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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59화 (59/170)

59화 스승과 제자

“정말. 한 팔로도 쓸 수 있다고?”

한석훈의 눈빛이 답지 않게 흔들렸다. 그로서도 이제껏 꽤나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랬기에 더 의문이 갔고. 쉬운 길을 굳이 굽이굽이 돌아갔다고 해야 할까.

“몸으로 알려드리는 편이 낫겠네요.”

겉으로는 당당하게 말해놓긴 했는데. 그러면서도 긴가민가한 기분이 들었다. 한석훈이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하면서.

어느새 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호기심을 느낀 헌터들이 다가온 것이다. 재밌는 구경거리를 본다는 눈빛 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태진에 대한 기대감 반.

자칫 망신살을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부담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 섞인 눈빛은 아무래도 좋다만.

한석훈이 진지한 얼굴로 내게 가르침을 구하고 있었다. 자칫 실망감을 안겨줄까 봐 걱정이 컸지만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

“보여드리는 것보다는 직접 맞부닥치는 게 나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한껏 여유로운 척 롱소드를 이리저리 돌렸다. 내 손에 쥔 보급형 롱소드가 예기를 발했다. 그와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하늘을 향한 롱소드가 땅으로 내리꽂혔다. 말했듯, 한석훈의 검술을 최대한 헤치지 않는 선에서 수정을 가해야 한다. 양손 검술에서 한 손을 떼면 무엇이 남겠는가.

“동작을 더 유연하게 가져가는 겁니다.”

쿠웅!

한석훈의 검과 부딪힌 직후, 우리를 중심으로 묵직한 파동이 연무장 끝까지 퍼졌다.

한석훈이 첫 번째로 알려 줬던 것이다. 단순히 검을 긋는 동작 하나에 얼마나 많은 깨달음이 필요한지는,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

방금까지도 재잘재잘 떠들던 D팀의 헌터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중 누군가는 재빠르게 어딘가로 전화를 돌렸다. 인생 손해 보기 싫으면 어서 빨리 와서 보라고.

그때는 두 번째 동작이 막 시전되는 순간이었다. 내려친 다음에는 무게중심을 이용해 사선으로 올려친다. 팔 하나를 못 쓰는 만큼 한 톨의 힘도 낭비할 수 없었다.

기꺼운 것은, 한석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듯하다는 얼굴로 내 동작들을 받아주고 있었다. 작게나마 ‘그럴듯해.’ 하며 인정해주는 모습까지 보인다.

쉐엑!

허공을 가른 롱소드가 한석훈의 앞에서 허무하게 막혔다. 당연한 말이다. 그는 A급 중에서도 꼭대기에 있는 자니까. 오히려 전력을 다해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 좋을 따름이었다.

“이런 건 자주 볼 수 없는 장면이지. 다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되니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언제 소문이 퍼진 건지. 이태진의 수련장면을 보고 싶다며 찾아온 인사들이 있었다.

“오버하기는. 그냥 평범한 수련일 뿐이잖아.”

옆에 있던 동료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호들갑 떨지 말라며 주의를 줬지만.

“돼지 눈에는 돼지로밖에 안 보이지. 닥치고 지켜보기나 해.”

곧장 면박이 날아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엊그제 로비에서 봤던 A급 헌터였다. 이름은 뭔지 모른다. 플래시라는 예명만 알 뿐. 번쩍이는 순간 그의 검이 몬스터를 도륙 낸다고 한다.

A급 헌터의 말에는 그 자체에 권위가 실려있다. 면박을 받은 헌터가 곧장 얼굴을 붉힌 채 연무장을 벗어났다.

허나 한 명 빠져나간 것은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D급 연무장 전체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팝콘 있습니다. 카라멜, 오리지날, 치즈까지. 말씀만 하세요! 콜라도 있습니다!”

김세린과 박하영은 대체 어디서 들고 왔는지 사람들에게 팝콘을 팔고 있었다.

“반반도 되나요?”

“물론이죠!”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쟤들 장사수완이 장난 아니다.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팝콘까지 사가며 구경하는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지 못할 듯했다. 지금 보여주는 것은. 온전히 한석훈만을 위한 검술이었다.

비밀리에 진행될 수련이라면 어련히 마련된 장소들이 있다. 동굴같이 폐관할 수 있는 곳들.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일성의 헌터라면 누구나 봐도 좋다는 뜻이었다.

따라 해 보려면 따라 해 보던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어지간히 자질이 뛰어난 각성자 집단인 일성 내에서도 한석훈의 검술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몇 없다고 확신했다. 우리들이 개의치 않는 이유였다.

세 번째 동작이 펼쳐졌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검식이 핵심이었다. 쇠가 아니라 채찍을 휘두른다 생각해야 한다.

한석훈도 그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의 한 팔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치 거울을 보듯, 우리는 근섬유 한 올까지도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콰앙!

마음 놓고 전력을 다했다. 내가 아무리 애쓴다 한들 A급 최상위 헌터에게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될 테니.

마치 공명이 울리듯.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맑은 소리가 사방으로 번졌다.

문득, 그와 내 입장이 바뀐 것이 퍽 웃겼다.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오글거려서 그렇지 한석훈은 마땅히 내 스승이었다.

“미친…!”

경악스러운 얼굴로 단말마를 내뱉은 사람은 C팀의 근거리 딜러였다. 틈만 나면 나에게 대련을 요청하던 헌터.

D급 시절부터였다. 그의 호승심은 일성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다. 이번에도 그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나와 대련할 때도 그랬다. 늘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며, 마치 나를 상급자 대하듯 대했었다.

늘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지, 상대할 때마다 더 강해져서 오던 사람이었다. 최찬규가 이번에도 뭔가를 봤던 걸까.

“흠. 한 팀장님의 검술인 것 같기는 한데.”

“따라 한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조용히 해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득이니까. 일성에 있다는 놈들의 안목이 이리도 없어서야.”

수군대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검을 쓰는 근거리 딜러였다. 저마다의 감상평이 오갔다. 하나같이 감탄일색이었다.

“이런 것들에게 그런 걸 보여주다니. 검이 운다, 울어.”

플래시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러면서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런 그의 모습은 검을 대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진중해 보였다.

“이제 슬슬….”

마무리였다. 곁가지만 알려줘도 됐다. 이 정도만 해도 한석훈은 제 입맛대로 바꿔나갈 재량이 있다.

지금 한석훈이 보여주는 표정이 그 증거였다. 온전히 직전의 검에 집중하는 듯, 조금도 미동하지 않은 채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검을 뻗었다. 여전히 변칙 따위는 없었다. 정직한 그대로 좌에서 우로 올곧게 뻗어 나간다. 전력을 다했다. 오러 블레이드가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헌데 평소와는 그 감각이 달랐다. 이유가 뭔지 몰라도, 마나의 흐름이 유수(流水)와 같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꽈앙!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이 번쩍였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가르치다 보면 새삼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 그 말이 꼭 맞았다.

검의 기본기, 수천 번을 연마해도 부족할 완벽한 자세가 온전히 튀어나왔다.

[완벽한 베기에 성공했습니다.]

[검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상승합니다!]

그런 메시지가 떴다. 오래 유지할 수 없는 감각이다. 허나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곧 내가 도달할 영역이었기에.

우우웅!

보급형 롱소드가 마나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댔다. 곧장 한석훈을 바라보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가 침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게 뭔가 하면서.

한석훈이 느끼기에도 그랬던 것 같다. 방금의 일격은. 아무리 검술재능을 얻은 나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힘이었기에.

“뭐야, 너. 언제 또 이렇게….”

한석훈이 심각한 얼굴을 집어넣고 갑자기 웃음을 띄웠다. 대뜸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낸 내게 화를 내기는커녕 이놈 봐라, 하는 흥미로운 표정을 보였다.

헌데 나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나 했더니.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마나의 흐름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아락투스의 마법사전이 남긴 여파는 심장에 맺힌 고리뿐만이 아니었다. 혈도를 타고 흐르는 마나길이 강제로 넓혀졌다. 극한의 고통을 느낀 원인이었다.

다시금 생각해도 정말 죽는 게 낫겠다 싶은 격통이었는데 그만큼 보상도 넉넉했던 것이다. 이런 것이 가능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대번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자동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일순 의문을 띄웠다. 자신이 본 게 맞냐며 되묻는 이도 있었다.

허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깨달음을 놓치기 싫었다.

“들어와라.”

한석훈이 검을 까딱였다. 내 마음을 읽은 것이다. 그래서 한석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체 되지 않는 마나의 흐름이 내 검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어떤 식으로 검을 휘둘러야 할지 최적의 길까지 보여 준다.

막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다만. 너무 아까웠다. 이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깨달음을 기다려야 한다.

한석훈부터가 그걸 원치 않았다. 순간이나마 갈등하는 내 표정을 본 것이다. 고개를 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저 양반이 더 기뻐하는 거지.

어쨌든.

사양 않고 홍수처럼 터져 나오는 아이디어들을 쏟아내기로 했다. 온전히 한 손으로만 사용되는 검술이었다.

한석훈에게 가르쳐 주려 시작한 일이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검이어야 했다. 그 생각에 따라 무의식이 반응했다.

어느 순간, 상태창에 박혀있는 검신의 축복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알겠다고,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고.

“한 팀장님을 철저히 배려하는군.”

“배려라고 하기에도. 활용도가 무지막지해 보인다. 익힐 수만 있다면.”

“나머지 한 손으로 방패를 들어도 돼. 정말 이걸 공짜로 봐도 된다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마나 활용이 관건이네. 어떻게 저렇게 부드러운 마나 운용이 가능한 거지?”

“재능 아닐까?”

그때부터는 무아지경의 상태였다. 그저 댐의 수문을 열 듯 검신이 일러주는 대로 연무장을 휘저었다.

후련하게 모든 것을 쏟아냈다. 잔가지 몇 개만 바꾸자는 초기의 생각에서 청운적하검법의 묘리까지도 담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쓸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아.”

어느새 눈을 감고 있었던 모양이다. 충만한 만족감에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렸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마침내 슬며시 눈을 떴을 때.

정적이 일었다. 팝콘을 씹던 최찬규, 나를 찬양하던 헌터, 그리고 플래시까지도.

뭐랄까. 몬스터를 보듯 인상을 찡그리며 보는데 거기에 적의는 담기지 않았다. 오히려 경외에 가까웠다.

특히나 플래시와 한석훈은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나를, A급 던전의 보스몹을 바라보듯 숨을 헐떡이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이게 간단한 수정과정이라고?”

한참 후, 한석훈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마나 흐름, 그에 따른 동작, 검의 움직임. 큰 가지가 같기는 한데.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하나.”

방금 전의 일을 분석하듯 플래시가 운을 뗐다.

“재능의 차이라 해야 하나.”

그러고는 가감 없이 진실만을 알리듯 건조하게 말했다. 두 A급 헌터들의 대화에 다른 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분석하는 데만 한참이겠군. 그래도….”

한석훈이 눈을 빛낸 것이 그때였다.

“분명 지금의 한석훈에게는 완벽한 정답에 가깝다는 건 틀림없지.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야.”

무슨. 칭찬도 적당히 해야지. 나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저런 식의 과찬은 오히려 내게 독이다.

“…….”

헌데 이상한 것은 아무도 그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석훈조차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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