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전주 D급 던전 (4)
계집이 눈을 빛냈다. 치기 어린 것답게, 황당한 제안을 건네온다. 나머지 도마뱀의 대가리를 일격에 벤 직후였다.
“71이라고? 재밌는 스킬이 있나 본데. 김현찬? 소속 없지? 특별히 우리 파….”
“레벨을 속였군.”
파티장이 계집의 말을 끊었다. 이름이 박중현이라고 했던가. 왼쪽 눈에 일자로 난 녀석의 흉터가 꿈틀거렸다.
“블랙마켓의 눈은 어떻게 속인 거지? …어쨌든, 당신은 우리를 속였어.”
그러고도 녀석은 살기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내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는 모습을 보일 뿐. 생각과는 달리 신중한 녀석이었다.
“…….”
이미 던전에 들어온 이후였다. 녀석들에게 더 이상 힘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다음으로 이동한다.”
박중현이라고 했던가. 녀석은 더 이상 이곳의 파티장이 아니다. 녀석들은 이곳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철저하게 내 말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곧장 대머리 레인저가 눈을 부라렸다.
“이게 진짜 미쳤나.”
제 팀장이 아직까지 조용히 나를 응시하는 이유를 모르는 걸까. 하물며 옆에 있던 계집도 입을 다물고 있는데.
대머리 녀석이 아까처럼 단검을 이리저리 굴리며 내게 달려왔다. 팀장이 말리기도 전이었다.
짜악!
녀석의 뺨이 우측으로 돌아갔다. 후두둑, 대머리의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 못 한 대머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굳어있었고.
추가적인 교육에는 힘을 싣지 않았다. 녀석을 굴복시키기 위함이었다.
짜악!
이번엔 대머리의 고개가 좌측으로 이동했다. 녀석의 만면에 분노가 휘몰아쳤다
녀석이 손에 들린 단검으로 나를 죽일 듯 찔러왔다. 이래서 상대와의 격차를 아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볍게 그것을 피한 직후, 다시 한번 손바닥이 매섭게 녀석의 얼굴로 날아갔다.
짜악! 짜악! 짜악!
그때부터는 일방적인 구타였다. 나머지 녀석들이 말릴 새도 없이, 던전 구석까지 대머리를 몰아붙였다.
“그, 그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군.”
짜악!
이리저리 피가 튀었다. 대머리의 얼굴이 어느새 벌겋게 퉁퉁 붓기 시작했다. 몇 번 저항하려던 시도마저도 무위로 돌아간 걸로 끝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녀석의 뺨 한 치 앞에 멈춰선 내 손에서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대머리의 눈에서 눈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방금까지 나를 죽이려던 너를 살려줘야 할 이유가 뭐지?”
녀석의 몸이 허물어졌다.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대머리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녀석뿐 아니라 사람이 그렇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굴복하게 되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자 나머지 파티원들 또한 아연실색한 얼굴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눈에는 하나같이 두려움을 품고서.
***
“던전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대머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만큼은 지금의 내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어두컴컴한 던전 내부는 늘 시간 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열흘하고 스물한 시간째입니다.”
대머리는 내게 굴복한 이후 늘 그랬듯 내 눈을 올려다보지 못한 채로 보고를 올렸다. 녀석의 얼굴 가득 굴욕감이 가득했다.
이것들과 열흘 가까이 지낸 결과,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됐다.
이 대머리 레인저가 어린 계집을 마음에 둔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아스팔트에도 꽃은 핀다더니. 음지에 서식하는 이것들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만큼은 있었나 보다.
“오른쪽으로 간다.”
“…우측에는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레인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그것쯤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뿐일까. 이미 몇 개의 갈림길이 있는지, 또 보스방은 어디인지까지도 파악해 놨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마나를 끌어올렸다. 배꼽 아래에서부터 퍼지는 파동이 던전 내부 곳곳을 훑고 지나갔다.
변한 게 없었다. 남은 몬스터는 120마리. 공략 최단루트는 지금 머무는 방에서 네 번만 건너가면 됐다.
가장 끄트머리에서 보스몹이 웅크리고 있었다. 마음먹는다면 10분 안에 보스몹을 죽이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짜증나네.”
이렇다 할 기연도, 함정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오늘까지 뭔가 튀어나오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할 테니 그렇게 알아둬.”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그렇게 말한 후 곧장 몸을 움직였다. 갈림길 끝에 새로운 갈림길이 보임과 동시에 새끼 리저드 서른 마리가 몸을 날렸다.
서걱-!
손짓 한번에 안에 있던 리저드의 몸뚱이가 반으로 잘려 나갔다. 뒤이어 따라오는 파티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곧이어 용기를 낸 걸까 파티장이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 살려주십시오.”
대뜸 파티장이 내게 목숨을 구걸했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이번에도 별다른 수확이 없다면 녀석들 중 하나를 던전 바깥으로 보낼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멀뚱히 녀석을 바라보자 파티장은 뒤에 있는 것들과 함께 무릎을 꿇어왔다.
“선생님께서 바라시는 게 어떤 것입니까? 원하시는 것이라면 뭐든 드리겠습니다.”
“곧 알게 되겠지.”
세상만사를 통달한 듯 굴던 파티장은 더 이상 없었다. 파티장의 눈에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다.
“혹, 선생님께서 이것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게 아닙니까?”
파티장이 각오를 세웠다는 듯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흥미로웠다. 녀석을 말리지 않았다.
“얼마 전, 골드박스에서 얻은 아이템입니다.”
“이게 뭐지?”
“선생님께서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이템을 얻은 즉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파티장이 건넨 것은 검은색 보석이었다. 대번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겉으로 봐도 흉흉한 기운이 느껴진다. D급 던전을 전전하는 녀석이 가지고 있을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 : 파악할 수 없는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현재 능력치로 아이템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녀석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아이템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이 반응하지 않는 것만 봐도. 딱히 이번 일과 관련 없다는 것이겠지. 허나 챙겨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은 후 앞을 보자 파티장을 포함한 녀석들이 일말의 희망을 품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휴식한다.”
대번에 녀석들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 같습니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모두가 잠든 시각이었다. 나 또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고. 목소리의 주인으로 짐작되는 것들은 파티장과 대머리 레인저였다. 던전 구석에 처박혀 최대한 목소리를 줄인 채였다.
“보름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협회에서 조만간 위치를 알아낼 것입니다.
“미치겠군.”
“확실합니다. 저 새…, 아니, 저 사람. 일부러 보스몹을 도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독 나를 지칭하는 목소리가 낮고 조심스럽다.
“확실해?”
“예. 던전 구조를 얼마 전에 완전히 파악했습니다. 확실합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일부러 이 던전 구석구석까지 파헤치고 있습니다.”
“…….”
녀석들이 잠시 말이 없어졌다.
“예지, 승현은?”
“근처에서 자고 있습니다. 깨울까요?”
“미치겠군.”
대머리가 머뭇거리기를 잠시, 결심한 듯 말했다.
“저 사람도 인간입니다.”
언제든 나를 죽일 준비가 됐다는 레인저의 말과는 달리 파티장은 다른 생각을 가진 듯했다.
“후…, 좋다. 조용히 깨워. 탈출석 가지고 있지? 녀석이 깨기 전에 조용히 빠져나간다.”
대번에 레인저의 목소리에서 억하심정이 묻어나왔다.
“팀장님. 탈출석만 해도 천만 원이 넘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리 놈이라 해도 지금이라면….”
아마 지금 저 현장을 직접 봤더라면 파티장의 눈썹이 꿈틀대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파티장의 목소리가 험악하게 깔렸다.
“시끄럽다. 목숨을 걸고 모험하라고?”
“후환을 남길 겁니까? 놈이 우리 얼굴을 모두 봤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 전부가 저 사람에게 달라붙어도 필패다. 정신 안 차려?”
“팀장님…! 이대로 나가도 저희들이 죽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놈의 눈빛을 봤지 않습니까?”
대머리가 간절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어지간히도 나를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놈의 감정이 단단히 상한 것이다.
이것 또한 ‘그것’이 안배한 과정의 일부일까 싶었다. 그래서 일단 녀석들의 행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후환을 남기더라도 이 자리에선 안 된다. 먼저 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게 먼저야. 그런 다음 작전을 세우든가 말든가.”
그러더니 파티장 놈은 당했다는 듯이 억눌린 목소리로 분노를 터뜨렸다.
“제기랄…! 저 사람, 최소한 120레벨이야.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어. 이제껏 번 돈 다 털어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닥치고, 애들 깨워.”
“…예.”
“최대한 조용히.”
은신 스킬을 쓴 모양이었지만. 대머리의 발소리는 선명하게 전해졌다.
“이예지…! 빨리 일어나! 탈출석을 쓴다. 그래, 지금 바로 나가.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계집, 이예지가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휙휙 돌아가는 이예지의 고갯짓이 불안했다.
혹시라도 지금 당장 내가 깰까 봐 나를 응시하는 눈빛 또한 선명하게 느껴진다.
“빨리!”
사랑에 눈이 먼 대머리는 그때까지도 이예지를 재촉하고 있었다. 마침 나머지 한 녀석도 그때쯤 일어난 상태였다.
결국 결심을 굳힌 이예지의 손에 뭔가가 잡혔다. 퍼져나오는 파동으로 미루어보아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녀석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던 것도 잠시, 내 몸이 이예지에게 뻗어갔다.
D급 원거리 딜러가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였다. 대번에 이예지의 탈출석이 내 손에 잡혔다.
“……!”
대머리 녀석이 그나마 반응이 빨랐다. 녀석이 눈을 부릅뜨고 내게 달려들었다.
잔뜩 흥분한 상태인지, 놈은 얼마 전 내게 뺨을 맞았던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빠악!
녀석은 내게 달려왔던 속도 그대로 튕겨 나갔다. 내 주먹에 얼굴이 함몰된 채로 그 자리에 허물지기까지도 순식간이었다.
죽이지는 않았다. 내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보여준 미래와는 다른 전개였기 때문이다.
“골드박스를 꺼내기 전인 것을 감사하게 여겨라.”
녀석에게 그리 뇌까린 후, 반대편으로 몸을 뻗었다. 그새 팀장과 옆에 있던 녀석 하나가 탈출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예지는 그때까지도 멍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익!”
회심의 표정을 지으며 덤벼든 파티장이 내 발차기에 동굴 끄트머리에 처박혔다. 곧장 녀석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나머지 한 놈만 남은 상태였다. 녀석이 어영부영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사이 파란색 입자가 서서히 녀석을 감싸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저것을 말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분명히 이런 생각만으로도 ‘그것’이 신호를 보내야 할 텐데 아직까지도 잠잠하다. 이미 정해진 미래라는 듯이.
“만약 이게 틀렸더라도 내 잘못은 아니다?”
아니라면 진작에 주의를 줬어야지.
그런 마음으로 눈앞의 녀석을 쳐다봤다. 어두컴컴한 동굴 한가운데 푸른색 빛의 입자가 스포트라이트 형태로 쏟아져 내렸다.
입자 너머 보이는 녀석의 표정이 밝다. 제 동료의 안위는 생각도 안 한다는 듯이.
화악!
언제 푸른 빛이 돌았냐는 듯 다시 던전 내부에 어둠이 들이닥쳤다.
신기한 것은, 던전을 빠져나갔어야 할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이게 무슨!”
“어처구니가 없군. 진작에 말해 주든가.”
애초에 ‘그것’이 바란 게 이것이었다. 탈출석을 통해 던전을 빠져나가려고 시도하는 것.
그 사실을 증명하듯 시스템 메시지가 등장했다. 처음 보는 문장들이었다.
[마왕군 제3군단장 아락투스의 가호를 받는 던전입니다.]
[탈출할 수 없습니다.]
[아락투스의 분노가 휘몰아칩니다. 던전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마법 저항력이 낮습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던전 난이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난이도 책정 : B등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