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B급 같지 않은 B급 (4)
“뭐?”
“왼쪽?”
“그러고 보니 네가 있었지!”
방금까지 어떻게 할지를 두고 논의 중이던 사람들이 고개를 훽 돌렸다. 특히나 정철규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얼굴에 비가 내리던 정철규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생각도 못 한 곳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 꼭 내 표정이 저랬을 것 같다.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온 정철규가 내 어깨를 꽉 붙잡았다.
“뭐, 뭐가 보여? 어때 보여? 왼쪽? 왜 왼쪽인데?”
마치 반드시 보여야 한다는 듯,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는데 꽤나 부담스러웠다.
이규호를 슬쩍 쳐다봤다.
엄연히 이번 던전 공략의 레인저는 이규호였기 때문에, 던전을 탐색하고 세부적인 공략방법을 짜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괜히 레인저의 자존심을 긁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도 잠시, 이규호마저 재밌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번 들어나 보자. 그러고 보니 우리 칼귀신께서 레인저 스킬도 가지고 있었지? 아, 스킬이 아니라 느끼는 거랬나? 어쨌든. 검술이 너무 화려해서 우리도 다 잊고 있었다.”
“칼귀신이요?”
“너 싸우는 게 무슨 귀신 들린 것 같더라.”
“난 몬스터가 불쌍하게 느껴졌어.”
윤진아가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헛소리 같은 내 말을 듣는데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저놈이 뭔 말을 하는 거냐며 투덜대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갑자기 이렇게까지 태세전환을 하니 내가 다 당황스러울 지경인데.
“한 번 검증했으면 됐지. 나 그렇게까지 자존심 부리는 놈 아니야. 까짓거 두 번 못 믿을 것 없다는 소리야.”
이규호가 민망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같은 B팀인 김아랑, 최윤재도 마찬가지였다.
마냥 농담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이 사람들. 지금 내가 똥을 싸라고 해도 그대로 할 기세다.
B급 각성자쯤 되면 촉이 좋아지는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정답을 던져줬다.
“왼쪽 갈림길의 몬스터가 오른쪽보다 더 적습니다. 센디타이드 다섯, 앙겔리온 둘, 리저드 다섯. 철저한 공략을 원한다면 두 곳 모두 해치우는 게 맞다만 이 던전에 유독 이상한 기운이 흘러서요. 보스전까지 일점 돌파가 맞다고 봅니다.”
미래의 이규호가 써 놓은 보고서를 따라 읽었다. 마치 뭔가가 보이는 척 연기를 하면서.
찜찜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왠지 남의 성과를 뺏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공략보고서에 개인 실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진입부의 함정을 발견한 것만으로 이미 대단한 성과라고 하는데 여기서 더 나서도 되는 걸까?
아니지. 내 덕분에 쉽게 던전 공략하는 것도 맞잖아. 조금 더 당당해지기로 했다.
“몬스터 종류는 똑같아요. 개체수는 총 열 마리. 숫자에 비해 놈들 레벨도 여기랑 별로 다를 것 없고.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여기보다는 다음 갈림길에서 휴식을…?”
빠르게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 내 입장까지 덧붙이려 했을 때쯤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레벨까지도 파악이 된다고?”
이규호는 아예 팔짱을 풀고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하는 눈빛으로.
“아니.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이게 말이 되나 싶어서. 그만한 검술로도 모자라서 레인저 고유스킬까지 가능하면…나머지 사람들은 뭐 어떡하라는 건지.”
“더블도 아니고 트리플이라는 말이지?”
윤진아가 혀를 내둘렀다.
“트리플? 더블이 아니라? 뭐 숨기는 게 더 있어요?”
“잘못 말했어. 하여튼. 어떻게 할 거야 팀장?”
조마조마한 심정을 숨기고 정철규를 쳐다봤다. 더 의심을 사기전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정철규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박수를 짝 쳤다.
“답은 진작 정해졌지. 왼쪽으로 간다.”
그러면서 지그시 나를 쳐다본다.
“설마 탱커 스킬도 있는 건 아니지? 그 갑옷. 웬만한 탱커 방어력보다 더 단단한 것 같은데.”
“예?”
“혹시 이거까지 들어맞으면.”
정철규가 진짜 내 말이 사실이어도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새로운 팀의 팀장 어쩌고 하는 소리를 흘리면서였다.
“나도 긴장해야겠는데.”
***
“오른쪽 갈림길. 전방 10미터 앙겔리온 셋, 성체 리저드 다섯….”
콰앙!
“중앙으로 돌파, 우측 벽에 잔뜩 몰려 있어요. 숫자는 대략 서른 마리쯤 되는….”
쩌저적!
나도 내 기억력이 이렇게 좋았나 싶었다. 적절한 시점마다 보고서의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 덕분에.
“클리어!”
“여기도 클리어!”
콰직!
“여기도 클리어요!”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빠른 공략 속도였다. B급, 그것도 아락투스의 마기 때문에 대폭 난도가 상승한 것들을 상대하는 데도 그랬다.
아니,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나뿐이었다. 옆을 돌아보자 이규호를 포함한 B팀원들이 헥헥대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여기 B급 맞아? 뒤질 것 같은데.”
“내 말이. 이것들 독기 살벌한 거 봐.”
“이렇게 껍데기 딱딱한 리저드는 듣도 보도 못했어. 여기 뭐야?”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그들이 어느 순간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도둑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목소리를 낮추면서였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던전보다 더 놀라운 게 이태진 저놈이야. 몬스터 종류, 숫자, 어디에 숨어 있는지까지 다 때려 맞추고 있잖아.”
“규호 형.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나한테 묻지 마. 나도 환장할 것 같으니까.”
B팀 근거리 딜러 최윤재가 힐끔 내 몸을 훑어보면서 말을 이었다. 속닥거리는 소리가 더 작아졌다.
“쟤 말이에요. 이태진. 어째 던전 진입했을 때랑 비교해도 좀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적응했다고 하기에는 아예 근본적인 힘 차이가 느껴지는데.”
“제가 말도 안 되는 추측을 하나 해볼까요? 여기 들어온 지 이제 나흘째인데, 그새 레벨업을 한 열 번 정도 한 거죠.”
“…꽤나 말도 안 되면서 그럴듯한 추측이네.”
“그렇죠?”
기왕 여기까지 온 마당에, 한 톨의 경험치도 놓치지 않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칼귀신이라 불려도 할 말 없을 정도로.
그 결과로 일곱 개의 레벨을 올렸다. 세 번째 고리도 용량이 반쯤 채워졌고.
“이대로라면 앞으로 일주일도 안 걸리겠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해.”
누군가 신난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거기에 동조하듯 윤진아와 정철규마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만큼은 거기에 동조할 수 없었다.
씁쓸하게도 아락투스의 던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였다. 미래 대로라면 바로 앞에 있는 방에서 정철규가 죽는다.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숫자는 다섯인데, 하나하나가 강력합니다. 보스몹으로 상정해야 할 정도로요. 각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내에 찬물을 끼얹은 듯 팀원들의 신난 얼굴이 일시에 굳었다. 내 말에 이 정도의 신뢰가 생겼다. 나 같아도 그런다. 신들린 것처럼 몬스터의 숫자는 물론이고 레벨, 지형파악, 보스전까지의 최단루트로 안내하는데 안 믿는 게 이상하지.
“다른 길로 가는 건?”
정철규가 넌지시 물었다.
“모릅니다.”
반대편으로 간다면 더 나은 루트가 될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도박마저도 할 수 없었다. 작은 행동이 어떻게 미래를 바꾸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원래대로 진행하는 게 맞았다.
그래.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갈림길 끝에서 본 다섯 마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본래 독을 주로 사용하는 리저드나, 그것들을 따르는 독충들이 까다로운 이유는 물리적인 힘 때문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몸속을 헤집어놓는 지독한 독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것들은 대체.
저저적!
두 마리의 합공이었다. 외형은 별다를 것 없는 리저드인데 힘과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를 증명하듯, 곧이어 맹독을 담은 리저드의 손톱이 헬리오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일부 저항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맹독 : 최대 체력에 비례해 초당 2%씩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아찔한 고통에 뇌가 파먹히는 기분이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가리킨 대로, 그러한 고통이 순간마다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굳건한 방패 같던 정철규가 이 방에서 죽었다는 것보다, 겨우 정철규만 희생하고 여기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게 더 믿기지 않았다.
헬리오스의 심장이 한계치까지 힘을 다한 이후였다. 시야가 난잡하게 이지러졌다.
놈들이 내 앞에 있는지, 아니면 뒤에서 기습을 노리는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동료들이 울부짖는 소리도 차단됐다. 완벽한 암흑상태에 나 홀로 남아있는 기분.
그때부터는 오로지 본능만 남아있었다. 믿을 것이라고는 검신의 축복밖에 없었다.
지금도!
콰직.
컴컴한 암흑 속 파충류의 눈깔이 검을 타고 전해졌다. 보이지 않지만 그럴 것이다.
리저드를 타깃으로 삼은 중력마법에 의해 주위의 공간이 일렁였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놈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을 것이고.
허나 그것만으로 보스급에 달하는 리저드를 마무리 지을 수는 없었다. 일격을 먹이지 못한 대가였다. 놈이 숨을 고를 틈을 줘버리고 말았다.
젠장할. 윤진아의 마법이나 이규호의 궁술, 하다못해 정철규의 맨주먹이라도 있었다면.
허나 추가적인 공격을 바라기에는 나머지 팀원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진영은 진작에 붕괴됐고, 생존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였다.
또다시 공격을 준비하려던 그때였다. 시야가 밝아졌다. 김아랑이 내 독기를 치유한 것이 분명했다.
옆을 돌아보자 힐러 김아랑이 진땀을 흘리며 집중적으로 내게만 버프스킬을 걸고 있는 와중이었다.
동시에 청각도 돌아왔다. 이규호의 절절한 외침이 바로 옆에서 터졌다.
“철규선배!”
“커르륵!”
정철규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독기에 범벅된 안면이 보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치명적인 공격들을 다 감당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조급한 마음을 억눌렀다. 그러나 현실이 그랬다. 빠르게 전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아드레날린 부스트의 잔여 시간 또한 겨우 1분 남짓이었다.
때마침 내 앞으로 달려오는 리저드 두 마리가 있었다. 심장의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마기를 끄집어내며 선두로 달려오는 놈을 특정시키자마자였다.
“갸륵?”
놈이 우주 공간에 떨어진 듯 나와 멀리 떨어진 벽으로 날아갔다.
후발주자로 따라오던 리저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가 기회였다. 리저드의 몸통을 노리고 검을 뻗었다. 검술의 등급이 올라갔다는 메시지는 관심도 없었다.
서걱!
베는 느낌이 명확했으나 내가 노린 부위는 아니었다. 번잡하게 겹쳐지는 시야 속으로 놈의 꼬리가 잘려나간 게 보였다.
나 또한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불에 덴 듯 화끈한 감각이 손등을 타고 번졌다.
치이익!
[저항하지 못합니다!]
[치명적인 독성에 중독됩니다!]
[맹독 : 최대 체력에 비례해 초당 5%씩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꼬리를 베면서 놈의 피가 몸 안으로 스며든 것이다. 다만 이로써 승기를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놈들로서 할 수 있는 최후의 발악임이 증명됐다.
검신의 축복이 점치는 승부의 향방도 한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천상의 축복!”
발악하듯 외치는 김아랑의 포효와 동시에 두 개로 보이던 초점이 하나로 합쳐졌다.
“지금!”
마나를 쥐어짠 윤진아가 붉은 채찍으로 놈들을 묶어둔 것도 그때였다. 망설일 게 없었다. 손에 들린 부식된 롱소드 또한 마지막 공격이 준비됐음을 알려왔다. 중력에 짓눌린 리저드 하나의 목을 그대로 내리쳤다.
콰드드득!
갑옷 같던 놈의 목이 나가떨어졌다. 한 번 더!
콰드드득!
우리만 진영이 무너진 게 아니었다. 다섯 중 하나가 죽자마자 철통같던 놈들의 균형 역시 금이 갔다.
그때부터였다. 순식간에 두 마리가 내 검에 갈려 나갔다. 아드레날린 부스트의 잔여 시간이 단 10초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부식되어 사라진 롱소드를 버리고 주먹을 뻗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리저드의 면상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퍼억!
“좀 뒤져!”
.
두부가 으깨지듯 놈의 대가리가 터졌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남은 것들이 팀원들의 손에 죽는 것을 끝으로. 의식이 옅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