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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68화 (68/170)

68화 B급 같지 않은 B급 (2)

정신을 차리니 내 몸이 전용기에 올라타고 있었다. 겨우 서울에서 전주까지 가는 것임에도 이렇듯 일성에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옆을 바라보자 정철규의 시원시원한 얼굴이 보였다. 정철규가 얼굴 가득 흥미를 띠며 말을 걸어왔다.

“진짜 네가 던전 내부를 봤다고? 레인저 스킬은 언제 얻은 거야?”

“봤다기보다는 ‘느꼈다’고 해야 하나….”

대충 그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결과에 맞춰 과정을 도출해 내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도 내 개소리에 정철규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말이 사실이면 대박이긴 하네. 그나저나 협회에 백 팀장님보다 탐지 스킬을 잘 쓰는 사람이 있었나? 아, 우리 김석환 팀장님 있기는 한데. 뭐 둘 다 실력은 비슷하니까. 백 팀장님도 못 본 걸 걔들이 어떻게 알고.”

정철규의 합리적인 의심에 뜨끔하기도 잠시, 윤진아가 나를 변호해 줬다.

“걔들이야 워낙 신기한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맞네. 그나저나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너도 같이 던전 들어가면 안 되나?”

그게 정철규의 본론이었다. 다른 팀원들의 눈도 순간 내 쪽으로 휙하고 쏠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 불만을 품으면서.

일성의 B팀이다. 다른 말로는 백인호의 부하들. 내가 B팀을 건너뛰고 A팀에 올라간 일에 가장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백인호 팀장님도 못 본 걸 저놈이 봤다고? 넌 그게 믿어지냐?”

“또 언플하는 거지. 저놈이 제일 잘하는 거잖아, 요란스럽게 일 벌이기.”

“싸가지 없는 새끼. 우리팀에는 오기가 싫어?”

하나같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지만 정작 반박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것보다는 윤진아, 정철규가 살아남는 게 먼저라서.

다만 한석훈은 그런 내 꼴을 두고 보지 못하는 듯했다.

“비웅신들. 비무 한 번 못 거는 새끼들이 주둥이만 살아서는. 이참에 너도 저기 껴서 좀 보여줘라. 쟤들이랑 너랑 급이 다르다는 거.”

그렇게 들으라고 욕하는데도 B팀 헌터들은 헛기침만 할 뿐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한석훈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하하.”

거기에 나는 아무 말 않고 웃어 보였다.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던전에 직접 들어가서 내가 일을 해결하는 것.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준비도 없이 B급 던전에 들어가는 건 사양이다.

그저 단단히 경고만 해 줄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터였다. 내 계산상으로는.

“하하는 무슨. 무조건 들어가야지. 안 그래도 하오란한테 레벨도 밀리는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레벨업하려고?”

한석훈이 그렇게 말하자.

“제정신이에요? 들어가긴 뭘 들어가. BTO도 얼마 안 남은 놈이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곧장 김석환이 반박했다. 또 시작이다.

“헌터가 다치는 게 두려워서 던전을 안 가? 진짜 돌겠네. 이럴 거면 나한테 다시 넘기던가.”

“참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A팀으로 소속을 옮기고 나서부터였다. 한석훈과 김석환은 시시때때로 저렇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중간에서 그걸 지켜보는 입장은 아주 죽을 맛이었고.

특히나 한석훈은 ‘완전 팀을 이동하는 건 좀 아닌데.’, ‘애써 키운 놈 남한테 주라고? 이거 놔 봐. 회장님께 말씀 좀 드려야겠으니까.’ 하며 길길이 날뛴 적도 있었다.

어찌나 극성을 떨어댔는지 이제 내 상관인 김석환마저 질색을 떨 정도였다. 지금처럼.

“그만 좀 하십쇼. 예? 남의 팀원한테 너무 과한 관심 아니에요? 이제 제가 알아서 합니다. 선배는 남은 팔이나 잘 간수해요.”

“이 새끼 말하는 꼬라지가 싸가지 없네?”

“싸가지? 아니, 말이야 제대로 해야지 이 사람아. 당신이 이러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아직도 이태진 쟤 당신 밑에 있는 줄 알잖아! 엄연히 내 팀원인데.”

“하! 그래, 말이 나와서 하는데 내가 모를 줄 알아? 회장님한테 얘 달라고 따로 말씀드린 거. 이 새끼가 그냥 넘어가려니까!”

“말이야 할 수 있는 거고요. 이 사람아. 그쪽도 말 좀 잘하지 그랬어.”

“이 사람? 그쪽? 이 새끼 진짜 많이 컸네. 넌 화신이랑 일 끝나고 보자.”

“지금 보고 있잖아요.”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그냥 공략을 멈추라고 할까? 그게 최선인가?

고민은 우리가 폐교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계속됐다.

“어디 아파? 표정이 안 좋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굳었나 보다. 윤진아가 내 이마를 짚으며 ‘열은 없는데.’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김석환이 어두컴컴한 교실문을 열면서 말했다.

“여기라고?”

보라색 음침한 기운이 도는 던전 입구가 우리를 반겼다.

나는 두 번째다. 처음과 달리 바리게이트며 노란색 안전선이며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닥지닥지 붙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건 없었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미래에 이번 사건의 보고서를 작성한 B팀의 메인 레인저, 이규호가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나를 믿지 못하는 투였다. 그러면서도 내게 뭐라 하지 못하는 건, 내 뒤에 서 있는 든든하고 유치한 두 A급 헌터들 때문이었다.

“주제넘지 말고 다들 정비부터 해라.”

더불어 정철규가 한마디까지 하고 나자 녀석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렇게 장비까지 착용하고 자리를 잡은 후였다.

기껏 여기까지 김석환이 출동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의 머리 위에 커다란 눈이 떠졌다. 푸른색 거대한 동공이 꿰뚫을 듯 던전 입구를 노려봤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봐도 딱히 전과 다르진 않은데. 뭐가 문제라고? 첫 번째 진입로에 함정이 있다고?”

김석환이 내게 넌지시 물었다.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말하는 것도 곤란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적당히가 필수다.

미래에서 보고들은 정보를 나열해보자.

[미궁형, 던전 진입과 동시에 함정 등장, 리저드, 독거미, 지네를 포함한 70여 마리 몬스터.]

생각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

“보인다기보다는 느껴진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죠. 말씀드렸다시피 탐색스킬 같은 건 제게 없는지라.”

이렇게 밑밥을 깔고.

“그런데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밀도가 상당해요. 아니, 은신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숫자는 대략 70마리 정도고.”

슬쩍 던진다.

눈을 감았다. 마치 뭔가를 느끼는 척 잔뜩 집중했다. 물론 파동을 퍼트려봤자 던전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없었다.

오히려 김석환의 말처럼 옅은 마나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보니까 함정에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함정? 확실해?”

B팀 레인저 이규호가 미친놈 보듯 나를 보며 말했다. 그때쯤 내 연기는 절정에 달했다.

“어라, 그리고 이것들. 독을 쓰는 것 같은데요? 느껴지는 기운이 그런 쪽 같아요.”

“독? 독이라면 쥐새끼들? 아니면 리저드?”

“리저드. 리저드 같아요.”

화룡점정으로 몬스터 유형까지 알려줬다. 이 정도면 떠먹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몰라서 당한 것이지 알고 있는 상태로 던전에 들어간다면 그런 함정에 당할 일성의 B팀이 아니었다.

이쯤이면 할 건 다 했다 싶어 슬쩍 눈을 떴다. 그런데 한석훈과 김석환을 제외하고는 모두 맹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얘가 어디까지 개소리를 하냐는 듯 궁금하기까지 한 표정이었다.

“진짜야, 뭐야?”

“표정은 리얼한데? 아니 근데 검신의 축복이 저런 것까지도 가능하다고?”

“네 암살스킬도 배꼈는데 뭐.”

“배낀 게 아니라 내가 가르쳐 준거라니까?”

“그렇다기엔 그때 네 표정이 너무 울상이었지.”

“난 기쁠 때 울어!”

의심 반 궁금증 반 나를 쳐다보는 이들과 달리 김석환은 당장 스킬부터 사용한 모습이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이 정도쯤 알려줬으면 김석환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

“리저드?”

김석환이 눈을 감았다. 나처럼 가짜 연기가 아니라 진짜 탐색스킬을 시전하면서. 그의 머리 위로 푸른색 눈이 또다시 나타났다.

아까보다 더 환한 빛을 발하던 푸른색 동공이 일순 번쩍거렸다.

“어라, 잠시만.”

김석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미어캣처럼 모두의 얼굴이 그쪽으로 훽 돌아갔다.

“리저드, 함정, 미궁형… 잠시만. 뭐야 이거.”

그의 얼굴이 굳어진 것이 그때였다.

“이게 뭐야. 이 새끼들. 징그럽게 많이 모여 있잖아.”

그때 번쩍하고 김석환이 눈을 떴다. 동시에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였다.

“야. 이거 너 아니었으면 어떡할 뻔했냐. 진짜 엿될 뻔했네.”

소름돋는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

“예. 그대로 들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백인호 팀장이 실수하긴 했는데, 저도 못 본 것들이라. 아뇨, 제가 한 건 아니고 이태진이 발견했습니다. 예. 계획을 수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요. 그래도 대책만 잘 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당장 최태성에게 다이렉트로 보고가 올라갔다. B급 던전은 일성 내에서도 중요한 행사였다. 전용기까지 태워 보낸 인력의 값어치가 한두 푼이 아닌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내가 꽤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나야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당연하다고는 생각했는데.

김석환이 아주 장하다며 부둥켜안고 꺼슬한 수염을 비비적거리기까지 했던 걸 보면, 김석환도 그대로 던전에 진입했다가 어떤 꼴을 당했을지 아는 모양이었다.

김석환뿐만이 아니었다. 윤진아와 정철규가 눈을 빛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진입하자마자 독도마뱀이며 거미며 70마리가 쏟아질 예정이었다는 거네? 그걸 이태진이 막았고?”

“아직 막은 건 아니긴 한데. 알고 대비하는 거랑 모르고 당하는 건 천지차이니까. 저 녀석 덕분이긴 하네.”

정철규의 표정이 별안간 굳었다. 그가 감찰과장의 이름을 언급했다.

“손영혁은 이걸 알고도 말 안 해줬던 거야? 진짜 소시오패스네 그거. 뭐라고 따져야 하는 거 아니야?”

“증거가 있어야 따지지.”

“아 맞네. 어쨌든. 이대로 들어갔으면 한 명 정도는 죽었을지도 모르지.”

“한 명이면 다행일걸? 자칫했다가는 던전 탈출하기 바빴을 거다.”

“그걸 저 녀석이 알려줘서…!”

“저 녀석? 지금 우리 이태진 선생님한테 저 녀석이라고 불렀냐?”

둘의 대화에 나머지 B팀 헌터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어버버대기만 했다.

나를 보는 시선들이 끔찍한 공포영화를 본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들이었다.

뭐야, 이거 진짜야?, 믿어도 되는거야? 같은, 아직도 얼빠진 소리를 해대며.

이제 마지막이다.

다섯 번째 방만 조심하라고 하면 된다. 그런 다음 그들이 던전을 무사히 공략한 후, 내가 했던 공로를 받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입을 떼려고 할 때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도 B급 던전 맛만 보고 와라.”

“예?”

한석훈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넌지시 던지듯 말하는데 어디 동네 마실이라도 다녀오라는 것처럼 들렸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B급 던전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사실이 그랬다.

B급 던전 공략에 들이는 자체적인 시간은 물론이고 인원 구성, 사전준비까지 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족히 한 달은 걸린다.

이번처럼 급박하게 진행하는 게 특이한 케이스지.

“아니 맛은 볼 수 있잖아. 안 그래? 정 아니다 싶으면 탈출석 쓰면 되는 거고. 더군다나 첫 번째 방부터 함정이 숨어있으면 그다음은 또 뭐가 숨겨져 있을 줄 알고? 한 명 더 끼우는 게 맞지.”

한석훈이 울분을 토하듯 그렇게 말했다. 내가 아니라 김석환을 보면서.

“흐음.”

김석환이 고민된다는 듯 턱을 짚었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김석환의 눈빛은 여유롭기만 하다. 마치 승자의 미소처럼 보이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진짜 내가 다시 올라간다. 더러워서 올라간다.”

내 인사권한에 대한 모든 자격을 박탈당한 한석훈이 그렇게 분통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 유치한 말다툼보다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탈출석을 쓰면 그만이라고? 아니다.

이 던전이 엿같은 이유가 탈출석 때문이다. 탈출을 시도하면 그 즉시 던전의 난도가 올라가 버린다.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들어간 이상 공략까지 마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최태성이 내게 건네준 사내장비 이용권을 써서 A급 장비로만 두르고 왔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사양이었다.

“팀원들이랑 호흡도 안 맞춰 봤는걸요. 저는 가면 민폐만 됩니다.”

도저히 탈출석을 쓸 수 없는 던전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그렇게 애둘러서 거절의 뜻을 표하자.

“아니야. 너 훈련 도와주면서 보니까 남한테 금방 맞추는 능력도 가지고 있던데. 그 정도면 충분해.”

이번엔 김석환이 입장을 바꿨다. 이 양반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 된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차라리 저보다는 김석환 팀장님이 가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서. 내가 없어도 철규랑 진아 정도면 충분해. 둘 다 A급이잖아. B급 던전에 들어가는 전력치고 이미 과하지. 생각해보니까 한석훈 저 양반 말이 맞기도 하고. 레벨 올리는 데 던전만 한 데도 없잖아?”

맞는 말이기는 했다. 심지어 나까지 끌릴 정도로. 중력 마법을 몬스터에게 시험해보고 싶기는 했다. 더군다나 만약 저 던전이 위험했다면 어련히 위험신호가 잡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에는. 어느새 내 몸이 앞으로 끌려 나오고 있었다. 한석훈이 친히 내 장비를 착용시켜주기까지 했다.

고개를 돌리자 정철규가 브리핑을 끝내고 있었다.

어?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미처 거절하기도 전이었다.

[파티에 참여했습니다.

파티장 : 정철규.]

어어 하는 사이에.

[던전에 입장합니다!]

내 몸이 던전 안으로 쑥 빨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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