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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37화 (37/170)

37화 복수 (2)

-이태진 씨?

부지불식간에 미래를 보고 돌아왔다. 수화기 너머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터지는 숨을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괜찮으십니까? 이태진 씨? 오늘 시간이 안 되시면 내일이라도….

“네. 협회는 내일 가야 할 것 같네요. 오늘 제가 할 일이 있어서.”

그 말을 끝으로 전화기를 껐다. 기회는 생각지도 않을 때 온다더니. 드디어 놈에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

***

-이태진이 백인호 팀장 스카웃을 거절했다던데?

-그리고 A팀 찾아간 게 더 쇼크지. 기사까지 떴잖아.

-백 팀장님은 뭐래?

-쪽만 팔린 거지. 아니라고 하면 뭐해. 정황이 명백한데.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임형원은 지금이 그때라는 걸 알았다. 시종처럼 놈을 지키던 한석훈도 없는 참이다.

그길로 곧장 이태진을 찾아갔다. 녀석이 어제 벌인 일을 알고 있다. 혼자서 B급 게이트를 공략해?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어디서 퍼지는 듯했다.

그런 감정을 티내지 않으며, 임형원이 이태진을 불렀다.

“이태진. 어제 그건 뭐야? 서울역에 게이트가 터져? 그걸 너 혼자 막았다고? 이게 무슨 말이냐?”

“하하. 그게. 그렇게 됐네요.”

녀석이 곤란한 듯 웃는다. 그러면 그렇지. 일성의 주특기가 또 발동한 것이다. 슈퍼스타 한 명 만들려고 온갖 괴소문을 떠들어대는 거.

“헛소문이지?”

“네. 당연히 헛소문이죠. 그보다 임 팀장님.”

녀석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뭔가에 쫓기듯 초조한 눈빛으로.

“혹시 C팀은 공략계획 더 없습니까?”

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구나. 녀석은 으레 그렇듯 그 레벨대 각성자들이 할 법한 고민을 겪고 있었다. 빠르게 성장해서, 이 구간을 뚫고 싶다는 고민.

더군다나 일성에서 한창 밀어주고 있는 지금이다. 그 부담감을 알만했다,

“그 기분 이해한다. 그래도 어쩌겠어. 요즘 회사 분위기 어수선하거든. 흠. 아, 이건 어때?”

막 생각났다는 듯 임형원이 말을 이었다.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우리 둘이서 던전을 공략해 보는 거다.”

“저희 둘이서요?”

슬쩍 불안한 눈초리의 녀석이었지만, 수락할 것임을 안다. 자신이 약을 받아들였듯, 이태진 또한 강해지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것이었다.

“…어. 뭐, 그러죠. 그런데 팀장님.”

말을 이어가던 녀석이 씁쓸한 듯 고개를 저었다.

“왜, 싫어? 아니면 나한테 실망한 거냐?”

이태진이 다른 생각을 못 하게끔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잘 생각해. 너 지금 위태로워 보인다고. 알아. 그 기분 뭔지. 불안하지? 내 실력은 이게 아닌데, 여기가 내 자리가 맞나? 하는 부담감. 그러다 사고치는 놈 많이 봤다. 다른 게 아니라 바람 쐬는 기분으로 갔다 오자고. 협회 눈만 잘 피하면 이만한 경험치 덩어리도 없으니까.”

“그게 아니라.”

음?

이게 아니라고? 이태진의 눈빛에 슬쩍이나마 보인 그것. 살기 아니던가?

“아니에요. 감사하다고요. 이런 기회 주셔서.”

착각이었다.

이태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얼굴 표정은 안보였지만 황송해할 녀석의 얼굴은 뻔했다.

“감사하긴. 내가 더 고맙지.”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임형원은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불법으로 던전을 공략한다? 회사에 소문이 나서 좋을 게 없었다.

당장 한 시간 후 녀석을 불러냈다. 경기도의 한 야산이었다. 등산객 한 명 없는 이름 없는 산.

“여기 던전 있는 건 아셨어요?”

아까와 달리, 이태진이 낭창한 얼굴로 질문했다.

“어쩌다가.”

이제 와서 살갑게 대할 필요도 없겠지. 곧 죽을 놈한테 뭐하러. 생각해 보니 그렇다. 김찬현의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병신 같은 놈. 일을 처리할 때는 이렇게 해야지.’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싱긋 웃는 이태진의 낯짝에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왜 이러지? 아, 이게 그 약의 부작용인가 뭔가 하는 건가?

-약간 부작용이 있기는 한데. 그냥 분노조절장애 같은 거. 별거 아니야.

플래터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요 팀장님.”

플래터는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그나저나 플래터, 그놈은 뭔데 명령하는 거지? 범죄자 새끼가.

“제가 요즘 감각이 부쩍 예민해져서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태진을 죽이고, 플래터도 같이 죽이자. 그리고 회사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거지.

이태진과 플래터 간의 전투가 있었다, 이태진의 호출을 받고 달려간 곳에 빈사 상태의 이태진과 멀쩡한 플래터가 있었고, 자신이 플래터를 마무리했다. 아쉽게도, 이태진은 플래터의 손에 죽었고.

‘임형원! 네가 해낼 줄 알았다. B팀? 그까짓 거. 들어오는 즉시 부팀장 자리는 네 것이다.’

귓전에서 백인호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다가올 미래였다.

“이 산에 정말 던전이 있다면 진작 기감에 붙잡혔어야 하는데. 좀처럼 잡히지가 않네요.”

“뭐? 뭔소리야 아까부터. 따라오기나 해.”

“임형원 팀장님.”

녀석이 재밌다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이태진의 눈빛에 슬쩍 비친 적개심이 보였다. 뭐지, 도발인가?

산을 오르던 발길을 멈췄다. 말없이 이태진을 바라봤다. 뭔가 눈치챘나? 상관없다. 이미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했으니까.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일 줄이야. 플래터는 어디 있지?”

“…뭐?”

되묻기도 전에, 그렇게 놈이 제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최태성에게 받았다는 그 갑옷부터 시작해서 롱소드, 목걸이, 반지까지. 하나같이 착용제한이 B급으로 걸린 것들이었다.

“뭐 하는 짓이냐. 이태진.”

“다 알고 왔으니까 더 숨기지 말자. 이 앞에 플래터 있잖아? 데려와.”

놈이 팔짱을 끼며 고갯짓했다.

“…어떻게 알았지?”

“잘.”

이태진이 한쪽 눈을 찡긋한 순간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숲에서 플래터가 튀어나왔다. 흥미롭다는 얼굴로.

“오랜만이야. 이태진. 아, 제2의 성요한이라 불러야 하나?”

까드득.

싱긋 웃던 이태진이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걸까. 계획은 어떻게 눈치챘고? 자신과 플래터가 한패라는 건 또 어떻게?

허나 상관없었다. 녀석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테니까. 플래터 하나만 해도 이태진을 도륙 내고도 남을 텐데.

문득, 이태진이 플래터에게 턱짓했다.

“내가 말이야. 얼마나 널 찾아다녔는지 모를 거다.”

“나를?”

“받을 게 있어서.”

“어떤 것?”

“네 모가지.”

***

“미쳤군.”

플래터, 놈이 큭큭 웃었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미래가 보이더라. 임형원을 따라갔다가 플래터의 손에 팔이 잘리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미래.

설마 설마 했다. 함께 던전 탐사를 무사히 마친 뒤로 임형원 팀장을 좋게 봤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이유 따위 궁금하지도 않았다. 적으로 상정하면, 죽인다.

“건방지네.”

눈물까지 흘려대며 배꼽을 잡던 놈이 뚝 웃음을 멈췄다.

“너 혼자 나를 상대하겠다고? 쯧. 지나치다. 태진아.”

플래터가 싱긋 웃었다. 어떻게 요리해 줄지 상상하는 듯했다.

“누가 나 혼자 왔대?”

“응?”

놈이 고개를 갸웃했다. 직후에 놈의 몸에서 마나가 뻗어나갔다. 파동을 일으킬 줄 아는 놈이었다.

“무슨 허세가 이래? 안 되겠다. 데려가기 전에 나한테 좀 맞자.”

놈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나 혼자 놈을 죽일 수 있다면 그것만 한 복수가 없겠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무리다. A급이 된 후라면 모를까.

품에서 호출기를 꺼냈다. 큭. 이런 걸 쓸 날이 올 줄이야. 만화 속 귀족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대번에 임형원이 기겁하며 달려왔다.

“어서 막아!”

“저게 뭔데.”

낭창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플래터를 무시하고 임형원이 내 손에 들린 호출기를 가리켰다.

“씨발 막으라고!”

내 힘으로 하지 않는 복수는 의미 없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무엇보다 플래터를 죽이는 게 중요한 시점이었다. 때문에 아까 전, 회장실을 찾아갔다.

-뭐? 누가 배신을 해? 임형원? 이게 미쳤나.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한솥밥 먹는 식구까지 찌르고 있어? 왜, 아직도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보여? 정신 차려 이 새끼야!

B팀의 백인호 팀장은 인상을 팍 썼고.

-이태진. 이거 쉽게 넘어갈 문제 아니다. 방금 발언, 주워 담을 수 없는 거라고.

A팀 팀장 김석환은 신중하게 되물었다. 그리고 최태성은.

-……. 한번 믿어보지. 허튼 말이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최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 호출기를 받으러 갔던 때를 생각하는 것도 잠시.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전방에 두 놈이 달려오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임형원이 황소처럼, 반면 심드렁한 얼굴의 플래터는 천천히.

“늦었어.”

띡.

씨익 웃으며 호출기를 누른 순간이었다.

쿠웅!

직후,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절대자가 땅 밑으로 내려왔다. 먼지가 채 걷히기도 전이었다. 내내 재밌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플래터가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야. …최태성?”

직후였다. 최태성의 신형이 사라지던 순간.

꽈앙!

그저 거대한 폭음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눈 앞을 가리는 먼지바람이 시야를 가렸다. 아니, 그보다 몸의 중심을 잡기도 어려웠다.

파동을 느끼기에도 그랬다. 거대한 벽 같은 게 가로막고 있었다. 허나 분명한 건, 강력한 힘 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충격파였다.

쿵! 쿵!

그 직후, 두 명이 더 바닥에 내려섰다. 나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출동할 줄은 몰랐는데.

이때쯤에는 누런 먼지가 조금씩 걷히던 시점이기도 했다.

뭐야. 벌써 전투가 끝났다고?

내려선 두 남자의 얼굴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B팀의 백인호 팀장과 A팀의 김석환 팀장. 둘 다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뭐라 말을 걸기도 애매했다.

그들로부터 눈을 떼며 시야를 더 넓게 잡았다. 전방으로는 오색 찬란한 기운에 둘러싸인 최태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커헉!”

플래터가 초주검이 돼 있었다.

***

부모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쪽은 때리고 한쪽은 바람나고. 젠장할 집구석.

그쯤에서 각성한 건, 플래터에게 행운이었다. 더군다나 특수한 능력을 받았다. 공간을 절삭할 수 있는 능력. S급 특성만큼이나 귀한 능력이라 평가됐다.

플래터는 그것이 계시라 여겨졌다. 그리고 계시를 따라, 두 늙은 인간들을 먼저 죽였다.

그 강렬했던 감정은 영원히 잊지 못할 듯했다. 두 늙은 부부가 살려달라고 얼마나 애원하던지. 눈물을 흘리며, 또 웃으며 자신의 부모를 땅에 묻었다.

그리고 얼마 후,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들렸다.

계시!

또다시 계시가 내려졌다. 사람 같지도 않은 폐기물을 제 손으로 정화하라는 계시였다.

“쓰레기 같은 것.”

법의 심판은 그 쓰레기에게 너무 자비로웠다. 놈은 제 주제도 모른 채, 꼴에 각성자랍시고 반항 아닌 반항을 했다. 놈의 다리를 자르고, 팔을 잘랐다.

“누, 누구길래 이러십니까! 살려주십시오!”

그놈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결백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웃긴 놈.

“살려 줘? 너는 네 아내, 자식들 다 죽여놓고 살려달라는 말이 나와?”

“가족을 죽이다뇨!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사람을 잘못 보신…!”

놈은 죽는 순간까지도 결백을 주장했지만.

“지옥에나 떨어져라.”

그런 눈속임에 속을 리가. 깔끔하게 쓰레기 같은 그 폐기물을 처리했다.

서걱! 서걱! 서걱!

그 이후로도 플래터의 자경활동은 계속됐다. 한 명을 죽이면 다음 타깃에 대한 정보를 속삭이는 음성이 머릿속에서 들렸다. 계시였다! 자신은 선택받은 것이 분명했다!

한 놈, 두 놈, 세 놈…. 세상에는 범죄자가 그렇게나 많았다. 그 많은 쓰레기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었다.

그렇게 500명쯤 죽였을 때였나.

“…….”

문득,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혹시 이 중에 무고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고민이 들던 차였다.

-플래터.

“누구냐!”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였다. 그것만으로는 특정할 수 없었다. 헌데 그때, 머릿속을 울린 음성과 동일한 육성이 튀어나왔다.

-의심하지 마라. 플래터. 네가 너와 함께한다. 의심하지 마라. 플래터. 내가 너와 함께한다. …의심하지 마라. 플래터.

…네로드 님이셨다!

아아. 네로드 님. 악을 구원하실 분!

감히 계시를 부정했었던 자신을 다그쳤다. 그리고,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네로드님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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