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55화 (55/170)

55화 내가 없어진 사이에 (3)

콰앙!

채 대비를 하기도 전이었다. 회장실 문이 박살 날 듯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주 난리도 아니군. 난리도 아니야.”

장대한 기골을 가진 노인이 순식간에 장내에 난입했다. 기척을 느낄 새도 없었다.

최태성의 집무실이다. 온갖 보안 마법과 알람 마법이 이곳 안에 가득할 터였는데. 노인은 가볍게 그것을 뚫어냈다.

거대한 파동이 폭풍처럼 몰아친 건 노인의 등장 직후였다.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손정연 협회장이 시퍼런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잔뜩 굳은 얼굴에서 협회장의 분노가 느껴졌다.

“최태성이. 내 저번에 경고했던 것 같은데…. 잘 간수 하라고. 그럴 자신 없으면 내놓으라고.”

시퍼런 안광이 최태성에게 꽂혔다. 옆에 앉아있던 김석환과 한석훈이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때도 협회장의 눈은 최태성을 향한 상태 그대로였다. 일성의 A급 헌터 둘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쩌저정!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석환과 한석훈을 막은 인영 두 개가 있었다.

격전 간에 터진 충격음을 보면 그새 몇 번의 격돌이 일어난 것일 터였다. 나는 인지하지 못하는 속도였다.

충격파가 몇 번 휘몰아친 후에야 그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협회 문양이 찍힌 각성자 하나와 협회장의 손자, 손영혁이었다.

순간 손영혁이 내 얼굴을 살핀 직후. 굳은 얼굴 그대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감히 회장님 집무실에서 이따위 짓을?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김석환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김석환의 갈색 수염이 마나를 따라 넘실댔다. 맞부닥친 손영혁은 그 말에 대해 일언반구 하나 없었고.

“영감님이 오늘 관짝에 들어가고 싶은 것 같은데.”

검을 뽑아 든 한석훈이 여유롭게 말했다. 한석훈과 대치하고 있는 자의 얼굴에는 불편함이 물씬했다.

한석훈보다 한 수 아래인 자였다.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대치 구도였다.

팔 한 짝이 날아갔다고 그와 동등하다 생각했던 건 오만이었다. A급 헌터 중에서도 그는 여전히 상위권에 위치한 것이 분명했다.

후우웅!

순식간에 거친 파동이 겹겹이 집무실 전체를 휘감았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나도 일어나 그들의 곁에 서야 하는데.

동시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기운이 나를 막고 있었다. 기운의 흐름을 따라 그 주체를 향해 동공을 움직였다. 최태성. 그가 내게 마법으로 행동에 제약을 건 게 틀림없었다.

그러다 문득 최태성이 내게 고개를 끄덕인다. 얌전히 있으라는 뜻인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 난장판에도 불구하고 최태성은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런 사람이 나 때문에 분노했다는 게 다시 한번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네놈이 여기까진 무슨 일로.”

최태성이 협회장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곧장 협회장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최태성을 노려봤다.

“나이로 따져도, 무위로 따져도 내 아랫줄인 자식이 여전히 예의는 밥 말아 처먹었구나. 하늘 같은 선배에게 네놈? 마음 같아서는 오늘 네 목부터 가져가고 싶다만.”

“나와 싸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준비돼 있다. 아니면, 화신보다 협회부터 뒤집어 줘야 하나?”

“애송아. 애송아. 너는 어째 날이 갈수록 허장성세만 느는구나. 그러니 이렇게 내 앞에서 명을 재촉하는 걸 테지.”

“오늘내일하는 영감보다 빨리 갈까 싶다만?”

그 말과 함께 최태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절대자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S급 각성자들이 동시에 마나를 일으켰다.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 단단히 대비했던 것과 달리 응당 들려야 할 폭음이 없었다.

숨 막힐 듯 조여오던 농도 진한 마나의 파동도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되려 아까보다 숨쉬기가 더 편하다. 움직이는 데 제약도 없었고. 곧장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전에 협회장이 보여줬던 청운적하검법 특유의 파장과 최태성의 마나가 나를 보호하듯 내 주위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애송이를 위한 절대자들의 배려였다.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집무실의 물건 그 어느 것 하나도 미동조차 없다는 점이었다. 소름 끼칠 만큼 놀라운 마나 컨트롤 능력이다.

그렇게 영원 같던 찰나가 지난 후였다.

“…저 친구 얼굴을 봐서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지.”

협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내뿜은 만큼, 마나를 거둬들이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내게 영감을 줄 정도로.

털썩 집무실의 의자 한편에 앉은 협회장을 위시하여 손영혁이 뒤로 섰다.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내게 도발을 걸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가운 인상 그대로 주위를 주시하고 있는 놈에게서 A급 헌터의 힘이 여실히 느껴졌다.

“허락할 수 없다.”

대뜸 협회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뻔했다.

“저 친구를 넘겨준다? 우리에게 있어 고려사항도 아니지. 그랬다가는 정말로 네놈 목부터 날아가야 할 것이고.”

최태성이 잠시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숨을 가다듬는다. 마치 한번 참는다는 듯.

“그렇다면 화신에는 네놈이 대신 말하면 되겠군.”

최태성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순식간에 바통을 협회장에게 넘긴 것이다. 경영자의 수완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흥. 애쓰지 마라. 같잖은 네 수는 훤히 보이니까. 화신 그 애송이에게 무릎 꿇는 것까지는 어떻게 막아줄 수 있는데.”

절대자들의 대화였다. 언뜻 유치해 보이는 어투라 할지라도 내가 감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의 속내를 감히 짐작할 수 없었기에.

“오죽 일성이 답답했으면 잠적을 했을까. 그것도 보름이 넘도록.”

“…….”

협회장이 ‘쯧쯧’ 하며 혀를 찼다. 몇 번 본 적 없지만 매체에서 다뤄지던 근엄한 협회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유치한 노인네의 모습에 가까웠지.

더불어 그깟 도발에 눈썹을 까딱이는 최태성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다. 내가 모르는 속내가 있을 게 뻔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협회장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전과 달리 친근한 어투였다.

“그새 기운이 깊어졌군. 하기야, 호랑이가 어디 늑대 밑에서 제대로 된 수양을 할 수 있겠나. 차라리 잘된 일이야. 혼자서 길을 개척하는 모습이 뿌듯해. 혹, 단초는 얻었는가?”

그러더니 슬며시 청운적하검법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하며.

“…….”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 있었다. 여기서 입을 열어봤자 나만 손해다.

그간의 일을 말한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락투스의 마법 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화신 쪽에서는 누가 나옵니까?”

대신 화제를 화신과의 BTO 쪽으로 돌렸다. 검투사가 달리 검투사가 아니다. 회사의 이미지를 걸고 나오는 만큼, 승자가 그 명예를 독차지하는 것이다.

만약 일성이 BTO에서 패배한다?

단순히 내 죽음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내줘야 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회사 지분까지도.

“또한, 어째서 제가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기왕 말한 김에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예 내가 잠적한 이유 따위는 생각도 안 나게끔.

신기했다. 말이 흘러나옴에 따라 널뛰던 심장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더군다나 절대자들의 앞이라고 주눅 들기에는,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맞았다.

“하오란.”

최태성의 뒤에 서 있던 백인호가 얼굴을 구기며 그렇게 말했다. ‘다 너 때문이다.’ 라는 원망이 말투에서부터 한가득했다.

백인호를 무시하고 하오란이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오는 길에 한석훈에게 언뜻 들었던 이름이었다.

화신 그룹의 회장이 그렇게나 총애한다던 수제자. 레벨이 얼마라고 했더라. 190?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룹 내에서 입지를 쌓지 못했던 놈이야.”

김석환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입지 정도가 아니지. 작년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던 놈이었어. 그럴 수밖에. 재능이 바닥을 기던 놈이었으니까. 화신에 들어간 것도 정말 기연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러고는 슬며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지. 그러고도 D급을 벗어나지 못한 놈이야. 무려 십 년 동안이나.”

“그래도 그 의지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한석훈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늘 노력을 강조하던 한석훈다웠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빛 볼 날이 온다더니. 작년 2월 경이었을 거다. 그놈의 입지가 단번에 바뀌는 일이 일어난 거야.”

순간 설마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예상하는 게 맞다고?

“그래. 그놈이 S급 특성을 얻었다. 그것도 제우스의 투신창술, 너와 같은 S급 무기류 특성이다. 인마. 네가 어떤 일을 벌인지 이제 감이 와?”

백인호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이야기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순간이었다. 장내에 정적이 일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돌아가는 초침도, 입을 열려던 한석훈도, 나를 응시하고 있던 손영혁도. 일순간 정지된 그대로 멈췄다. 시간이 멈춘 것이다. 이 순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나조차도 말이다.

다만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이 미래를 보기 직전의 전조현상임을 직전에 어렴풋이 알아챘다.

마침 얼핏 스치는 마나 파장이 느껴졌다. 극도로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게 ‘그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을 놓칠 수 없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다시 한번 ‘그것’이 흘렸던 마나의 흔적을 복기했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마나에 특색이 담긴다. 사막의 여전사 이셀라는 호전적이었고 협회장의 것에는 한이 담겼던 것처럼.

허나. 순간이나마 느껴졌던 ‘그것’의 마나는. 굳이 따지자면 무색무취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며 발버둥치려던 때였다.

빛이 번쩍이며 시야의 밝기가 반전됐다. 손 쓸 틈도 없이 의식이 미래 저편으로 날아갔다.

환한 빛이 시야를 가득 매웠다가 점차 주변 풍경이 시야에 맺히기 시작했다.

“커르륵…!”

넓은 연무장이었다. 바로 앞에 피를 토하는 사내부터. 보이는 곳곳에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최태성, 한석훈, 김석환. 그 뒤로는 손영혁까지도.

“모든 게 예비돼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

팔 하나가 땅에 떨어진 사내가 허탈하다는 얼굴로 내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한국어로 말하는 사내였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자가 하오란이다.

헌데 하오란의 말이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물속에 잠긴 듯 웅웅대는 소리만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덕분이다. 많은 걸 얻었어.”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동시에 내 손에 들린 검이 그의 목으로 날아갔다.

화악!

이게 끝이야?

단편적인 장면을 끝으로 미래에서 현재로 의식이 전환됐다.

다시 현재, 한석훈이 할 말이 많다는 듯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어떻게 그 넓은 대륙에서 S급 특성을 얻었다는 정보를 숨겼는지. 놈의 정보는 철저히 극비리에 붙여져 있다. 우리도 하오란의 뒷조사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정보야.”

그렇게 말하며 근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는데 내 속마음이라도 읽은 걸까. 한석훈이 섣부른 짓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놈의 추정 레벨이 180 정도에 불과했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었지. 헌데 놈의 성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지금의 너는 놈을 상대할 수 없어. 훗날이라면 모를까.”

한석훈이 진지하게 조언을 하듯 그렇게 되뇌었다.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손영혁까지도.

아. 백인호만 빼고. 그는 여전히 불만 어린 시선으로, 오히려 기회를 포착한 포식자 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태진 씨. 멀리 보셔야 합니다.”

손영혁이 내게 조언했다. 표정을 보니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닌 듯했다. 진지하게 나를, 아니 대의를 위한 결정이었다.

“혹시 하오란이라는 그 사람. 회색 머리에 목에 문신이 있습니까?”

문득 미래에서 봤던 사내의 인상착의를 말했다. 갑자기 깨진 분위기에 한석훈이 갸웃거리기도 잠시. 예상이 맞았다.

한석훈이 작게 ‘…그건 또 어떻게 알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하오란에 대한 정보는 극비리에 취급된다 했다.

애송이에 불과한 내가 알 만한 것이 아니었다. 허나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것’이 허락하고 있지 않은가. 한석훈의 복수를.

“그 BTO. 제가 나가겠습니다.”

모두의 만류를 뒤로하고 장내에 폭탄을 던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