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63화 (63/170)

63화 손영혁 (1)

태어날 때부터 각성한 자를 선천각성자라 부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강해지는 각성자들의 특성상, 선천각성자는 시스템의 축복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영혁이 그랬다.

숟가락보다 검을 먼저 쥐었다. 처음 쥔 검이 그렇게나 편할 수가 없었다. 칼이 제 몸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졌다.

[특성 : 검의 달인(A) 획득!]

갓 검을 잡았을 때부터 그런 특성을 얻었다. 세상이 우스웠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빛나는 그 재능을 감당하지 못했겠지만.

손영혁의 가문은 청와대 다음가는, 아니, 임기가 없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서 절대자처럼 군림하고 있다.

그런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입는 것, 먹는 것, 만나는 사람들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현대 세상에 귀족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어른들은 손영혁에게 고개를 숙이며 자신들에게 하대하기를 원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손영혁 스스로도 그게 자연스러웠고.

보이지 않는 계급 속에서 자신은 왕족이었다.

그런 만큼 손영혁은 철저히 제왕의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왕세자와 같은 장남이 집안에 환멸을 느끼며 떠나간 이후부터는 더했다. 가문에서 쏟아지는 관심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허나 단 한 번도 가문의 어른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오히려 늘 기대보다 더한 성과를 보여줬다.

채 스물이 넘기 전에 B급에 들어섰다. 차기 S급 헌터는 당연히 자신의 몫이었다.

‘그랬어야 했는데.’

손영혁은 검을 휘둘렀다가 그대로 내팽겨쳤다. 분노에 찬 모습이었다. 손영혁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별로 없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겨우 그딴 놈에게.’

어떤 걸 봐도 감흥이 없던 손영혁이었다. 천재라 일컬어지는 헌터들을 수없이 봐왔다. 허나 자신이 볼 때는 우스웠다.

그날도 그랬다. 하도 주위에서 떠들어대서 봤을 뿐이었다. 일성에서 주최한 대회라느니 어쩌니.

요란한 놈의 등장에도 피식 웃기기만 했다. 도리어 상대였던 대현의 김현일에 더 눈길이 갔었다.

“쓸만하다.”

차기 A급 헌터가 거의 확실시되는 사람이 대현의 김현일이다. 감찰과장으로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예선전부터 그 둘의 맞대결이었다. 장내가 불타오른 것과 별개로 녀석들을 바라봤다. 엄정한 시선이 이태진과 김현일을 훑었다.

콰앙!

승부가 시작된 후부터는 조금 달랐다. 자각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눈썹이 위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즉석에서 만든 검술치고는 쓸만하네.”

그렇게 헛기침이 나오는 것을 숨겼다. 놀란 심정이 컸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인정한 것은 자신의 조부밖에 없었기에.

“예의주시해. 이상한 놈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놈이 거슬렸다. 하필 서울역에 게이트가 터진 직후였다. 이태진이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그냥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울역의 영웅이라 불릴 활약을 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얼마 전까지 C급이었던 놈이 무슨.”

자신도 C급에서 B급으로 오르기까지 5년이 걸렸다. 헌데 왜 초조한 감정이 드는 것이냐. 결국 감찰과장으로서의 권위를 이용해 놈의 전투영상을 구할 수 있었다.

“…….”

초조한 감정의 원인은 그것들을 다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쫓기고 있다는 조급함.

실로 황당했지만 그런 감정이 들었다. A급을 돌파한 자신이다. 이제 갓 B급 애송이 따위야 한 트럭으로 달려든다 해도 무참히 격살할 수 있다.

헌데도 초조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자신을 따라잡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결국 그 초조함이 현실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C급이었던 놈이 B급으로 나타났다. 다음번에 만날 때 A급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확인해주마.”

조급함을 승부욕으로 숨겼다. 놈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정말 소문대로 S급의 검신의 축복이 그토록이나 대단한 건지.

만약 생각보다 이태진의 능력이 별로라면. 초조함을 느끼게 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

“좋으시겠습니다. 검신의 후예라니.”

어울리지 않는 도발을 걸었다. 과묵한 성격답게 그런 것이 어색했다. 그러고도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이태진의 대응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네 할애비 이름에 먹칠하지 마라. 뒤지기 싫으면.”

실제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손영혁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순간 말문이 콱 막혔다. 제 조부를 거들먹거리는 놈은 또 처음이었다.

S급의 검신의 축복을 얻은 놈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숭이가 따로 없었다. 그저 행운의 여신이 온갖 축복을 걸어준 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강단은 있네.’

이태진의 무심한 얼굴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한 것은, 끝끝내 놈의 도발에 걸려 검을 나누었을 때였다.

자신의 검술은 간파당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조부처럼 스킬로 드러난 것까지는 아니었다 해도 평생에 걸쳐 만든 역작이었다.

시스템을 섬기는 것들이 바보라서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정확하게 산정해 준다. 자신의 검술이 뚜렷해질 때마다 그랬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상급검술(A)를 획득했습니다.]

[근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괜히 검사들이 검을 갈고닦고, 원거리 딜러들이 스킬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발악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다. 폭발적인 성장력의 원천인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몇 번이나 겪고 만든 검술이었다.

그것이 오만임을 깨닫는 데는 놈과 검 세 번을 맞대기도 전이었다.

자신의 검술은 이태진의 손짓 한 번에 더 상위의 것으로 탈바꿈됐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명백했다. 재능의 차이가 여실했다.

운으로 얻은 능력이면 어떠할까. 놈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고도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었다.

허무한 감정을 끝끝내 숨기고 폐관수련에 들어섰다. 자신의 자질도 평범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태진이 한 번 보여준 것을 곧바로 흡수해냈다. 허나 그래서 허무했다. 지금의 놈은 더한 것을 가지고 있을 테니.

“미련한 것. 네놈의 길은 따로 준비돼 있거늘. 때가 됐으니 네게 물려주겠다.”

자신의 조부가 청운적하검법을 가르쳐 준다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음에도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분명 시스템이 인정한 것이니만큼, 배우기만 해도 엄청난 깨달음이 찾아올 테지.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성장동력이 될 테고.

허나 더한 것을 봐버렸다.

“죄송합니다.”

냉정하게 따졌을 때, 손정연은 이태진보다 자질이 부족하다. 손정연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그 길로 곧장 이태진에게로 달려온 게 바로 현재의 상황이었다.

“가르쳐다오. 내게도 검을.”

남에게는 오만한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손영혁은 간절한 마음을 잔뜩 담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남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부탁한다.”

손영혁을 아는 사람이라면 까무러칠 정도로 공손한 어투였다.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 정도면 무릎을 꿇고 청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태진의 황당한 얼굴을 봐도 그랬다. 놈으로서도 기쁜 것일 테지. 아무렴, 자신이 누군데.

“뭐야, 이 미친놈은.”

대번에 욕지기가 날아왔다.

***

다급하게 외치는 녀석이 황당했다. 손영혁을 자세히는 몰라도, 체면을 굉장히 챙기는 놈이라는 것은 확신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내게 말을 놓지 않는 모습만 봐도 그랬다.

그런 녀석이 옆에 떡하니 김주현이 있는데도 내게 다급하게 말했다.

“깨달음이 필요하다. 분명 네놈이라면 뭔가 답을 알고 있겠지? 어차피 BTO는 네놈이 가망이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지금 당장 내놓으라는 듯 말하는 투가 예사롭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놈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아니, 대뜸 왜 이러는 겁니까. 일단 자리 좀 옮깁시다.”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협회의 감찰단은 헌터 잡는 귀신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체면이라는 게 있다. 거기에 장이라는 녀석이 손영혁이다. 이렇게 대뜸 찾아와 헛소리를 할 저도의 위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놈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그제야 아차 하는 얼굴로 헛기침을 뱉었다.

“그러죠. 할 말이 많습니다.”

녀석이 천연덕스럽게 얼굴을 근엄하게 바꾸며 내게 길을 안내해 달라고 말했다. 옆에서 가만있던 김주현마저 입을 벌릴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걸으면서는 그게 더 심해졌다. 복도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어디론가 서둘러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멋모르는 애송이라 해도 이제 일성의 B급 헌터라는 위치에 있다. 그 말인즉슨, 나를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성의 B급헌터가 협회감찰과장을 독대한다? 소문이 안 나는 게 이상했다.

부글부글 끓는 화를 삭이며 개인 집무실로 그를 안내했다. B급으로 올라선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쯤 되면 필요할 것이라며 내준 방이 있었다.

“주현 씨. 다른 사람들한테는 입단속 좀…하아. 아닙니다.”

이미 퍼질 대로 퍼졌겠지. 김주현에게 이만 돌아가 보라는 말을 한 뒤였다.

“환장하겠네. 이게 뭡니까.”

최태성의 집무실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고풍스러운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돼 있었다.

마음먹고자 한다면 협회의 감찰과장은 지금 당장 나를 구속수사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싫어도 그를 대접해야 하는 이유였다.

“실례했군.”

손영혁도 그걸 아는지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어처구니없을 노릇이었다.

“네놈이 개조시킨 내 검술이야 나도 단번에 원리를 깨달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손영혁이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뭔 말인가 싶었더니. 협회에서 손영혁과 겨룬 것이 생각났다.

“내 눈이 넓어졌다. 그런데 내 자질이 부족하다. 시야는 높아졌는데 몸은 그대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말이야. 네놈 때문에.”

“아니, 그게 내 탓입니까?”

“탓이라면 탓이겠지. 나보다 잘난 탓.”

마치 그런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처럼 손영혁이 설명을 덧붙였다. 황당함이 더해졌다. 칭찬인지 욕하는 건지 도무지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마치 자신의 검술이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별것 아니라는 투였지만 거기까지 인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도 손영혁은 그릇이 큰 놈이었다. 대체 처음 만날 때 내게 왜 그리도 도발을 걸어댔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손영혁은 감찰단의 과장이다. 공손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BTO를 포기해라. 거기서 죽기엔 네 자질이 아깝다. 그리고 나에게 검을 가르쳐 줘.”

하는 말이 갈수록 가관이다. 표정을 보니 한 점 악의가 없었다. 놈의 형이 문득 생각났다. ‘화이’라 불리는 녀석.

형제 중 제대로 된 놈이 한 놈도 없구나.

“아, 당연히 외부인에게 알려줄 수는 없겠지.”

그러더니 손영혁이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 내게 폭탄을 던졌다.

“당연히 나도 협회를 나와 일성에 들어갈 생각이다. 네놈 밑으로 들어가면 아무 문제 없겠지?”

그때만큼은 나도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이 미친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기나 할까.

진심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표정이 한없이 진지했다.

그때였다.

화악!

제멋대로 의식이 몸을 빠져나갔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잠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의식이 미래 저편으로 끌려가는 것을 따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