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48화 (48/170)

48화 전주 D급 던전 (3)

“채팅?”

“말했잖아. 플랫폼 역할도 한다니까?”

“겨우 그런 식으로 파티를 맺는다고? 뭘 믿고?”

“여기에 등록된 녀석들은 모두 우리가 신원을 확보하고 있거든.”

그 말인즉슨, 무슨 일이 벌어지면 블랙마켓에서 조사 후 징벌까지 내린다는 뜻이었다. 우습게도 협회의 역할을 블랙마켓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던전에 들어간 이상 내부의 일은 그들만 알 일이다. 여기에 사회의 법률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양지인 던전 안에서도 우습게 살인이 벌어지는 판에, 음지의 것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 우리 도련님께서는 이런 주먹구구식 파티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시군.”

이건 도발하는 게 맞다. 나를 골리는 녀석의 얼굴 만면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상하다. 이런 식의 도발에 한번도 기분 상한 적이 없었는데 화이의 얼굴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었다.

“블랙마켓의 데이터만 있으면 너희들이 박멸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말이군.”

결국 참지 못하고 녀석에게 똑같이 돌려줬다. 순전히 감정적인 대응이었지만 근거는 있었다.

그것이 반응하지 않는 한, 오늘 밤 내 신변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니까.

화이의 멘탈은 대단했다. 내 말에 그저 어깨를 으쓱인다.

“친구. 서울 한복판에 우리 본거지가 떡하니 있는 이유가 뭐겠어. 공생이라고. 협회에서는 이것들이 블랙마켓 바깥에서 설치는 걸 더 싫어할걸? 우리가 국회의원 뒷구멍에 얼마나 찔러주는지 알면 도련님께서 깜짝 놀라겠군.”

녀석이 자랑스럽게 블랙마켓의 규모에 대해 주절대는 것을 무시하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눈앞에 있는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메시지가 왔다.

[전사계열, 71레벨?]

응?

화이를 쳐다보자 잘했지 않냐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일단 그렇게 맞춰뒀어. 너무 높은 레벨이면 아무래도 의심을 사니까.”

녀석이 내게 보이는 노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아무리 녀석이라고 해도 서버의 데이터를 조작하는 건 부담됐을 텐데.

최고등급의 블랙마켓 아이디 어쩌고 한 이야기는 허언이 아니었나 보다. 동시에 화이가 내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보이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뻔하지. ‘그것’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뒷골목 깡패들의 두목이 되는 미래는 안 보여주냐고. 그래도 잠잠한 이유는 그런 루트는 그것조차도 상상이 안 된다는 뜻일 것이고.

때마침 채팅이 또다시 울렸다. 뭔가를 고심한 듯했다.

[던전공략 횟수 5회라. 초짜지만 나쁘지는 않군. 좋다. 이틀 후 오후 4시까지 전주로 와라.]

그러면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순식간에 파티 하나가 결성된 것이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고 생각할 무렵 앞에 있던 화이가 변명하듯 말을 건네 왔다.

“이 녀석들. 너를 제외하면 팀으로 활동하던 모양이야.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던전 입성 전에 근거리 딜러 한 명이 죽었나 본데? 정말 급했던 모양이야. 원래 이 정도로 절차가 간단하진 않은데.”

“적당한 근거리 딜러라면 아무라도 상관없다?”

“그런 셈이지.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인가 봐.”

화이의 재밌다는 얼굴을 끝으로.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내 뒤를 밟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부탁하는 듯한 어조였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거기에 녀석이 두 손을 번쩍 드는 리액션을 취했다. 아무리 봐도 손영혁과 형제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 도련님께서는 고맙다는 인사를 그렇게 하는군! 어지간히 비싼 몸이야. 크큭. 오히려 열의가 생기기도 하고. 어찌 됐든 다음에 보자고!”

그러면서 쿨하게 다음을 기약한다. 동생과 똑같은 점이 하나 있기는 하다.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는 것.

***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역용주를 들이켰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음에 의문을 표하기도 잠시.

우드득.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기괴하다. 이리저리 뼈와 근육이 재배치 되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영화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도 통각이 반응하는 부위가 없었다.

[역용주 지속시간 : 6일 23시간 37초]

[능력치가 소폭 하락합니다.]

거울을 보자 낯익은 얼굴이 있다. 내가 죽였던 김찬현이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여러 가지 표정을 지어봐도 한 점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법의 영역은 이토록 신비한 것이다. S급의 검신의 축복을 가지고 있는 나도 탐날 만큼.

하늘을 쳐다보자 눈발이 거셌다. 해가 질 시간도 아닌데 어두컴컴한 것도 그랬다. 괜히 찜찜하다. 마치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뒤지기야 하겠어?”

약속했던 폐교 안 3학년 3반 교실에 들어가자마자였다. 대번에 네 쌍의 시선이 내 몸에 부딪혔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녀석들의 파동을 읽어냈고. 별 볼 일 없는 것들이었다.

“너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니 그것보다, 시간 개념 없어? 왜 이렇게 늦어?”

갓 스물쯤 됐을 법한 여자 하나가 눈썹을 찌푸리며 몰아붙인다.

늦었다고?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보자, 때마침 알람이 울렸다. ‘그것’이 미래 예지를 통해 보여줬던 시간이었다.

웃기다는 생각도 잠시, 파티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나를 제외하고 네 명. 모두 알고 있는 얼굴이다. 그것이 보여준 미래에서 봤던 낯과 일치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헌터 세계에서는 힘이 곧 권력이다. 지금의 나는 71레벨밖에 안 되는 초짜일 뿐이고.

기세등등한 앞의 여자에게 빌빌 기는 게 맞았다. 여자가 원한 것도 그런 내 모습이었을 테고.

그런 내 모습에 만족했다는 듯, 여자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김현찬? 처음 듣는 이름인데…. 늦은 나이에 각성했나 보구나? 그것도 모자라 곧장 지상에서 퇴출당했고. 아주 구제 불능인 새끼구나?”

양지의 헌터들을 지상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이 어린 계집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지만, 왠지 내 계획에 방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썹을 까딱거렸을 것이다.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대머리 하나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렸다.

“이게 미쳤나. 뒤질래?”

녀석의 손에 어느 순간 단검이 잡혔다. 레인저인 모양이었다. 놈이 내 멱살을 잡았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녀석이 제멋대로 내 얼굴을 해석했다.

“한 번만 더 지껄여봐. 진짜 죽여줄 테니까.”

놈의 눈빛이 흉흉했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놈이 정말로 죽일 각오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되뇌었다. 일단은 녀석들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곧장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이 나서 그만.”

“그만. 거기까지 해라. 던전 들어가기도 전에 이래서 되겠냐.”

제일 뒤에 있는 젊은 사내였다. 복장부터 힐러를 가리킨다. 녀석이 이 파티의 대장이었다.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만사 귀찮다는 얼굴인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D급 던전 팀장이 세상 달관한 고수 흉내를 내는 꼴이라니. 얼마나 이것들이 떠받들어 줬으면 이러는 걸까.

속마음을 숨기고 고개를 바짝 숙였다. 황송하다는 눈빛을 가득 담고서.

“파티에 참여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71레벨의 근거리 딜러라면 D급에서 나쁘지는 않은 전력이다. 1인분의 몫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는 뜻이었다.

“눈치는 빠르네. 그래, 네 몫으로 돌아갈 박스는 없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래?”

계집이 제 지팡이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말했다. 지팡이 주위로 간헐적인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가면 죽인다는 뜻이었다. 이들에게는 살인이 이토록 쉬운 일인 건가.

내가 침묵을 지키자 긍정으로 받아들인 걸까. 대머리 레인저가 은혜를 베풀 듯 던전 입구를 가리켰다.

“미궁형, 도마뱀 새끼들이 나오니까 각오 단단히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브리핑은 아카데미 첫 실습 이후로 처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반발하는 이가 없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아참. 우리 파티에 탱커는 없다. 근거리 딜러인 네가 앞장서라는 소리야. 너무 걱정하지 마. 파티장님께서는 지상에서도 수준 높은 힐러셨으니까. 왜, 불만 있니?”

방금 기억났다는 듯 계집이 그렇게 말하는데 동시에 녀석들이 은근슬쩍 무기를 보여 준다.

아참은 무슨. 음지에 있는 것들의 생리는 더더욱 노골적이고 본능대로라 걸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화이의 말이 맞았다. 이 녀석들에 비하면 나는 곱게 자란 도련님이나 다름없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만 이것들에게는 따로 교육을 시켜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도 바로 앞에 있는 쓰레기 정도는 쓰레기통에 넣을 줄 아는 사람이니까.

[박중현이 파티에 초대했습니다. 응하시겠습니까? Y/N]

파티에 초대되자마자 파티장 박중현이 귀찮은 얼굴 그대로 일어났다. 던전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입장한다.”

교실 중앙에서 보라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던전의 입구를 쳐다보자 거부할 수 없는 인력이 나를 잡아당겼다.

화악!

눈을 뜨자마자 두 갈래 길이 보였다. 미궁형 던전이 이렇다. 처음부터 선택의 압박을 받는 것이다.

둘 중 한 곳은 몬스터가 없고, 나머지 한 곳은 독니를 내뿜은 리저드가 살고 있을 것이다.

눅눅한 던전 곳곳에서 파충류의 알이 심장처럼 박동하고 있다. 레인저의 실력이 아예 허풍은 아니었군.

“어느 쪽으로?”

“죄송합니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취소.

일성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임한나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박하영 정도만 됐어도 단번에 미궁을 꿰뚫어 봤을 테니까.

“왼쪽으로 간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리 파티에 탱커는 없다. 김현찬이라고 했나? 나를 믿고 녀석들에게 달려들어라. 어그로를 담당하는 만큼 내 힐링이 너에게 집중될 테니.”

뻔뻔하게도 그런 말을 잘도 한다. 71레벨의 애송이 근접 딜러가 탱커까지 맡았다가는 채 보스몹에 도달하기 전에 죽을 것이 분명한데도.

기가 차는 헛소리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 중 하나가 대번에 반발했다.

“이 새끼가! 파티장님이 말씀하시잖아! 대답 안 해?”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 길은 언제 보여주는 거지?”

던전에 들어온 이후에도 이 같잖은 연극을 계속해야 하냐는 뜻이었는데 답이 없다.

일단 장단에 맞춰주라는 뜻일까. 마지못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나에게 주먹을 한 방 갈기려던 녀석이 파티장에게 재지당한 직후였다.

잘했다. 그 주먹이 한치만 더 움직였어도 팔이 잘렸을 테니까.

“설마 이제 와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으려고?”

파티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이 새끼가 진짜.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뒤지기 싫으… 어, 어? 야! 뭐해!”

계집의 말을 무시하고 왼쪽 갈래로 뛰어갔다. 파동이 느껴졌던 대로 왼쪽 갈래에 들어가자마자 어둠 속에서 세로로 길쭉하게 찢어진 노란색 동공이 보였다.

총 여섯 마리. 종류는 모두 같다. 새끼 도마뱀이었다. 놈들을 보자마자 몸을 던졌다. 힘을 조절했다. 그것이 내게 연극을 계속하라고 하니, 따를 수밖에.

롱소드가 놈의 비늘에 막혔다. 동시에 리저드의 손톱이 내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궁금하기는 했다. 상태창 상으로 보이지 않는 스탯 중에는 독에 대한 내성도 있다. 한번 맞아보기로 했다.

[독에 대한 내성이 높습니다.]

[완벽하게 저항합니다.]

예상대로 낮아진 스탯으로도 D급의 도마뱀은 내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어깨너머 뒤쪽에서는 허겁지겁 마법을 날리는 계집이 보였다. 헉헉대는 게 전력을 다해 뛰어온 모양이었다.

마침 내가 도마뱀 하나의 머리를 벤 직후였다. 헐떡이는 계집의 눈이 동그랗게 바뀌었다.

“하, 이 새끼 봐봐. 제법 하는데?”

황송할 따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