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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33화 (33/170)

33화 서울역 게이트 (3)

“시타둠님은 전능하시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것이 첫 장면이었다. 순간적으로 스친 남자의 표정이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지?

뭐가 위대하다고?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해댔다. 심지어 인종도 다양하다.

“시타둠님은 위대하시다!”

방금 나에게 허리를 숙인 이 남자는 유럽인처럼 보인다. 아예 바닥에 엎드린 저 여자는 아랍인이었고. 영광스럽다는 듯 나를 보고 그렇게 말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도 나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장소도 이상하다. 마치 신화 속에서, 혹은 그리스의 유적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신전 안에 내가 있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내야 했다. 추측건대, 이들은 시스템을 섬기는 이단자들로 보였다. 맞다. 반드시 박멸해야 하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왜 있는 걸까.

일단 눈에 보이는 모든 정보들을 머릿속에 담았다. 내 심란한 마음과 다르게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곳의 나는 거침이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초능력은 나를 당황시켰다.

“전지전능하신 교주님을 뵙습니다.”

바로 앞의 사이비 신자가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곳의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그녀는 그게 가문의 영광이라도 되는 듯 감격에 겨워했다.

일성의 직원들이 죽는 미래를 봤을 때보다 어처구니없기로는 이게 더 했다. 믿을 수 없지만 미래의 나는 사이비 종교의 수장이 된 듯했다.

심지어 규모도 꽤 커 보인다.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만 족히 일백 명이 넘었다.

위안이 되는 점은. 초능력은 확정된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오대산의 던전 때와 같이, 그것이 원하는 방향은 분명히 있었지만 선택권은 오롯이 내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당연히 나는 이것들의 교주가 될 생각이 없다. 죽으면 죽었지 시스템을 섬기는 사이비 교주? 그런 건 내게 있을 수 없다.

그런 자세로 이곳들을 눈에 담았다. 다만, 시기를 추측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꽤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만 있을 뿐.

그래도 이 정도 규모의 수장을 맡고 있으니, S급에 달하는 무력을 얻은 때가 아닐까 하는 어설픈 추리만 가지고서 지켜봤다.

그러는 사이 사이비 교주가 된 내가 신전의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섰다. 꽤나 마법적 처리에 신경쓴 모양새였다.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헬리오스에 박힌 것과 똑같은 방어문양이 겹겹이 문에 박혀 있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꽤나 근사하기는 했다.

끼이익.

자동으로 문이 열리자, 붉은색 비단이 앞으로 깔린 게 보였다. 그 끝에는 조선 시대 임금이나 앉을 것 같은 왕좌가 있었다.

저벅. 저벅.

마치 왕이라도 된 듯, 내 걸음걸이에는 내가 느끼기에도 기품이 서려 있었다. 사이비 교주 노릇을 꽤나 잘 수행하고 있었다. 내 걸음이 이어질 때마다 양옆의 인물들이 허리를 숙였다.

“시타둠님은 위대하시다!”

같은 말을 하면서.

그래. 시스템을 신으로 섬기는 단체는 예전부터 많았다. 다만 늘 이들의 존재는 사회의 혼란만 낳을 뿐이었다.

하나같이 그랬다. 죄 없는 민간인들을 죽이고, 시스템의 뜻이라며 같은 각성자들에게 칼을 들이댔다. 몬스터를 막기에도 급급한데도.

때문에 우리 인류는 몇 번의 종교전쟁을 겪었다. 그동안 죽은 인명만 해도 수천만에 달한다.

이후 당연하게도 시스템을 섬기는 사이비 집단은 몬스터와 동일취급을 받았는데.

아직까지도 이런 것들이 남아있었다. 그곳의 내가 자연스럽게 왕좌에 앉았을 때였다.

“고하라.”

내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가 대전에 울려 펴졌다. 그저 한마디 했을 뿐인데 움찔거리며 떠는 사람도 있었다.

서른 명.

내 앞에 있는 서른 명의 사람들이 이 단체의 고위급으로 보였다. 그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 봤지만 아는 얼굴이 없었다. 그래도 얼굴을 모두 기억해 놓았다. 내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였다.

내 바로 왼편에 선 자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노인이었다.

“위대하신 시타둠님의 대리자이자, 우리를 이끄실 영도자이신 교주님께 아룁니다. 간악한 한국의 각성자 협회는 감히 교주님의 명령을 거부하며 교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문을 내놓았습니다. 감히 교주님과 교를 우롱하며, 위대하신 시타둠님의 힘을 빌려 쓰고도 그분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한국의 위정자들을 정화의 불꽃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노기를 띠며 말하는 그는 거친 파동을 숨기지 않았다. 아찔할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었는데 어찌 된 것이 그곳의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미래의 나는 그 정도로 강한 모양이었다. 이 점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다음이었다. 오른편에 서 있던 여자가 그때 고개를 들었다.

아!

그녀였다. 현재의 세상과 한 점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백옥 같은 피부도,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눈도. 아찔할 정도의 미모였다.

다만 이 단서를 바탕으로 가까운 시기라 추측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려 B급 게이트의 몬스터들을 일거에 쓸어버린 여자다. 젊음을 유지하는 마법을 쓴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었다.

여자가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미국을 포함한 그것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 서방세계 또한 마찬가지로 교와, 살아 계시며 우리를 굽어살피시는 시타둠님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부디 명령을!”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여자의 옆에 있던 녀석은 아예 주먹을 부르르 떨며 내게 보고를 해 왔다. 표정만 보면 부모라도 잃은 게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보고가 이어질수록 장내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파동이 거세게 진동했다. 당연하게도 이 사이비 집단을 옹호하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북한과 중국도 우리를 부정한다는 보고가 올라왔을 때였다. 그때부터는 이곳저곳에서 끔찍한 말이 흘러나왔다.

성전, 살육, 정화 등등.

그들의 통일된 주장은 결국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이었다. 언뜻 듣기에도 한두 명의 목숨이 달린 일이 아니었다.

내 미래가 아니라 해도 허투루 흘려들어서는 안 됐다.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현재로 돌아가 이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일이 벌어지기 전에 모조리 없애야 할 것이다.

내 심정과 다르게 그곳의 나는 느긋하게 장내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쏠렸다. 마치 명령만 내리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하나같이 충성스러운 눈빛을 띠고 있었다.

넘실대던 기운들이 잠잠해진 것도 그때였다. 그곳의 나는 뭐가 그리도 흡족한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금의 상황을 두고 볼 수 없구나. 우매한 대중들을 속이는 위정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시종 노릇을 하고 있는 각성자들까지도. 어리석은 대중들은 거기에 속아 시타둠님의 위대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니. 이는 위대하신 시타둠님의 뜻이 아님이다.”

벌떡 하고 그곳의 내가 일어났다. 그 순간 장내에 희열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내 말에 결의를 다지듯 얼굴을 굳히는 자들도 보였다.

“이 세상의 구원자로 태어났으며 시타둠님의 대리자인 본 교주가 명하노라. 이 자리에서 성전을 선포한다.”

내 말에 이때만을 기다린 듯 대전의 모두가 기운을 발산했다. 아까보다 더 거센 파동이 이곳저곳에서 표출됐다.

놈들 하나하나가 최소한 A급인 게 분명했다. 이 빌어먹을 사이비 집단은 내 생각보다 세력이 더 큰 것 같다.

“일 장로.”

내 말에 오른편의 여자가 튀어나왔다. 단서 하나를 얻었다. 그녀, 아니 마녀의 직책은 일 장로였다.

“일 장로. 명을 받들겠습니다! 위대하신 시타둠님을 위하여!”

일 장로는 굳은 얼굴로 내 명령이 튀어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옥불이라도 들어가겠다는 듯 눈빛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미친것들. 그런데 그곳의 나는 더 미친 것이 분명했다.

“성전의 첫 전장을 너에게 맡긴다. 장소는 서울이다. 위대한 정화를 위함이니 그곳의 전권을 너에게 맡긴다.”

“명을 받듭니다!”

내 말에 감격한 듯 일 장로가 바닥에 이마를 쿵 찍었다. 더 이상 그녀의 아름다운 외관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미치광이 광신도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내 손끝에서 믿지 못할 이적이 일어났다. 검지를 위에서 아래로 긋자 그대로 공간이 벌어졌다.

마치 몬스터 게이트의 축소판처럼 벌어진 공간 안으로 익숙한 장면이 보였다. 서울역이었다.

“가라.”

내 말과 동시에 일 장로가 벌어진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화악-!

동시에 장면이 전환됐다. 초능력이 아직 내게 보여줄 것이 남아있었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불타오르는 서울역이 보였다. 현재의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곳을 미래의 내가 없애버린 것이다.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이놈은 내가 아니니까.

쿠웅!

그럼에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기필코 지키고자 했던 것들이 하나둘 무너져갔다. 고층 건물이 붕괴되고 불타오르는 전철이 철도 바깥으로 뒤집혀있었다.

곳곳에서 비명이 넘쳐흘렀다. 현실의 서울역보다도 더한 아수라장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의 나, 아니 놈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그곳을 눈에 담고 있었다.

저벅. 저벅.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그곳의 놈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각성자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내 앞을 막아섰다. 협회의 것이 분명해 보이는 문양의 갑옷을 입은 자였다.

무슨 말이 오가지도 않았다. 남자는 그저 분노에 찬 눈빛만을 보내며 내게 달려왔다. 나는 그 눈빛을 평온하게 받아 낼 뿐이었고.

남자의 검이 그어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아무 동작도 취하지 않은 채 가만있었다. 마치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눈을 한 번 깜박인 순간, 남자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수박처럼 ‘파삭’ 으깨졌다.

허물어진 남자 앞으로 일 장로가 보였다. 동시에 내 뒤로 놈들, 사이비 집단의 교도들이 모였다. 일백 명쯤 되나?

서울은 각성자 협회는 물론이고 일성과 대성, 그 외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모인 곳이다. 겨우 이 정도 숫자로 서울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보이는 곳에만 시신으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놈들이 성전 운운한 게 허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놈들에게서는 내가 찾는 게 안 보였다. 놈들을 찾을 결정적인 단서 말이다.

본디 종교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문양이 있는 법인데 이것들에게선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갖춘 장비도 제각각이었고 색깔도 통일된 게 없었다.

순간 그곳의 내가 고개를 들었다. 일 장로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표정을 알고 있다. 현실에서 몬스터를 다 죽인 채 나를 보던 표정이 꼭 저랬다.

“전능하신 교주님의 명을 받들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끝내 단서를 찾지 못하고 이 끔찍한 악몽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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