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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54화 (54/170)

54화 내가 없어진 사이에 (2)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

말을 잃은 채 바라보고만 있자 한석훈이 반가운 듯 먼저 입을 열었따. 그러면서도 그의 눈길이 내 전신을 훑었다. 마치 어디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듯.

“얼빠진 표정은 여전하구나.”

그러더니 대뜸 실없이 웃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태파악도 제대로 되질 않았다. 그저 나풀대는 그의 왼팔 소매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대체 어디서 뭘 했길래.

괌에 갔다더니 상어한테라도 물어뜯겼냐고 묻고 싶었다. 그 정도로 지금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B급에 올라서고 한석훈을 바라보니 더 그랬다.

한석훈 정도의 강자가 무슨 일을 겪었길래. 어떤 이유에선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거 나랑 연관 있는 일이구나. 본능적인 직감이 그랬다.

“일단 회사로 가자.”

왜 회사로 가냐는 반문조차 표하지 않았다. 뭔가 일이 터졌다. 내가 없는 동안.

***

한석훈이 그간의 일을 천천히 풀었다. 정확히 김찬현이 죽은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일이었다.

“김찬현이 화신을 끌어들인 게 아니야. 놈들이 김찬현을 핑계 삼아 너를 도모하려고 했던 것뿐이지.”

그의 말에 따르면 국내뿐 아니라, 중국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S급의 검술 재능을 얻은 이후로 줄곧 그랬다고 한다.

왜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어느새 나는 그들에게 죽이거나 회유하거나, 둘 중 하나만을 강제해야 하는 존재가 됐으니까. 화신은 회유를 선택했을 뿐이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날이 갈수록 S급 검술 재능의 봉인된 힘이 점차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 특성의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나조차도 파악이 불가능하다.

“닷새 전, 한국에 도착했다.”

조수석에 앉은 한석훈이 나풀대는 왼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내가 전주의 던전으로 떠난 지 정확히 보름째 되는 날, 그러니까 지금부터 닷새 전 한석훈이 일성의 본사 앞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살아있는 게 용한 상태였다고.

내 손을 떠난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건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난리가 났겠네요.”

나지막하게 말했다. 굳은 표정까지야 어쩔 수 없다지만 말투만큼은 평소와 똑같이 유지하려 애썼다.

한석훈 본인부터가 평소처럼 껄렁거리기도 했고. 웃긴 농담을 하듯 나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의수도 차지 않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로서 추측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화신 그놈들이 너를 죽였거나, 납치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

“김석환 그놈한테 전지훈련 다녀온다고 문자 하나 딸랑 보내놓고 잠수탔다며? 회장님이 얼마나 노하셨는지 넌 짐작도 못 할 거다. 아마 내일까지 너 안 왔으면 중국으로 직접 움직이셨을 거고.”

팔 하나 잃은 한석훈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마치 내가 대단한 일을 벌인 것처럼.

“그러고 보면 화신에서 거짓말은 안 했어. 회장님께서 직접 선전포고하셨을 때 그놈들이 극구 부인했거든. 이태진한테 관심을 끊었다고.”

“…….”

“역시 사고 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단 말이지.”

그러며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텅 빈 왼쪽 소매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손맛이 안 난다고 한탄하면서.

표정 관리가 안 된다. 그의 허전한 왼쪽 소매만 보면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전지훈련 갔다 온 건 맞나보네. 기세가 제법 그럴듯해졌어.”

한석훈이 평소답지 않게 말을 많이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테지. 내게는 들린다. 끊임없이 ‘네 탓이 아니다.’ 하는 한석훈의 말이.

“…팔도 한 짝 날아간 마당에. 이제 저한테도 지는 거 아닙니까? 어찌됐든 의수는 제가 책임지고 맞춰드리겠습니다.”

어디에 갔다 왔냐고 묻지 않는 게 되려 더 불편했다. 차라리 질책이라도 하지. 너 때문에 팔 한 짝이 날아갔다고. 너 때문에 일성과 화신 간의 관계가 악화일로인 상황이라고.

단순 각성자 개인의 문제에서 기업 간의 문제로 번졌다. 그리고 그게 일성과 화신 정도의 대기업쯤 되면 국가 간의 일로 번지기도 한다. 한석훈의 말대로 아주 제대로 사고 친 것이다.

“아무렴. 비싼 걸로 고를 거다. 옵션 잔뜩 달린 걸로. 효자손 기능 달린 거 있잖아, 그러니까 인마, 표정 좀 풀어라. 누가 보면 네놈 팔이라도 날아간 줄 알겠네.”

억지로라도 웃어 보였다. 허나 터져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사고는 또 어떻게 해결하라고.

막힘없이 달리던 차가 멈춰 섰다. 일성의 본사가 눈에 들어왔다.이상한 것은, 항상 인파가 들끓었던 일성의 본사 앞이 유난히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되려 그게 더 불안했다.

주차선에 맞추기는커녕 버리듯 차를 대고 다급히 출입증을 찍었을 때였다.

“어라?”

한석훈이 의문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 출정식은 내일이라고 했는데.’ 하며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본다.

뭐라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아찔했다. 스산한 바깥과 정반대로 건물 내부는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원들이 넘쳐났다.

“상해 쪽 워프 마법 준비 끝났습니다. 명만 내려 주시면….”

“협회 쪽과는 연락됐습니다.”

“협상? X발, 이제 와서 뭔 개소리야. 화신 그 새끼들 모조리…!”

각성자뿐만 아니다. 비각성자들의 눈빛 또한 이글거리는 열기를 띠고 있었다. 정말로 전쟁이라도 준비하듯 말이다. 뿐만 아니다. 방점은 뒤에 있었다.

D-1팀부터 시작된 사열이 B팀까지 이어져 있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옆으로는 마법사들이 스태프를 가지고 지휘하며 설계법에 따라 마석 설치를 주도하면서 대규모 마법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대규모 워프 마법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비장한 표정으로 연신 주문을 외는 김세린도 있다.

헤실거리던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나까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이게 무슨.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저 하나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요? 아니죠?”

물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옆을 돌아보자 한석훈도 당황한 얼굴이 돼 있었다.

“어? 이거 이상하다…. 생각보다 일이 더 커진 것 같은데?”

눈을 끔뻑거리며 말을 잇던 한석훈이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 일성의 A팀이 있었다.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일성의 핵심 멤버들. 김석환을 비롯한 정철규, 윤진아, 박지현…!

던전에 들어가기 전 그들과 훈련한 적이 있었다. 다만, 내 잠재력이 놀랍고 재밌다며 싱글벙글하던 얼굴들은 거기에 없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하는 중이었다.

옆에는 B팀도 도열해 있었다. 일성의 정예 스무 명.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는 부지불식간의 순간. B팀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다들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야, 쟤가 이태진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화신에 붙잡혔다며?”

“한석훈 씨가 빼 온 거야? 그새?”

“그 사람 회사 나간 지 세 시간 됐는데?”

“그러니까. 출정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다더니.”

“그 사이에 중국까지 갔다 온 거야?”

“그런가 본데? 한석훈 씨 텔레포트 마법을 배웠었나?”

“이야, 대단한데? 검사가 텔레포트 마법도 쓰고. 아, 정정. 외팔이 검사. 오, 들었나 봐. 표정 살벌한 거 봐.”

“…어찌 됐든 아쉽게 됐네. 간만에 몸 좀 푸나 했더니.”

걔 중 젊어 보이는 남자 둘이 농담처럼 주고받는 대화는 더 이상했다. 이 난리 통에 심드렁한 얼굴이라니. 그 순간 정적이 일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 이태진?”

그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너, 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C팀의 최찬규였다. 좀 전까지도 인사팀과의 대화로 심각해 보이던 최찬규가 나를 보자마자 이상한 얼굴이 됐다.

기쁜 것 같으면서도 분노를 감출 수 없다는 듯. 굳이 표현하자면 내 얼굴을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정도로 해석됐다.

그때였다.

“이태진….”

전용철, 김세린, 이지은의 옆에서 굳은 얼굴로 장비를 점검하던 임한나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너, 뭐야…. 네가 어떻게…!”

그러더니 성큼성큼 내게 달려왔다. 얼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왜 이래, 얘가.

드라마 보면 이런 장면에서 포옹이라도 하던데.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임한나가 생긴 것도 예쁘긴 하다.

그렇게 드라마의 한 장면을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성큼성큼 다가오던 임한나가 안기려는 듯 손을 뻗어왔다.

짜악!

짜악? 상상과는 다른 소리에 순간 반응도 하지 못했다. 내 뺨이 왼쪽으로 휙 돌아갔다.

이게 뭐지?

옆으로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그녀에게로 돌렸다.

“갑자기 무슨….”

“뒤질 짓은 하지 말아야지! 어?! 뭔진 몰라도 뒤질 것 같은 짓은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이 새끼야….”

임한나답지 않았다. 항상 나른한 얼굴로 여유롭게 할 말만 딱딱 내뱉던 녀석이었건만.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직전까지 굳은 얼굴로 나를 보던 전용철, 김세린, 박하영, 이지은 또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뭐, 키스라도 하든가.”

한석훈이 주책맞게 말했다. 사열해 있던 일성의 모든 각성자들의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

당장 최태성의 집무실로 불려 올라갔다. 감히 거부할 수 없었고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나 때문에 대체 일이 얼마나 커진 건지 아직도 가늠이 안 된다. 진짜 화신이랑 전쟁이라도 하려고 했었다고?

“내가 한쪽 팔 잃은 걸로 끝났다면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한석훈이 담담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턱짓했다.

“어떤 놈이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말이야.”

최태성이 앞뒤 가릴 것 없이 화신에게 명운을 걸고 한 판 싸우자고 했단다. 최태성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나 하나 때문이라기에는…. 다들 이성을 잃은 거 아닙니까?”

“솔직히 다른 사람이었다면 회장님이 이렇게까지는 안 하셨을 것 같기는 한데…. 네가 보통 중요한 놈이어야지.”

그 말을 하며 한석훈이 고개를 젓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을 찰나, 회장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늘 그랬던 것처럼 던전산 최고급 원단으로 S급 명장이 한땀 한땀 완성한 정장을 입은 채 상석에 앉은 최태성은, 세상에 달관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런 그가 나 하나 때문에 이렇게 일을 크게 벌였다? 상상이 가지 않았다.

최태성의 옆에 앉은 김석환과 백인호가 흠칫 놀란 얼굴로 나를 보기도 잠시, 옆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앉자마자였다. 임한나가 그랬듯 귀싸대기라도 날릴까 걱정되기도 잠시, 최태성이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말을 건네 왔다.

“다행이야. 몸은 괜찮아 보여서.”

가타부타 어디에 있었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것이 끝이었다. 최태성의 시선이 곧장 백인호에게 향했다.

“어찌 됐든. 일이 여기까지 벌어진 이상,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 시선에 백인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한석훈조차 말이 없었다.

“고개 한번 숙이면 될 일이야.”

“회장님!”

한석훈이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며 고개를 젓는다. 재고해 달라는 뜻이었다.

굳이 티 내지는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숨 막히는 기분이었고.

최태성이 나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라니. 그랬다가는 정말 얼굴도 못 들고 다닐 판이다.

“화신에서도 소식을 들은 모양이야. 화가 단단히 났더군. 곧장 생사결, 그러니까 BTO(Brutal Torment Offering : 잔혹한 고통의 제물)를 신청했어.”

최태성이 나를 돌아봤다. 얼마간 지났을 때, 문득 뜨악한 얼굴로 김석환, 백인호, 한석훈. 일성 최고 간부 세 명이 나를 휙 쳐다봤다.

되물을 것도 없었다. BTO, 다른 말로 생사투에 나갈 검투사로 나를 지목했다는 것은 더 안 들어도 뻔했다.

BTO.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죽는다.

처음과 달랐다. 대번에 한석훈이 말렸다.

“함정입니다.”

“차라리 제가 나가겠습니다.”

한석훈의 말에 김석환이 눈썹을 찌푸린 채 덧붙이며 말한다. 백인호마저 팔짱을 낀 채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다들 말리고 있다. 허나 왜일까. 가슴속에서 들끓는 게 있었다. 한석훈의 초췌한 얼굴과 허전한 한쪽 팔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회, 회장님!”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건 최태성의 비서였다.

허락도 안 했는데 문을 열었다? 화를 낼 일이 아니다. 보통 큰일이 아니라는 말이지. 순간 가슴이 철렁거렸다. 또 뭔데.

“협회장이 본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연실색한 비서의 표정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점입가경이었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었던 무단결근이, 국가대전이란 태풍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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