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62화 (62/170)

62화 두 번째 장 (2)

두근두근!

몸속 365개의 혈도를 차례차례 흐르던 마기가 심장으로 모였다. 그때까지도 내 몸은 벅찬 희열 속에 부르르 떨어댔다. 본능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자동반사였다.

쿠구구궁!

두 번째 고리는 첫 번째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두께만 해도 첫 번째의 두 배쯤 되는 크기였다. 아직 완전히 채워진 것도 아닌데 그랬다.

이것으로 불꽃을 만든다면 뜨거운 오븐 정도는 되지 않을까. 겨우 라면이나 끓일까 하던 처음과 비교하자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채 두 번째 고리의 희열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겨우 날 뭘로 보냐는 듯 마법사전의 다음 장이 저절로 넘어갔다.

[중력 마법의 기본 : 혹자는 마법의 기초를 자연계에서 찾는다. 물, 불, 바람, 흙 같은. 일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중력이야말로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기초적인 힘(力) 중 하나다. 괜히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본인 또한 인간 시절…]

줄줄이 나열된 글자들이 내 머릿속에 강제로 쏟아졌다. 비유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도 뇌리에 박히는 것들이 있었다.

강제로 지식을 주입하는 스킬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싶었다.

다행히도.

그토록 우려하던 극한의 고통은 없었다. 기분 좋은 환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치 검을 배울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더불어 깨닫는 게 있었다.

내 손에서 피어난 검은색 불꽃은 마법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아락투스의 마기가 지닌 성질이었다.

시스템이 건네주는 마나와도 전혀 다른 성질의 그것은 분명히 뜨거운 기질의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파괴력이 극대화된 마나라고 표현해야 했다. 그것이 실제로 발현된 게 불의 형상을 띄었을 뿐이고.

방금까지 오븐 어쩌고한 것들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마나로 불을 피워내는 것과 진짜 마법은 그 힘부터 달랐다.

중력 마법이라 일컬은 그것의 원리가 내 머릿속에 완벽하게 정립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써먹을지, 검술과의 연계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도 말이다.

기다릴 것 없었다.

저 멀리 식탁에 가만있던 물병이 순식간에 날아와 내 손에 잡혔다. 쏜살같은 속도였다.

굳이 따지자면. 김세린 정도 되는 C급의 원거리 딜러가 시전한 마법과 흡사한 수준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단순한 스킬로 치부하기에는 활용도가 어마어마했다. 손에 잡힌 게 적의 목이 될 수도 멀리 떨어진 칼이 될 수도 있었다.

휘익!

잡힌 물병이 되감기 버튼을 누른 듯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허.”

지금 이 수준으로도 쓸만한 것을 넘어 비장의 한 수로 불릴 수 있다. 그런데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은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고리에서 소량의 마나가 빠져나가기도 잠시,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이 곧장 소모했던 것을 채워놓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실시간으로 두 번째 고리가 두꺼워지기까지. 이대로라면 세 번째 고리까지도 조만간이었다.

다만 의문점이 있었다. 아락투스가 내게 전수한 것은 스킬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이 능력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시스템?

분명 기연이라 할 만한 것을 얻었는데도 어떠한 메시지도 없이 잠잠했다.

시스템이 스킬로서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다.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 인식을 못 하는 것이라 표현해야 했다.

“아예 다른 종류의 힘이다.”

이쪽 세상과 사막의 여전사 이셀라의 세상은 비슷한 힘을 공유하지만 힘을 얻는 방법에서 차이점이 있었다.

“저쪽에는 시스템이 없는 건가?”

시스템이 있었다면 이런 과정이 필요 없었을 테니까.

무릇 스킬은 그런 방식이다. 동전을 넣으면 음료가 튀어나오는 자판기처럼 별다른 이해가 필요 없다.

그러나 아락투스가 내게 전수해준 마법은 스킬이라기보다는 자연현상의 이해에 가까웠다. 스킬과는 근원부터가 달랐다.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발현시킬 수 없는 것이다.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스킬보다는 아락투스의 마법이 더 범용성이 뛰어날 게 확실했지만.

마법은 스킬처럼 간단히 배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단축시켰을 뿐이다.

원래는 이런 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 같은 머리로는 평생을 공부해도 닿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겠지.

“뭐가 됐든 강해지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다. 미래를 보는 능력을 얻은 이후부터 쭉 그랬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해봤자 득될 게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성장만 하면 그걸로 족했다. 혹시나 싶어 중력마법을 다시 시전해 봤다. 대상자는 내 몸이었다.

곧장 몸을 짓누르는 실체 없는 힘이 느껴졌다. 허나 아직도 파훼하기는 너무 쉬웠다.

파앗!

몸 한 번 털어내는 것으로 중력 마법을 파훼해냈다. 나에게도 이럴 진데 하오란에게 사용하기에는. 이 정도로는 잠시도 하오란을 막을 수 없었다.

“고리 다섯 개.”

이셀라가 딱 그 정도였다. 그녀가 부린 모래마법을 생각하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그 정도라면 하오란과도 해 볼 만하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한 달 안에 고리 세 개만 더 만들면 될 일이었다.

“뭐. 쉽잖아. 안 그래?”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렴. 날 살리고 싶거든 고리 다섯 개를 내놔라.

***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실전 같은 환경에서 반복수련. 그게 아니라면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의 재능이 있어야 한다.

검술의 경우는 후자가 그랬다. 별다른 훈련이 없어도 미친듯한 상승의 반복이 이어졌다. 남들은 1년이 걸려도 어려워하는 걸 한 시간도 안 돼서 이해하고 습득했다.

다른 사람이 일평생에 일군 스킬을 순식간에 빼앗고 거기에 내 입맛대로 바꿀 수도 있다. 검신의 축복 덕분이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검신의 축복의 진짜 위력은 세간에 알려진 것이 우스울 정도로 놀랍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봉인이 풀리는 듯 검술적 재능이 활개를 치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한석훈조차도 정확한 잠재력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니.

하지만 마법의 경우는 다르다. 현재 파악된 최상의 능력 성장 루트는 오로지 연습뿐이었다.

나는 마법에 대한 재능이 쥐뿔만큼도 없었기에. 강제로 주입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실전에서 써먹기 위해서는 더더욱 연습이 필요했고.

곧장 회사로 달려갔다. 한석훈은 더 이상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깨달은 바가 있다며 폐관수련에 들어간 게 어제였다. 조만간 나온다는 말만 남긴 채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인정하기 싫지만 내게 재능이 있다며 웬일로 칭찬까지 했다. 가르치는 재주가 상당하다며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두고 놀렸어야 했는데. 어쨌든. 지금부터는 온전히 마법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다웠다. 일성은 당연하게도 개인 연무실도 마련돼 있었다. 더군다나 A팀에 들어간 지금은 더더욱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많았다.

B급 헌터는 전력을 내뿜어도 기스 하나 가지 않을 개인수련실이 있었다.

연무장에 들어선 직후였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진열된 검 중 하나를 뽑았다.

마법 수련을 하러 와서 웬 검이냐 싶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검과 마법, 둘의 조화로움이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하오란을 이길 수 없는 게 내 처지였다.

화악!

정신을 집중한 순간이었다. 내 앞에 가상의 적이 생겨났다. 영상에서 짤막하게나마 나왔던 하오란이었다.

[무아지경의 상태가 됩니다.]

언제나 원한다면 몰입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이 또한 검신의 축복이 가진 신묘한 능력 중 하나였다.

가상의 하오란이 비열한 표정으로 창을 이리저리 돌렸다. 영상을 한번 본 것으로 충분했다. 놈의 움직임은 실제와 비슷할 것이었다.

파앗!

환상 속의 놈이 신묘한 움직임으로 창을 뻗었다. 속도도 속도였지만. 놈의 궤적이 도저히 예측하지 못하는 곳으로 뻗었다.

좌측 하단에서부터 번쩍인 놈의 창이 분명 오른쪽 어깨를 노리기도 잠시. 곧장 반대편 어깨가 시큰했다.

“이런 미친.”

궤적과 속도, 둘 다 따라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놈의 창에 어깨가 꿰뚫린 것이다. 환상 속이라 해도 몰입감만큼은 진짜였다.

왼쪽 팔 하나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아지경을 벗어나지 않는 한 현실과 이곳은 다를 바 없다. 환상이라 해도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깊은 몰입의 대가였다.

하나를 내줬으니 하나를 가져간다. 민간인들이 보기에야 각성자들의 전투가 무식하게 보이겠지만. 우리의 전투는 철저한 수싸움을 바탕으로 한 바둑에 가깝다.

놈의 복부를 노리고 날아간 검이 오러를 넘실넘실 내뿜었다.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이 강제로 뚫어놓은 마나로드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내가 뿜어냈던 것과 비교해도 과하게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 유연한 마나의 흐름 덕이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중력마법이 함께 발동됐다. 이것이다. 이게 내가 원한 그림이었다.

그때 환상 속 하오란이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녀석이 비웃음을 날릴 만했다. 두 개의 고리에서 발동되는 마기로는 힘이 부족했다.

내 수준에서의 궤적과 오러 블레이드로 또한 마찬가지였다. 놈에게 닿기에는 수련이 부족하다.

턴제 게임. 이 형태의 게임도 상대와 나의 수준이 비슷할 때라야 성립하는 것이다. 하오란의 창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내 목을 향해 날아왔다.

[무아지경이 해제됩니다.]

“커헉!”

정말로 위험할 뻔했다. 날아오는 창에 맞기라도 했다가는.

“더럽게 세네.”

투덜대기도 잠시, 쉴 시간이 없었다. 곧장 무아지경으로 다시 빠져들려던 순간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

바깥에서 김주현이 곤란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내 매니저를 자처하며 귀찮은 일들을 해결해주던 김주현이다. 그런 사람이 내 수련을 방해할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뜻.

“무슨 일입니까?”

수련실을 나와 김주현을 쳐다보니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그게….”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스케줄을 읊어주던 김주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괜히 나까지 불안하게.

왜, 무슨 일인데.

“가, 감찰과에서 태진 씨를 찾으셔서요. 그게, 제가 막으려 했는데, 그게 아니라 협조를….”

횡설수설하는 김주현이 낯설었다.

감찰과가 뭐?

그때였다. 뒤쪽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저 사람이 여기 왜 있어. 하고 의문을 표하기도 전이었다.

초조한 표정과 상반되게도 정장을 쫙 빼입고 나타난 말쑥한 30대 남자의 얼굴에서는 귀티가 풀풀 흘렀다.

“도저히. 도저히 어떻게 답을 구해야 할지 몰라서 찾아왔다. 죽기 전에 나를 도와라. 이태진.”

협회장의 둘째 손자, 손영혁이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 돼서는 내게 조언을 구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