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38화 (38/170)

38화 복수 (3)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헛것이 보였다. 자신은 죽어가고 있었다. 모래와 죽은 피가 입안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녔고, 두 팔은 잘려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A급 힐러가 붙는다면, 살 수 있을 것이다. 힐러까지도 필요 없다. 자신의 재생능력을 생각한다면 포션 한 병이면 충분했다.

“네로드는 어디 있지?”

오색 찬란한 갑옷을 입은 인형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 질문과 함께 어지러웠던 머리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저 형상은 최태성이다. 자신을 죽이러 온 염라대왕.

헌데 왜? 네로드?

아, 네로드 님이 명령한 게 있었지. 이태진을 데려오라고.

그런데 네로드? 네로드의 명령?

피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반대로 머리는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뇌를 꽁꽁 묶고 있던 끈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먼 과거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트리, 선물, 다정한 어머니와 아버지.

“네…로드. 다 거짓말…이었어.”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애초부터 학대 따위는 없었다. 애초부터 죄지은 인간들을 징벌한 게 아니었다.

자신은 패륜을 저질렀고,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거리낌 없이 빼앗았다. 네로드에 세뇌당한 채로!

“커헉!”

점점 피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살고 싶었다. 억울하다 말하지 않겠다. 허나 떳떳하게 죗값을 치르고 싶었다.

다시 한번 각성자로서, 인류를 위협하는 몬스터를 없애고, 약자를 보호하고 싶었다. 각성했을 당시, 어머니가 해 주셨던 말처럼!

뚜벅뚜벅 걸어오는 죽음의 사자가 보였다. 이태진. 제2의 성요한.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입을 열어야 한다. 살려달라고, 정신 차렸다고, 죗값을 꼭 받겠다고 해야 하는데….

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세상이 반전됐다. 하늘과 땅이 여러 번 위치를 바꿔가며 움직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플래터를 벤 직후였다. 뒤쪽에서 절규가 튀어나왔다.

“팀장님!”

임형원이 고개를 저으며, 가지고 있는 방패로는 플래터를 겨누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꽤나 괜찮은 판단이었지만.

“야, 이건 또 신박한 개수작이네. 그만해 인마. 다 봤으니까.”

김석환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놈의 연기는 통하지 않았다. 그만큼 상황이 명백했다. 품속에 지니고 있는 녹음기는 꺼낼 필요도 없겠네.

“쯧.”

백인호 팀장이 어쩐지 씁쓸한 표정으로 임형원을 쳐다봤다. 직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뭐지? 저 눈빛은?

***

“이거, 요즘 자주 모이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그것도 한 놈 때문에.”

“그래도 이태진이니까.”

김석환이 사뭇 웃기다는 투로 말했다. 사내 간부들이 모인 회의실 안. 일성의 핵심전력들이 이태진 때문에 또다시 모였다. 아직도 신입사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녀석이었기에,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나저나, 그쪽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누가 들을세라 슬쩍 물어본 말에 김석환이 표정을 굳혔다.

“어련히 잘하고 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석훈인데.”

“그렇겠죠? 하도 소식이 없어서….”

“괜히 이야기 샐라.”

“옙.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어, 회장님 오십니다.”

말없이 자리에 앉은 최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겠습니다.”

B팀장 백인호가 그렇게 말하고 컴퓨터의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눈을 부릅뜬 채 죽은 플래터의 사진이 먼저였다.

“네로드의 오른팔, 플래터입니다. 현재까지는 협회와 공동으로 수사에 착수 중입니다.”

“뒤져보니 나온 게 있던?”

김석환이 턱짓하자, 백인호가 다음 사진으로 PPT를 넘겼다.

“네로드의 핵심사업이었던 아태지역 불법 각성제와 관련된 총책임자로 플래터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명됐습니다. 지금은 플래터를 대장으로 둔 조직원 112명의 행방을 조사 중입니다.”

“임형원은?”

“…플래터와 모종의 협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죽었어?”

“예. 어젯밤 병동에서 자살했습니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솥밥 먹던 사이였다. 그 끝이 자살이라는 게 여간 찜찜한 게 아니었다. 이마를 좁히던 김석환이 주제를 돌렸다.

“협회 쪽에서는 뭐래? 이 사건, 우리 거다. 네로드 때문에 죽은 사람만 벌써 세 명이야. 그냥 넘겨주면 그림 이상해져.”

“예. 그 부분은 협회와 일성의 공조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습니다.”

“조사단장이 문제네.”

누가 책임을 지고 네로드를 추적할지. 민감한 문제다. 협회 쪽에서나 일성 쪽에서나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태진은 어때.”

다리를 꼬고 나른한 얼굴로 화면을 쳐다보던 최태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을 던졌다.

“네?”

“이태진을 조사단장으로 앉히는 건 어떠냐고.”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제 갓 B급으로 올라온 놈입니다.”

대번에 백인호가 결사반대를 하고 나왔다. 옆에 있던 김석환도 찜찜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고.

“차라리 제가 책임지고 네로드 찾아오겠습니다.”

“네가?”

“제가 레인저이기도 하고, 또 임형원 그놈. 제 밑에 있던 녀석이었습니다. 제가 책임지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김석환 팀장이 나서기에는 협회에 비치는 그림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

변명처럼 주절대는 백인호를 최태성이 빤히 그를 쳐다봤다.

S급의 절대자란 그런 것이다. 딱히 스킬을 쓰지 않아도 숨막힐 듯 조여오는 기세가 남달랐다.

“그 건은 일단 보류하기로 하고.”

문득, 피식 웃던 최태성이 화면을 턱짓했다. 백인호는 그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안도의 한숨을 터트린 그가 화면을 넘겼다.

커다란 스크린에 이태진의 모습이 등장했다. 전화기를 툭 끊은 이태진이 몸을 날리는 것으로 영상이 시작됐다.

게이트가 열리고 오크와 맞닥뜨리는 이태진이 멀리서 잡혔다.

“으음.”

생각보다 더 처절한 사투였다. 모두가 말없이 화면의 이태진을 지켜봤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를 어떻게든 혼자서 감당한다. 어떻게든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듯 유리한 고지를 포기해가면서 싸우는 이태진의 모습은 히어로 무비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흐뭇한 시선이 장내에 맴돌았다.

“아무렴. 헌터라면 저래야지.”

“그래도 저러기가 쉽나. 요즘 애들 답지 않아.”

“그러니까 말이야. 다행히 운으로 얻은 능력에 취한 친구가 아니었어. 인성까지 흠잡을 데가 없잖아.”

“이기적으로 전투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치고 빠질 수 있었을 텐데. 저것 봐. 방금도 공격을 허용했잖아.”

“그 대신 사람 하나를 살렸지.”

장내의 모두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답게 이태진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금새 파악했다.

그래서 녀석이 예뻐 보였다. 헌터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의 교과서가 영상 안에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이태진이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기 위해 괴성을 질렀을 때였다.

“허어. 저 정도로 자신 있다는 말인가?”

“무슨. 저 친구 이미 한계야. 뒤를 생각하고 행동한 게 아니라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흥미진진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모두 끝난 일들이라 그랬고, 참사라 붙이기에는 피해 규모가 기적에 가까울 만큼 작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영상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태진이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이다.

곧이어 날아오른 이태진이 어느 지점으로 시선을 준 것을 끝으로.

치지직.

화면이 완전히 끊어졌다.

“이 시점을 끝으로 근방의 모든 CCTV와 블랙박스가 동시에 꺼졌습니다.”

백인호가 그렇게 보고했다. 스페이스바를 한 번 더 누르자 다음 영상이 시작됐다. 앞의 영상과 내용이 연결되지 않았다.

협회에서 나온 각성자들의 바디캠이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이태진을 중심으로 몬스터들이 죽어있다.

“검상이 아닙니다. 조사 중이지만, 마법적 처리로 보입니다.”

CCTV의 마지막 시점과 협회 헌터의 바디캠의 시간차는 그래봤자 5분. 그 사이 모든 몬스터들이 도륙났다. 그것도 고등급의 마법으로.

그 사이 CCTV가 꺼진 게 과연 우연일까? 그럴 리가. 분명히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

“누구일까?”

최태성이 웃으면서 말했다.

꿀꺽.

옆에서 지켜보던 김석환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함께한 세월이 20년이 넘는다. 저 얼굴을 알고 있다.

최태성은 자신의 것을 뺏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최태성의 웃는 낯 너머 분노가 느껴졌다.

“고마운 일이지. 선만 안 넘는다면 말이야.”

어찌 됐든 그대로 뒀다면 이태진은 죽었을 것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솜씨가 깔끔했다. 최태성의 입에서 제법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니.

의도적으로 이태진에게 접근한 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보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협회 쪽 반응은 어때.”

이태진의 결백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먼저 각오하라고 협회에 말했었다. 그런데 막상 자료를 까보니 오해의 여지가 다분했다. 협회에서 걸고넘어지려면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는 상황.

협회의 압박은 일성이라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먹고 뒤집어버리면 최태성도 한 수 접어줘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이고. 친 일성 기반의 언론사를 모조리 동원해 대서특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터진 B급 게이트, 사상자는 37명.]

[지난 20년간 B급 게이트가 도심지에 터졌을 때 평균 사망자는 2천여명. 서울 게이트 파동은 기적에 가까운 수준.]

[이번 게이트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 이태진?]

[혈혈단신으로 서울역을 지킨 영웅, 이태진.]

다행히 여론도 일성의 편이었다. 안 그래도 이태진의 인기가 한창 치솟고 있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만약 전투장면까지 매스컴에 공개된다면 정말 영웅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협회에서 문제 삼기에도 부담스러운 일이 됐을 것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것이었고. 협회에서도 이태진이 떳떳하다는 것쯤은 알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긍정적인 성명문을 발표 예정입니다. 데이터 어쩌구 했던 것은 서로 덮어두는 방향으로 마무리하고자 하는데….”

“그렇게 해.”

속 시끄럽게 싸워봤자 좋을 게 없었다. 협회와는 최대한 안 엮이는 게 나았다.

“그리고 아래 사항은 협회가 제시한 이태진 개인에 대한 보상안입니다.”

어쩐지 백인호가 침음을 삼키며 태블릿을 건네왔다. 주르륵 적힌 보상안을 훑어보는데 최태성의 입에서 대번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첫 줄부터 그랬다. 몬스터의 피와 가죽에 대한 가치를 산정해 놨다. 던전에서 죽은 몬스터는 공략과 함께 산화되기 때문에 연구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 오직 게이트에서 나온 것들뿐.

이번 게이트는 특히나 B등급이었고, 몬스터의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100억이라는 돈은 아무리 봐도 의도가 적나라하지 않은가.

이후로 나열된 것들은 더 그랬다. 내려도 내려도 끝도 없이 나열된 보상과 협회 차원에서 보장하는 이태진의 특혜는.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적혀있는 투는 마치 상관을 대하는 듯하다. 아무리 B급 게이트를 혈혈단신으로 막았기로서니. 과해도 너무 과했다. 의도를 숨기지 않아서 더 기분 나빴다.

“이 정도면 나라도 협회로 가겠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최태성이 말하자.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백인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보상을 받기 위해 이태진이 혼자 협회에 방문했으면 좋겠다는…입장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최태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

손영혁 과장의 말대로였다.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가 보였다. 과장직을 달기에는, 그것도 헌터 잡는 감찰반의 과장이라기엔 다소 젊은 남자였다.

“이태진 씨를 협회까지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감찰과는 협회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전력이다. 그런 곳의 과장이라는 사람이 기사를 자처하며 에스코트한다는 것부터가 협회에서 나를 극진히 대접한다는 게 느껴졌다.

준비한 차량도 그랬다. 검은색 세단의 뒷좌석에 앉자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환경이 느껴진다. 고등급의 소음차단 마법이었다.

또한, 단단한 갑옷처럼 묵직한 파동도 차량 전체에서 느껴졌다. 차량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정도로 굉장한 보호 마법이 덧씌워져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엿본 느낌에 신선한 기분을 만끽하던 중, 운전대를 잡은 손영혁 과장이 말을 걸어왔다.

“전부터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협회에 있다 보니 들리는 말들이 많아서. 하하!”

대충 감사하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냉큼 손영혁이 말을 이었다.

“세간에 이름을 알린 게 비무 대회였던가요? 사실 협회에서는 그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습니다만. D급에 머무실 때부터 일성의 선배들을 이겼다지요?”

그 이상한 소문은 여기까지도 퍼졌던가 보다. 허허 웃으며 아니라고 말했다. 회사 일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되니까.

“또한 이번 활약상은 대한민국 전체가 이태진 씨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죠. 홀로 B급 게이트를 공략하시지 않았습니까. 믿지 못할 일입니다. 반년 전만 해도 D급 헌터이셨던 분이 이토록 경이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니. 혹시 비결이 있으십니까?”

그러면서 손영혁이 뒤돌아보며 씨익 웃는다.

음?

감찰과 과장 정도라면, 남아있는 자료만 봐도 나 혼자 공략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 마녀의 존재까지 유추할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구태여 민감한 사안을 끄집어내기에 가만히 있자, 손영혁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쉽겠습니다. 모두 이태진 씨의 공로가 아닙니까. 저희가 공표한 내용에 섭섭하지는 않으십니까?”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네. 그렇지 않으시겠죠.”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 착각인가.

“겸손하시네요. 괜히 ‘검신’이라는 위명이 붙은 게 아닌 듯합니다.”

“……,.”

“그런데 조금 민망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이름을 붙이기에는 아직 보여준 게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룸미러에 비친 손영혁 과장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져 있었다.

“하.”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건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애초부터 나를 도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것도 대놓고 말이다.

굳이 검신을 들먹이는 것도 그랬다. 치켜세우는 척, 손영혁이 나를 건드리고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만히 당하고 있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감찰과 소속이시라고요?”

내가 그렇게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다면 각성자이시겠군요.”

“예. 범죄를 저지른 각성자들을 잡아들이려면 아무래도 협회에서도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하니까요. 하하. 걱정 마십시오. 이태진 씨는 지금 상 받으러 가는 것 아닙니까.”

재밌는 농담을 하는 듯 웃는 그에게 말했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협회장님은 참으로 고심이 크겠습니다. 아랫것들이 이렇게 말을 안 들으니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대놓고 맞받아 칠 줄은 몰랐던지 손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협회분들은 대체로 저를 싫어하시나 봅니다. 혹시 회장님도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녀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웃는다.

“혹시 제가 실언을 했….”

“오늘 한번 확인해 보면 되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영혁 또한 고개를 끄덕였고.

그사이 차가 멈춰 섰다. 차창 밖으로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본부가 보인다. 청와대 다음으로 힘이 세다는 곳.

아카데미 생도 시절, 정치를 꿈꾸는 녀석들이 하나같이 바라는 곳이기도 했다.

크기도 그랬고 화려함으로 봐도 그랬다. 일성의 본사 건물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마치 경복궁을 연상시키는 듯한 성벽의 웅장함부터가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이제 좀 이해가 되네요.”

“…네?”

“아닙니다.”

직접 보고 나니까 손영혁이 나를 도발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런 곳에서 일하다 보면 다른 각성자들이 얼마나 같잖아 보일까.

“이곳부터는 차량 이동이 제한된 곳입니다.”

차에서 내린 손영혁이 성문 같은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핵폭탄이 터져도 성벽에 금이나 갈까 싶을 정도로 저릿저릿한 파동이 느껴졌다.

굳이 내색하지 않기를 잘했다 싶었다. 은근슬쩍 내 반응을 살피던 손영혁이 내 무뚝뚝한 표정에 순간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으니.

“수고하십니다!”

성문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장정은 우리가 다가오자 묵례를 하면서 길을 텄다. 거대한 문이 소음 하나 없이 양옆으로 벌어진다.

“가시죠.”

손영혁이 앞장선 길을 따라갔다. 여러 채의 전각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사고 한 번 칠 것 같은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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