1년 만에 여기까지 성장하냐?”
BTO에 나갈 투사를 뽑는 과정에서는 최찬규가 그 마지막 상대였다. 이태진 뒤에서 검술을 지켜보며 B급 직전까지 다다랐다고 한다.
“요즘 애들이 이래요.”
피융-!
“임한나 승!”
그런 최찬규를 화살 한 방에 꺾었다. 두 번째 봉인을 해제한 결과였다. 연이어 오늘은 세 번째 봉인까지 풀었다.
“굳이 세 번째까지 풀 필요가 있을까?”
걱정스레 묻는 엄마에게 그저 미소를 보였다. 굳이 세 번째 봉인까지 푼 이유.
‘혹시나. 혹시라도 이태진이 질 것 같으면.’
자신이 뛰어들어서 하오란인지 뭔지 하는 그새끼를 대신 죽여주려고.
뒷일?
뭐 어쩌라고.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다. 동기 목숨이 위험하다는데 가만두고 볼 수도 없잖아.
“이 새끼는 이런 마음을 알까?”
뚜르르-
괘씸한 마음에 이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나 신호가 가고 겨우 받은 이태진의 목소리가 영 이상했다.
“뭐? 벼, 병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신발을 거꾸로 신은 것도 잊은 채 이태진이 있다는 곳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