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청운적하검법 (2)
“음?”
협회장이 처음으로 진짜 표정을 드러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 내 연기가 어색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저 협회장의 통찰력이 남다른 것뿐이다. 절대자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가슴이 시큰했다. 조마조마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날까 무서웠다. 오랜만에 든 감정이었다. 원초적인 공포가 나를 집어삼켰다.
“…….”
정적이 흘렀다. 그 사이로 협회장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호흡이 힘든 것은 기분 탓이 아니다. 집무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숨이 막힐 정도로.
하지만 눈을 피해서는 안 됐다. 그 순간 죽는다. 아니, 꼭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는다 해도 문제였다.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장으로서 이제 막 날아오르는 애송이 하나를 억압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나 될까.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열 개가 넘었다.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것들로.
“아무것도 아닐세. 잠시 딴생각을 했어.”
협회장이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순간 가라앉은 공기가 대번에 풀어졌다. 그제서야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협회장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 자답한 것이겠지만.
“질문 하나 하지. S급 각성자 전부와 그 외 나머지 각성자 전부가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 것 같은가?”
태연하게 협회장이 말을 건네온다. 방금까지 나를 강압하던 기운에 대해서는 일언도 하지 않고서.
내가 협회장을 마주하고 했던 생각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말장난 따위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당연히 S급 각성자 집단이 이긴다. 단언해도 좋아.”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SS급 각성자가 있다는 가정을 해봄세. SS급 각성자 한 명과 S급 각성자 전체가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 것 같나.”
“…전자입니까?”
“맞네.”
“S급 이상의 단계가 존재하는 줄 몰랐습니다.”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 그런데 내 생각엔 조만간 등장할 것도 같네. 아, 자네를 지칭하는 건 아니야. 그저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지. 세상이 점점 변하고 있어. 소수의 강자들이 모든 것을 독식하고 있다는 말일세.”
손정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같은 절대자에게도 고민이라는 게 있는 걸까.
“결국 소수의 집단이 모든 것을 차지할 날이 올 것이야.”
“그것을 막는 게 목적이십니까?”
“가능했다면 진작 그리했을걸세. 그건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야.”
손정연이 쓰게 웃으며 차를 들이켰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내 꿈은 대한민국 모든 각성자를 한데 묶는 것일세. 대한민국 국적의 각성자라면 빠짐없이 협회의 소속이 되는 것이지. 소수의 집단에 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절차기도 하고.”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독재 정권을 유지하던 나라들이 비슷한 짓을 자행하다 어떻게 됐던가.
하나같이 정권이 교체됐다. 혹은 국가가 파멸로 치닫던가.
모든 각성자들을 규합해 하나의 단체를 만든다? 꿈같은 이야기였다.
“노인네의 흰소리로 듣지 말게. 언젠가, 아니 머지않은 미래에 그렇게 될 테니. 말하지 않았나. 시대의 흐름이라고. 무력의 쏠림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협회장의 눈이 반월처럼 휘었다. 머릿속으로 그날을 그리는 듯했다. 모든 각성자들이 자신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을.
“제게 그것을 알려주시는 이유가….”
“영광으로 생각해도 좋네. 대계의 첫 단추가 자네이니.”
그때였다. ‘그것’이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미래를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협회장과 관련된 것이겠지. 물론 내게 거부권은 없었다. 그것의 뜻에 따라 정신을 맡겼다.
팟!
***
어쩐지 안심이 됐다. 미래를 보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잠시나마 도피처로 대피한 느낌이었으니.
어제의 내가 앞에 있었다면 멍청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을 것이다. 안일한 것도 정도가 있지. 병신 새끼. 한석훈이 그리도 조심하라고 일렀는데.
지금 이렇게 미래를 보는 상태에서, 할 수만 있었다면 크게 숨을 들이마셨을 것이다.
그래, 자책은 이만하면 됐다. 지금은 정보를 수집할 시간이다.
“…최연소 각성자 협회의 수장이 되셨습니다. 심정을 말씀해 주시죠.”
전방이었다. 기자로 보이는 여자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전해오는 놀라운 내용과는 별개로 거울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침통스러운 얼굴. 내가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장소도 그랬다. 협회의 어느 전각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단상 위에 내가 있었고 앞에는 기자들이 연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번쩍거리는 것은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였고.
“아직 선대 협회장님의 급작스러운 비보에 경황이 없습니다. 임시일 뿐이라지만 이렇게 큰 자리에 앉게 된 만큼 슬퍼하기보다는 앞으로를 대비해야겠습니다. 우선 어수선한 협회 분위기를 수습하는 데 모든 힘을 쏟겠습니다. 그 이후, 이 자리를 내려놓고 한 명의 협회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애송이 같은 말투가 아니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에 힘이 있었다. 미래의 어디쯤일까.
“고 손정연 전 협회장의 죽음이 미심쩍다는 말이 도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님은 그 말을 믿으십니까? 손 협회장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는 말.”
“…예?”
노련해 보이는 기자도 당황하게 만든다. 미래의 나는 지켜보는 나도 놀랄 만큼 말을 술술 풀어냈다. 아주 청산유수가 따로 없다.
“내용에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제 협회에서 발표한 입장문을 번복하겠습니다.”
촤르륵-
미래의 내가 숨을 한번 들이켰다. 그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며 쏟아졌다. 말하는 타이밍을 재는 게, 기자회견에 아주 능란한 모습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의 추측대로, 협회에 반하는 단체가 작일 손정연 회장을 살해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을 속인 점, 협회의 대표로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단상 옆으로 나온 내가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반듯이 선 내 얼굴이 회견장 끝에 있는 거울에 비쳤다. 결연에 찬 모습이었다.
“선대 회장님께서는 그토록 각성자들의 대통합을 외치셨습니다. 허나 그것은 독재를 위함이라거나 각성자들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더 큰 자유를 위해, 또 나아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셨습니다. 자신이 지탄을 받더라도 대한민국의 천년대계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겠다는 협회장님의 말씀은 사실이 됐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각성자에게 길을 막고 물어보십시오. 어느 누가 억압당한다고 생각하는지.”
다음에 이어질 말에 모두의 이목을 주목시키기 위해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이 기자회견에 방점을 찍을 내용이 이어졌다.
“국내 각성자 98퍼센트가 협회에 속해 있지만 아직도 협회를 믿지 못하고 지하에서 단체를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자유을 위한다고 하지만 국가전복과 분열이 목적인 이들이 어떻게 평화를 가져오겠습니까. 때문에. 임시 협회장으로서 이 자리에서 선포하는 바입니다.
첫째. 국가와 국민을 분열시키는 사설 집단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와 관련해 사태가 해결될 때 까지 협회의 각성자들과 외소속 각성자들 모두 협회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른다. 이에 반할 시….”
줄줄이 말이 이어졌다. 명분은 그럴싸하다만 결국 각성자들을 협회의 입맛대로 다루겠다는 말이었다.
사이비 교주가 되는 미래를 봐서일까. 미래의 내 모습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이쯤 되면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사이사이 어떤 일을 겪길래 사이비 교주가 된다거나, 이렇듯 독재자가 되는 걸까.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주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면모가.
영화관에서 팔짱을 끼고 감상하듯 여유로운 마음으로 미래의 나를 관찰했다. 어디까지 가나 보게.
물론 이 모든 미래들이 현실로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뿐이다. 이런 루트도 있다는 것을.
“회장님.”
기자회견을 마친 후였다. 손영혁이 나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녀석은 제 할아버지가 죽었는데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더불어 언뜻언뜻 보이는 손영혁의 얼굴로 시기를 추측하는 것을 그만뒀다. 현재와 별다를 것 없었기 때문이다.
노화를 늦추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손정연 협회장이 특이한 것뿐이다.
도착한 곳은 이 환상의 밖, 현재의 내가 있는 곳이었다. 익숙한 듯 상석에 앉은 내가 손영혁의 보고를 들었다.
“금일 오후 8시를 기점으로 대테러 1, 2, 3과 모두 강원도에 있는 놈들의 본거지를 기습 예정입니다. 또한….”
진짜 전쟁이라도 준비하나 싶었다. 들리는 것만 해도 사단 규모가 넘는다.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2퍼센트의 반동분자를 잡기에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병력이었다.
손영혁의 태도도 그랬다. 둘만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굉장히 공손한 투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 것일지도. 이곳, 미래의 나는 협회장이 됐으니까.
“보고는 됐다. 그것보다, 협회장님 장례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사흘 후 국장으로 합의된 사안입니다. 이미 회장님 스케줄에 넣었….”
“애쓸 필요 없다. 며칠 휴가를 줄 테니 쉬고 오도록. 너에게 협회장님이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닙니다. 어수선한 협회 분위기부터 바로 잡은 후에 다녀오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이것 또한 가면일까. 현재와 미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겉으로 봤을 때는 녀석과 내가 돈독해 보이기는 한다.
기계처럼 감정 없는 얼굴로 줄줄이 보고를 해오는 손영혁에게 손짓했다. 자연스러운 하대였다. 그러자 녀석이 곧장 말을 멈추고 내 옆에 앉는다.
“궁금한 것이 많을 것이다. 물어봐도 좋다. 너는 알 자격이 있으니.”
“…….”
“설마 너도 그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지? 반란단체가 손 회장님을 살해했다는 발표 말이야.”
내 목소리는 다정한데 힘이 있었다. 현실에서 봤던 협회장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래. 내가 죽였다.”
충격적인 말에도 손영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나?”
“예상은 했습니다.”
“한데 어찌 그리 태연한 것이지? 네게 손정연 회장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고 했거늘.”
“전 이미 현 회장님께 충성을 바쳤습니다.”
내 시선이 잠시간 손영혁을 훑었다. 진실을 꿰뚫듯 녀석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이유는 궁금하지 않느냐.”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압니다.”
대놓고 도발을 걸어오던 현재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녀석도, 나도.
“언제고 말해줄 테니 준비가 되면 물어보도록.”
“…예.”
“또 한 가지. 준비할 일이 있다.”
“분부를 내려 주십시오.”
“회를 안정시키는 즉시 북진한다. 북한은 물론이고 만주벌판 너머까지.”
왜 아닌가 했다. 이곳의 나는 세계정복이 목적인 듯했다.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일, 아침 드라마를 보듯 그것을 감상했다.
“왜 이렇게 하나 싶겠지. 너에게는 들려줄 사실이 있다. 시스….”
깊은 물 속에 잠긴 듯 우리가 하는 대화가 웅얼거렸다. 시간이 다 된 것이다. 예상했다. 늘 그렇듯 ‘그것’은 핵심 퍼즐만큼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을 놈이라 칭하는 이유였다.
팟!
***
현실로 돌아오는 감각과 함께 시야를 가득 채우던 빛이 점차 잦아들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들이 점차 또렷해졌다.
앞을 보니 그랬다. 웬 늙은이 하나가 제 미래도 모른 채 손을 건네고 있었다. 천년대계니 어쩌니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