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60화 (60/170)

60화 깨달음

[지고한 경지를 슬쩍이나마 엿봤습니다.]

[근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민첩이 대폭 상승합니다.]

[무릇 경지에 다다른 각성자들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청운적하검법이 획득한 스킬로 흡수됩니다.]

[스킬 신성한 파괴자(D, 성장형) : 천재적인 자질의 검사가 만들어낸 검술입니다. 몬스터를 박멸하겠다는 창시자의 의지가 가득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검은 범인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와중에 내가 얻은 것이 있었다. 한석훈의 검술과 청운적하검법이 합쳐져 전혀 새로운 것이 탄생한 것이다.

기뻐해도 좋았다. 시스템이 방금 전 일련의 동작들을 스킬로 인정한 것이니까.

단순히 상태창에 기록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장형이라는 의미는. 그 잠재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시스템이 하고자 하는 말이 그랬다. 비록 지금은 D급이라 해도 향후 S급의 수준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스템은 야박하지 않았다. 자격을 얻는다면 굳이 S등급에 다다르지 않더라도 스킬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

이런 표현을 쓸 줄은 몰랐는데. 시스템을 숭배하는 사이비 집단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넉넉한 시스템의 인심에 나도 모르게 고마움을 느낀 것이다.

정확히는 나에게 유독 넉넉한 것이겠지만. 협회장 손정연이 말했듯, 시스템은 사람을 가린다. 강자에게 더 강해질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더군다나 이것으로 협회장 손정연에게 완전히 벗어났다고 봐도 됐다. 유일하게 걸리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달마다 보고되는 각성자들의 상태창에서 분명 이상한 점이 발견됐을 테니까.

“신성한 파괴자라.”

몬스터들을 비롯한 내 앞을 방해하는 것들을 베어 넘긴다. 그런 의지를 담았다.

온전히 내가 탄생시킨 스킬이었다. 애정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흐뭇한 시선으로 상태창을 주시하고 있을 때,

그 와중에도 한석훈은 넋을 잃은 채로 아까 전의 검술을 플래시와 열띤 토론 중이다. 엄청 심각한 얼굴로.

천재를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느니, 팀장님도 별수 없다느니.

“…다 해도 파훼당할 염려는 없겠어.”

“유연한 전환이 베이스가 되는 거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쓸 수 있겠지.”

플래시와 한석훈이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는 모습도 잠시, 점점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게 아니지. 다대일 상황에서 일의 입장에서 유리한 점이 뭔데? 누구를 공격할지 선택할 수 있는 거야. 그것도 몰라?”

“그건 수준차가 어느 정도 나는 상태에서고. 너야말로 그딴 마인드로 이제껏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하군. 이 검술의 최고 장점이 방어인 것도 모르냐? 쟤가 만들었지만, 근본은 내 꺼야!”

“하. 근본 타령하기에는 내 눈이 더 귀한 걸 봐버려서. 더 이상 한석훈 씨의 검술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

“한석훈 씨? 이게 진짜 미쳤나. 너 올라와 이 새끼야.”

“아. 내가 외팔이 노인네 괴롭히는 취미는 없어서.”

한석훈과 플래시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진심으로 그들의 정신연령이 궁금해졌다. 내가 만난 고수들은 하나같이 저랬다. 모두들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것이다.

“어? 잠시만요. 이것 좀 보세요.”

그때였다.

저 멀리서 남은 팝콘을 씹으며 지폐를 세던 박하영이 돌연 심각한 표정이 됐다. 옆에 있던 김세린이나, 이지은, 심지어는 전용철마저도 심각한 얼굴이 됐다.

하나같이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 중이었다.

“뭔데? 왜 그래?”

“빠, 빨리 회사 인트라넷 좀 들어가 봐요.”

김세린이 기겁을 하며 말한다.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공문이 내려올 거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벌써?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휴대폰을 열었다. 슬픈 예감은 늘 그랬듯 틀리지 않았다. 인트라넷 메인에서부터 큼지막한 글자가 보인다.

[…도를 넘어선 화신에게 BTO를 요청한 바, 금일 성사됐음을 알린다. 이에 BTO에 나갈 다섯의 후보를 뽑는다. D~A급 별로 각 한 명씩이며 본 회장 또한 BTO에 참여함을 알린다. 고로 심사숙고하여 지원하기를 당부한다.]

최태성 회장의 직인이 찍힌 공지였다. 따로 적혀 있지 않지만 위의 내용으로도 충분했다. 회사의 명운이 걸려 있음을 모두가 깨달은 것이다.

순간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 사달의 원인이 나였다. 허나 거기에 원망은 없었다. 오히려 나와 한석훈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파도타기를 하듯, 헌터들의 눈에 하나둘씩 불꽃이 피었다.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지원자가 한둘이 아니겠어.”

최찬규가 그렇게 말했다. 아무도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인트라넷에 뜬 지원자들의 숫자만 늘어날 뿐이었다.

***

[속보 : 일성 최태성 회장, 화신과의 전면전 밝혀.]

[단독보도 : 최태성, 중국 거대그룹 화신 회장 악순청과 BTO에 나서.]

[기업의 명운이 걸린 다툼, 지는 쪽은 문 닫아야….]

[장 열리자마자 코스피지수 –5% 급락. 이유는 일성그룹? 기관, 외국인들 앞다퉈 줄행랑.]

[한국각성자협회장 손정연, 합당한 은원으로 시작된 일, 중재할 이유 없다. 못 박아.]

[전문가들의 예상 : 55:45로 악순청이 유리.]

[두 공룡기업의 다툼. 시작은 서울역의 영웅, 이태진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져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비규환이 맞았다.

“이거, 전쟁이라도 나는 거 아니야?”

“전쟁은 무슨. 오버도 적당히 해라. 각성자들. 그 새끼들 치고받고 죽이는 게 뭐 예삿일이라고.”

“오버? 말이야, 바른말이지. 너야말로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감이 안 오나 보네. 세계대전이 뭐 때문에 일어났는지 잊었어?”

“…….”

“시스템교인지 뭔지 하는 광신도 새끼들이 미 상원의원 하나를 죽이면서였지. 하물며 이번엔 일성이라고 일성!”

각성자들의 세상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부터 그랬다. 헌터들의 생사결이야 흔한 일이라지만 그게 일성과 화신정도 되는 거대기업의 일이라면, 그것도 S급 각성자들의 사투라면 말이 달라진다.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야. 미국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이라고. 왜 아니겠어? ”

“혹시라도 최태성이 죽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 그런 소리는 입에도 담지 마. 네가 간첩이 아니라면 일성이 이기길 바라야 할 거다.”

식량과 필수품들을 사재기했다는 글이 커뮤니티에 유행처럼 떠돌아다녔다. 속보가 뜬지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잠시 동안 해외로 나가 있겠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일성이랑 화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임?]

각성자들의 커뮤니티는 조금 반응이 달랐다. 민간인들의 공포심과 반대로 각성자들은 흥미가 먼저였다.

[최태성이 BTO에 나가는 거면 보통 큰일이 아니라는 거잖음.]

└최태성 BTO 전적이 어떻게 됨? 패배한 적 있나?

└질문수준;; 패배했으면 살아있겠냐? 지금까지 16전 15승 1무. 1무는 그 유명한 검신 성요한이고. 검신 성요한이랑 무승부 뜬 것만 봐도 최태성 위상을 알 수 있지.

[그나저나 악순청? 들어본 적은 있는데 그 사람도 S급임?]

└그럼 아니겠냐? 이 새끼는 댓글 한 줄만 봐도 등급이 보이네.

쓸데없는 추론만 오고 가던 때였다. 갑자기 이태진이라는 이름이 화두에 올랐다.

[내부자 정보 알려줄까?ㅋㅋ 최태성이 저렇게 화난 이유. 딴 거 다 필요 없고 이태진 때문임. 관련 기사 뜬 것들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갑자기 이태진? 자세히 좀 말해 보셈.

└흥미진진하네. 지금 치킨 시켜도 되냐?

이태진은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유명인사였다.

[아. 맨입으로 말하려니까 입이 안 떨어지네.]

└계좌 부르셈.

일성에는 스타급 헌터들이 많다. 최태성은 물론이고 백인호, 김석환, 정철규를 비롯한 고위급 헌터들 대다수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떨친다.

한낱 신예인 이태진의 이력 따위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명예를 쌓아 올린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이태진은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제의 인물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최태성이 주최한 헌터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서울역에서 발생한 게이트까지 단독으로 처리했다.

밝게 빛나는 초신성은 어디에서든 주목받기 마련이다. 차기 검신, 서울역의 영웅 등. 떠오르는 신예 치고는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별호였다.

더군다나 정보에 예민한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더 그랬다. 이태진에 대한 사소한 정보라도 있다면 웃돈을 주고도 구매할 정도였다.

[최태성이 이태진 각별하게 아끼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닐 거고. 시간이 좀 지난 일이긴 한데, 화신 쪽에서 이태진을 먼저 건드렸나 봄. 자택까지 출입해서 암살하려 했다더라고ㄷㄷ]

└스읍. 여기서 좀 깨는데. 갑자기 웬 암살?

└계속 들어 보셈. 어쨌든 일성에서도 한 대 맞았으니까 반격에 나서야 할 거 아님? 근데 그게 잘 안 됐나 봄.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 같기는 한데 거기까지는 내가 접근할 수 없었고. 어쨌든 중요한 건 최태성이 거기서 빡이 돌았다는 거. 근데 더 미친건ㅋㅋ

└??

└그쯤에서도 최태성이 참으려고 했나봐. 아닌 게 아니라 S급 각성자들끼리 맞다이 뜬다는 게 어디 쉬운 일임? 살아있는 핵탄두가 걔들인데. 근데 멈추려던 최태성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태진이 막았다더라. 이대로 넘어가면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여기서 끝장 보자고.

└엥? 이태진이 그렇게 말한다고 최태성이 들어줬다고?

└뭐 듣기로는 거의 괴벨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명연설을 펼쳤다고 하던데. 어쨌든 중요한 건 이태진이 BTO에 나온다는 거.

└개소리도 적당히. 이거 가짜뉴스면 감당 가능하냐?

└감당이고 자시고 이것도 조만간 풀릴 정보임.

└와. 그러면 진짜 대박이네. 그래서 이태진 상대는 누군데?

└화신그룹 악순청 후계자. 하오란.

└하오? 웬 듣보?

└ㄴㄴ. S급. 제우스의 투신창술 얻은 놈임. 화신에서 지금 굉장히 핫한 놈.

└확실해?

└출처는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해.

└이런 미친. 잠깐만. 전투관련 S급 특성 뜬 사람 둘이 BTO를? 개꿀잼 예약. 이거 중계 안 하나?

익명으로 작성된 글이었다. 그러나 여파는 굉장했다. 순식간에 조회수가 3만을 넘어섰다. 각성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데도 그랬다.

이 모든 게시물과 댓글을 작성한 홍보팀의 홍주연과 김주현에게 솔직히 공포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더 대단한 것은.

[ㅇㅈ. 거기다가 이태진 최근 행보 보면 최소 B급은 찍은 듯.]

└? 이태진이 대단한 건 인정한다만 갑자기 B급? 낮술 처먹음?

└님이야말로 정신좀 차리셈. 이제 그만 인정 좀 해라. 최근에 서울역 게이트 사건만 봐도 다 아는데. 혼자서 몬스터 상대로 무쌍 찍은 거.]

└무쌍? 아직도 그걸 믿고 있는 다는 게 더 어이가 없는데. 순진한 거임, 알바인 거임?

└ㄹㅇㅋㅋ 일성 돈 많네. 알바 많이 쓰고. 어쨌든 소설 잘 봤다.

대중들의 관심은 높이되, 각성자들에게는 오히려 우습게 여겨지길 바랐다. 아직 A급도 달성하지 못한 내가 가진 것은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언제 누가 나타나 내 목을 노릴지 몰랐다. 각성자들에게 방심을 유도해야 한다. 일성에는 그 방면으로 전문가가 있었다. 무려 둘씩이나.

“홍 팀장님 말씀이 맞네요. 감사합니다. 김주현 씨도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홍주연에게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말했다. 어쩌면 홍주연과 김주현이 정신계열의 각성자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검신의 후예라느니, 서울역 게이트의 영웅이라느니. 심지어는 대한민국에 다시 없을 각성자라고까지.

그렇게 각성자들의 반발심을 키웠다. 아주 차근차근 진행됐던 작업이라고 한다.

“온도를 천천히 올렸을 뿐인걸요. 천천히 끓어 오르는 솥 안의 개구리들은 둔감한 법이죠.”

홍주연이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는데 그게 더 무섭게 다가왔다. 이 여자만큼은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어쨌든 전반적으로 각성자들은 의도대로 나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앞으로도, 최소한 A급 헌터가 되기 전까지는 그런 스텐스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허나 실상은 달랐다.

[인사이동 : 이태진, D팀 → A팀]

파격적인 인사이동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일성 내에서 내 입지는 그 정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