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3)
손영혁이 익숙한 움직임으로 연무장의 검을 들었다. 발걸음에서부터 짐작했듯, 그는 검을 사용하는 근접딜러였다.
A급 검사와 대련할 기회는 손쉽게 오는 게 아니다. 그것도 전력을 다하는 A급 검사와는. 한석훈의 훈련과는 또 다를 게 분명했다. 깨달음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롱소드의 손잡이를 매만지는 손영혁에게 말했다.
“진심으로 상대해주십시오.”
물론 스킬은 빼고. 그러자 손영혁이 씨익 미소를 짓는다. 애송이의 치기 어린 행동처럼 보인 걸까.
“…아시다시피 중간에 멈출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다는 이야기였다. 도발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니까.
다만 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상위차원에 대한 것이다. 만약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분명히 그것이 신호를 보냈을 테니까.
“힐러를 붙여드리겠습니다. 몸을 회복하시죠.”
거절하지 않았다. 완벽한 몸 상태로 전투에 임해야 한다. 힐러가 스킬을 사용했지만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만큼 방금 전의 상대들이 내게 손쉬웠다는 의미겠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길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다. 한 합만에 끝나거나, 잘해봤자 두 합이다. A급 헌터의 벽은 그 정도로 높다.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종이 울렸다. 동시에 손영혁의 몸이 사라졌다. 또한 그 즉시,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온다!
내 허리를 양단할 듯 좌측에서 오는 공격이었다. 아득할 정도의 힘이 맞닿기 전부터 전해졌다. 열기가 공간을 가르며 나를 덮치고 있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라.
손영혁의 그러한 의도가 담긴 공격이었다. 정직한 궤도, 허나 소름 돋을 정도의 강력이었다.
전신의 모든 마나를 끌어쓰고, 그것으로도 안돼 아드레날린 부스트를 시전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헬리오스의 심장을 착용했다.
열기가 바람을 타고 나를 덮친다. 아직 손영혁의 검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그 직후였다.
콰앙!
[헬리오스의 심장이 인벤토리로 돌아갑니다.]
검과 검이 부딪혔을 뿐인데 정작 나를 지켜주던 갑옷이 인벤토리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막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검끝에서부터 울린 검명에 전신이 요동쳤다. 이가 갈릴 만큼 엄청난 공격이었지만 막았다.
반격할 틈 따위는 당연히 없다. 다음 공격이 바로 들어왔으니까. 이번엔 좀 더 강하게!
콰앙!
조금만 늦었더라도 정말 몸이 갈렸을지도 몰랐지만. 버텨야 한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깨달음의 전초였다.
목숨을 건 전투상황. 그런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손영혁이 뻗었던 검을 회수한 순간, 또다시 뇌리에서 전극이 튀었다.
동시에 손영혁의 다음 검로가 머릿속에서 번뜩이면서 내 검이 앞서 움직였다. 방어를 위한 동작이었다.
후웅!
이번에는. 느껴지는 풍압부터가 달랐다. 확신했다. 이 공격이야말로 손영혁의 전력이 담겼다. 온전한 A급 근접딜러의 공격이 상단에서부터 그어진다.
스킬을 쓴 것도 아닐 텐데 손영혁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력이 먼저 나를 짓눌렀다.
으득.
땅에 뿌리를 내리듯 발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럼에도 뒤로 밀린다. 직후, 검이 맞부딪쳤다. 번지는 파동만 봐도 굉음이 터졌을 게 분명한데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고막이 터진 걸까? 대신 뇌리에서 번개가 요동쳤다. 동시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흔들리던 검이 중심을 잡은 것도 그때였다.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게 분했던 걸까. 네 번째 공격이 살기를 머금고 슬로 모션처럼 다가온다. 놈이 아차하는 얼굴이었지만 관성에 의해 스스로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놈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힘이 검에 도달한 게 눈에 훤히 들어왔다.
손영혁의 검술은 놈의 성격과는 달리 진중하고 묵직하다. 한치의 힘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치밀한 검로를 전개하고 있었다.
최태성이 나를 위해 만들었던 비무대회, 그곳에서 한석훈과 김현일의 검술을 조합해 만든 내 독특한 검술에도 영향을 줄 만큼 경이로운 힘의 분배였다.
전력을 다한 놈의 네 번째 공격은 모순되게도 그 전보다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다. 검을 가로로 눕혀 목을 찔러오는 살기 어린 검을 막아낸 후였다.
놈의 눈빛이 ‘어떻게?’ 하고 당황으로 물들어있었다. 인정하게 만들라고 했던가. S급의 검신의 축복은 손영혁의 검술을 단 세 번만에 완벽하게 분석해서 낱낱이 해체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검술 재능이 지금 이 순간 그 이상의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놈을 향해 쇄도했다.
***
손영혁의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내 검이 저 멀리 날아갔고 놈의 롱소드가 내 목 언저리에 있었지만. 승자와 패자는 그 반대였다. 이번 결투는 놈의 인정이 목표이지 않았던가. 놈의 얼굴이 그것을 보증했다.
“어떻게. 어떻게.”
녀석이 그런 말만 되풀이했다. 자신의 검을 바라보면서. 넋이 나갈만했다. 내가 방금 보여준 일격은 녀석이 가진 검술의 완벽한 상위호환이었으니까.
“너, 너…이 새끼! 손영혁!”
연무장의 입구였다. 손현욱 이사가 얼빠진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목에 닿을 듯 말 듯 한 녀석의 검을.
“저 새끼 빨리 치워!”
손현욱이 그렇게 외치자 섬전처럼 감찰과의 단원들이 녀석을 뜯어말렸다. 그런데도 녀석은 그 자리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어떻게 한 거지?”
녀석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게 물었다. 여전히 얼굴은 상실감으로 가득한 채로.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적에게 알려줄 기술 따윈 없다.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골적인 얼굴이 돼서는 아주 당당하게 물어온다. 이제 말까지 놓아가면서.
“…….”
내가 여전히 대답이 없자 녀석이 검을 거두고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멱살을 잡는다. 이성을 잃은 게 분명했다.
그럴만했다. 그것은 놈의 정수가 담긴 검술이었으니까. 자신의 인생이 담긴 기술을 단 세 합만에 파훼당한 것도 모자라 더 상위등급의 것을 가져온다면 누구라도 저럴 것이다. 각성자가 아니라도 말이다.
“조금 선을 넘는 것 같은데.”
내 말에도 녀석이 고개만 젓는다.
“이놈! 그만두지 못해!”
급기야는 손현욱이 다가와 놈을 떼놓았다. 녀석이 그제야 힘을 풀었고, 대번에 녀석의 뺨이 돌아갔다.
그런데도 놈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우쭐해있던 놈의 눈빛이 죽어있었다. 낯빛도 어두웠다. 젊고 호기로운 A급 헌터는 거기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 아들놈이….”
녀석이 손현욱 이사의 아들이라는 것은 짐작했던 것이라 놀라지 않았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볼 때마다 사과를 받는구나 하는 감상만 있을 뿐. 그때였다.
“잘들 하는 짓이구나. 잘들 해. 아주 얼굴 들기가 부끄러울 지경이야. 네놈들은 내가 무릎이라도 꿇길 바라느냐?”
뒤에서 울린 목소리였다. 언제 온 지도 모를 만큼 기척이 없었다.
“회, 회장님!”
손정연. 대한민국 모든 각성자들을 대표하는 남자. 그가 거기 있었다. 70대의 나이에 걸맞게 노쇠했지만 담겨있는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깊다.
그럴 수밖에. 한국의 4대 각성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각성자니까. 협회장으로서의 위신을 위해, 또 정계에 있기 때문에 한곳에 묶을 수 없다 해서 번외로 빠졌지만. 그 힘만큼은 한국의 그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했다.
꿀꺽.
여기서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해도. 심장이 두근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제 손자를 건들지 않았는가. 내가 한 짓은 그가 내게 가지고 있는 호감을 반감시키기에 충분했다.
손정연이 내게 걸어왔다. 바보 같은 일이지만, 언제든 출수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내가 죽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오는 길에 대충 사정을 들었소. 다 내가 부덕한 탓이니, 너무 노여워 마시게. 사과드리오. 내 철없는 손자가 이리 무례를 저질렀으니 할 말이 없네.”
믿지 못할 광경이다. 대한민국 권력 최상단에 위치한 협회장이다. 혹자는 임기 5년짜리 대통령보다 종신직에 가까운 협회장의 권력이 더 강하다고 할 만큼 드높은 권세를 누리는 그가 내게 직접 사과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나는 확실한 애송이였다. 한석훈이나 백인호였다면 무슨 반응이던 바로 튀어나왔을 텐데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행동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킨 듯했다. 뒤에 있던 인물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감찰과 전원은 물론이고 손현욱 이사와 방금까지도 죽은 눈빛이었던 녀석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고 보니 내 눈빛이 꼭 그랬다. 방금까지도 생사투에 가까운 비무를 겪었다. 눈빛에 살기를 머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협회장의 얼굴을 쳐다보는 내 눈빛에 광오함이 담겼다고 오해할 만도 했다.
정적이 끝없이 흐른다. 협회장도 내 대답만 기다리고 있다. 그럴수록 나도 난감해졌다.
차라리 뒤에 있는 놈들이 나를 더러 광오하다고 말이라도 꺼냈다면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일언반구 없이 이 상황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항상 이렇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일만 벌였다 하면 스케일이 이토록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심정을 티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에.
한석훈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자. 한석훈이라면, 한석훈이라면.
“그쯤 하시죠.”
내 목소리가 나도 놀랄 만큼 건방지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협회에서는 지금 저를 억압하시는 겁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들었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나답지 않은 말투였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웠다. 보고 들은 게 많아서 그래서일까.
“사과를 받는다면 회장님의 손자분께 받아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내가 녀석을 턱짓했다. 그러자 천천히 협회장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침잠한 눈빛이 녀석을 향했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의 나로서는 의중을 읽어낼 수 없었다.
“뭐하느냐! 얼른 나오지 않고.”
손 회장이 호통치자 녀석이 부리나케 앞으로 나왔다. 녀석이 질끈 눈을 감고는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성을 잃고 그만….”
내가 놈의 말을 끊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세게 나가기로 한 것이다. 손익을 계산해도 이편이 나았다. 할 거면 과감하게. 한석훈의 지론이었다.
“진심이 안 느껴져.”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인데도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다. 진짜 한석훈의 영혼이라도 덧씌워진 듯 상황에 몰입했다.
“나이보다 한참이나 이른 성장 때문이겠지. 그릇이 그렇게 작은 건.”
하대하는 말투에도 녀석은 아까처럼 눈썹을 꿈틀거린다거나, 대뜸 멱살을 잡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놈도 눈치가 있다면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네 주둥이로 직접 말해봐라. 아까 그랬지 않나. 인정을 받아내라고. 인정하는 거냐?”
협회장의 앞이라서 그런 것일까. 녀석이 대번에 고개를 숙인다.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지금 연기를 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이태진 씨의 검술에 감탄했습니다. 제게 큰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제 어리석은 행동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당장이라도 무릎 꿇고 싶지만, 그 또한 제가 기만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됩니다. 허락하신다면, 제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녀석은 말투부터 바꿨다. 극존칭을 담아 나를 대한다. 그러고도 녀석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무릎 꿇는 것을 허락해 왔다.
놈의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이미 그 말을 뱉은 것만으로 놈의 위치에서 나 같은 애송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무릎을 꿇린다? 고민하던 것도 잠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면 협회와 척을 지겠다는 의미다. 내 향후의 거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은 이 정도로만 해도 됐다.
“말로는 뭘 못할까. 네깟놈 무릎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줄 아나? 협회장님의 얼굴을 봐서 이쯤 하겠다만, 이 일은 잊지 않겠다. 약속했던 것이나 지켜.”
이미 큰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감찰과의 정예들이 주는 깨달음은 또 다를 것이다. 원래 바라던 것도 이것이었다.
“예. 이태진 씨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대로….”
“닥쳐. 지금 당장 내놓아라. 대구궁합진을.”
기감이 극도로 예민해진 지금이 적격하다. 내 파격적인 언사에도 놈은 표정 한번 안 바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손 회장과 이사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본다.
‘이런 미친 새끼.’
그런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