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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50화 (50/170)

50화 이계 (1)

앞에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파티원들만큼이나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이, 이게 무슨!”

“방금 시스템 메시지 본 사람? 나만 뜬 거 아니지?”

“부, 분명 탈출했는데…!”

녀석들의 호들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지간한 고난쯤은 예상했던 나도 표정 관리가 어려웠으니까.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서, 선생님!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파티장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억울하다는 얼굴이었다. 마치 이것마저 내가 의도한 일이 아니냐는 듯 살려달라고 외치기까지.

“닥쳐!”

생각을 방해받기 싫었다. 사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집중이 필요하다.

군단장?

생소한 단어였다. 추측되는 것이라고는 S급 몬스터가 아닐…!

그러던 순간,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도 놀랄 만큼 섬전 같은 속도였다.

[역용을 해제합니다.]

[제한된 능력치가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여유를 부릴 틈도 없다.

바로 아래에서부터였다.

콰앙!

딱딱한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몬스터는 분명히 샌드웜이었다. 이놈이 왜 지금 이곳에서 등장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쿠워어억!]

집채만 한 지렁이가 나를 집어삼키려 아가리를 쩍 벌리고 덮쳐 왔다.

[오러 블레이드를 시전합니다.]

[들끓는 전사의 피를 시전합니다.]

스킬은 몸을 띄울 때부터 시전해 둔 상태다. 허나 헬리오스의 심장이 인벤토리에서 빠져나오기까지의 딜레이는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앞의 놈을 죽이는 대신, 나 또한 하나를 내줘야 한다.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바둑을 두듯 수 싸움이 필요했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

[일점폭발을 시전합니다.]

샌드웜의 몸을 반으로 가른 후였다. 좋아하기에는 일렀다.

푸욱!

직후, 각오했듯 딱딱한 무언가가 등을 찔러왔다.

[치명적인 독에 중독됩니다.]

[저항력이 낮습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초당 생명력이 0.9%씩 줄어듭니다.]

시스템 상의 설명대로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00여 초. 방어를 염두에 둘 틈도 없다. 조금이라도 검을 멈추면 그 즉시 죽는다.

몸을 회전시키며 롱소드를 횡으로 그었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갈리는 것이 있었다.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뜬 것을 끝으로, 죽은 몬스터를 지나쳤다. 속으로 90초의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며.

구십.

그 와중에도 격렬한 통각이 척추 바로 옆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태양신은 아직 잠잠했다.

롱소드를 아껴야 한다. 몸이 중독되는 한이 있더라도 후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퍼억!

칠십.

철권 같은 주먹이 딱딱한 갑각류의 면상에 부딪혔다. D급 리저드처럼 부드럽게 갈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 순간 나를 에워싸고 있는 네 마리 전부가 B급의 몬스터였다.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해 독의 작용 속도가 초당 0.2% 증가합니다.]

“커헉!”

육십치…아니, 육십사, 육십삼….

각혈을 하면서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구석에 몰려도 죽는 것은 매한가지니까.

마나를 아낄 틈도 없었다. 덕분에 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두 놈씩 쓸려나갔다.

다만 두 놈의 모가지를 벨 때마다 또 다른 두 놈이 내 몸 곳곳을 찔러댔을 뿐.

“크르륵!”

소름 끼치는 음성이 뒤쪽에서 파고들었다. 집요하게 갈빗대 사이를 파고드는 리저드의 손톱이 또다시 내장을 송두리째 뜯으려 했다.

콰드드득!

“흡!”

이런 종류의 고통은 익숙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십!

순간 의식이 아득한 저편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왔다. 미래를 본 것이 아니다. 너무 큰 충격을 뇌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이십칠…!

즉시 몸을 돌려 놈의 목을 갈랐다.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다. 나만 한 크기의 도마뱀의 목 위로 거칠게 깎인 흔적이 고스란히 파동으로 전해졌다.

십일!…십, 구.

던전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이 현저히 줄어들기 마련이다. 지금은 오감 중 후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차단된 상태였고.

삼…이….

어두컴컴한 동굴 내에 놈들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배꼽 아래에서 지금도 뿜어지고 있는 마나 파동뿐이었다.

이…ㄹ…!

그때였다.

내 몸 여기저기에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헬리오스가 드디어 결심이 선 듯, 인벤토리에서 현실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철컥! 철컥!

황금빛 태양신의 심장이 내 몸 위로 덧씌워졌다. 그와 함께 감각이 조금이나마 돌아오기 시작했다.

갑옷에서 퍼지는 광휘가 놈들을 슬쩍 비췄다. 비주얼이 대박이다. 심해에 사는 어종마냥 이목구비부터가 멋대로였다.

“뒤져!”

카드드득!

오러를 잔뜩 담은 검이 일렬로 늘어선 놈들의 몸뚱이를 갈랐다. 굳이 일격에 죽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생각과 함께 쓰러진 놈 중 하나의 대가리를 밟아 터트리자.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317!]

[레벨업!]

어마무시한 경험치가 쏟아진다. 다만 리저드를 죽일 때마다. 놈들의 피가 피부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치명적인 독에 중독됩니다.]

[저항력이 탁월합니다.]

[대부분의 치명적인 독성을 극복합니다.]

이래서 리저드 종류의 던전은 힐러와 탱커가 필수라는 말이다.

“힐!”

왼쪽을 돌아봤다. 여유가 생긴 만큼, 다른 놈들이 맡고 있던 몬스터를 내가 감당해야 했다.

동료애가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도 녀석들이 필요했다. 모르긴 몰라도 내 몸도 리저드의 이목구비처럼 끔찍한 상태일 것이니까.

“힐!”

내 다급한 외침에도 응답이 없다. 슬쩍 살펴보니 파티장은 이 중요한 순간에 얼빠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새끼가!

그와 동시에 파티장을 물기 직전인 도마뱀 한 마리의 목을 벴다. 하나를 벨 때마다 한 곳을 내줘야 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게 한계였다.

암흑천지의 던전에서 세로로 찢어진 노란 동공들이 옆으로 갸웃했다.

일순간 일곱 쌍의 눈깔들이 동시에 내게 달려왔다. 놈들이 나를 먼저 죽이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어어…!”

파티의 장이라는 놈이 이 상황에서 허둥지둥거리고 있는 꼴에 울분이 치밀기도 잠시, 멈출 틈이 없다.

내 검이 자동 반사에 가까운 반응으로 리저드 하나의 목을 꿰뚫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놈이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남아있는 리저드 여섯 마리 중 한 마리의 몸을 세로로 갈랐을 때,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번졌다.

“으아아아악!”

고통과 희열 그 사이에서 지른 흉광의 외침을 끝으로. 그 이후의 기억이 희미했다.

격전을 치른 끝은 항상 이렇다. 무아지경의 상태 속 기억에 남는 것은 희미한 시스템 메시지밖에 없는 것이다.

[헬리오스의 심장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헬리오스의 심장이 인벤토리로 돌아갑니다.]

***

석벽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이마를 두드렸다. 의식이 돌아왔다. 끔찍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다른 말로 살아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다행히 죽음은 면한 것이다. 몬스터들에게도, 바로 옆의 파티원들에게도. 아니나 다를까. 잠잠한 동굴 속에 계집의 목소리가 퍼졌다.

“기, 김현찬…. 아니, 이태진….”

계집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얼굴에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면서. 지금 자신이 꿈을 꾸는 건지, 아니면 현실에 있는 건지 분간을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사, 삼일이요!”

예정했던 시간은 이미 초과했다. 협회에서 이만한 던전의 파장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생존자는?”

식량은 진작에 떨어졌을 테고. 생존자의 숫자에 따라 전략을 바꿔야 한다.

내 질문에 이예지의 눈빛이 흔들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이예지가 던지는 시선 끝에 대머리 레인저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녀석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가기도 전에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상태는 더 심각했다.

리저드의 독기가 틀림없었다. 온몸에 퍼진 독기에 풍선마냥 전신이 부풀어 있었다. 특히나 녀석의 초점 잃은 동공은 안면 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힐끔 파티장을 바라봤다. 녀석은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있었다. 파티장으로서도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아끼는 수하를 살릴 것인지, 혹은 나를 살릴 것인지. 그 결과가 지금을 말해 주고 있었다.

“커르륵!”

대머리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했다. 녀석의 안광에 전에 없던 빛이 물들고 있었다. 마치 회광반조의 전조처럼,

“지상…. 위의 놈이었군. 그것도 일성.”

아무래도 헬리오스의 심장에 박혀 있을 일성의 마크를 본 듯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눈빛이 혐오로 물들었다.

“팀장님!”

이예지가 파티장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얼굴로. 하지만 지금 레인저의 모습은 누가 봐도 회광반조일 뿐, 가망이 없는 것은 똑같다.

“너희 가진 것들은 항상 이렇지. 아랫것들은 이용하고 버려져. 우리가 하수구 밑에서 기생하는 쥐새끼들처럼 보였나?”

거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녀석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상의 놈인 줄 알았다면, 그중에서도 너인 줄 알았다면 망설임 없이 죽였을 것이다. 가는 마당에 그것 하나가 아쉽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엘리트를 혐오하는 놈의 과거는 궁금하지 않았다. 뭐라 변명하든 놈은 폐기처분해야 할 쓰레기일 뿐이다.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녀석이 징징대는 것을 받아줄 이유도 없었다.

“마치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군.”

죽어가는 대머리 레인저를 무정하게 바라봤다.

“네 파티장을 봐라. 지금 네 목숨을 앗아간 게 몬스터라고 생각하나? 쥐새끼답게 최후까지도 비참한 꼴 하고는. 지옥에 가거든 자랑이라도 해라. 내 얼굴 한 번이라도 봤으니 영광으로 생각하고.”

녀석의 치욕스럽다는 표정이 마지막이었다. 대머리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놈에 걸맞은 최후였다.

그렇게 놈이 죽은 이후, 한동안 모두가 말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시신 쪽으로 눈길을 보내지 않는 모습도 그랬다.

“…이제 어떻게 하죠?”

한참 후, 이예지가 내게 물어왔다. 그렇게 묻는 이예지의 얼굴이 뻔뻔하다.

“책임…. 책임이 있잖아요! 저희들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모른 체하실 건 아니겠죠?”

희생을 입에 담는 이예지의 눈에서 깊은 혐오감이 얼핏 스쳤다.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해도 모자랄 판에 지상의 것에게 자존심을 굽힐 수는 없다?

“파티장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시키는 건 뭐든 따를 것이고요.”

아예 파티장은 선심이라도 쓰듯 그렇게 말한다. 이쯤 되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너희와 나. 애당초 이용하는 관계 아니었나? 내 레벨이 71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을지가 의문이군.”

녀석들이 그 말에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대답이 없다.

“얌전히 닥치기나 해.”

안 그래도 신경 쓸 것이 잔뜩이다. 당장은 이 던전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부터가 문제다.

던전을 공략하는 건 처음부터 배제했다. 보스전은 고사하고 앞으로 두 번의 전투만 이어져도 전멸일 테니.

협회에서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틴다?

할 수는 있다만 ‘그것’이 원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것’이 이곳으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협회에서 받아온 골드박스뿐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인벤토리에서 금빛 상자를 꺼내자. 파티원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골드박스는 보기 드물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 때문에 나를 보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 골드박스?

확신을 가진 내 눈빛을 봤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희망 어린 얼굴이 되어있지. 그 안에 구세주가 들어있으리라 믿으면서.

과연 녀석들의 바람대로 이곳에 B급 던전 탈출석이 있을까?

글쎄. 과연?

[골드박스를 오픈합니다.]

휘황찬란하다거나, 오색의 빛이 던전을 뒤덮지는 않았다. 금색 상자답게 금빛이 던전 내부를 밝게 비추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황금빛이 던전 끄트머리에 있던 샌드웜의 시체 표면을 스쳐간 후였다. 어두컴컴해진 던전 안으로 메시지만 틱 하고 떴다.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이차원(異次元) 포탈석(???): 사용 시 [???]가 안배해 놓은 곳으로 이동합니다.

조건 : 아락투스의 권역 내에서만 사용 가능.]

또다. 등급을 알 수 없는 아이템이 떴다. 이번엔 설명창마저 불친절하다.

다만 생김새는 던전을 탈출할 때 쓰는 돌멩이와 똑같은 보라색이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녀석들이 희번뜩한 얼굴로 무기를 든 이유가.

어차피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목숨, 내게 대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겠지.

녀석들을 무시하고 돌멩이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차원 포탈석 아이템을 사용합니다.]

스르륵.

정면에서 한점이 휘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공간의 일렁임이 영역을 넓혀가며 번졌다. 그 힘이 가공스러울 정도였다.

아이템 하나에서 나온다고 믿기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기운이 내 쪽으로 쇄도해 왔다.

[아락투스의 힘이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탈출할 수 없습니다.]

[저항을 시도합니다.]

[저항에 완전히 성공합니다.]

[조건을 충족합니다 : 군단장 아락투스의 권역.]

[군단장 아락투스의 비밀창고로 이동됩니다.]

그 즉시, 마치 던전으로 이동할 때처럼 거부할 수 없는 인력이 나를 덮쳤다.

나머지 것들이 저마다 경악스러운 얼굴로 내게 뛰어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화악!

몸이 빨려 들어갔다.

그나저나, 직전 시스템 메시지가 분명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군단장 아락투스 어쩌고저쩌고.

진짜 안 죽는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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